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

로버트 캐플런: 중동 지역 불안정의 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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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25 13:10

Foreign Affai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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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은 제국주의와 다릅니다. 개념상 외부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몰려오는 것이 제국이라면 제국주의는 국민국가(민족국가)가 힘에 의해 외부로 팽창하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현실에 존재하는 제국은 이런 개념적 제국과 제국주의 사이에 있으며 제국의 '매력'과 제국주의의 '힘'을 모두 사용합니다. 로버트 캐플란은 2023년 8월 8일자 포린어페어스 기고문에서 중동 지역의 혼란의 근본 원인으로 '제국의 부재' 또는 '제국이 남긴 유산'을 지적합니다. 중동은 오랫동안 수많은 제국들이 부침하면서 질서를 잡아온 지역입니다. 마지막으로 오스만 제국이 붕괴된 후 그 질서의 공백상태가 지금의 혼란을 낳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그렇다면 제국이 부재한 상황에서 중동 각국은 어떤 질서를 추구해야 할 것인가? 캐플란은 '중동의 봄'에서 드러났듯이 서양식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것은 해법이 못된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무리한 민주주의 추구가 혼란을 가중시킬 위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캐플란과 사우디아라비아의 빈살만의 개인적 관계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는 빈살만식으로 근대화를 추구하는 계몽군주가 해법일 수 있다고 제안합니다. 결국 정치는 질서가 최종목표이고 그 수단이 꼭 서양식 민주주의일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중동 지역은 사막이 많은 지역입니다. 그러다보니 군대 구성이 보병보다는 전차와 항공기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군대의 구성은 정치체제 형태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민주주의란 조직된 보병이다'라고 했습니다. 전차와 항공기 중심의 군대는 민주주의와 선택적 친화성이 약합니다. 이런 측면에서도 중동 지역에 민주주의를 강요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습니다. 미국과 서방이 최근 들어 '민주주의' 대신 '법의 지배'라는 명분을 내세우기 시작했는데 이는 현명한 판단입니다.


제국의 역사는 혼란을 담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의 머리 속에 제국이라고 하면 저개발 지역 상당 부분을 뒤덮었던 유럽의 지배가 떠오를 것이며, 이것은 서양의 평판에 오점이 되어있다. 하지만, 제국은 비서양적 형태가 많았고, 특히 중동에서 그러했다. 7세기 다마스쿠스에 자리잡은 옴미아드 왕조에서 시작해 일련의 이슬람 왕조가 넓은 판도를 통치했으며 가끔 지중해까지 통치했다. 이후 오스만 제국이 등장했고 그 판도는 발칸을 포함했다. 그리고는 19세기에 페르시아만에서 이란과 파키스탄의 일부, 그리고 이슬람권 동아프리카까지 통치한 오만 왕조가 뒤따랐다. 제국의 역사 맨 뒷 부분에 이르러서야 유럽인들이 등장한다.


중동 전역에 걸쳐 이렇게 오래된 제국의 경험은 유럽과 같은 국민국가(또는 민족국가)의 발전을 방해해왔고, 그것이 지역적 불안정의 원인이 되었다. 많은 중동 정권들은 어떻게 해야 공권력 사용을 최소화하면서 상당한 정도의 안정을 이룰 수 있을지 아직 해답을 못 찾은 상태다.


최근 몇십 년간 중동지역에서 폭력사태와 불안정을 낳은 원인 중 하나는 지금으로선 듣기 불편한 표현이긴 하지만 바로 제국적 질서의 부재다. 아직까지 이 지역에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는 사실(가능성이 있어 보였던 튀니지같은 나라에서조차도)은 제국적 통치가 이 지역에 남긴 부정적 유산을 잘 보여준다. 제국은 비록 최선은 아니지만 어떻게든 장기간 질서를 제공함으로써 질서를 위한 다른 해법이 등장하는 것을 방해했던 것이다.



불쾌하긴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다양한 형태의 제국들이 세계사를(특히 중동의 역사를) 고대부터 현대까지 지배해왔는데, 제국은 상대적으로 가장 실용적이고 명확한 정치적, 지역적 조직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제국은 훗날 자신이 떠난 자리에 혼란을 남길지는 몰라도 처음에는 분명 혼란에 대한 해법으로 등장했다.


고장난 질서

수세기 동안 중동 이슬람의 황금기는 제국의 통치 기간과 겹친다. 이 황금기는 옴미야드와 압바스 왕조 뿐만 아니라 파티마 왕조 및 하프스 왕조 아래에서도 펼쳐졌다. 몽골 제국은 엄청나게 잔인했을지는 몰라도 압바스, 화레즘, 불가리아, 송(宋) 등 다른 제국들을 부수고 대체했을 뿐이다. 중동의 오스만 제국, 중유럽의 합스부르크 제국은 눈에 띄게 유태인과 기타 소수민족 보호 정책을 폈고, 그것은 자신들의 계몽적 가치에 걸맞는 것이었다. 아르메니아인들에 대한 대학살은 오스만 제국이 제대로 통치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청년투르크 민족주의자들이 오스만 제국을 대체하기 시작할 때였다. 세계주의적 성격을 가진 다민족 제국보다 단일혈통 민족주의가 소수민족에겐 훨씬 위협적이다.


알제리에서 이라크까지 중동 전역을 400년간 통치했던 오스만 제국은 1차세계대전 후 붕괴됐다. 1862년 오스만의 외무장관인 알리 파샤는 편지에서 미래를 내다본 듯 이렇게 경고했다. '오스만제국이 "민족주의적 열망"에 굴복한다면, 제국은 "한 세기 동안 폭포처럼 피를 쏟고 나서야 겨우 질서다운 질서를 되찾게 될 것이다.' 사실 오스만 제국 멸망이 한 세기도 더 지난 지금도 중동은 여전히 제국이 제공했던 질서를 대체할 만한 정치체제를 찾지 못하고 있다.


2차세계대전 종전까지 영국과 프랑스 제국은 레바논에서 이라크에 이르는 레반트(역주: 동지중해 연안 지역)와 비옥한 초승달 지역의 여러 국가들을 통치했다. 이후 냉전 기간 중에는 미국과 소련이 힘의 역학에서나 중동 정권들에 대한 영향에서나 제국적인 면모를 보였다. 미국은 이스라엘, 북아프리카와 아라비아반도의 아랍 왕조들과 사실상 동맹관계를 가졌고, 소련은 알제리, 나세르 시절의 이집트, 남예멘, 그리고 소련 공산주의 노선에 동조적이었던 나라들을 후원했다.


소련은 1991년에 해체됐고, 미국은 2003년 이라크 침공 이후 영향력과 중동지역에 대한 세력투사 능력이 점진적으로 약해졌다. 불행히도 이러한 제국적 존재가 사라진 상황에서 중동은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 빠졌고, 여러 정권이 붕괴되거나 불안정해졌다. 리비아, 시리아, 예멘 등등이 특히 그러했다. 이른바 '아랍의 봄'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뿐만 아니라 이 지역의 낡고 타락한 독재지배와 이에 대한 거부를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즉, 제국이 부재한 상황에서 중동과 아랍세계는 아랍연구자인 팀 매킨토시-스미스가 표현한대로 "분열적 경향"을 보여왔던 것이다.

나쁜 영향

제국이 중동에 어느 정도나마 질서와 안정을 가져왔었다는 생각은 현재의 학계와 언론계의 상식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주류적 관점에 따르면, 이 지역이 불안한 것은 제국이 부재해서가 아니라 민주주의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입장도 이해는 간다. 근대 유럽의 식민주의가 여러 나라에 남긴 기억들이 아직 생생하기 때문에 많은 학자 및 기자들이 중동, 아프리카 등지에서 영국인, 프랑스인, 다른 유럽인들이 저지른 범죄들만 주목하는 경향이 강하다. 우리는 탈식민주의적 속죄와 수정주의 시대에 살고 있으니 유럽 열강의 악행들이 아직 크게 보이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런 상처의 기억을 유지하면서도 그 악행들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중요한 과제가 남겨져 있다.


유럽 열강들의 행위가 무해했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유럽 식민주의의 흔적이 눈에 띄는 나라일수록 불안정한 지역이다. 예컨대, 순전히 인위적 편의로 그어진 국경선은 1차세계대전 이후 영국과 프랑스가 제멋대로 설정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현대의 시리아와 이라크 국경선은 오랫동안 명확한 국경선 없이 살아왔던 전통적 지역사회들의 성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현대 국가들은 통합된 채 유지되었어야 할 공동체를 나눠버렸다. 영국과 프랑스 식민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눈에는 아무런 특징 없이 밋밋하게 이어져 있는 사막의 풍경에 뭔가 질서를 부여하고자 했다. 20세기 지식인이자 중동 전문가인 엘리 케두리는 냉소적으로 말했다. "전에는 존재하지도 않던 곳에 국경이 불쑥 솟아오른다면 이렇게 될 수밖에 없겠죠."


시리아에서 등장했고 20세기 후반에 특히 이라크를 지배했던 폭압적인 바트주의 국가들은 사실 유럽 제국이 만들어낸 것이다. 2003년에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했고, 결과는 혼란이었다. 미국은 2011년에 시리아 내전에 개입하지 않았고, 결과는 역시 혼란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두 나라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미국을 비난하지만, 미국만큼이나 원인을 제공한 것은 바트주의의 유산이었다. 바트주의는 아랍민족주의와 동유럽 스타일의 사회주의가 합쳐진 것인데, 1930년대 유럽에서 파시즘이 창궐하던 때 유럽의 영향을 받아 다마스쿠스의 중산층 출신 기독교도 미셸 아플라크와 이슬람교도 살라 알-딘 비타르에 의해 창안된 이념이었다. 즉, 식민주의뿐만 아니라 20세기 초반의 위험한 유럽 이념들도 중동을 세계에서 가장 불안한 지역으로 만드는데 일조했던 것이다.

오스만제국의 붕괴 이후 중동이 비극을 겪게 된 것은 중동 자체도 문제였지만 서양이 적극적으로 개입한 결과이기도 하다. 중동사의 최고 권위자라고도 할 수 있는 마셜 홋지슨은 이렇게 썼다. "반식민주의, 민족주의, 종교적 극단주의 형태로 표현되는 이슬람 세계의 뿌리 깊은 불만과 혼란은 (이슬람 세계가) 산업화되고 탈산업화된 세계를 그 변경에서 더욱 빈번하고 긴밀히 만나 대응하면서 생긴 결과이며, 서양의 제국주의도 이러한 접촉에서 나온 부산물이었다."

물론 유럽과 미국이 이러한 대응을 기대하진 않았다. 하지만 서양이 이념과 기술에서 보여준 역동성은 오스만제국 지역을 압도했고 강압적인 근대화로 몰아넣었다. 그 과정에서 제국주의의 악영향이 증폭되었다. 그리하여, 마르크스주의, 나치즘, 민족주의 등 근대 서양에 뿌리를 둔 이념들이 중동과 유럽의 아랍 지식인들에게 영향을 미쳤고, 시리아의 아사드 가문,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의 지배에서 만개한 정치체제의 청사진을 제공했다. 망가진 이들 나라들을 부검해본다면 병균이 해당 지역뿐만 아니라 서양에서도 온 것임이 드러날 것이다. 한때 중동을 안정시켰던 제국이 떠난 이후엔 안정을 뒤흔들었다.


= 25일 (현지시간) 시리아 반군이 장악하고 있는 동구타 도우마가 유엔 안보리의 '30일 휴전' 결의안 채택에도 불구하고  정부군의 무차별 공습으로 처참하게 파괴된 모습이 보인다.  © AFP=뉴스1

= 25일 (현지시간) 시리아 반군이 장악하고 있는 동구타 도우마가 유엔 안보리의 '30일 휴전' 결의안 채택에도 불구하고 정부군의 무차별 공습으로 처참하게 파괴된 모습이 보인다. © AFP=뉴스1


시리아를 보자. 이 나라는 1946년에서 1970년까지 정권교체가 21차례 있었는데, 대부분은 탈법적 정권교체였고, 그 중 10차례는 군사쿠데타였다. 1970년 11월, 바트주의 공군장성이고 알라위 종파(시아파 이슬람의 한 종파) 소속이었던 하페즈 알 아사드는 피 한방울 흘리지 않는 조용한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았다. 그는 자신의 쿠데타를 "과오 교정" 운동이라고 불렀다. 아사드는 30년 뒤 자연사할 때까지 통치했다. 그는 현대 중동에서 비록 저평가될진 몰라도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였다. 그는 거의 '바나나 공화국'(역주-중미 지역에서 주로 바나나를 재배해 수출하던 나라를 조롱하던 표현으로서 지배층이 외세와 결탁해 민중을 착취하던 나라를 의미)이었던 시리아(그 만큼 아랍에서 가장 불안정했던 한 나라)를 비교적 안정적인 '경찰국가'로 변모시켰다. 수니파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그의 통치에 반기를 들고 반란을 일으키자 그는 1982년 수니파가 지배하던 하마 시에서 2만명(추정)을 살해했다. 이 탄압은 잔인했던 만큼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무정부 상태를 힘으로 박살냈던 이 조치의 대가는 엄청났다. 아사드가 시리아에서 안정을 이뤄냈던 성과는 잘 해봤자 한계를 가진 안정일 뿐이었다. 이러한 것이 오스만과 프랑스 제국의 유산이었다.


리비아도 보자. 리비아는 여러 서로 무관한 지역들이 합쳐져 있는데, 이들 지역은 함께 이탈리아 식민지였다는 경험 외에는 서로 합쳐질 이유가 없었다. 서부 리비아는 트리폴리타니아로 불리는데, 매우 국제적이고 역사적으로는 카르타고, 즉 튀니지와 가깝다. 반면, 동부 리비아는 퀴레나이카라고 불리는데, 보수적이고 역사적으로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와 연관된다. 그 사이에 있는 사막지대는 남쪽으로 페잔을 포함하는데, 지역보다는 종족 중심의 생활을 영위한다. 오스만은 이들 지역의 독자성을 모두 인정했는데, 이탈리아에서 온 식민통치자들은 20세기 초 이들 지역을 합쳐 하나의 나라로 만들어버렸다. 하지만 이것이 너무 인위적인 통합이어서 시리아와 이라크처럼 극단적인 수단 외에는 이들 지역을 통치해낼 방법이 없었다. 독재자 무아마르 알 카다피 정권이 2011년에 무너졌을 때, 이탈리아가 식민지로 만든지 꼭 100년 후 리비아는 간단하게 산산이 조각나버렸다. 시리아와 이라크처럼 리비아의 비극적 운명은 유럽 제국주의가 남겨놓은 유산이 얼마나 치명적일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왕정이 자연스러울 수도

반면, 역사가 유럽 제국주의와 심지어 이슬람 등장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집트나 튀니지는 상황이 좋았다. 예컨대 튀지니는 이슬람 이전에 형성된 정체성에 의해 뒷받침되었는데, 그 정체성은 카르타고, 로마, 반달, 비잔틴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들 나라의 정권은 답답하고 억압적일 수는 있지만 최소한 질서는 보장한다. 어떻게 그 질서를 덜 폭압적으로 만들 수 있을까가 문제일 뿐이다. 하지만 그런 튀니지조차 2010년 후반 발생한 아랍의 봄 민중봉기에 의해 고전해왔다. 튀니지는 지방과 국경지역에서는 중앙의 통제가 약해졌지만 그래도 겨우겨우 수도와 주요 도시에서는 민주주의를 유지했다. 그러다가 작년 카이스 사이에드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독재가 시작됐다. 그럼에도 튀지니는 중동에서 아직은 민주주의 실험의 가장 희망적인 모범사례로 남아 있다. 튀니지의 사례를 보면 중동에서 서양의 정치질서 청사진을 그대로 받아들여 실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 수 있다. 민주주의보다는 근대화 독재(이것도 유럽 제국주의의 산물이다)가 늘 이 지역을 괴롭히는 무정부 경향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될 것이다.

중동에서 가장 억압적이지 않은 정권은 요르단, 모로코, 오만의 전통적 왕국들이다. 그 정권은 스스로 만들어낸 역사적 정당성을 갖추고 있기에 권위주의적이긴 해도 잔인함은 거의 보이지 않고 통치를 해올 수 있었다. 중동이라는 권력정치 실험의 결과, 제국과 함께 왕정이 이 지역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통치형태로 나타난다. 예컨대 오만은 수십 년 동안 꽤 진보적인 정책들을 시행하고 적당한 개인적 자유를 보장해오면서 절대군주 독재체제로 기능해왔다. 오만의 사례는 세상이 나쁜 독재체제와 모범적 민주주의라는 흑백의 이분법으로 깔끔하게 나뉘어지지 않으며 오히려 그 둘 사이에 수많은 회색 정치체제들이 있음을 잘 보여준다. 현지의 외국인 특파원들은 이 점을 대체로 잘 이해하지만 뉴욕과 워싱턴에 앉아 있는 지식인들과 정치가들은 이 점을 잘 모른다.

사우디아라비아와 걸프만 왕국들을 보자. 이들 국가에서는 통치자와 피치자 사이에 사회계약이 제대로 자리잡고 있다. 통치자들은 유능하고 예측가능한 통치와 평화로운 권력승계와 함께 높은 수준의 삶의 질을 제공하고 있다. 반면, 일반국민은 통치자들의 권력에 도전하지 않는다. 물론 석유에서 나오는 부(富)가 이를 보장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걸프만 통치자들은 냉정하고 마키아벨리적인 현실주의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들의 정치는 도덕 정치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비도덕적이지는 않다. 그들은 아랍의 봄 와중에 민주주의를 시도한 여러 사례가 가져온 무정부 상태를 보면서 서양으로부터 배울 것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민주주의보다 자존감

물론 이것이 이야기의 전부는 아니다. 중동은 꼭 일직선은 아니지만 앞으로 달려가고 있다. SNS를 포함한 디지털 기술은 위계질서를 부수고 대중에게 힘을 줬고, 대중은 더욱 대담해지고 정치적 무게를 갖게 되었다. 걸프만 등에서는 독재자들이 과거와 달리 여론의 동향에 골몰하게 되었다. 한편,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의 해상제국들이 중동을 근대 초기부터 서양과 세계화의 물결로 이끌고, 중동은 그 접촉의 크나큰 충격에 압도되었다. 하지만 중동의 미래는 서양과 세계화의 물결에 합류할 것이며, 이것은 이 지역의 정치를 결국엔 변화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중동의 제국 경험은 너무나도 길어서(이슬람 등장 이전부터다) 제국 부재의 불안정성이 쉽사리 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어쨌건 정치의 세계에서 질서의 모색은 영원한 숙제다.

물론 중동지역에서 제국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비록 이라크전쟁으로 약해지긴 했지만 미국은 안보와 군사태세라는 점에서 여전히 가장 지배적인 외부세력으로 남아 있다. 미국은 북서쪽으로는 그리스, 남동쪽으로는 오만, 남서쪽으로는 지부티까지 아라비아 반도 해안 일대에 공군 및 해군기지들을 가지고 있다. 한편,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은 걸프만과 중국 서부를 잇는 에너지 공급망을 상정하고 있는데, 이 공급망의 중심에는 파키스탄 남서쪽 끝자락에 자리잡은 멋진 항구가 있다. 중국은 지부티에 군사기지를 하나 두고 있으며, 수단 항(港)과 이란-파키스탄 국경 가까이에 있는 지와니 항에 또 다른 군사기지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중국 정부는 이집트 수에즈 운하에 연접한 산업 및 물류 허브, 그리고 사우디와 이란의 인프라 및 기타 프로젝트에 수백억 달러(수십 조원)를 쏟아붓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식민지나 위임통치령을 갖고 있지 않다. 국경 너머를 직접 통치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 역시 제국적인 이해를 갖고 있다. 지금과 같은 역사적 상황에서 그들의 제국적 이해는 전쟁이 아닌 안정을 필요로 한다. 특히 중국은 해외투자가 중국을 더욱더 중동의 경제로 묶어내고 있는 상황에서 안정이 필요하다. 최근 중국이 중재해 성사된 사우디-이란 외교관계 수립, 그리고 이에 대한 미국 바이든 정부의 대응은 제국(더 정확히는 느슨한 의미의 제국)이 중동지역의 평화를 도울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어느 정도라도 안정이 자리 잡으면, 지역의 정권들은 국내적 통제를 어느 정도 느슨하게 풀어줄 수 있고, 이를 통해 더욱 촘촘해지고 있는 세계 경제의 도전에 맞설 수 있는 좀 더 상공업적인 사회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사우디 정부는 인권과 관련해 악명을 떨쳤지만 여성들에 대한 제한을 풀고 여성을 일자리로 나오게 하면서 조금씩이나마 사회를 개방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중동 전역이 지켜보고 있는데, 좀 더 유연한 정치체제이면서 정치적 이슬람주의에 저항하는 하나의 모델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언론인인 로버트 워스는 뉴욕타임스에서 아랍지역에 대한 심층보도를 오랫동안 담당해왔는데 이렇게 썼다. 중동 전역에 걸쳐 아랍인들이 결국 원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카라마' 즉 자존감이다. 민주적이든 아니든 국가가 "백성들을 수치와 좌절로부터 보호해 줄 수 있다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오스만제국이든 유럽제국이든 '제국'은 안정은 제공했지만 자존감은 제공하지 않았다. 반면 무정부상태는 그 어느 것도 제공하지 않는다. 모로코나 오만같은 중동지역의 전통적 왕정이면서 민의에 귀를 기울이는 개혁정부라면 제국과 무정부 사이에서 가야 할 길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중동의 개혁은 이 방향으로 가는 것이 최선이다. 중동이 꼭 서양이 써준 레시피를 따르지는 않을 것이다.



로버트 D 캐플런은 '지리 대전', '지정학의 복수' 등 국제문제에 대해 스무 권 이상의 책을 쓴 작가로, Foreign Policy Research Institute의 Robert Strausz-Hupé 석좌이며 30년 넘게 애틀랜틱에 국제문제에 대해 기고했다. 2023년 8월 신간 'The Loom of Time: Between Empire and Anarchy, from the Mediterranean to China'를 출간했으며 위 글은 이 책의 내용을 원용했다.


1922년 창간된 격월간 국제정치 전문지. 미국의 국제정치 싱크탱크인 외교협회(CFR)에서 발행하는데 국제정치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매거진으로 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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