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88년 2월 13일 정오, 영국 상원의원들이 행렬을 이뤄 웨스트민스터 홀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기 위해 의사당 밖에는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었다. 이들은 동인도회사의 벵골 총재로서 인도의 상당 부분을 통치했던 인물에 대한 탄핵 재판을 보기 위해 그곳에 모였다. 이는 영국 국가가 마침내 힘을 과시하며 당대 최고 기업 올리가르히, 말하자면 18세기 런던의 일론 머스크와 맞서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약 170명의 상원의원 외에도 판사와 변호사, 수많은 하원의원이 참석했다. 재판 개정 당시의 모습을 담은 유명한 기록에 따르면, 왕비는 "황갈색 새틴 옷을 입고 있었으며, 머리 장식은 소박했고 아주 살짝 작은 다이아몬드들이 박혀 있었다." 왕비는 세 자녀와 함께 방청석에 자리했다. 상원의장으로 재판을 주재한 에드워드 설로(Edward Thurlow)는 당시에도 그랬듯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다음 말로 이 재판의 핵심을 요약했다. "기업에는 처벌할 육체도, 단죄할 영혼도 없다. 따라서 기업은 제멋대로 행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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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전히 영국이 인도를 정복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 1756년부터 1803년까지 인도 아대륙(亞大陸)을 정복한 주체는 국민국가가 아니라 민간 기업인 동인도회사였다. 런던의 작은 사무실에 본사를 둔 이 회사는 주주들 외에는 누구에게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
동인도회사가 처음에는 향신료 무역에, 이후에는 인도산 직물 수출에 주력했지만, 회사는 처음부터 특허장(charter)을 통해 식민지를 건설하고 통치하며 전쟁을 벌일 권한을 국가로부터 부여받았다. 1601년 첫 항해 때부터 이 회사는 사업을 수행하고 이윤을 늘리기 위해 무력을 사용했다. 1788년에 이르러 동인도회사는 단순히 영국 최대의 기업이자 최대 고용주에 그치지 않았다. 당시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했던 나라, 즉 무굴제국의 인도를 정복한 회사였다. 보석으로 가득한 그곳의 약탈품은 영국이 산업혁명으로 나아가는 데 동력을 제공했다.
제국주의 역사의 많은 사례에서 그랬듯, 여기서도 상업과 식민지화, 기업의 무자비한 권력은 보조를 맞춰 함께 움직였다. 톨스토이는 훗날 간디가 공개한 서한에서 "한 상업회사가 2억 명의 국민으로 이루어진 한 나라를 노예로 만들었다"고 썼다. 이 모든 것이 동인도회사를 역사상 가장 강력한―적어도 지금까지는― 기업으로 만들었다. 지난 10년 동안 빅테크 역시 주권국가의 속성을 띠기 시작했고, 여러 면에서 이제 전성기의 동인도회사만큼이나 강력한 존재가 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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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 약 4만2000명을 둔 반도체 제조업체 엔비디아의 기업가치는 5조 달러를 넘어섰다. 이는 인구 8400만 명인 세계 3위 경제대국 독일의 국내총생산(GDP)과 대략 맞먹는 규모다. 이 한 기업의 시가총액보다 GDP가 큰 나라는 미국과 중국뿐이다. 애플의 기업가치는 영국의 연간 경제 생산량을 웃돌고, 알파벳(구글의 모회사)의 기업가치는 프랑스의 연간 생산량을 넘어선다.
이들 기업이 세계적으로 중요한 초크포인트를 장악하는 방식은 전성기 동인도회사와 그 유럽의 동종 기업들이 행사했던 정치경제적 권력을 연상시킨다. 1710년대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아프리카 희망봉을 오가는 해상무역의 약 72%를 장악했고, 영국 동인도회사가 전성기였던 1820년대에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서 운송된 화물량의 약 4분의 3을 통제했던 것처럼, 인류가 우주 궤도에 올려놓는 모든 물체 가운데 스페이스X가 차지하는 비중도 2014년 10% 미만에서 지난해 약 4분의 3으로 높아졌다. 스페이스X는 현재 궤도에 1만 기가 넘는 위성을 보유하고 있다. 지구 주위를 돌고 있는 정상 작동 우주비행체 세 대 가운데 거의 두 대에 해당한다.
동인도회사의 역사가 보여주듯, 기업이 단순한 회사에 머물기를 그치고 통상 국민국가와 연관된 권한과 외형을 스스로 차지하기 시작하는 시점이 올 수 있다. 물론 오늘날의 거대 테크기업들은 상비군(常備軍)을 보유하고 있지 않으며 영토를 정복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동인도회사와 마찬가지로 이들은 자국 군대와 갈수록 긴밀하게 통합되고 있으며, 특히 우크라이나에서는 전장의 향방에 영향을 미쳤다.
동인도회사는 정치자금을 이용해 당대 가장 강력한 입법부에서 의사결정 권한을 사들였다. 거대 테크기업들도 비슷한 궤적을 그리고 있다. 머스크는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을 돕기 위해 수백만 달러를 지출한 뒤, 이른바 정부효율부(DoGE)를 이끌던 기간에 통상 의회에 부여되는 권한을 스스로 차지했다.
최대 규모의 테크기업들은 우리가 이제야 이해하기 시작한 방식으로 막강한 힘을 키워왔다. 역사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즉 우리가 직면한 위험과 민주주의가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방안 모두를 찾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영국이 동인도회사를 통제하고 대영제국 '제관(帝冠)의 보석' 즉 인도를 직접 지배하기까지는 수십 년이 걸렸다. 그 과정은 인도에서 동인도회사를 이끌었던 워런 헤이스팅스에 대한 탄핵 시도에서 시작됐다. 영국의 인도 총독이자 외무장관을 지낸 조지 커즌(George Curzon)이 지적했듯, 영국이 인도를 지배하는 한, 다시 말해 국가가 그 부의 원천을 직접 통제하는 한 영국은 세계 최강국이었다.
오늘날의 질문은 이것이다. 미국은 테크기업들의 힘을 견제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가, 아니면 이들 기업은 앞서 동인도회사가 그랬던 것처럼 갈수록 아무런 제한 없이 활동하게 될 것인가?
동인도회사는 1600년 런던에서 설립됐으며, 희망봉 동쪽에서 이뤄지는 영국의 모든 무역을 독점할 권리를 부여받았다. 18세기 중반에 이르러 동인도회사는 당시 오늘날의 인도 대부분과 파키스탄·방글라데시 전역, 아프가니스탄 절반을 아우르던 무굴제국에서 가장 번영한 지역의 상당 부분을 정복하기 시작했다. 오래지 않아 동인도회사는 전 세계에 걸쳐 세력을 뻗쳤다. 동인도회사는 거의 단독으로 무역수지의 흐름을 뒤집었다. 로마 시대 이래 서방의 금은이 동쪽으로 빠져나가게 했던 흐름이 역전된 것이다. 이제 돈은 런던으로 흘러들어 정부와 국민 모두를 부유하게 만들었다.
1780년대에 이르러 동인도회사는 아편을 동쪽의 중국으로 실어 나르고 있었으며, 이후 홍콩에 해상 거점을 확보하기 위해 아편전쟁에 병력을 투입했다. 곧 동인도회사는 사상 최대의 마약 카르텔이 됐다. 1860년대에 이르러 영국령 인도 재정 수입의 약 6분의 1이 마약에서 나왔으며, 이는 토지세 다음으로 큰 수입원 가운데 하나였다.
18세기 말에 이르러 동인도회사는 인도에 방대하고 정교한 행정체계를 구축했고, 런던 금융가 남쪽 도클랜드의 상당 부분도 건설했다. 영국에서 이 회사가 연간 납부한 약 850만 파운드는 영국 정부의 전체 연간 지출액의 약 4분의 1에 해당했다. 인도에서는 세금을 징수하고 화폐를 주조했으며, 사법을 집행하고 자체 법원과 외교 조직을 운영했다. 자체 깃발을 내걸고 조약을 체결했으며 주권국가들을 상대로 전쟁을 벌였다. 이 모든 것은 주주 배당금을 늘리기 위한 것이었다. 향신료 무역으로 출발한 한 국제기업이 결국 스스로를 사실상의 식민지 초강대국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동인도회사는 런던 리든홀 스트리트에 있는 본사에서 운영됐다. 18세기 대부분의 기간 동안 본사 직원은 불과 35명 정도였고, 건물의 폭도 창문 다섯 개가 나란히 놓일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인도에서 동인도회사가 보유한 사병은 1803년 무렵 약 20만 명에 달했다. 이는 영국 상비군의 약 두 배 규모였다. 동인도회사 주식은 영국 공공재정의 한 축이었으며, 회사의 수익성과 지급능력은 국가적 사안이었다.
헤이스팅스 탄핵을 주도한 하원 의원이자 철학자인 에드먼드 버크는 문제를 매우 명확하게 꿰뚫어 봤다. 버크는 동인도회사가 "상인으로 위장한 국가"라고 말했다. "이 회사 체제는 상업에서 시작해 제국이 되었다."
동인도회사는 흔히 인도 정복을 주된 목표로 삼았던 것으로 여겨지지만, 실제로 이 회사에는 언제나 두 개만을 쳐다봤다. 하나는 사업이 이루어지는 해외 땅이었고, 다른 하나는 자신을 탄생시킨 나라였다.
동인도회사의 변호사와 로비스트, 그리고 회사 주식을 보유한 의원들은 막대한 부를 이용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입법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이를 왜곡하기 위해 서서히, 그리고 교묘하게 움직였다. 1693년에는 동인도회사가 주식을 이용해 유력한 의원들과 장관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뒤이어 실시된 의회 조사는 세계 최초의 기업 로비 스캔들로 기록됐으며, 동인도회사가 뇌물 공여와 내부자 거래를 저질렀다고 결론 내렸다.
그 이후 동인도회사는 더욱 교묘해져 자사 정책에 우호적인 후보들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이 회사는 기업의 이해관계가 어떻게든 마법처럼 국가의 정책으로 바뀌는 연금술과도 같은 '기업 로비'를 사실상 발명했다고 할 수 있다. 의원 약 20명 가운데 한 명이 동인도회사 이사회에 몸담았고, 회사 이사의 5분의 1 이상이 어느 시점엔가 의원으로 활동했다. 전체 의원의 약 40%는 동인도회사 주주였다.
오늘날 최대 테크기업들은 2025년 상반기에만 연방정부를 상대로 한 로비에 총 3600만 달러(약 500억원)를 지출했으며, 연방의회 의원 두 명당 약 한 명꼴로 로비스트를 두고 있다. 비영리단체 이슈원(Issue One)의 조사에 따르면 메타(페이스북의 모회사)는 연방의회 의원 6명당 한 명꼴로 로비스트를 두고 있다.
암호화폐 업계를 제외한 테크기업과 그 경영진은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기금에 3500만 달러(약 480억원)를 기부했다. 이 기금은 사상 최대인 2억3900만 달러(약 3270억원)를 모았다. 머스크 한 사람만 해도 2024년 미국 선거에 2억9000만 달러(약 3967억원)를 썼고, 그 대가로 정부 내부의 막강한 직책을 받았다. 보상은 신속하게 돌아왔다. 주 정부의 인공지능 규제를 제한하는 행정명령과 관세 면제 조치가 내려졌고, 이에 대한 화답으로 투자 약속이 이어졌다. 인공지능 규제에 반대해온 벤처투자가 데이비드 색스는 트럼프 행정부의 인공지능 정책을 총괄하게 됐다.
2019년, 동인도회사에 관해 쓴 네 권의 책 가운데 가장 최근작인 <동인도회사: 제국이 된 기업(The Anarchy)>을 마무리하면서 나는 오늘날의 기업들은 다행히도 사병(私兵)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썼다. 월마트는 "자산 목록에 핵잠수함 함대를 보유하고 있지 않으며, 페이스북도 석유회사 셸도 보병 연대를 거느리고 있지 않다"고 썼다. 이제 그 문장은 이제 과거의 역사처럼 느껴진다. 순진했던 시대의 순진한 결론이었다는 느낌이다.
테크기업들이 20만 명 규모의 상비군을 보유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들은 갈수록 다른 형태의 군사적 역량을 갖춰가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2022년 러시아의 공격으로 지상 통신망이 파괴된 뒤 머스크의 스타링크가 우크라이나의 전쟁 수행을 하나로 묶어주는 기술이 됐다. 스타링크는 드론 운용과 포병 사격 보정, 최전선 통신을 통제했다. 당시 우크라이나 디지털전환부 장관이었으며 이후 국방장관이 된 미하일로 페도로우는 스타링크를 '우크라이나 통신 인프라의 혈액'이라고 불렀다.
2022년 머스크가 러시아 점령지인 크림반도 인근에서 서비스 제공을 활성화하는 것을 거부했을 때 우크라이나에는 치명적이었다. 보도에 따르면 이로 인해 우크라이나의 해상 드론 작전이 차질을 빚었는데, 이는 순전히 확전 위험에 대한 머스크 개인의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스페이스X는 이후에도 여러 차례 머스크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스타링크 네트워크의 군사적 이용을 계속 제한해왔다.
다시 말해 전쟁과 평화에 관한 결정이 이제 부분적으로는 한 민간 소유주의 개인적 판단에 따라 내려지고 있다. 과거 동인도회사 이사회가 런던의 리든홀 스트리트에서 벵골의 나와브나 무굴 황제를 상대로 싸울지, 우호관계를 맺을지, 아니면 뇌물을 줄지를 결정했던 것과 꼭 같은 모습이다. 동인도회사의 수뇌부가 그런 결정을 내렸을 때는 적어도 특허장과 영국 왕실이 그 뒤에 있었지만, 머스크는 오직 주가와 자신의 신념에만 책임을 진다.
2025년 6월 미 육군은 팔란티어와 메타의 최고기술책임자(CTO), 그리고 오픈AI의 최고제품책임자(CPO)를 새로 창설된 예비 부대의 중령으로 임관시켰다. 동인도회사는 회사군대의 퇴역 장교들과 주요 주주들을 의회에 대거 진출시켰다. 지금의 새로운 체제에서는 테크기업 경영진이 곧바로 연방 권력의 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런 점에서 이들은 18세기의 선배들보다 한발 앞서 있다. 당시에는 적어도 동인도회사 사람들이 '부패선거구'로 알려진, 돈으로 좌우되는 의석을 사들여야 의회에 진출할 수 있었다.
동인도회사는 무역회사로 출발해 한 세기에 걸쳐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세력 가운데 하나로 변모했다. 실리콘밸리도 갈수록 빨라지는 속도로 같은 길을 가고 있다. 매출의 40% 이상을 미국 정부에서 거두고 있으며 기업가치가 모든 전통적인 방산업체를 앞질러 치솟은 팔란티어는 미 국방부의 인공지능 표적 선정 프로그램과 관련해 13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맺고 있다. 또 2024년 1월에는 전쟁 관련 임무를 지원하는 기술을 공급하기 위해 이스라엘 국방부와 한층 강화된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지난주에는 오라클의 사프라 캐츠 수석부회장이 자사가 "정말이지 엄청나게 무시무시한 기술"을 이스라엘에 제공했다고 자랑하는 영상이 공개됐다. 캐츠는 또 자신이 가장 자랑스러웠던 순간은 이스라엘군 본부에서 나오던 바로 그때, 오라클 직원 다섯 명이 군복을 입고 그곳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본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구글과 아마존은 이스라엘 정부에 클라우드와 인공지능 서비스를 제공하는 12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맺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여기에는 이스라엘 국방부와 이스라엘군도 포함된다. 미 국방부는 오픈AI, 앤트로픽, 구글, xAI에 각각 최대 2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발주했다. 오픈AI는 군사 분야 업무를 금지했던 방침을 폐기했다. 구글도 무기나 감시를 위한 인공지능을 개발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철회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거대 기업이 국가를 부유하게 만들 수 있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거대 기업은 국가를 끌어내릴 수도 있는데, 바로 그때 국가의 이익과 기업의 이익이 서로 갈라지기 시작한다.
1772년 여름,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한 기업이 자금이 바닥났다. 동인도회사는 벵골을 정복했지만, 그 정복은 파국으로 치달았다. 회사의 태만으로 더욱 악화된 기근으로 벵골 주민의 약 5분의 1이 목숨을 잃었고, 동인도회사의 주가는 폭락했다.
6월 8일, 동인도회사 주식에 거액을 투기했던 알렉산더 포다이스라는 스코틀랜드 은행가가 55만 파운드의 빚을 남긴 채 사무실에서 사라졌다. 그의 은행은 곧 파산을 선언했고, 그다음 주에는 또 다른 은행이 파산하면서 영국 전역에서 유럽으로 확산된 금융위기가 시작됐다. 가을이 되자 동인도회사 이사들은 구제금융을 요청하고 있었다.
의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에 동인도회사를 구제했다. 리먼브러더스처럼 동인도회사는 '망하게 내버려두기에는 너무 큰' 기업이었다. 동인도회사 주식은 영국 공공신용의 한 축이었고, 하원의원의 약 40%가 이 회사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다. 1773년 정부는 동인도회사에 140만 파운드를 지원했고, 이어 회사가 이 돈을 다시 벌어들일 방법을 찾다가 런던 창고에 팔리지 않은 채 쌓여 있던 차에 주목했다. 차법(Tea Act)은 동인도회사가 이 차를 미국으로 직접 운송할 수 있도록 해 그동안 차 무역을 담당해온 북미 식민지 상인들보다 낮은 가격에 판매할 수 있게 했다.
이는 한 기업의 재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었다. 그 대가로 영국은 13개 식민지를 잃었다. 그해 12월 보스턴에서는 사람들이 차를 항구에 내던졌다. 미국 독립혁명을 앞둔 시기 미국 애국파가 품었던 주요한 두려움 가운데 하나는 영국 의회가 동인도회사를 아메리카에 풀어놓아 인도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곳에서도 약탈하도록 만들 것이라는 것이었다.
미국인 존 디킨슨은 벵골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야만적 행위와 착취, 독점"을 자행해온 이 "거의 파산한 회사"가 이제 "약탈과 억압, 잔혹함의 수완을 발휘할 새로운 무대로 아메리카에 눈을 돌렸다"고 썼다. 3년이 채 지나지 않아 미국은 독립을 선언했다.
이것이 기업이 국가와 거래하는 단계에서 국가와 분리할 수 없는 존재가 되는 단계로 선을 넘어가는 방식이다. 기업이 충분히 거대해지고 나면 국가가 그 기업을 위해 법을 만들게 되며, 결국 청구서가 날아왔을 때 그 비용을 주주가 아니라 국가가 치르게 된다. 프레더릭 노스 총리가 이끄는 정부가 처음부터 미국을 잃으려 했던 것은 아니었다. 정부의 목적은 한 기업의 지급능력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는 영국에 재앙적이었으며 영국의 국력을 약화시키는 데 크게 작용했다.
이 모든 것은 오늘날의 기업들을 길들이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영국 정부는 결국 자신의 가장 강력한 기업 경쟁자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동인도회사가 국가 전체를 압도하고, 국가의 경제뿐 아니라 군사력의 성쇠까지 좌우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에드먼드 버크는 웨스트민스터 홀에서 7년에 걸쳐 헤이스팅스 탄핵을 추진했지만 실패했다. 기업을 길들일 수 있는 것은 강력한 입법뿐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기까지 영국에는 그로부터 63년이라는 세월과 수십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19세기 최대 규모의 반식민지 봉기가 더 필요했다.
이는 동인도회사의 무신경한 행태가 1857년 유혈 봉기를 촉발한 뒤 벌어진 일이었다. 영국에서는 '인도 반란(Indian Mutiny)', 인도에서는 '제1차 독립전쟁'으로 알려진 전쟁이었다. 탐욕과 사익이 초래하는 위험을 깨달은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 정부는 일련의 법률을 제정해 역사상 가장 탐욕스러운 기업을 길들이는 데 나섰다. 이 법률들은 사실상 동인도회사를 폐지하고 그 기능을 대영제국 행정조직의 관할 아래 두는 것이었다.
동인도회사의 해군은 해체됐고 육군은 영국 국가 통제로 넘어갔다. 1858년 인도 총독은 동인도회사가 보유한 인도 영토를 국유화해 영국 국가 통제 아래 두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인도를 통치하는 것은 회사 이사진이 아니라 영국 군주가 됐다. 동인도회사는 이렇게 팔다리가 잘려나간 상태로 15년을 더 연명하다가 특허장이 만료되면서 1874년 마침내 문을 닫았다. 한 논평가가 지적했듯 그 마지막은 "한 지방 철도회사의 파산보다도 세간의 관심을 덜 끌었다."
이는 동인도회사가 동방 무역에서 누리던 경제적 독점을 무너뜨렸을 뿐 아니라 영국이 가장 수익성이 높은 식민지를 직접 통제할 수 있게 했고, 영국 정부에는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줬다. 다만 인도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점을 덧붙여야 한다. 영국의 이익을 위한 인도의 경제적 수탈은 이전과 거의 마찬가지로 계속됐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도 전통적인 공산주의식 기업관으로 되돌아가면서 자국의 거대 기업들을 상대로 이와 비슷한 조치를 취했다. 10년 전만 해도 많은 사람은 알리바바와 텐센트가 차세대 기업의 제왕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오늘날 중국 경제는 여전히 미국 경제를 추월할 가능성이 있지만, 중국 기업들이 미국 기업들을 추월하지는 못할 것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두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2020년 10월 알리바바 공동창업자 마윈은 중국 금융당국의 "전당포식 사고방식"을 비판했다. 불과 며칠 뒤 당시 성사됐다면 역사상 최대 규모가 됐을 마윈의 금융서비스 계열사 앤트그룹의 3100억 달러가 넘는 기업가치의 기업공개(IPO)가 거래 개시를 불과 이틀 앞두고 취소됐다.
그 뒤 중국 기업 역사상 가장 광범위한 규제 공세가 이어졌다. 알리바바에는 27억5000만 달러의 벌금이 부과됐고, 앤트그룹은 강제로 구조조정을 당했으며, 중국 경제의 여러 산업 전체를 겨냥한 동시다발적인 규제 캠페인이 시작됐다. 이 단속의 가장 상징적인 희생자였던 마윈은 중국의 공적 무대에서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가 2025년 2월에야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기세가 꺾인 기업인들이 참석한 TV 중계 좌담회에서 시 주석과 악수했다. 스타링크가 한 개인의 회사라면, 중국판 스타링크는 베이징 중앙정부에 직접 보고하는 국유기업이 운영하는 궈왕(國網)과 상하이 시의 지원을 받는 첸판(千帆)이다. 두 곳은 합쳐 2만 7000기 이상의 위성을 운용할 계획이다.
최근의 한 사건은 미국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여전히 결정적인 우위를 행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앤트로픽은 기밀 정부 업무에 가장 깊숙이 관여해온 인공지능 연구소이면서도 두 가지 제한 원칙을 고수해왔다. 미국인에 대한 대규모 감시는 하지 않고, 완전 자율무기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앤트로픽은 지난겨울 미 국방부로부터 자사 모델을 "모든 합법적인 목적"에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앤트로픽은 이를 거부했다. 대통령은 모든 연방기관에 앤트로픽의 기술 사용을 중단하라고 지시했고, 국방부는 앤트로픽을 '공급망 위험'으로 지정했다. 다시 말해 중대한 안보 위협으로 규정한 것으로, 미국 기업에 이런 지정이 공개적으로 내려진 것은 전례가 없었다. (앤트로픽은 이 지정과 관련해 국방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며, 소송은 현재 진행 중이다.)
동인도회사 이사진도 1773년 의회가 국가 통제의 초기 시도였던 규제법(Regulating Act)을 통과시켰을 때 이와 비슷한 상황에 직면했다. 당시 의회는 기업의 폭력을 억제하기 위해 개입했으나, 트럼프 행정부는 반대로 기업이 스스로 설정한 폭력에 대한 제한을 없애기 위해 개입했다.
대중적 저항과 비슷한 움직임도 이제 막 나타나기 시작했다. 동인도회사의 과도한 행태가 결국 의회뿐 아니라 영국 사회 전반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듯, 미국 전역에서도 빅테크에 대한 광범위하고 놀라울 정도로 초당적인 반감이 형성되고 있다.
갤럽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10명 가운데 거의 4명은 인공지능이 이익보다 해를 더 많이 끼친다고 답했다. 이는 1년 전보다 크게 늘어난 수치다. 또 거의 10명 가운데 8명은 인공지능이 미국의 일자리 수를 줄일 것으로 예상했다. 이런 분노가 가장 구체적으로 향하는 대상은 인공지능 붐의 물리적 실체인 데이터센터다. 2026년 첫 3개월 동안에만 조직적인 지역사회의 반대로 약 1300억 달러 규모의 대형 프로젝트 75건이 무산되거나 지연됐다. 같은 갤럽 조사에서는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층 모두에서 상당한 다수를 포함해 유권자 10명 가운데 7명 이상이 자신의 집 근처에 이런 시설이 들어서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과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하원의원은 신규 데이터센터 건설을 전국적으로 유예할 것을 촉구했다. 학생들은 졸업식에서 인공지능 기업 경영진에게 야유를 보냈다. 또 기술기업들의 엄청난 전력 수요가 부분적으로 촉발한 공공요금 상승은 버지니아와 조지아, 뉴저지에서 민주당이 승리하는 데 일조했다. 바로 이번 주 메타는 47개 주와 워싱턴 DC, 미국령 지역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최대 171억 달러의 벌금을 지급하고 자사 플랫폼의 운영 방식을 대폭 변경하기로 합의하며 소송을 종결했다.
이 모든 움직임을 결국 동인도회사를 길들였던 것과 같은 입법으로 엮어낼 수 있을지는 또 다른 문제다. 특히 자신의 가족기업과 나라의 일을 하나의 이해관계로 취급하는 거대 기업 재벌이 대통령직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동인도회사가 남긴 교훈은 기업이 해외에서 끔찍한 행태를 보일 수 있다는 것만이 아니다. 기업은 국내에서도 자신의 힘을 과시할 수 있다. 과거 동인도회사가 그랬듯 오늘날의 거대 기업들도 국민국가의 권한과 기능을 떠맡아가는 동시에 로비 자금과 권력과의 밀착 관계를 이용해 우리의 정치와 경제를 왜곡하고 있다. 에드먼드 버크는 1780년대에 이를 이해했다. 그가 가장 크게 우려했던 것은 동인도회사가 벵골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가 아니라 그 회사의 돈이 영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였다.
역사는 기업이 국가의 속성, 즉 세금, 법원, 조약, 전쟁과 평화를 결정할 능력을 갖기 시작하면 그 변모가 기업이 착취하는 지역 못지않게 본국에도 큰 피해를 줄 수 있음을 보여준다. 기업의 로비는 입법부를 부패시킨다. 기업의 재무가 공공의 관심사항이 됨에 따라 기업은 국가재정을 장악한다. 또 외교정책을 기업 재무제표의 연장선으로 바꿔놓는다. 그리고 일단 그 선을 넘고 나면 다시 되돌아오기가 놀라울 정도로 어렵다는 사실도 보여준다. 이 모든 것을 되돌릴 수 있는 시간의 창은 빠르게 닫힌다.
국가는 기업을 통제할 수 있다. 막강했던 동인도회사를 길들인 사례가 이를 입증하며, 최근 중국정부가 보여준 힘의 행사 역시 마찬가지다. 동인도회사의 강력한 기업 로비 때문에 영국 의회가 회사를 다시 통제하는 데는 85년이 걸렸다. 세 차례의 의회 개입과 한 차례의 기근, 한 차례의 파산, 그리고 그 세기 가장 유혈이 낭자했던 식민지 봉기를 거쳐야 했다. 그리고 그때는 이미 인도에서 피해가 발생한 뒤였다.
수단은 여전히 존재한다. 부족한 것은 그것을 사용할 정치적 의지다.
윌리엄 달림플은 케임브리지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했으며, 동인도회사의 역사를 다룬 '동인도회사: 제국이 된 기업' 를 비롯한 여러 책을 집필했다. 뉴욕리뷰오브북스, 뉴요커, 가디언 등에 정기적으로 기고하고 있다.




'반관반민(半官半民)'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이 공적(公的)인 것인지 사적(私的)인 것인지가 섞여 있는 부분입니다. 우리 관념 속에서는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이 분명히 분리되어 있지만 현실 세계는 그렇지 않습니다. 네덜란드가 처음 만들고 이를 참고해 영국이 만든 동인도회사는 처음부터 국가로부터 무력 사용을 허락 받은 독특한 회사였습니다. 한창때에는 회사가 보유하던 군대가 20만명이 되었고, 이는 영국군의 2배 규모였습니다. 19세기 전반까지 인도 아대륙(亞大陸)을 통치하던 주체는 영국이 아니라 동인도회사라는 주식회사였습니다. 이 회사가 무굴제국을 격파하고 아편전쟁을 일으켰습니다. 게다가 이 회사의 홍차 재고를 처리하기 위해 영국 의회는 차법(The Tea Act)을 제정했고, 이것이 보스턴 차사건을 거쳐 미국의 독립을 자극했습니다. 동인도회사는 제국 경영, 또는 제국주의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언제나 참고하는 사례였습니다. 만주철도나 동양척식회사도 이 회사 모델을 참고했고, 최근 UAE가 아프리카에 '제국'을 확장해가는 과정도 영국 동인도회사 모델을 닮았습니다. 뉴욕타임스의 8월 28일자 에세이는 미국의 현 테크기업이 점점 성장하다가 어느 시점에 21세기의 동인도회사로 변모하는 것이 아닐까 우려합니다. 동인도회사 역사 전문가인 필자는 19세기에 영국이 어떻게 이 회사를 통제하기 시작했는지를 배워 미국 테크기업에도 적용할 것을 권합니다. 이 에세이 후반부에 시진핑 중국 정부가 중국 테크기업을 통제한 것을 마치 미국도 따라야 할 모범사례인 것처럼 묘사한 부분은 '옥의 티'입니다. 그것은 선을 넘은 사기업을 공공이 통제한 사례라기 보다는 사회주의적 요소가 여전히 강한 한 국가가 사기업 부분에 너무 쉽게 개입한 사례로 보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이런 '옥의 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에세이의 지적은 새겨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동인도회사의 역사는 주식회사 제도, 제국주의, 종합상사 등을 이해하는데 꼭 알아야합니다. 이 에세이는 동인도회사 역사를 향한 좋은 출발점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