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트 모던 《빛과 마법》, 졸작 속에서도 빛나는 사진의 전복적 힘

'예술사진의 탄생'을 부제로 내건 런던의 이번 전시는 회화주의 사진을 조명한다고 표방한다. 그러나 정작 가장 돋보이는 작품들은 그와 정반대의 미학을 보여준다.

우펑성(吳秉誠), 〈건설〉, 1958, Gelatin silver print on paper, 49.5 x 40 cm. Collection of National Gallery Singapore. Image courtesy of National Heritage Board, Singapore. © Wu Peng Seng family


산수 풍경 속 바위턱에 걸터앉은 사자 한 마리가 덥수룩한 갈기와 휘둥그레 뜬 눈으로 관람객을 맞는다. 테이트 모던의 전시 《빛과 마법: 예술사진의 탄생》 입구에 걸린 랑징산(郞靜山)의 〈포효하는 사자〉(1941)다. "세계적 사진 운동으로서의 회화주의"를 탐구하는 이번 전시는 호기심을 자극하면서도 곤혹스럽고, 성과와 한계가 뒤섞여 있다. 랑징산의 화면은 중국 수묵화를 너무나 닮아, 여러 네거티브 필름을 정교하게 중첩해 만들어낸 이상화된 풍경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기까지 잠시 시간이 걸린다.


랑징산의 사자는 일본과의 참혹한 전쟁 속에서 중국의 힘을 상징했다. 그러나 테이트 모던에서는 다른 적수를 향해 포효한다. 거트루드 케제비어의 〈마법의 수정〉(1904), 클래런스 허드슨 화이트의 〈응시하는 이〉(1906), 헬렌 캠벨의 〈성모들〉(1935)에 등장하는 세 여성 모델이다. 축 처진 자세에 베일을 쓰거나 가느다란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이들은 세기말 유미주의 회화 속 여성들을 빼닮았다. 마치 중국의 야수가 안개 낀 풍경 속에서 내숭 섞인 미소를 짓는 아가씨들을 집어삼키려 달려드는 듯하다. 이 장면은 당혹스러운 이번 전시 전체를 압축한다. 생동감 넘치고 흥미진진한 아시아 미술이 촌스럽고 감상에 젖은 영미권 회화주의 사진을 전시장 벽에서 날려버리는 형국이다.


예본드(Yevonde), 〈에디스 하트데이비스(결혼 전 성 월리스), 훗날 브로엄 앤드 보 경 부인('에어리얼로 분장한 리처드 하트데이비스 부인')〉, 1935년 © National Portrait Gallery, London.


넓은 두 번째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같은 상황이 되풀이된다. 이곳의 주인공은 중국의 은행원 출신 아마추어 사진가 뤄보녠(駱伯年)의 〈우물에서 물 긷기〉(1932)다. 장난스러운 관능미와 광채가 돋보이는 이 수수께끼 같은 콜라주는 수묵 드로잉을 연상시키는 꽃, 아르데코 직물, 반투명한 여성상 유리 조각을 한데 엮었다. 네거티브로 인화된 여성상은 마치 내부에서 빛을 발하는 듯하다.


뤄보녠의 작품과 마주한 것은 라파엘전파(pre-Raphaelitism)의 감상성(感傷性)이 극에 달한 듯한 1890~1900년대의 연초점(軟焦點) 사진들이다. 여성과 벌거벗은 아이들을 담은 이 초상사진에는 이블린 마이어스의 〈여름 정원〉(1890년경), 에마 레이슨 바턴의 〈성녀 마르가리타〉(1903년경)와 〈성녀 카타리나〉(1906), 성모와 아기를 묘사한 〈깨어남〉(1903)이 포함된다. 이토록 졸음을 부르는 몽롱함을 보고도 깨어나 있을 사람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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뤄보녠(駱伯年), 〈우물에서 물 긷기〉, 1932년 5월, Gelatin silver print on paper 24.5 x 18.8 cm ©️ Luo Bonian, Courtesy of Luo Bonian Art Foundation and Three Shadows +3 Gallery


오늘날 회화주의(pictorialism) 사진의 매력을 설득하기란 쉽지 않다. 1880년대 유럽과 미국에서 인상주의나 상징주의 회화를 모방하며 등장한 회화주의는 사진을 회화와 동등한 예술의 반열에 올려놓으려 했다. 그러나 이번 전시가 보여주듯, 그것은 줄곧 모방에 머물렀다. 로베르 드마시의 〈무대 뒤에서〉(1900년경)에 등장하는 흐릿한 발레리나들은 드가를 흉내 낸다. 아돌프 드 마이어의 〈탕헤르의 처녀〉(1908년경)와 〈잔〉(1912)은 오리엔탈리즘에서 영감을 얻었다. 보스턴의 구두닦이 소년을 모델로 삼은 프레드 홀랜드 데이의 〈폭풍의 신〉(1905)과 〈환영—오르페우스 연작〉(1907)은 귀스타브 모로의 신화 회화에서 영향을 받았다.


1910년 이후 회화주의는 더 이상 뛰어난 재능을 끌어들이지 못했다. 1900년대 회화주의 사진가 가운데 재능과 엄밀함을 겸비했던 앨빈 랭던 코번과 에드워드 스타이컨 등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가 주창한 '스트레이트 사진'1으로 나아갔다. 이번 전시에는 코번이 황혼 무렵의 정취를 담은 사진집 〈런던〉(1909)과, 휘슬러를 연상시키는 서정적인 야경인 스타이컨의 〈마마로넥의 달맞이〉(1904), 〈달빛: 연못〉(1906)이 출품됐다.


이들이 향한 새로운 방향을 보여주는 작품이 스티글리츠의 획기적인 사진 〈삼등선실〉(1907년경)이다. 모자와 굴뚝, 통로가 이루는 구형·원통형·직사각형을 중심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하나의 '형태들의 그림'이다.


회화주의 사진만으로는 전시를 시각적으로나 지적으로 지탱할 수 없다. 테이트 모던은 여기에 193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정치적 격동 속에서 등장한 다채롭고 독창적인 동남아시아 사진과, 그 밖의 몇몇 국제적 실험을 뒤섞어 놓았다. 이 작품들이야말로 전시에서 가장 큰 즐거움과 새로운 발견을 선사한다. 하지만 작품들 사이의 연관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연대나 지리적 구분은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다. 전시는 '춤', '지역의 목소리, 세계와의 대화'처럼 자의적이거나 무엇이든 포괄하는 주제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도 시시하고 하찮은 것들을 헤치고 나아가다 보면, 조형적 아름다움과 독창성, 문화적 흥미를 지닌 보석 같은 작품들이 빛을 발한다.


1960년대 소련 치하 라트비아에서 대항문화의 힘을 발휘했던 젠타 지비진스카의 〈리가 판토마임〉(1964–1967), 그 생동감 넘치고 리드미컬한 실루엣에 누가 마음을 빼앗기지 않겠는가? 혹은 억압적인 1930년대 부다페스트에서 촬영된 칼만 쇨뢰시의 〈봄의 알레고리〉(1936)에서, 아르데코풍 드레스를 입고 웃으며 화면 안으로 뛰어드는 소녀들은 또 어떠한가? 이 작품들은 사진이 지닌 전복적 힘을 눈부시게 드러낸다.


임석제의 〈그물과 해〉(1946)에서는 빛줄기가 스며드는 어부의 그물을 세로 구도로 근접 촬영한 이미지가 강인한 생명력을 품은 아름다움으로 승화되며, 일제강점에서 벗어난 한국의 해방을 기념한다. 다채로운 표현을 구사하는 그의 동료 이형록은 입을 쩍 벌린 물고기들이 묘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말린 생선들〉(1957)에서는 해학적인 사실주의자의 면모를 보이다가, 〈부유〉(1960)에서는 물 위에 비치는 빛의 투명하고 섬세한 효과를 탐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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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다 요호(津田洋甫)는 〈주택단지에 밤이 찾아오다〉(1960)에서 오사카의 콘크리트 아파트들을 어둠과 빛의 입방체로 변모시킨다. 불이 켜진 각각의 방은 하나의 전체 속에 어우러진다. 브라질에서 싱가포르에 이르기까지, 1950년대의 산업적 추상은 보는 이를 매혹한다. 조제 얄렌치의 〈철의 촉수〉(1950년대)에서는 강철 레일이 고리를 그리며 휘어지고, 우펑성(吳秉誠)의 〈건설〉(1958)에서는 역광을 받은 비계(飛階)가 각진 패턴과 선명한 흑백 대비를 이루며 홀로 일하는 노동자를 왜소하게 만든다. 우수에 잠겨 있으면서도 유토피아적 이상을 품은 이 이미지들은 여전히 우리가 사는 세계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아쉽게도 이 빼어난 작품들 가운데 회화주의 사진을 보여주는 것은 없다. 오히려 그 정반대다. 간결하고 기하학적인 화면은 원근법과 빛, 반복되는 형태를 자유롭게 활용하며, 회화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이 작품들이 보여주는 것은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폭넓게 확산된 것이 회화주의가 아니라 모더니즘이었다는 사실이다.


사진이 훌륭하다면 어떤 '주의'나 '이즘'에 속하는지가 중요할까? 눈길을 사로잡는 사진 한 점을 감상하는 데는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사진사의 발전에 기여하겠다고 내세우면서 정작 그 역사의 핵심적인 변혁을 모호하게 다루는 전시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회화주의는 모더니즘의 등장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모더니즘을 탄생시켰다"는 테이트 모던의 주장은 틀렸다.


모더니즘 사진은 회화적 접근을 단호히 거부했다. 회화를 모방하기는커녕, 오직 카메라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이미지임을 당당히 드러냈다. 기술의 진보, 도시를 삶을 위한 기계로 보는 발상, 고층 건물과 속도, 공간이 그 영감의 원천이었다. 구성주의의 창시자 알렉산드르 로드첸코의 〈발코니〉(1925)와 〈라디오 방송탑〉(1929)은 아찔한 시점과 절제된 화면으로 이러한 모더니즘의 활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다만 이 작품들이 이번 전시에 포함된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국제적 시각에서 기존의 근현대미술사를 재고한다"는 테이트 모던의 기조를 이어가는 이번 전시는 회화주의가 20세기 초 쇠퇴한 것이 아니라 "호주, 브라질, 중국, 이집트, 홍콩, 인도, 일본, 싱가포르, 한국에서 계속 번성했으며…그 흐름이 1960년대까지 이어졌다"고 주장하며 시야를 전 세계로 넓힌다. 그러나 정작 전시된 작품들은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지 못한다.


랑징산(郎靜山), 〈강가의 봄〉, 1942. Victoria and Albert Museum, London.The Royal Photographic Society Collection at the V&A, acquired with the generous assistance of the National Lottery Heritage Fund and Art Fund © Courtesy the Estate of the Artist.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작품도 몇 점 있으며, 일부 중국 사진가들은 서구 회화주의와는 별개로 수묵 두루마리 그림을 연상시키는 작업을 이어갔다. 전시 중반에 다시 등장하는 랑징산의 〈강가의 봄〉(1942)이 그 예다. 서예의 필획을 닮은 꽃가지가 물을 나르는 인물을 감싸며 화면의 틀을 이룬다. 그러나 이 전시에 소개된 각국의 주요 사진가들은 거의 모두 급진적인 모더니스트로 유명한 인물들이다.


판호(Fan Ho, 何藩), 〈연기 자욱한 세상〉, 1959. M+, Hong Kong © Estate of Ho Fan.


1930년대 고베에서 활동한 나카야마 이와타(中山岩太)는 만 레이의 친구로, 포토그램과 몽타주 작업을 선보였다. 〈구성〉(1930)에서는 기울어진 유리그릇과 텍스트 조각, 천, 전화선이 투명한 층을 이루며 겹쳐져 낯설고 불안한 느낌을 자아낸다. 1940년대 브라질 구체주의2의 선구자였던 제라우두 지 바루스는 다중노출과 이미지 회전, 추상적 형태를 실험했다. 〈무제(상파울루) 구성 II〉(1949)에서는 성긴 금속 골조로 된 의자 사이로 햇빛이 유희하고, 제라우두 지 바루스의〈스페인 그라나다〉(1951)에서는 안뜰을 둘러싼 지붕들이 아찔한 각도로 포착된다. 한편 거리 사진가 판호(Fan Ho, 何藩)는 1959년, 지붕의 개방된 공간으로 햇빛이 쏟아지는 오후 3~4시면 매일 홍콩 센트럴 마켓을 찾아 인파를 기록했다. 〈연기 자욱한 세상〉에서는 낮은 시점에서 카메라를 겨눠 주방에서 피어오르는 수증기 사이로 빛이 통과하는 순간을 포착했다.


인간미 어린 리얼리즘과 추상적인 선·형태·그림자가 어우러져 극적인 장면을 이루는 이 사진은 전시 도록의 표지를 장식했다. 빛과 마법 같은 경험을 예고하는 이미지다. 그러나 훌륭한 작품 몇 점을 소개하면서도, 전반적으로 방향을 잘못 잡은 이번 전시는 새로운 깨달음도 감흥도 선사하지 못한다. 실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전시는 2월 21일까지. tate.org.uk




재키 불슐래거(Jackie Wullschläger)는 파이낸셜타임스(FT)의 수석 예술평론가로 활동중이다. 그는 '한스 크리스챤 안데르센: 이야기꾼의 삶'과 '샤갈: 삶과 망명'으로 스피어(Spear) '금년의 전기' 상을 두 차례 수상했다.


역자 이희정은 영국 맨체스터대 미술사학 박사로 현재 서울대, 전남대, 국민대 강사이며, 역서로 '중국 근현대미술: 1842년 이후부터 오늘날까지'(미진사, 2023)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