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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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PADO

2023.06.29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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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모두가 동의했던 한 가지는 전쟁이 길어질수록 푸틴에게 유리하다는 거였습니다. 지금이야 서구가 나름 우크라이나를 돕고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볼멘 소리가 나올 것이고 대오를 이탈하는 나라들도 나올 겁니다. 반면 푸틴이 철권 통치를 하고 있는 러시아는 언제든 대열을 재정비하고 공격을 재개할 수 있다는 거죠. 최소한 교착상태를 유지하며 유리한 상황을 기다릴 것이라는 거죠. 그런데 지난 주말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PADO는 몇 차례에 걸쳐 푸틴에 의한 프리고진 '처리'가 시작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푸틴의 심복으로 알려진 프리고진이 자신의 용병 부대를 이끌고 1000㎞를 주파해 모스크바 인근까지 진격하는 무장 반란을 일으킨 겁니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푸틴의 러시아가 훨씬 취약한 상태라는 게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프리고진의 악명에 익숙한 이들은 명백한 반란을 일으킨 프리고진에게 점령지 현지 주민들이 열띤 호응을 보내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텔레그램 등의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프리고진의 선전술이 상당한 효과를 거둔 겁니다. (푸틴은 개인적으로 인터넷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내년 3월 17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푸틴에게는 낭패의 연속입니다. 앞으로 푸틴이 집권 연장을 위해 어떤 행보를 보일지 주목해야 합니다. 이미 군부 인사에 대한 대대적인 물갈이에 착수한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극적 합의에 따라 진격을 멈추고 벨라루스로 떠난 프리고진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요? 프리고진의 과거를 이해해야 미래를 조금이라도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관록의 분쟁 전문기자 폴 우드가 이코노미스트의 자매지 1843매거진에 쓴 프리고진의 프로필 기사(6월 12일자)는 그의 다채로운 이력을 세밀하면서도 대담하게 그려보이고 있습니다. 프리고진 사태는 여전히 '진행중'입니다.


2017년 어느날, 검은색 방탄 BMW 차량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바그너그룹 본부 바깥에 섰다. 바그너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당도했다는 이야기가 돌자 본부 안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한 회의실에서 미팅이 진행 중이었고 프리고진은 그곳으로 직행했다. 다부진 몸에 정수리는 총알처럼 뾰족한 50대 남성인 프리고진은 보디가드에 둘러싸여 위압적인 풍모였다. 하지만 직원 상당수는 한번도 그를 만나본 적이 없었다. 민간군사기업(PMC)이 불법인 러시아에서 민간군사기업 바그너그룹은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조직이었다. 프리고진은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활동했던 터라 해당 미팅에 참석했던 한 초급 간부는 그를 못 알아봤다. 현장에 있었던 전직 바그너 직원에 따르면 그는 자신을 소개하려고 일어났다고 한다. 프리고진은 그를 노려보더니 그의 소매를 붙들고 복도로 끌고 나가 얼굴을 강타했다.


오늘날 프리고진을 못 알아볼 러시아인은 거의 없다. 바그너그룹은 세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용병 부대가 됐고 그 수장은 수많은 러시아군 장성들을 제치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벌이는 전쟁의 대표격인 인물이 됐다. 프리고진은 텔레그램과 브이콘탁테(러시아판 페이스북)에서 끊임없이 호전적인 성명을 발표한다. 러시아 군부 기득권 세력과 대치하면서 보통은 은폐돼 일반에 드러나지 않는 권력 다툼을 러시아 국민에게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을 경질시키려 했던 시도는 실패한 것으로 보이지만 프리고진은 여전히 강력한 정치적 인물이다. 어느 정도는 SNS에서 거대하게 형성된 바그너그룹 추종자들의 덕분이다.


프리고진의 드높은 악명에도 불구하고 그가 크렘린의 권력 구도 내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어쩌면 블라디미르 푸틴이 원하는 게 바로 이것일지도 모른다. 지휘계통에서 바그너의 위치가 애매하다는 사실은 러시아 정부로 하여금 바그너가 우크라이나에서 벌이는 전쟁범죄에 대해 뻔한 핑계거리를 준다. 몇몇 젊은 러시아인들은 프리고진을 경직된 군부 기득권의 부패와 무능으로 인해 배신당한 영웅으로 본다. 다른 이들은 프리고진이 그저 운이 좋았던 깡패였거나 토사구팽 당할 안보기관의 도구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프리고진이 푸틴을 몰아낼 수도 있다고 여기는 이들도 소수지만 있다. 프리고진 스스로는 미래의 야망에 대해 입을 굳게 다물어왔지만 그가 러시아의 미래에 중요한 인물이 될 가능성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그전에 러시아 엘리트들의 칼날과 독을 피해 살아남아야 하겠지만. 이 변덕스러운 인물이 나중에 무엇을 할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생애를 살펴봐야 한다.





1961년 태어난 예브게니 빅토로비치 프리고진은 소련에서 누릴 수 있는 인생의 시작점 중 괜찮은 지점에서 삶을 시작했다. 그는 꾸준히 올림픽 선수들을 배출한 레닌그라드의 명문 제62스포츠기숙학교를 다녔다. 해커들이 프리고진의 변호사들로부터 탈취했다고 주장하는 문서에 따르면 그는 프로 스키 선수가 될 수도 있었지만 부상으로 포기해야 했다 한다.


그 대신 그는 범죄자로 첫 공식기록을 남긴다. 1979년, 18세의 프리고진은 절도로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집행유예 기간에도 그는 여러 차례 절도를 저지른다. 소련 시절 레닌그라드에는 훔칠만한 게 많지 않았다. 1980년 2월, 프리고진은 공범과 함께 한 아파트에 침입해 꽃병과 냅킨 상자, 와인잔 여섯 개를 훔쳤다.


소소했던 비행은 점차 잔혹해졌다. 어느날 저녁 프리고진과 일당들이 한 남성을 어두운 골목으로 유인해 250루블을 훔친 걸 자축하기 위해 밖으로 나섰다. 일당 중 하나의 증언에 따르면 프리고진은 "아름다운" 코트를 입은 젊은 여성을 봤다 한다. 그들은 여성을 따라 거리에 나섰고 한 명이 여성에게 담배를 청했다. 여성이 핸드백을 열자 프리고진은 뒤에서 여성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여성은 소리를 지르려 했지만 프리고진은 더 세게 목을 졸랐다. 여성은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일당 중 하나는 여성의 부츠를 훔쳤고 프리고진은 금 귀걸이를 빼앗았다. 법원은 프리고진에게 13년형을 선고했다. 그가 갓 스무살이 된 때였다.


(로스토프라도누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러시아 용병 조직 바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24일 (현지시간) 남부 군사 도시 로스토프나도누의 본부에서 텔레그램 메시지를 통해 “우리는 반역자가 아닌 애국자”라고 밝히고 있다. 2023.6.25  ⓒ AFP=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로스토프라도누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러시아 용병 조직 바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24일 (현지시간) 남부 군사 도시 로스토프나도누의 본부에서 텔레그램 메시지를 통해 “우리는 반역자가 아닌 애국자”라고 밝히고 있다. 2023.6.25 ⓒ AFP=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소련의 교도소는 가혹한 곳이었다. 소련 붕괴 후 러시아가 문호를 개방하자 죄수들과 함께 생활했던 범죄학자 로라 피아센티니는 소련의 교도소 체계가 "완전히 잔혹하고 끔직하며 지극히 비인간적인 폭력을 집요하게 추구"했다고 말한다. 죄수들은 일종의 병영에서 50~100명씩 모여 생활했다. 교도관들은 죄수들끼리 군기를 잡을 것을 권장했다. 교도소 속의 일상은 '보릐 브 자코네1'가 관장했다.


'보릐'는 엄격한 규율과 (뒤틀리긴 했어도) 명예 관념이 있었다. 피아센티니는 아마도 그들이 프리고진이 홀로 있는 여성을 떼로 공격한 데 대해 경멸감을 갖고 가혹하게 다뤘을 수 있다고 본다. 보릐는 또한 교도소 내의 경제도 담당했다.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나 텔레비전을 가져다 줄 수도 있었고 사회에 있는 가족들을 보호해줄 수도 있었다. 프리고진은 여러가지 의미로 새롭게 등장하는 러시아에서 성공하는 데 필요한 기술들을 교도소에서 익혔다.




프리고진은 그가 30대를 바라보던 1990년 출소했다. 그는 레닌그라드에서 핫도그를 판매하는 것으로 사회에서 새 출발을 했다 한다. "우리 아파트 주방에서 머스터드를 만들었죠. 어머니가 주방에서 우리가 가져간 걸로 만들었어요. 한 달에 1000달러 정도 벌었습니다. 루블 지폐가 산더미처럼 쌓여서 어머니가 세는 것도 힘들어 했죠." 프리고진이 한 신문사에 한 말이다. 그는 곧 패스트푸드를 버리고 정통 레스토랑 사업을 시작했다. 프리고진의 레스토랑 중 하나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역사적인 세관 지하창고에 위치해 있었고 구레나룻을 기른 건장한 영국인 매니저가 운영했다. 다른 레스토랑은 과거에 수상 디스코로 사용했던 선박을 개조해 영업했다.


프리고진은 자신이 열심히 일해 성공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밖에도 다른 요인들이 있었으리라 여기는 이들도 있다. 2005년 푸틴에 의해 투옥된 적 있는 올리가르히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2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레스토랑 사업과 조직범죄는 서로 얽혀 있다고 주장한다. 프리고진의 레스토랑 동업자 둘은 카지노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프리고진이 조폭들을 마주친 적이 없으리라 상상하긴 어렵다. 호도르코프스키는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러시아의 시카고'라고 말한다. 프리고진 일당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카지노를 비롯한 부문을 담당하는 부시장이 프리고진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던 날을 기억한다. 그 부시장의 이름은 블라디미르 푸틴이었다.


푸틴이 권좌에 다가가자 프리고진의 지위도 덩달아 급상승했다. 2000년 푸틴이 대통령이 되자, 프리고진은 국가 행사에서 케이터링을 맡게 됐고 그로 인해 '푸틴의 쉐프'란 별명을 얻었다. 프리고진은 러시아 최고 권력자 뿐만 아니라 다양한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을 가까이서 맞이할 수 있었다. 푸틴의 저녁 식사가 담긴 접시 뚜껑을 프리고진이 열어 보여주는 모습과 조지 W 부시 대통령 옆에 서 있는 모습 등이 사진기자들에게 포착됐다.


 [모스코바=AP/뉴시스] 지난 2011년 11월 11일(현지시각) 모스크바 외곽의 한 식당에서 저녁 식사 중 바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왼쪽)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음식을 건네고 있는 모습. 2023.06.25

[모스코바=AP/뉴시스] 지난 2011년 11월 11일(현지시각) 모스크바 외곽의 한 식당에서 저녁 식사 중 바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왼쪽)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음식을 건네고 있는 모습. 2023.06.25


1990년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살았던 바그너그룹 전문가 캔데이스 론도는 프리고진이 레스토랑 사업을 했던 것이 결코 사소한 사항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권좌에 올랐을 당시 정치 초보에 불과했던 푸틴은 다른 국가수반들을 감탄하게 만들기 위해 화려한 연회를 열었다. 이는 프리고진에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식품 부족은 물론이고 러시아 음식은 형편없다는 인식과도 씨름해야 했다. 그는 러시아 전통 재료를 사용해 우아한 메뉴를 개발했다. 부시가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프리고진은 아스트라한3 토마토와 발사믹 식초, 구즈베리 마멀레이드를 곁들인 가재 요리와 순무와 어린 호박을 곁들여 튀긴 정어리 요리를 내놓았다(부시는 스테이크를 먹었다).


겉보기를 치장하는 데 의존했던 러시아 정부에게 큰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러내는 프리고진의 능력은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소중했다. 그가 제공하는 코스 요리는 매우 화려해서 때로는 풍자극에 가까울 정도였다. 유출된 이메일에 따르면 당시 대통령실 실장이었던 세르게이 이바노프의 생일을 기념하는 만찬에는 "소말리아 타조 고기, 악어, 청새리상어, 피라냐"가 나왔다. (푸틴은 스테이크를 먹었다.)


프리고진이 맡은 역할은 엄청난 신뢰가 필요했다. 러시아에는 정적을 독살하는 오랜 전통이 있다. 한 전직 미국 정보요원은 크렘린에서 공식 쉐프의 역할은 서구 어느 곳에서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말했다. "내가 누군가를 내 개인 쉐프로 임명한다는 건 그를 정말로 신뢰한다는 걸 의미하죠. 정말 큰 일인 겁니다." 할아버지가 스탈린의 개인 쉐프였던 푸틴은 그 누구보다도 이를 잘 알았다.


바그너 전문가 론도에 따르면 권위주의 체제에서 지도자와 그의 이너서클에게 가사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들은 상당히 높이 출세할 수 있다 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부유층과 권력자들을 모시는 운전기사나 집사, 하녀, 주방장들도 덩달아 지위가 상승했죠. 오늘날 푸틴의 러시아의 궁정 가신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프리고진은 학교, 교도소는 물론이고 러시아 군대 전체에 식품을 공급하는 계약을 따냈다. 이 사업으로 프리고진은 큰 부를 거머쥔 것으로 전해진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프리고진이 푸틴의 신뢰를 계속 유지했다는 것이다.




바그너그룹 직원 중 언론에 입을 연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중 하나인 마랏 가비둘린은 백발이 성성한 노병으로 1993년 러시아군을 제대했다고 한다. (그의 이야기 전부를 검증하기란 불가능했으나 확인 가능한 팩트들과 부합했다.) 가비둘린은 공수부대를 떠나고 나서 민간의 삶에 적응하는 데 애를 먹었다 한다. 경호원으로 일하려 했지만 시베리아 출신 조폭을 총으로 쏘는 바람에 교도소에서 3년을 살았다. 오랜 군대 친구가 그에게 바그너그룹에 대해 알려줬고 그는 바그너에 지원했다. 그가 처음 투입된 곳은 우크라이나로 2014년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우크라이나 동부의 분리주의자들이 우크라이나 정부와 분쟁을 일으켰을 때였다. 그 다음은 시리아였다. 러시아는 그곳에서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을 지원하고 있었다.


가비둘린은 2016년 시리아의 팔미라 인근에서 지하디스트 일당과 총격전을 벌였다고 한다. 폭발음을 듣진 못했지만 몸이 공중에 붕 떴다. 모든 것이 흐릿했고 느낄 수 있는 감각이라곤 파편들이 자신의 몸을 찢는 데서 나오는 고통 뿐이었다. 그는 병원에서 혼수 상태로 두 달을 보냈다. 여전히 혼미한 상태로 병원에서 눈을 떴을 때, 누군가가 자신에게 전화기를 건냈다. "예브게니 빅토로비치4일세." 가비둘린은 "마치 신의 전화를 받는 것 같았다"고 한다. 프리고진은 바그너그룹이 필요한 모든 치료비를 댈 것이라고 했다. 가비둘린에게 훈장과 편안한 사무실 직책도 약속했다. 프리고진 본인은 제복을 입은 적이 없으나(죄수복 제외) 자신의 병사들을 동지로 여겼다.


프리고진이 정확히 어떤 연유로 쉐프에서 일종의 군대 사령관이 됐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가비둘린에 따르면 초기에 바그너그룹은 그냥 '회사'로 불렸으며 크름(크림)부터 시리아, 리비아, 콩고까지 세계 전역에 용병을 제공했다 한다. 시리아에서 바그너는 현지 용병들을 훈련시키고 정권을 위한 특공대 역할을 했다. 리비아에선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반군 지도자를 위해 싸웠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서 바그너 '교관'들은 내전을 겪는 동안 정부를 지원했다.


 [바흐무트=AP/뉴시스] 러시아 용병 기업 바그너 그룹이 공개한 사진에 20일(현지시간) 예브게니 프리고진 수장이 우크라이나 바흐무트에서 러시아 국기를 들고 자신의 군대 앞에서 연설하고 있다. 프리고진은 러-우크라이나 전쟁 중 가장 길고도 치열한 전투 끝에 그의 군대가 바흐무트를 장악했다고 주장했으며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이를 부인했다. 프리고진은 텔레그램에 올린 영상에서 바흐무트가 토요일 정오 완전히 점령됐다고 밝혔다. 2023.05.21.

[바흐무트=AP/뉴시스] 러시아 용병 기업 바그너 그룹이 공개한 사진에 20일(현지시간) 예브게니 프리고진 수장이 우크라이나 바흐무트에서 러시아 국기를 들고 자신의 군대 앞에서 연설하고 있다. 프리고진은 러-우크라이나 전쟁 중 가장 길고도 치열한 전투 끝에 그의 군대가 바흐무트를 장악했다고 주장했으며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이를 부인했다. 프리고진은 텔레그램에 올린 영상에서 바흐무트가 토요일 정오 완전히 점령됐다고 밝혔다. 2023.05.21.


2014~2015년 우크라이나에 투입된 바그너 용병들은 '유령 군인'으로 불렸다. 군복을 입고 있지만 이름표나 계급장이 없던 탓이다. 우크라이나군이 통제하고 있는 지역을 습격해 사보타주 임무를 수행하고 '인질'을 잡았다. 그들의 임무는 경쟁 관계에 있는 분리주의자 단체들을 통합시켜 단일한 지휘 체계 하에 두는 것이었다. 이후 말썽을 일으킬 정도로 현명치 못한 분리주의자 지휘관들 몇몇이 바그너그룹의 사주로 숨졌다는 소문이 돌았다.


가비둘린은 회복한 후 프리고진의 개인 비서로 들어갔다. 덕분에 그는 바그너그룹의 활동을 지척에서 관찰할 수 있었다. 당시 언론 보도는 바그너그룹의 수입원이 그들 수중에 있는 시리아의 유정 및 정제소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가비둘린은 이를 부정한다. 시리아의 석유 산업은 "녹슬었고 붕괴된 상태"라는 것이다. 가비둘린이 알기로 바그너그룹은 어떤 수입도 없었고 프리고진은 한번도 세금을 낸 적이 없었다. 대신 크렘린이 요청하는 임무에 대한 대가로 러시아 정부가 자금을 제공했다.5


시리아에서 바그너의 활동이 극에 달했던 2017년, 가비둘린은 바그너가 사망한 용병의 유가족에게 지급한 연금 2500만달러를 포함, 1억7500만달러(약 2300억원)를 썼다고 계산한다. 프리고진은 전차, 장갑차, 로켓발사기, 소형화기 등을 구입할 수 있었다.


일각에선 프리고진을 크렘린이 창조한 괴물에 불과하다고 여기나 프리고진에게 어느 정도는 주도권을 갖고 행동할 자유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가비둘린에 따르면 2018년 2월 프리고진은 쿠르드 지배 지역의 유정을 점령하기 위해 병사를 보내는 결정을 '독자적'으로 내렸다. 프리고진은 해당 지역에 미국 특수부대가 활동 중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중대한 정보 실패였다. 바그너 용병이 진입하는 것을 본 미국 특수부대는 러시아 국방부 핫라인으로 연락해 자신들이 반격하더라도 제3차세계대전이 벌어질 일은 없을지 확인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해당 지역에 러시아쪽 인원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미국 특수부대는 바그너 용병에게 폭격을 가했고 가비둘린의 추산에 따르면 100명 이상이 숨졌다.


어떻게 이런 낭패가 발생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엇갈린다. 몇몇은 프리고진이 크렘린으로부터 습격 작전에 대한 허가를 받았지만 국방부가 그의 콧대를 꺾기 위해 바그너의 존재를 부인하기로 했다고 말한다. 가비둘린은 보다 간단한 설명이 있다고 한다. 핫라인 연락을 받은 러시아 장성은 이미 바그너에 대해 '간섭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은 상태였으며 단지 그 지시에 따를 뿐이었다는 게다.




2022년 2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략했다. 크렘린이 '특수 군사작전'이라 이른 침략 전쟁에 바그너그룹은 처음에는 역할이 없는 듯 보였다. 실제로 프리고진의 실전 경험을 가진 용병들의 부재는 전쟁 초반 너무나도 두드러져 그들이 없는 까닭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이 난무했다. 올리가르히 호도르코프스키에 따르면 푸틴은 사실 침략 직후 바그너그룹에게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암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한다. 호도르코프스키는 이제 반정부 인사가 돼 런던에 있는 자신의 근거지에서 푸틴 정권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다. 그에 따르면 안보 부문에 있는 프리고진의 라이벌들이 우크라이나에 암살 계획을 귀띔해줬으며 암살 작전은 너무나 굴욕적으로 실패해 프리고진이 푸틴의 신임을 잃었다고 한다. (호도르코프스키는 자신이 어떻게 이런 정보를 입수했는지에 대해서는 입을 열지 않았다.)


전쟁 초기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이었던간에, 우크라이나의 저항이 예상보다 거세자 바그너그룹 용병은 곧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바그너그룹의 역할이 확연해진 것은 2022년 9월, 트위터에 놀라운 영상이 올라오면서였다. 프리고진이 교도소에서 모병을 하는 모습이었다. 수백 명이 그를 둘러싼 가운데 프리고진은 말했다. "하느님과 알라께서도 자네들을 밖으로 보내주실 수 있을 걸세. 하지만 관짝에 들어간 채로 나가야겠지. 나는 자네들을 산 채로 밖으로 내보내 줄 수 있네.6" 그는 많은 수형자들이 거부하기 어려울 약속을 들이밀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다시 교도소에 돌아갈 일은 없을 걸세." 프리고진은 5분을 주고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일지 결정하라고 했다.


그전까지 프리고진은 자신과 바그너그룹 사이의 연관을 제기하는 기자들에게 소송을 걸었다. 이제 그는 공개적으로 바그너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하루가 멀다하고 프리고진은 SNS에 성명을 내거나 전방에서 완전 군장을 한 모습으로 영상을 올렸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바그너그룹의 새로운 본부 건물도 세웠다. 유리로 외벽을 두르고 입구에 키릴문자로 커다랗게 'PMC 바그너그룹'이라고 새겨놓았다. 만족할 줄을 모르고 시체를 요구하는 전장은 프리고진을 범접할 수 없는 존재로 만든 듯 했다. 그는 크렘린이 필요로 하는 세일즈맨이었다. (그는 또한 2016년 미국 대선에 개입하기 위해 대규모 댓글부대를 만든 것도 인정했다. 과거에는 줄곧 부인했던 의혹이다.)


그러나 프리고진은 바그너그룹에 들어가려는 죄수들에게 경고했다. "전장에 투입된 첫 날에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고 말하는 놈들은 탈영병으로 간주하고 사살한다." 바그너는 살인죄로 24년형을 받고 복역하다가 우크라이나에서 싸우는 조건으로 풀려난 예브게니 누진이란 수형자의 영상을 올렸다. 그는 탈영했다가 붙잡혔다. 영상에서 누진은 어두운 지하실에서 머리가 벽돌 벽에 테이프로 감긴 채로 묶여 있다. 이윽고 슬레지해머7가 그의 머리를 산산조각낸다. 바그너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처형 방식이다. 프리고진은 이 영상을 두고 "훌륭한 영화감독의 작품"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 바그너 부대를 방문해 슬레지해머를 선물했다. 해머에는 탈영병을 의미하는 '토깽이 살상용'이라고 새겨 있었다.


(바흐무트 로이터=뉴스1) 권진영 기자 = 우크라이나 바흐무트에서 러시아 바그너 용병단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가운데)이 용병 두명과 어깨동무를 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3.05.25/  ⓒ 로이터=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바흐무트 로이터=뉴스1) 권진영 기자 = 우크라이나 바흐무트에서 러시아 바그너 용병단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가운데)이 용병 두명과 어깨동무를 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3.05.25/ ⓒ 로이터=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영국 국방부에 따르면 한때 우크라이나에 바그너 용병이 5만명 가량 있었고 그 5분의4는 죄수 출신이라고 한다. 프리고진은 바그너에게만 영예를 돌리려고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2023년 1월, 그는 자신의 '뮤지션'들이 우크라이나 동부의 마을 솔레다르를 점령했다고 발표했다. "솔레다르 전투에 바그너 부대 외에 다른 부대는 참가하지 않았음을 강조하고 싶군요." (이는 사실이 아니다. 러시아군도 솔레다르에서 싸웠다.)


이후 그는 바흐무트를 향해 보다 동쪽으로 이동했다. 바그너 병력만으로 함락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러시아군 장성들은 바그너를 도울 준비가 안돼 있었다. 호도르코프스키에 따르면 쇼이구 국방장관과 발레리 게라시모프 참모총장 모두 바그너 병력을 총알받이쯤으로 여기고 있었다 한다. 진격하면서 지뢰밭을 처리하고 적의 사격을 유도해 위치를 파악할 수 있게 하는 게 목적이었다. 호도로프스키는 프리고진이 바그너 부대의 진격을 위해 포격 지원을 요구했으나(정규군 부대의 진격에선 일반적이다) 러시아 군부는 용병을 위해 보유량이 많지 않은 포탄을 사용할 의사가 없었다고 한다.


바흐무트는 쉽게 함락되지 않았다. 프리고진은 자신의 병사들이 관에 담겨 고향으로 보내지는 와중에 후방의 '게으름뱅이'들은 "금붙이를 뜯어먹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과거 프리고진을 영웅시하곤 했던 러시아 국영 TV채널들은 올해 그에게 거의 관심을 주지 않았다. 러시아 정계의 라이벌들이 우위를 점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전직 바그너 직원 가비둘린은 프리고진이 궁지에 몰렸을 때 가장 창조적이라고 한다. "그는 복잡한 사람이지 단순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를 머리 나쁜 범죄자 따위로 여기면 오산입니다… 매우 똑똑하고 매우 위험한 인물이에요."




5월 말, 프리고진은 바흐무트를 점령했다고 주장했다. 바그너 전사 2만명을 희생하면서 얻은 성과였다. 그는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쇼이구,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을 비롯한 '엘리트'들이 자기 자식들은 해외에 보내놓고8 평범한 러시아 국민들은 전선에 보내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카메라에 대고 침을 뱉을 기세였다. "이 개새끼들아, 네 새끼들부터 전쟁에 보내라."


이젠 프리고진의 정치적 야망에 대한 여러 가지 추측들이 모스크바 정가에서 난무한다. 그는 스스로를 쇼맨, 선동가, (조금 상스럽긴 하지만) 재담꾼으로 자리매김했다. 유럽의회가 바그너를 비판하자 프리고진은 자신의 '오케스트라'를 상징하는 바이올린 케이스를 의회에 보냈다. 그 안에는 붉은 페인트(아니면 피였을까?)가 묻은 슬레지해머가 들어있었다. 프리고진은 자신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거라고 말한다. 러시아가 아닌 우크라이나다.


가비둘린은 자신의 옛 보스가 러시아의 지도자가 되길 원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러시아 대통령은 모든 것에 책임을 져야 해요. 모든 실수, 모든 실패에도 책임져야 하죠." 그 대신 프리고진은 작년에 사망한 블라디미르 지리노프스키의 역할을 자임하고 싶을 거라는 게 가비둘린의 생각이다. 지리노프스키는 극렬 민족주의 성향의 정치가로 마치 정권의 허가를 받은 정부 비평가처럼 행동했다. "아주 편안한 자리죠. 문제들을 직접 해결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마음대로 말할 수 있잖아요… 자신의 지위를 갖고 돈도 벌고요."


(로스토프나도누 로이터=뉴스1) 이유진 기자 = 러시아 민간용병 바그너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24일(현지시각) 로스토프나도누 남부군 사령부를 떠나면서 시민과 웃으면서 악수하고 있다.   ⓒ 로이터=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로스토프나도누 로이터=뉴스1) 이유진 기자 = 러시아 민간용병 바그너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24일(현지시각) 로스토프나도누 남부군 사령부를 떠나면서 시민과 웃으면서 악수하고 있다. ⓒ 로이터=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러시아 정책을 담당했던 피오나 힐 또한 극우 성향의 비판론자가 나오는 게 푸틴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는 이론에 동의하는 편이다. 푸틴을 상대적으로 이성적으로 보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최근 러시아 매체에서 프리고진이 대통령이 될 가능성을 요란스레 떠드는 기사들을 낸 것도 이런 계산에서 나온 것이라는 게 힐의 생각이다. 이는 프리고진이 경솔하게 크렘린을 비판함에도 불구하고 왜 아무런 벌을 받지 않는지도 설명할 수 있다. 프리고진은 "호언장담의 달인"이고 지리노프스키가 하던 악역을 쉽게 이어받을 수 있다고 힐은 말한다.


힐은 푸틴과 프리고진의 관계에 대한 흥미로운 이론을 갖고 있다. 푸틴이 프리고진을 가까이 두는 까닭 중 하나는 푸틴이 갈구하는 거친 이미지를 프리고진을 통해 갖고 싶어서라는 것이다. 힐은 푸틴의 일생을 리서치하면서 푸틴의 터프가이 이미지를 만드는 모든 이야기들?어린 시절 레닌그라드의 아파트 단지 중정에서 툭하면 쌈박질을 벌였다는 이야기, 푸틴이 "위험에 대한 감각이 부족해" 종종 해를 입었다는 KGB의 인성 평가 기록?이 실은 모두 푸틴 자신이 만들어 낸 이야기가 아닐까 의심하게 됐다.


"종종 푸틴이 실제로는 얼마나 터프할까 궁금해요. 푸틴 바로 옆에 앉아봤는데 실제로는 그런 느낌을 내뿜고 있지 않았거든요… 몸집은 탄탄하지만 그렇다고 실제로 위협적으로 느껴지진 않아요." 어쩌면 프리고진도 자신의 보스가 보기보다 그렇게 강하지 않다고 의심하고 있는지 모른다. 힐은 그가 푸틴을 보며 이렇게 자문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내가 못할 게 뭐야?"



폴 우드는 현재 로마에서 활동하는 언론인으로, BBC 해외 특파원으로 25년간 일하며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리비아, 체첸, 다르푸르, 이스라엘, 시리아 등지에서 벌어진 전쟁을 취재했다. 시리아 내전 취재로 에미상과 피바디상을 수상했다.



2007년 창간된 이코노미스트의 자매지로 초기에는 음식, 와인, 여행 등 라이프스타일 기사가 주를 이뤘으나 2020년 온라인 전용으로 전환한 이후에는 정치, 사회 전반에 대한 롱리드 기사를 주로 발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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