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 마녀도 있고 나쁜 마녀도 있다는 걸 아니?" 시카고를 기반으로 활동한 화가 거트루드 애버크롬비Gertrude Abercrombie는 어느 날 길에서 만난 한 소년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리고는 "나는 좋은 마녀야"라고 말했다.
맨해튼의 카르마 갤러리Karma Gallery에서 8년 전 재조명된 이후, 애버크롬비(1909~1977)는 초자연적 분위기를 담은 소품 회화의 거장으로 뒤늦게나마 정당한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그녀가 그린 SF 드라마 '환상특급Twilight Zone' 스타일의 풍경과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실내 모습은 고전적 초현실주의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든다. 특유의 냉소적이면서도 쓸쓸한 시선으로 그녀는 세계대전 시기의 불안감을 미국의 번영이 이어지던 전후 수십 년 동안까지 끌어왔다.
현재 밀워키 미술관Milwaukee Museum of Art에서 열리는 두 개의 전시는 이러한 애버크롬비의 매혹적이면서도 기이한 예술세계를 다각도로 조명한다.
그중 핵심 전시인 《거트루드 애버크롬비: 온 세상은 하나의 미스터리Gertrude Abercrombie: The Whole World is a Mystery》는 그동안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던 작가의 위상을 바로잡는 본격적인 회고전이다. 이 전시는 애버크롬비가 미국 미술에서 흔히 아웃사이더로 분류되어왔지만, 국립미술관들이 근현대 미술을 도시적인 것과 지역적인 것이라는 양 극단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을 보완해줄 수 있는 중요한 작가임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약 80점의 작품으로 구성된 이 전시는 대부분 작은 크기의 패널 회화로 이루어져 있으며, 피츠버그시의 카네기미술관Carnegie Museum of Art과 메인주의 콜비대학 미술관Colby College Museum of Art이 공동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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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대체로 연대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교회The Church>(1938)와 같은 초기의 황량한 풍경화에는 폐허가 된 나무와 살바도르달리를 연상시키는 하늘, 그리고 앙리 루소의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방황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러한 작품들은 애버크롬비가 대공황 시기 예술가들의 생계를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연방정부의 예술지원 프로그램인 공공사업진흥국WPA에서 이젤 화가로 활동하던시기에 제작되었다. 당시 그녀는 이미 독창적이고 기이한 화풍을 발전시키고 있었음을 생각하면, 이러한 공공 프로젝트에 참여했다는 사실은 놀랍다.

1950년대에 이르면, 문門을 주제로 한 몽환적 연작은 애버크롬비의 화풍이 느슨한 풍경화에서 평면적이고 세밀한 그래픽적 화면으로 발전해 가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화면 속 사물의 비례는 미묘하게 변형되어 있어 전체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감을 자아낸다.
메이소나이트Masonite 패널에 그려진 엽서 크기의 작품들에서 문틀과 창살은 정교하게 표현되어 있지만, 문마다 제각기 다른 높이와 너비를 지녀 시각적인 불협화음을 만들어낸다. 네 개, 다섯 개, 때로는 여섯 개의 문이 하나의 벽면에 빽빽하게 늘어서 있으며, 마치 어디론가 떠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 사이를 검은 고양이들이 유유히 배회하는데, 이는 애버크롬비가 실제로 여러 마리의 검은 고양이를 키우며 작품 속에 자주 등장시킨 대상이기도 하다. 이 문 연작은 이번 전시에서 가장 인상적인 섹션이다.
동시대 미국 화가들이 점점 더 큰 캔버스를 펼쳐 들던 시기에도 애버크롬비는 오히려 작품의 크기를 더욱 줄여 나갔다. 그녀는 손에 들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정물화를 제작해 서점에서 판매하거나, 자신이 몰던 롤스로이스의 트렁크에 싣고 다니며 직접 팔기도했다. 물론 그 롤스로이스는 이미 여기저기 낡고 손상된 상태였다. 일리노이주를 중심으로 활동한 순회 오페라 가수 부부의 딸로 태어난 애버크롬비는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삶을 살았으며, 자신의 작품도 비교적 소박한 가격에 판매했다. 일리노이대학교 어바나-샴페인 캠퍼스에서 로망스어(프랑스어·스페인어·이탈리아어 등)를 전공한 그녀는 이후 시카고예술대학School of the Art Institute of Chicago에서 인물 드로잉을 배우며 기초적인 미술 교육을 받았다.
전시장에는 애버크롬비가 제작한 섀도우박스(입체상자) 작품 두 점도 함께 소개된다. 실제 소품과 그것을 그대로 그린 이미지를 함께 배치한 이 작품들은 조셉 코넬Joseph Cornell의 상자 작업을 떠올리게 하지만, 보다 부드러운 분위기를 띠며 사물을 붓으로 재현하는 행위 자체가 만들어내는 몽환적이고 환각적인 감각에 더욱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애버크롬비는 1972년 한 시카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 그림을 대충 그리지 말라고 가르쳐 준 사람은 거트루드 스타인Gertrude Stein이었어요"라고 회상했다. 이어 "그녀는 내게 단정하게 그리고, 제대로 그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죠"라고 덧붙였다. 스타인은 반복적인 문체와 미국 특유의 직설적인 표현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여 때로는 난해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작가다. 스타인은 1935년, 애버크롬비가 교류하던 문학계 인사인 작가 손턴 와일더Thornton Wilder의 초청으로 시카고를 방문해 '말하기'를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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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트루드 스타인이 보았다면 분명 마음에 들어 했을 법한 작품은 <손과 텐트Hand and Tent>(1949)다. 화면 전경에는 잘려나간 거대한 손이 마치 지팡이나 막대기 같은 물체를 움켜쥐고 있고, 그 뒤에는 텐트가 서 있다. 텐트의 덮개에는 이번에는 펼쳐진 또 다른 손의 실루엣이 드리워져 있다. 플라톤의 동굴을 암시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림자 인형극일까.
혹은 이탈리아 화가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를 떠올릴 수도 있다. 텐트 위에 달린 작은 깃발은 그의 조형 언어에서 가져온 것처럼 보인다. 애버크롬비는 작품 곳곳에서 유럽의 선배 작가들, 특히 초현실주의자들을 끊임없이 떠올리게 하지만, 동시에 그들의 강박적인 상징 체계와 예술적 유산, 언어유희에는 일정한 거리를 두는 듯하다. 생애 말년에 그녀는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를 자신의 "정신적 아버지"라고 인정하면서도, 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1950년대에 이르러서였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그전에는 그의 작품을 본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물론 원작을 직접 본 적은 없었을지 모르지만, 도판이나 인쇄물을 통해서조차 접하지 못했다는 말은 쉽게 믿기 어렵다.
밀워키 전시에는 도미노, 주사위, 잭스jacks 놀이 조각, 달걀, 달팽이 껍데기, 골동 열쇠, 그리고 핀으로 고정한 아름다운 포니테일 머리카락 등 다양한 사물들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커피 그라인더Coffee Mill> (1964)와 같은 거의 고전적인 정물화에서도 이러한 오브제들은 마치 무언가를 의식적으로 기다리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놓여 있다. 애버크롬비는 생명 없는 사물 속에서 오히려 무기력한 인간보다 더 강한 의지와 존재감을 발견했던 것처럼 보인다.
꿈의 논리와 오컬트적 요소 역시 그녀의 작품 곳곳에 스며 있다. <언제, 혹은 어디에서(과거의 것들)Where or When (Things Past)> (1948)에 등장하는 무표정한 강령회 장면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들은 현실로부터 도피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현실 세계 자체가 지닌 견고하면서도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함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사용된다. 그 일상적인 기이함을 가장 강렬하게 체감하고 싶다면, 1948년경 제작된 실내 풍경 <과거와 현재Past and the Present>가 볼 만하다. 폐쇄적이고 답답한 공간감이 현실 속 불안을 차갑게 응축해 보여준다.
작품에 등장하는 개인적 상징들, 즉 두 차례의 결혼, 정서적으로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던 딸과의 관계, 지나온 선택과 후회 등은 전시장 벽면의 해설을 통해 자세히 소개된다. 이 해설은 피츠버그 카네기 미술관의 에릭 크로스비Eric Crosby와 콜비 대학 미술관의 세라 험프리빌Sarah Humphreville이 공동으로 작성했다.

전시에 따르면, 애버크롬비의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문으로 이루어진 벽'은 실제 경험에서 비롯된 이미지였다. 그녀가 살던 시카고 하이드파크에서는 재개발 과정에서 철거된 건물의 문들을 공사장 주변의 임시 울타리로 재사용했는데, 이 낯선 풍경이 그녀의 회화 속 중요한 모티프로 자리 잡았다.
다만 이처럼 회고전으로서의 의미가 큰 전시라면, 자료가 남아 있었다는 전제 아래 시어스Sears & Roebuck를 위해 작업했던 초기 삽화나 보다 전통적인 화풍의 초기 초상화도 함께 소개했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초기 초상화는 이번 전시에 출품된 어떤 작품보다도 인간의 얼굴을 더욱 깊이 있게 포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애버크롬비는 점차 쇠약해졌다. 관절염에 시달렸고, 은둔 생활을 했으며, 두 차례의 이혼을 겪었다. 알코올 의존증에 빠졌고, 평생 모아온 저축마저 도난당하면서 경제적으로도 궁핍해졌다. 결국 그녀는 예술 활동에서도 예상보다 이른 은퇴를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생의 마지막까지도 특유의 유머 감각은 잃지 않았다. 임종을 앞두고 병상에서 시카고의 저명한 역사학자이자 방송인인 스터즈 터클Studs Terkel과 나눈 인터뷰에서는 재치 있는 입담이 여전히 살아 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이번 전시 도록에도 수록되어 있다. 당시 그녀의 친구들은 하이드파크 아트센터Hyde Park Art Center에서 그녀의 첫 미술관 회고전을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그리고 지금 밀워키에서 열린 이번 전시는 그녀에게 두 번째 기관 회고전이 된다.

이번 전시는 애버크롬비와 재즈 뮤지션들과의 깊은 인연에도 상당한 비중을 할애한다. 그녀의 두 번째 남편이자 재즈 평론가였던 프랭크 샌디퍼드Frank Sandiford는 당대의 저명한 재즈 연주자들을 그녀의 주변으로 이끌었고, 이들은 투어 중에도 종종 그녀의 집에 머물곤 했다. 색소폰 연주자 찰리 파커Charlie Parker는 애버크롬비의 작품 가운데 특히 좋아하는 그림이 있을 정도로 그녀의 예술을 아꼈다. 또한 피아니스트 리치 파월Richie Powell은 1956년 음반 '라이너 노트'(재킷 해설)에서 'Gertrude's Bounce' 라는 곡이 애버크롬비 특유의 경쾌한 걸음걸이 리듬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고 회고했다.

재즈 뮤지션들의 영향으로 애버크롬비는 자신의 회화를 '밥 아트Bop Art'라고 불렀다. 이는 당시 막 부상하기 시작한 팝아트Pop Art를 의식한 일종의 응답이자 반박이었다. 이번 전시에서도 '밥 아트'를 별도의 섹션으로 구성해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그녀의 그림에서 재즈의 리듬감이나 즉흥성 같은 시각적 요소를 직접 발견하기는 어렵다. 다만 당시 재즈가 미국에서 개인의 개성과 자아를 가장 강렬하게 표현하는 예술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철저히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했던 애버크롬비의 작품과 재즈 정신은 분명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애버크롬비 회고전이 열리는 전시장 위층에는 미국의 독학 화가들을 소개하는 훌륭한 상설 전시가 마련되어 있는데, 흥미롭게도 애버크롬비의 작품은 이들과 자연스럽게 공명한다. 그녀는 이들처럼 꾸밈없는 진지함을 지녔고, 바로 이 진지함이 오히려 작품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욱 깊게 만든다.
당시 위스콘신은 애버크롬비가 활동하던 인근 시카고에서 그녀가 거리를 두고자 했던 지역주의 화가들을 다수 배출한 곳이었다. 그러나 위스콘신주 밀워키 미술관에서 함께 열리는 두 번째 전시 《거트루드와 친구들: 위스콘신의 마술적 사실주의자들Gertrude & Friends: The Wisconsin Magic Realists》은 애버크롬비를 고독한 예술가로만 바라보는 기존의 인식을 바로잡는다. 이 전시는 토머스 부실리오-리터Thomas Busciglio-Ritter가 기획했다.
전시장에는 애버크롬비의 작은 정물화와 함께, 그녀가 위스콘신에서 교류했던 화가들의 보다 화려하고 다채로운 작품들이 나란히 전시되어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애버크롬비의 오랜 편지 친구이자 마음을 터놓는 동료였던 칼 J. 프리베Karl J. Priebe의 환상적인 새 그림들이다. 프리베가 보낸 편지들은 애버크롬비의 실내 풍경 작품 속에 등장하기도 하는데, 마치 베르메르의 외딴 시골 그림 속 세부처럼 조용히 자리잡고 있다.
전시에는 존 와일드John Wilde의 대형 작품 <위스콘신 와일드월드>(1953~1955)도 포함되어 있다. 인상적이고 환상적인 이 작품에서 화가는 화면 왼편에는 풍요로운 교외의 풍경을, 오른편에는 완전히 폐허가 된 세상을 배치한다. 화면 속 존 와일드는 금속첨필로 만든 막대, 혹은 연필처럼 보이는 도구를 들어 자신이 그리고 있는 풍경의 비례를 재고 있다.
훗날 시카고 이미지스트1Chicago Imagists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이들 화가 집단은 사후에 '마술적 사실주의자들Magic Realists'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들은 새롭게 형성되던 지역주의 미술의 관습 속에서 기이함과 낯섦을 끌어내고자 했다. 애버크롬비 역시 어린 시절의 사진을 바탕으로 고목과 폐허가 된 도축장을 자신의 풍경화에 반복해서 그려 넣었다. 존 와일드의 작품을 보고 나면, 애버크롬비의 <손과 텐트>에 등장하는 막대 역시 단순한 지팡이가 아니라 화가의 펜이나 연필을 상징하는 것으로 읽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이번 전시는 애버크롬비가 결코 고립된 예술가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존 와일드가 그린 단체 초상화에서 애버크롬비는 화가 더들리 허퍼Dudley Huppler의 어깨를 감싸 안은 채 환하게 웃고 있으며, 칼 J. 프리베 곁에도 다정하게 기대어 있다. 술잔을 손에 든 채 환하게 미소 짓는 그녀는 자신을 이해하고 함께 즐거움을 나누는 동료들 사이에서 가장 자연스럽고 편안한 모습을 보여준다.
《거트루드 애버크롬비: 온 세상은 하나의 미스터리Gertrude Abercrombie: The Whole World is a Mystery》
2026년 7월 19일까지
밀워키 미술관Milwaukee Art Museum
《거트루드와 친구들: 위스콘신의 마술적 사실주의자들Gertrude & Friends: The Wisconsin Magic Realists》
2026년 10월 25일까지
밀워키 미술관Milwaukee Art Museum
워커 밈스(Walker Mimms)는 주로 뉴욕 미술계 이외의 미술계에 초점을 맞춰 글을 쓰는 시각미술 작가이자 역사가이다. 그는 비평을 주로 아폴로, 뉴욕타임스, 뉴욕리뷰오브북스, TLS 등에 기고한다.
역자 이희정은 영국 맨체스터대 미술사학 박사로 현재 서울대와 국민대 출강중이다. 역서로 <중국 근현대미술: 1842년 이후부터 오늘날까지>(미진사, 2023)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