이슬람 정치가 극단주의 대신 실용주의로 선회하는 까닭

한 소녀가 2025년 12월 8일(현지시간) 새벽 시리아 다마스쿠스에서 열린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 축출 1주년 기념행사에서 시리아 국기를 들고 있다. /사진=AP/뉴시스

2001년 9·11 테러는 국가가 아닌 행위자가 최초로 국제정치 무대 전면에 등장한 사건으로 평가받습니다. 이후 (국가 단위에 기반한) 국제정치의 성긴 그물망을 피해 움직이는 테러 조직부터 범죄조직 등의 초국가·탈국가적 행위자들이 많은 관심을 받았고 향후 국가가 더는 주인공이 아닌 국제정치를 전망하는 대담한 주장도 나오곤 했습니다. 미국 주도의 '질서 기반 국제질서'가 영원할 것처럼 여겨졌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러시아와 중국이 미국의 공백을 치고 들어오면서 다시 국제정치는 국가 간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bellum omnium contra omnes'의 장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한때 대표적인 초국가적 행위자였던 이슬람 극단주의(지하디즘)의 현재는 어떨까요? 월스트리트저널의 1월 2일자 기사는 글로벌 지하디즘의 쇠퇴를 다각도에서 분석하고 있습니다. 집권세력이 되면 아무래도 민생이 가장 중요해지는데 이런 측면에서 지하디즘이 도움이 된 경우가 없다는 것은 독자분들께서도 이란 등의 사례로 어느 정도 체감하고 계실 것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그 밖에도 매우 흥미로운 지적을 하는데 그동안 글로벌 지하디즘에 큰 '뒷배'였던 사우디아라비아가 빈살만 왕세자가 실권자가 된 이후 극단주의 세력에 대한 지원을 끊은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또한 공산주의 이념과의 비교는 앞으로 지하디즘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에 대한 실마리를 줍니다. 이는 작게는 중동 지역에서 한국 기업의 진출 가능성이 걸린 '기회의 창'이 열리는 것이기도 하지만 보다 넓게는 '테러와의 전쟁' 이후 새롭게 재편되는 중동의 정치적 질서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슬람국가(IS)의 영향을 받은 테러리스트들이 12월 14일 시드니에서 열린 유대교 종교 행사를 공격하기 일주일 전, 아흐메드 알샤라 시리아 대통령은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외교 컨퍼런스에서 연설했다.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어울린 직후 정장과 붉은 넥타이 차림을 한, 과거 이슬람국가 시리아 지부를 창설했던 알샤라 대통령은 컨퍼런스에 모인 고위급 인사들에게 시리아가 이웃 이스라엘을 포함한 그 누구에게도 문제의 근원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위기를 수출하던 나라에서 안정을 가져다줄 희망이 있는 나라로 변모했습니다." 알샤라 대통령이 말했다.


시드니 하누카 파티에서 15명을 총으로 살해한 아버지와 아들처럼 스스로 급진화된 이슬람국가 동조자들에 의해 세계 곳곳에서 이따금씩 테러 행위가 발생하지만 중동과 그 너머에서 정치적 이슬람이 나아가는 큰 방향은 이런 사건들과는 다르다. 세계를 격변시키겠다는 유혹에서 벗어나 서방을 포함한 나머지 세계와 더 실용적으로 공존하려는 역사적 전환 속에서, 정치적 이슬람은 대체로 알샤라의 길을 따르고 있다.


"지하디즘과 급진주의는 소멸하고 있습니다. 지난 100년 동안 단 한 번도 사회에 제시할 성공적인 모델을 가진 적이 없었기 때문이죠." 이라크 자치 쿠르디스탄 지역의 전 국회 부의장이자 집권당의 고위 지도자인 헤민 하우라미가 말했다.


1928년 무슬림형제단의 창설과 함께 등장한 현대의 정치적 이슬람 이념은 20세기의 다른 두 이념인 공산주의와 파시즘의 영향을 받았다. 정치적 이슬람은 공산주의와 파시즘처럼 유토피아적 신세계를 추구했다. 서구 식민주의자들이 그은 부자연스러운 국경을 지움으로써 세계질서, 혹은 적어도 현대 무슬림 민족국가들을 전복시키겠다는 포부를 품었다.


오사마 빈 라덴부터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에 이르기까지 점점 더 많은 급진 이슬람주의 지도자들이 두각을 나타내면서 범이슬람 칼리프 국가의 꿈은 파리 교외의 주택단지부터 필리핀 남부의 정글까지 뻗어 있는 초국가적 지하디스트 네트워크에 불을 지폈다. 지하디즘은 여러 세대에 걸쳐 서방과 충돌하면서 미국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지에서 장기전으로 끌어들였다.


이제 이 물결은 잦아들고 있다. 이는 영구적일 수도 있다. 글로벌 지하드는 더 이상 유행하지 않는다. 특히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 국소적인 반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권력을 자랑한 이슬람주의자들은—시리아의 알샤라의 운동이든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이든—지역화하려는 열망을 공언한다. 전 세계적인 성전 대신, 그들은 미국, 인도, 중국, 러시아와 같은 비무슬림 강대국을 포함한 모든 국가와 우호 관계를 구축하며 국가적 문제에 집중하고자 한다. 그들에게 민족국가는 지워져야 할 대상이 아니라 발전시켜야 할 대상이다.


"폭력적인 차원과 정치적 차원, 그러니까 칼리프 국가의 차원 양쪽에서 초국가적 유토피아 요소로부터의 후퇴가 있어요." 케이토연구소의 선임 연구원이자 터키의 이슬람 정치학자인 무스타파 아키욜이 말했다. "탈레반과 시리아의 알샤라는 '지하디스트' 운동이 민족해방운동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단, 이념을 덜 내세우고 더 실용적인 노선을 취할 경우에만 그렇죠."


이러한 변화의 일부는 미국이 주도한 해외 전쟁의 직접적인 결과다. 많은 이슬람주의 지도자들은 초국가적 야망이 감당할 수 없는 대가를 수반함을 깨달았다. 또 다른 이유는 많은 무슬림 국가들의 전반적인 변화로, 새롭고 더 개방적이며 글로벌로 연결된 세대가 성장함에 따라 급진적 통치의 과잉이 광범위한 혐오감을 유발했기 때문이다.

서방과의 협력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을 예로 들어보자. 물론 그들은 2021년 미국이 지원하던 아프가니스탄 공화국을 축출한 후 11세 이상 소녀들의 교육을 금지하고, 대부분의 직업에서 여성을 배제하며, 보수적인 규칙의 엄격한 준수를 강요하는 억압적인 체제를 국내에 다시 수립했다. 그러나 2001년 이전의 집권기와는 달리 그들은 더 이상 자국이 세계 테러의 발판이 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며 심지어 이슬람국가에 대항하여 서방과 협력하기도 한다.


이라크 주둔 미군의 포로였던 알샤라는 2011년 이슬람국가의 창시자 알바그다디에 의해 고향 시리아로 파견되었다. 처음에는 알카에다로 전환한 후, 알샤라는 이슬람국가 및 알카에다와 싸웠던 더 온건한 운동인 하야트 타흐리르 알샴을 창설했고, 1년 전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을 무너뜨린 공세를 이끌었다. 이후 시리아는 드루즈와 알라위파 소수민족에 대한 치명적인 폭력을 겪었지만 알샤라의 통치하에 있는 다마스쿠스는 술을 구할 수 있고 여성들이 엄격한 복장 규정을 지킬 필요가 없는 비교적 자유로운 도시로 남아있다.


터키의 전 총리이자 10년 전 시리아 이슬람 반군을 지원하는 정책의 핵심 설계자였던 아흐메트 다부토울루는 현재 정치적 이슬람의 진화와 1920년대 소련에서 레온 트로츠키와 이오시프 스탈린을 대립시켰던 분열 사이에 유사점을 지적했다. 스탈린은 끝없는 세계 혁명을 향한 트로츠키의 열망을 물리치고 소련을 서방과 무역하고 외교 관계를 유지하는 민족국가로 정상화했다. "오늘날 시리아를 비롯한 민족국가 프로젝트는 더 실행 가능하고, 더 합리적이며, 더 현명해요." 다부토울루가 말했다. "우리에게는 성공 사례가 필요해요. 성공 사례는 세계적일 수 없으며, 오직 국가적 성공을 통해서만 올 수 있죠."


아프간 공화국의 고위 협상가로 탈레반과 협상했었던 나데르 나데리는 스탈린의 소련이 세계적 야망을 포기하기는커녕 1920년대 이후 전 세계로 영향권을 확장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새롭게 "실용주의자"이 된 이슬람주의자들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물론 탈레반은 외교적으로 진화했고 인내심을 얻었으며, 국제적 대응을 불러일으킬 극적인 사건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과거로부터 배웠죠." 현재 스탠포드대 후버 연구소의 연구위원인 나데리가 말했다. "하지만 신의 땅에 신의 통치를 확립할 의무가 있다는 그들의 세계관은 변하지 않았어요. 이제 그들이 영원히 국가적인 목적에만 집중할 것이라고 보는 건 잘못입니다."


미국은 알샤라에 대한 현상금을 해제하고 다마스쿠스에 대한 제재를 종료하며 시리아의 새 행정부를 환영했지만 미국 정부 내에서도 그 변화의 정도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하다. "다 끝난 건 아닙니다. 수면 아래에서는 지하디즘이 여전히 들끓고 있죠." 한 미국 고위 관리가 경고했다.


노르웨이의 에스펜 바르트 에이데 외무장관은 지난 10년간 글로벌 지하디즘의 쇠퇴가 세계가 더 안전한 곳이 되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2022년 러시아에 의해 촉발된 수십 년 만에 가장 피비린내 나는 유럽의 전쟁은 우크라이나에서 계속 맹위를 떨치고 있으며, 이미 수십만 명의 사상자를 냈지만 앞으로 더 번질지도 모른다.


"지하디스트 테러 위협은 심각했고 영향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끔찍한 일이었죠. 하지만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시스템 속의 골칫거리와 비슷하다 할 수 있었죠." 그가 말했다. "비대칭적 안보 위협에 대한 두려움 대신 국가 간의 대칭적이고 고전적인 전쟁에 대한 두려움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국가 간 전쟁 수준의 비대칭적 위험이란 없죠. 산업화 된 국가는 가장 잘 훈련된 테러리스트보다 훨씬 더 높은 효율성으로 살육합니다."

지켜지지 않은 약속들

지난 10년간 중동 지역에서 유행에 뒤떨어진 것은 비단 글로벌 지하드의 이념뿐만이 아니다. 점점 더, 정치적 이슬람도 그렇게 되고 있다. 무슬림형제단의 기억하기 쉬운 슬로건인 '이슬람이 해답이다'는 한때 이 지역에서 대체로 세속적 권위주의 정권 하에 사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정치적 대안을 제공했다. 투표로 정부를 선택할 수 있을 때마다 내일은 이슬람주의자들의 것인듯 보였다.


그러나 '아랍의 봄' 이후 2012년 이집트에서 선출된 무슬림형제단 행정부는 너무나 무능하여 대중의 지지를 급속히 잃었고 이듬해 성공적인 군사 쿠데타로 이어졌다. 튀니지의 더 온건한 무슬림형제단 분파인 엔나흐다 역시 집권하자마자 급격히 지지를 잃었다. 엔나흐다의 지도자들은 2023년부터 튀니지에서 수감되어 있으며 무슬림형제단은 2025년 요르단에서 불법화되었다. 한때 강력했던 이슬람주의자 조직은 점점 더 분열되고 약해지고 있다. 터키와 카타르와 같이 오랫동안 무슬림형제단에 동조적이었던 지역 강대국들은 거리를 두고 있는 반면,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다른 국가들은 완전히 적대적으로 돌아섰다.


"중동 곳곳에서 풀뿌리 수준에서 번성하고 지지받는 정치적 이슬람의 거점들이 여전히 있습니다. 하지만 정치적 이슬람을 의제의 핵심으로 삼는 국가 리더십의 시대는 이제 옛날의 일이 되고 있죠."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이집트 주재 미국 대사와 유엔 주재 미국 대사 대행을 역임한 조나단 코언이 말했다. "정치적 이슬람은 주민들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하는 데 실패했어요. 또한 이라크시리아이슬람국가(ISIS)와 같은 운동의 부상을 볼 때 오히려 주민들에게 재앙에 가까운 피해를 입혔죠."


실제로 2014~2019년 시리아와 이라크 지역 상당 부분에 대한 이슬람국가의 통치는 너무나 잔인하고 암울해서 알샤라를 포함한 많은 초기 지지자들이 등을 돌렸다. 아키욜에 따르면 이것은 정치적 이슬람의 "크메르 루주 모멘트", 즉 반작용을 촉발한 "암흑의 밑바닥"이었다.


1979년 이란 혁명은 정치적 이슬람이 처음으로 권력을 장악하여 전 세계의 억압받는 대중을 고양하겠다고 약속한 때였다. 그러나 이란의 부패한 시아파 신정은 수십 년간의 경제 침체와 정치적 억압을 주재했으며 이 체제는 점점 더 많은 이란 젊은이들을 종교 자체에서 멀어지게 했다.


또한 1979년 이래로 이슬람의 발상지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오일 머니를 이용해 자국의 수니파 초보수주의 버전의 신앙을 전 세계에 퍼뜨렸다. 키르기스스탄의 에딜 바이살로프 부총리는 1990년대와 2000년대 초 사우디와 다른 걸프 지역의 비영리단체들이 대체로 세속적인 국가였던 키르기스스탄에 모스크와 마드라사를 쏟아 부어 급진주의자 세대를 양성했으며, 그중 수백 명이 결국 이슬람국가와 알카에다의 대열에 합류했다고 회상했다.


이는 2017년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사우디아라비아의 실질적인 통치자가 된 후 끝났다. 그는 종교 기관의 권력을 극적으로 억제하고 이슬람 경찰을 해산했으며 해외의 초보수주의적 개종 활동에 대한 자금 지원을 중단했다. 과거 급진주의를 조장했던 사우디아라비아의 공식 종교 네트워크는 이제 종교 간 대화의 메시지를 전파한다.


"우리에게는 무함마드 빈 살만 이후 모든 것이 변했어요." 바이살로프가 말했다. "정점은 지났어요. 중동의 모든 현대화와 함께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죠." 이제 키르기스인들이 걸프 지역의 군주국에 가면 여성들이 일하고, 운전하며, 대학에 다니는 현대 사회를 마주하게 된다고 그는 말했다. 매년 순례를 위해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하는 수천만 명의 다른 무슬림들도 마찬가지다.


팔레스타인 이슬람 운동이 이스라엘의 파멸로 이어질 지역 전쟁을 촉발하기를 희망하며 2023년 이스라엘 남부에 대한 공격으로 하마스가 일으킨 가자 지구 전쟁 또한 정치적 이슬람 세력을 재활성화하는 데 실패했다.


레바논의 헤즈볼라와 이란의 시아파 신정 체제가 결국 분쟁에 개입했지만 그들의 군사 및 정치 지도부는 궤멸되었고, 이스라엘은 전 세계적으로 많은 정치적 지지를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의 군사적 패권국으로 부상했다. 하마스의 경우, 가자 지도부 대부분이 사망했으며 해안 영토는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황폐화되어 수만 명의 팔레스타인 사상자가 발생했다.


가자 지구에서의 전투가 격렬하게 벌어지는 동안 중동과 다른 지역의 많은 이들은 이스라엘을 방조하는 것으로 비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하마스 비판을 자제했다고 '뉴라인스' 매거진의 시리아 출신 창립자이자 이슬람국가에 관한 책의 저자인 하산 하산이 말했다.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ISIS가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망쳤던 것처럼 하마스가 망쳤음을 알고 있어요." 그가 말했다. "하마스는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아요. 사람들은 그것이 팔레스타인의 민생을 수년이나 뒤처지게 만들었다는 걸 알죠."


정치적 이슬람을 무시하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과 오바마 대통령의 중동 조정관을 역임했던 필립 고든은 경고했다. 처음에 정치적 이슬람의 부상을 부채질했던 이유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중동 지역의 정부들이 억압에 대한 대안으로서 국민들에게 일관된 번영, 안정, 존엄성을 제공할 수 있을 때까지 정치적 이슬람은 예전과 같지 않더라도 대안으로 살아남을 것이에요." 그가 말했다.

공산주의와의 유사점

어떤 면에서 정치적 이슬람의 약화는 세계 공산주의 운동의 운명과 유사한 역학을 따른다. 강력했던 유럽의 공산당들은 스탈린의 사망 이후 소련 체제의 잔학 행위가 드러나면서 빛을 잃었고 1956년 헝가리와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소련이 대중 시위를 진압하면서 추가적인 충격을 받았다.


이것이 무슬림 세계의 주변부에서 이슬람국가의 잔존 세력에 의해 자행되는 테러리즘이 완전히 사라지리라는 의미는 아니다. 미국은 최근 몇 주 동안 나이지리아, 소말리아, 시리아에서 이슬람국가 일당으로 의심되는 목표물에 공습을 감행했으며 이로 인해 조직에 어느 정도의 피해가 발생했는지는 불분명하다.


"이슬람국가는 분명 규모와 세력이 축소되었어요." 안보 및 대테러 컨설팅 회사인 수판 센터의 콜린 클라크 전무이사가 말했다. "하지만 이라크와 시리아의 넓은 영토를 더 이상 통제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슬람국가의 이름으로 테러 행위를 저지르도록 사람들을 고무하거나 지시할 능력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그러나 당분간 이러한 공격은 신뢰할 수 있는 지정학적 포부를 가진 강력한 운동의 표현이 아닐 것이다. 여기서도 공산주의와의 유사점이 적용된다. 서방에서 공산주의가 쇠퇴함에 따라 이탈리아의 붉은 여단, 일본 적군파, 독일 적군파와 같은 급진 공산주의 분파들은 테러 살인 집단으로 전락했으며 이는 수십 년이 지나서야 사라진다.

"1960~1970년대 유럽에서는 모두가 혁명가였고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그것이 자연스러운 상태였어요. 그리고 얼마 후, 위대한 혁명적 환상은 사라졌죠." 피렌체에 있는 유럽대학연구소European University Institute의 교수이자 정치적 이슬람에 대한 저명한 학자인 올리비에 루아Olivier Roy가 말했다. "그 후 테러리즘으로의 전환이 있었고 그 혜성의 꼬리는 오랫동안 지속되었지만 극좌파의 서사는 더 이상 한 세대 전체를 동원하지 못했어요."


그는 정치적 이슬람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지하디즘 또한 거의 낭만적인 서사였어요. 사람들을 동원했고 그들이 스스로를 영웅, 세상을 변화시킬 인물, 구원자이자 성인으로 보게 했죠. 하지만 지하디즘 역시 정치의 시험, 현실의 시험에서 살아남지 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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