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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N은 새로운 CEO 아래서 어떻게 침몰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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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Josh Hallett (Flickr, CC BY 2.0)

2023.07.21 12:46

The Atlan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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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과 영국의 대표적인 방송사들이 모두 곤욕을 치르고 있습니다. BBC는 계속되는 스캔들로 좌우파 양쪽으로부터 얻어맞고 있으며 CNN은 신임 CEO 크리스 릭트가 취임 1년만에 물러나는 파국을 맞았죠(현재도 대행 체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여기 소개하는 애틀랜틱의 6월 2일자 기사는 흔들리고 있던 릭트의 리더십에 결정타를 날렸습니다. 기사가 발행된 지 5일만에 CNN의 모기업 워너브라더스 디스커버리는 릭트의 사임을 발표했죠. 기자 팀 앨버타는 원고지 250매, 영어 원문으로 1만5000단어에 달하는 이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 1년 가까이 릭트를 밀착취재하고 100명이 넘는 CNN 관계자들을 인터뷰했습니다. 풍부한 취재와 유려한 스토리텔링이 돋보이는 이 기사는 비단 언론계 종사자 뿐만 아니라 글로벌 조직의 수장이 바뀌면 어떤 종류의 마찰이 발생하는지에 대해 관심이 있는 모든 분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합니다.


"우리가 트럼프를 어떻게 보도할 것인가에 대해 밤잠을 설쳐가며 고민하진 않아요." 크리스 릭트는 말했다. "아주 간단한 문제거든요."


2022년 가을, 보도를 전제로 릭트와 한 여러 인터뷰 중 첫 번째였다. CNN의 새로운 수장이 도널드 트럼프의 대선 재출마를 어떻게 다룰지 궁금했다. 릭트는 얼마 전까지 인기 심야 코미디 프로그램의 프로듀서였다. 그런데 세계적인 언론 매체의 운영을 맡은 지 몇 개월 밖에 되지 않은 그가 자신이 역사에 어떻게 남을지 좌우할지도 모를 질문에 대해 "간단한" 해결책이 있다는 거였다.


"언론 매체가 분명 과거의 경험에서 교훈을 얻었다고 생각해요."


내가 놀란 걸 감지하고 그는 빙긋 웃었다.



"정말이에요. 적어도 우리 회사에 있는 사람들은 트럼프가 자신들을 농락하고 있음을 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를 논의해 왔어요. 놀아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저항할 겁니다."




7개월 후, 나는 뉴햄프셔주 맨체스터에서 릭트와 마주쳤다. 그는 교통사고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듯한 표정이었다. 평소 당당하고 자신감 넘쳤던 얼굴은 창백했고, 어깨는 축 처져 있었다. 그는 불안한 눈빛으로 방안을 살폈다. 그러다 나를 발견하고는 경쾌한 목소리를 끄집어내 말했다. "뭐, 지루하진 않네요!"


우리는 세인트안셀름대학교 캠퍼스의 다나 센터 로비에 있었다. CNN월드와이드의 의장 겸 CEO인 51세의 릭트는 앞선 한 시간 반 동안 건물 뒷편에 있는 바퀴 달린 트레일러 컨트롤룸에서 트럼프가 출연하는 CNN 타운홀 프로그램을 지휘했다. 릭트는 이 프로그램이 가진 잠재적 위험을 알고 있었다. 지난 6년간 트럼프는 CNN을 모욕하고 위협하며, CNN과 언론인을 "가짜 뉴스"이자 "국민의 적"으로 지목했다. 이러한 발언은 살해 위협과 블랙리스트, 궁극적으로 트럼프와 CNN 경영진 사이의 관계 단절로 이어졌다.


그러나 그것은 구시대의 일이었다. 2022년 5월 CNN의 수장으로 취임하며 릭트는 공화당 지지자, 그리고 공화당 지도자와의 관계 재편을 약속했다. 직원들에겐 CNN이 제프 저커 전 대표 체제에서 길을 잃었고, 트럼프에 대한 적대적 접근은 냉철하고 사실에 기반한 보도를 갈망하는 많은 시청자를 소외시켰다고 했다. 이러한 주장으로 인해 릭트는 두 개의 전선(戰線)에서 싸우게 됐다. 하나는 CNN을 떠난 공화당원의 마음을 되찾기 위한 싸움이었고, 다른 하나는 릭트가 자신의 상사 데이비드 자슬라브1의 비위를 맞추고자 자신들을 희생양으로 삼는다고 생각하는 CNN 기자들의 마음을 되찾기 위한 싸움이었다. 데이비드 자슬라브는 CNN을 이념적 중도로 이끌겠다는 결정을 내세워 릭트를 고용했다.


취임 후 1년쯤 지난 시점에서 릭트는 두 전선 모두에서 패색을 보이고 있었다. 트럼프 퇴임 이후 하락세를 보이던 시청률은 최저 기록을 경신했다. 직원들의 사기는 더 떨어졌다. 회사 안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릭트는 뉴스 산업 전반을 부흥시키겠다는 포부로 이 자리를 수락했다. 그는 동료들에게 트럼프가 주류 언론을 망가뜨렸으며 자신의 목표는 오로지 "저널리즘을 구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릭트는 CNN 뉴스룸의 신뢰를 잃었다. 릭트가 황금 시간대에 트럼프를 CNN에 출연시키면 공화당 시청층을 확보함과 동시에 직원들에게 자신이 CNN과 미디어 전반에 대한 혁신적 비전을 갖고 있음을 증명해줄 기회라고 생각한 것은 이 때문이다.


트럼프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다.


트럼프는 맨체스터에서 70분 동안 계속해서 왜곡과 과장, 거짓말을 쏟아부으며 CNN 측 진행자 케이틀란 콜린스를 압도했다. 방청석을 메운 트럼프 지지자들은 그가 콜린스를 공격할 때마다 기뻐하며 악의적인 응원을 시끄럽게 펼쳤다. 언론 토론회 형식으로 시작됐던 행사는 첫 번째 유권자가 질문을 하기도 전에 WWE 프로레슬링 경기로 변해 버렸다. 빈스 맥마흔2이 와도 이보다 더 흥미진진한 연출은 못했으리라. 트럼프는 기득권층에게 미움을 받고 대중에게는 사랑받는 영웅적 투사로서 부당하게 빼앗긴 타이틀을 되찾으려는 프로레슬러였고, 콜린스는 선량한 주인공에 감히 의문을 제기하는 악랄한 엘리트 빌런을 맡은 듯 했다. "별로 좋은 사람이 아니군요." 트럼프는 첫 번째 광고가 나가는 휴식 시간에 무대 밖에 서 있던 콜린스를 가리키며 방청객에게 말했다.


트럼프는 자신의 행동을 두고 '이게 바로 릭트가 원했던 것'이라고 변명할 수 있었다. 거래로 유명했던 그는 CNN 경영진과의 협상 과정에서 '이 프로그램으로 CNN이 무엇을 얻겠느냐'고 자신의 보좌진에게 대놓고 물었다. CNN이 방청석을 공화당원으로 채우기로 하자, 트럼프는 릭트에겐 CNN의 침체된 시청률을 되살려줄 황금 시간대 볼거리가 간절하다는 점을 짚어냈다. 트럼프와 릭트는 무대 뒤에서 잠깐 대화를 나눈 게 전부였다. 릭트는 트럼프에게 "즐거운 시간 보내시라"고 말했고, 트럼프는 그 말대로 했다. 그는 프로그램에서 E 진 캐럴3을 비하하기도 했다. 이 방송 하루 전, 배심원단은 트럼프가 캐럴에 대한 성적 학대에 책임이 있다고 평결했다. 그는 방송에서 이미 허구임이 드러난 선거 사기4에 대한 주장을 거듭했고 자신이 다시 대통령이 되면 남부 국경에서 가족 분리 정책5을 다시 추진하겠다고 했다. 또한 콜린스를 "불쾌한 사람"이라고 부르며 모욕했고, 관중들은 이에 동의하며 야유를 보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콜린스는 광고가 끝난 후 트럼프와 함께 무대에 오르며 앞에 있는 거대한 빨간색 CNN 로고를 밟지 말아달라고 정중하게 요청했다. 트럼프는 로고를 밟을 듯한 제스처로 화답했고, 방청석에선 환호가 터져 나왔다.


릭트는 이런 상황을 원치 않았다. 물론 그는 20년 가까이 쇼 프로그램을 만들며 시청률에 목을 매왔던 사람이다. 하지만 5월 맨체스터로 향하던 릭트에겐 '단 하룻밤에 CNN의 시청률을 하위권에서 끌어올리겠다'는 것보다 더 큰 야망이 있었다. 그는 트럼프가 처음에 정치적 상승세를 탔던 까닭에는 보수적 견해와 공화당 유권자를 소외시킨 CNN의 관행도 있었다고 여겼다. 2024년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이를 바꿔야 했다. 릭트는 열성 MAGA6 지지자들을 촬영장에 부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타운홀 방송 며칠 전, 그는 방청객 구성이 '트럼프 마라탕 버전'이 될 것 같다는 CNN 예상에 대해 경영진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는 트럼프가 무섭지도 않았다. 릭트는 기자들에게 트럼프와 같은 깡패에 대처하는 방법은 사실을 가지고 맞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콜린스는 그 말대로 하려 했다. 하지만 당시 콜린스를 둘러 싼 환경은 그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협잡꾼과 일대일로 맞붙는 것도 어려운데, 무려 300대 1의 대결이었다. 방송은 트럼프 선거 캠페인 광고가 돼 버렸다. 포퓰리즘의 용사 트럼프가 자신의 오랜 숙적을 쓰러뜨리고 텔레비전에서 대통령직은 원래 자신의 것이라고 우긴 것이다.


"CNN은 이 프로그램을 트럼프 선거 캠프에 대한 현물 기부로 칠까요?" 오랜 관록의 방송인 댄 레더는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CNN을 향해 쏟아지던 비판과 비교하면, 레더의 평가는 그나마 부드러운 편이었다. "이거 어떻게 끝날지 알겠네요. 끔찍한 발상이었어요." 보수 성향의 작가 라메시 포누루는 방송 시작 9분만에 이런 트윗을 올렸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 민주당 하원의원은 트위터에 "CNN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썼다. 아담 킨징거 전 공화당 하원의원도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트윗을 올렸다. '불워크'의 찰리 사이크스는 트위터에 "크리스 릭트가 급격히 CNN의 일론 머스크가 되고 있다"는 트윗을 남겼다.


릭트가 나를 로비에서 마주치고는 그날 밤이 지루하지 않았다고 했을 때, 그가 얼마나 후폭풍을 확인했는지는 분명치 않았다. 하나 분명했던 건 상황이 매우, 몹시 나쁘다는 걸 릭트도 알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공화당원도 CNN에 분노했다. 민주당원도 CNN에 분노했다. 언론인도 CNN에 분노했다. 유일하게 분노하지 않은 사람은 트럼프였다. 아마도 그가 CNN 방송에 나와 CNN을 망신주는 데 성공했기 때문인 듯했다.


나는 릭트가 안타까웠다. '새로운 CNN'을 구축하겠다는 그와 작년 한 해동안 많은 대화를 나누며, 나는 종종 그의 저널리즘 원칙에 동의하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었다. 언론계 일각에선 평화로운 권력 이양을 훼방놓으려 했던 사람에게 멍석을 깔아줘서는 그 어떤 좋은 결과도 얻을 수 없다며, 애초 타운홀을 연 릭트를 맹렬히 비난했다. 릭트는 동의하지 않았다. 나 역시 그랬다. 트럼프는 가장 유력한 공화당 대선 후보였고 2년 후 백악관에 입성할 가능성이 높았다. 언론에겐 그를 면밀히 검증하고 인터뷰하고, 그래, 멍석도 깔아줄 의무가 있었다.


하지만 세인트안셀름 강당에 들어갔을 때, 주변을 둘러본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CNN이 예상했던 공화당원 및 공화당 성향의 무당파가 모인 광경이 아니었다. 방청객 대부분은 카페에 와서 정책 관련 질문을 하기 보다는 MAGA 슬로건이 담긴 깃발을 들고 집회에 참석할 것 같은 열혈 지지자, 사생팬, 정치 광신도였다. 이들은 선의로 열리는 시민 의식에 참여하기 위해 모인 게 아니었다. 언론에 대한 트럼프의 계속되는 공격을 축하하기 위해 그곳에 집결한 것이었다.


CNN에 대한 릭트의 이론?무엇이 잘못되었고, 어떻게 고쳐야 하며, 이것이 언론 산업 전반을 발전시킬 까닭?은 매우 타당했다. 이론의 실행은? 그건 다른 이야기였다. 프로그램 편성에 대한 커다란 결정부터 작은 전술적 움직임까지, 그의 행보는 모두 역효과를 낸 듯했다. 대부분의 지표에서 릭트가 이끄는 CNN은 역사적 하한가를 찍었다. CNN 직원 100여 명과 대화를 나누어 보니, CNN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릭트에겐 큰 승리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트럼프 타운홀은 바로 그런 승리가 될 것으로 여겨졌다. 반드시 그런 승리가 돼야 했다. 하지만 실행은 또 다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나를 강당 바깥쪽 복도로 데려가며, 릭트는 마음을 가라앉히려 했다. 나는 그가 CNN의 "사명"이라 말한 것을 놓고 많은 시간을 그와 함께 토론했었다. 나는 릭트에게 이번 타운홀이 그 사명을 조금이나마 진전시켰는지 물었다.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뭐라 말하기에는 아직은 너무 이르죠." 릭트가 대답했다.


(맨체스터 AFP=뉴스1) 정윤미 기자 = 10일(현지시간) 미국 뉴햄프셔주 맨체스터 소재 안젤름대에서 취재진들이 미 CNN방송이 주최한 타운홀미팅에서 출연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보고 있다. 2023.5.10  ⓒ AFP=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맨체스터 AFP=뉴스1) 정윤미 기자 = 10일(현지시간) 미국 뉴햄프셔주 맨체스터 소재 안젤름대에서 취재진들이 미 CNN방송이 주최한 타운홀미팅에서 출연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보고 있다. 2023.5.10 ⓒ AFP=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작년 가을 그와 조찬을 함께하며 첫 번째 인터뷰를 했을 때 릭트는 데이비드 자슬라브가 자신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릭트의 출발은 더뎠다. 당연히 그럴 만도 했다. 존경받는 인물이었지만 동료와 잠자리를 가졌다는 이유로 사임한 제프 저커 전 사장 사건으로 CNN은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게다가 CNN의 스타 앵커 크리스 쿠오모가 해고된 일도 있었다. 쿠오모는 정치인 형의 추문 대응을 조언7하며 윤리 기준을 위반했을 뿐만 아니라 미투 문제도 있었다. (저커는 이 기사에 대한 코멘트를 거절했고, 쿠오모는 성 추행 혐의를 부인했다.) 한편 릭트 부임에 앞서 AT&T가 워너미디어를 분사한 후 디스커버리사와 합병해 워너브라더스 디스커버리를 탄생시킨 것은 예상보다 더 큰 혼란을 낳았다. 불안정한 재무제표와 인플레이션 위기로 인해 워너브라더스 디스커버리는 출범 몇 달 만에 주가가 절반으로 떨어졌다. 릭트가 CNN에 합류하기 며칠 전, 모기업은 미래로 각광받던 스트리밍 플랫폼 CNN+의 중단을 발표했다.


워너브라더스 디스커버리와 CNN 기자들의 관계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기업 인수가 발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2021년 11월, 워너브라더스 디스커버리 이사회의 새 대주주가 된 우파 억만장자 존 말론은 CNN이 폭스뉴스 기자들에게 몇 가지 배울 게 있다고 말했다. "저는 CNN이 초창기의 저널리즘으로, 독특하고 신선한 진짜 기자를 보유한 언론으로 돌아가는 걸 보고 싶습니다." 말론이 CNBC에 한 말이다. 워너브라더스 디스커버리의 CEO인 자슬라브는 저커가 해고되고 릭트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CNN 내부 후보자 중 누구도 인터뷰하지 않아 긴장을 더욱 악화시켰다. 자슬라브는 여러 사람들에게 공화당 정치인들이 더 이상 CNN에 출연하지 않겠다고 자신에게 말해 CNN의 저널리즘 관행을 바꿀 외부 인사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다녔다. 이는 CNN 직원들을 더 큰 우려로 몰아 넣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NN 구성원들은 '모닝 조8'(Morning Joe)와 '더 레이트 쇼 위드 스티븐 콜베어9'(The Late Show With Stephen Colbert)를 통해 젊은 천재 프로듀서라는 명성을 얻은 릭트의 합류에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상황은 순식간에 나빠졌다. 부임 몇 주 후, 릭트는 프로듀서들에게 1월 6일 위원회의 첫 번째 청문회 비중을 축소해 다루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MSNBC는 이 청문회를 프라임타임 특집으로 다뤄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했고, 이로 인해 CNN 직원들은 분노했다. 릭트는 청문회 다음 날 편집국 고위 직원 몇명에게 유감을 표했다. 하지만 이는 이후 벌어질 사건의 전조에 불과했다. 말론과 자슬라브의 저의를 의심하던 CNN 기자들은 이제 릭트도 경계하기 시작했다. 신임 CEO가 CNN의 과거 문제를 공개적으로 꼬집자(이는 때로 트럼프의 CNN 공격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경계심은 분노로 변했다. CNN의 스타 방송인들이 하나둘 릭트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신임 CEO의 밀월 기간이 속절 없이 끝났다는 소문이 업계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릭트가 우리의 10월 조찬 인터뷰 이틀 전, 이메일로 300명 이상의 해고 계획을 발표하자 CNN은 혼돈에 빠졌다.


릭트는 아이스 커피를 마시며 내부의 정보 유출과 외부 언론의 집중 포화, 그가 CNN을 폭스뉴스의 아류작으로 만들려 한다는 칼럼과 소문 등을 일축했다. "누가 저에 대해 뭐라 하는 걸 일일이 따지기에는 제가 지금 하는 일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이 일은 정말 사명을 가지고 하는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화도 나고 좌절스럽기도 하지만 그런 게 저에게 영향 같은 걸 미치는 건 아니에요. 이해되시나요?"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의 말을 해석해준 것은 매트 도닉이었다. 그는 CNN의 커뮤니케이션 담당 수석 부사장 자격으로, 그리고 릭트의 몇 안 되는 측근 중 핵심으로서 동석했다. 도닉은 릭트를 분노케 하는 것은 그에 대한 가혹한 보도가 아니라 CNN 기자들에 대한 악의적 보도라고 말했다. 도닉은 쿠오모의 해고로 공석이 된 오후 9시 시간대에 파일럿 편성된 제이크 태퍼 방송의 저조한 시청률을 다룬 최근 보도를 거론했다. 릭트는 손가락으로 도닉을 가리켰다.


"저를 미치게 만드는 건 말이죠, 그 기사가 우리의 임무를 저버리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릭트가 말했다.


나는 릭트에게 그 임무에 대해 최대한 분명하게 설명해 달라고 요청했다.


"저널리즘. 신뢰받는 것. 누구나 자신만의 의도가 있고 그에 따라 사건이나 생각에 영향을 미치려 하죠. 절대적 진실의 원천이 있어야 해요. 세상에는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어요. 진짜 쓰레기도 많습니다. 사람들이 보고 '쟤네들은 진실 외에는 다른 의도가 없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있어야 해요."


저널리즘은 릭트에겐 첫사랑과 같다. 코네티컷 주 의사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생 때 지하실에서 가상 뉴스를 진행했다. 시러큐스 대학에서 방송을 전공한 후 로스앤젤레스로 갔고, 그곳에서 우연히 OJ 심슨 재판을 취재한 뒤 뉴스 제작에 푹 빠졌다. 소년 같은 금발 머리와 넘치는 자신감을 가진 릭트는 이후 점점 더 큰 직무를 맡은 후 동부로 돌아왔다.


한때 플로리다주 하원의원이었다가 방송인으로 변신한 조 스카버러와의 인연은 릭트에게 가장 커다란 기회가 됐다. 릭트는 정치와 문화에 관해 날카로운 견해를 가진 보수 전문가들이 출연해 황금 시간대에서 큰 성공을 거둔 MSNBC의 '스카버러 컨트리'(Scarborough Country)에 이어 '모닝 조'의 총괄 프로듀서로 두각을 나타냈다. 장벽을 뛰어넘어(사람을 뛰어넘기도 했다) 훌륭한 TV를 만들어낸다는 명성은 그 때 생겼다. 모닝 조 작가였던 마이크 바니클은 릭트를 '캡틴 인텐스(강렬한 캡틴)'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 강렬함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릭트는 서른여덟 살 때 뇌출혈로 쓰러졌다. 이후 자신의 삶과 일을 보는 관점이 바뀌었다. 몇 년 후 릭트는 MSNBC를 떠나 CBS로 가 아침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그러다 뉴스 업계를 완전히 떠나 '더 레이트 쇼'의 총괄책임자로 합류하며 스티븐 콜베어와 손을 잡았다.


릭트는 콜베어와 최상급의 계약을 맺었다. 더 많은 보수, 더 적은 골칫거리, 더 나은 근무 시간 등. 그는 내게 단 한 가지 직업만이 그 삶을 떠나 저널리즘의 길로 돌아가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제안이 들어왔다. 워너미디어와 디스커버리의 합병이 완료되기 훨씬 전부터 비공식적으로 릭트에게 러브콜을 보내왔던 자슬라브가 2022년 초 새로운 CNN을 이끌어 달라고 요청했던 것이다.


릭트는 제안을 수락해야 한다는 것을 "즉시" 깨달았다고 했다. 그렇다고 앞으로 닥쳐올 난관을 몰랐던 건 아니었다. 그의 아내 제니 블랑코는 CNN에서 프로듀서로 일한 적이 있었다. 그는 CNN의 스타 앵커들도 몇 명 알고 있었다. 콜베어와 스카버러 둘 다 그에게 그 일을 맡지 말라고 했다. 릭트는 그들의 우려를 이해했다. 그는 지난 5년간 CNN이 양극화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나는 릭트에게 콜베어 쇼를 제작하던 당시, 시청자이자 노련한 저널리스트 입장에서 CNN을 어떻게 생각했었냐고 물었다. 그는 단어를 찾느라 머뭇거렸다.


"분간이 어렵다는 생각을 했어요. '트럼프가 얼마나 시청자를 우롱하고 있는지'와 '사실은 시청자를 우롱하는 게…'" 그가 말을 끊었다.


릭트는 트럼프가 대통령으로서 "정말 거지 같은 짓거리"을 했는데, 기자들이 더 선정적인 기사에 집착하느라 간혹 이를 놓치곤 했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언론인의 분노를 유도해 저널리즘을 '분노 포르노'가 되게끔 자극했고, 이로 인해 시청자들은 저널리즘을 외면하게 됐다. "(나쁜 점을 평가하는) 척도가 10점 만점인데 모든 걸 11점이라고 보도하게 되면, 정말로 끔찍한 일이 일어났을 때 그것에 무감각해집니다. 그게 전략이었죠. 제가 보기엔 언론이 그 전략에 넘어간 것 같았어요."


릭트는 트럼프 행정부 초기 어떤 기자가 백악관과의 불화로 출입을 거부당한 일을 떠올렸다. 이후 시러큐스대 뉴하우스 저널리즘스쿨에서 이사회 회의에 참석했는데 당시 한 참석자가 수정헌법 1조10 모독을 비판하는 전면 광고를 뉴욕타임스에 게재하자고 제안했다. "저는 이렇게 말했죠. '여러분,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야 합니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훨씬 더 나빠질 겁니다.'" 릭트가 말했다.


"그런 임무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말을 끊었다.


"그를 추적하는 게 임무였죠." 그는 다시 말을 멈췄다.


"그가 옳든 그르든 말이죠. 나는 그가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절대 아니죠." 릭트가 트럼프에 대해 말했다. "하지만 우리의 임무는 이런 거죠… 어떤 것은 (10점 만점에서) 11점이겠지만 어떤 건 2점이기도 하고 때론 0점이기도 합니다. 증오스러운 사람이 한 일이라고 모든 걸 11점으로 평가할 수는 없어요."


나는 그의 관점?트럼프가 미끼를 던져 기자들을 해설자나 심판이 아닌,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뛰어든 상대팀 선수가 되도록 만들었다는?에 동의하면서도 또 다른 관점도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가 국가의 자치기구를 말살하려 함으로써 많은 언론인들이 그간 해왔던 것보다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하게 '강요'했다는 것이다. 이는 민주당 정책을 옹호하는 게 아니라, 민주주의 원리를 지지하느냐의 문제였다. 그러나 이 두 가지가 섞이며 매우 큰 문제가 발생했고, 많은 언론이 '어떻게 하는 게 트럼프를 제대로 보도하는 것인가'라는 난제에 지속적으로 시달렸다.


릭트는 이것이 난제라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만약 뭔가가 거짓이라면 나는 그게 거짓이라고 하죠. 내가 다루고 있는 게 뭔지 이제 알고 있으니까요. 저는 트럼프가 게임의 규칙을 바꿨다고 생각해요. 미디어는 방심한 사이에 당했고 여기에 대처하겠다고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뛰어든 셈이죠. 적어도 제가 속한 조직은 다시 유니폼을 입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인줄 아세요? 효과가 없었기 때문이죠.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뛰어든다 해서 아무도 마음을 바꾸지 않았잖아요."


신임 CNN 대표는 내부 구성원들에게 모든 견해에 도전하고 열린 대화를 촉진한, 강인하면서 정중하고 탐구적인 보도의 모델로 태퍼가 진행한 4시 프로그램 '더 리드'(The Lead)를 꼽았다.


그러면서도 릭트는 이러한 접근에서 몇 가지 예외를 강조했다. 그는 허위 정보를 퍼뜨리는 말성꾼에겐 방송 시간을 내주지 않으려 했다. 그의 CNN은 비를 좋아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비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초대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비가 오는데도 비가 온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CNN에 초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는 작은 선언이 아니었다. 의회 내 공화당원의 절반 이상이 거짓말에 근거해 애리조나와 펜실베이니아의 선거인단을 저버리는 데 투표했다. 반면 선거를 부정하지 않는 많은 공화당원들도 CNN 출연을 원치 않았다. 릭트는 임기 초 의회로 가서 공화당 지도부를 만나 CNN에 공정한 변화를 만들어 내겠다고 약속했다.


이를 릭트는 외교적 방문이라 했지만, 릭트에게 회의적인 이들은 이를 사과 방문으로 묘사했다. 엘리트 언론계에는 신임 CNN 대표가 음흉하고 무자비한 로저 에일스11 워너비라는 이야기가 퍼졌다. 처음에는 릭트도 이를 즐겼다. 하지만 곧 웃음을 잃었다. 그는 자신의 서브스택에 CNN 비판 글을 쓴 로버트 라이시에게 전화를 걸어 질책했다. 민주당 전략가인 커트 바델라가 자신을 폄하하는 내용으로 LA타임즈에 쓴 칼럼을 두고는 친구들에게 그를 "박살내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릭트는 눈 앞의 상황이 진보의 이상에 대한 언론의 검증을 두려워한 진보의 조직적 공격이라 생각하며 분노했다.


"특정 사회 계층이 세계적인 저널리즘 조직에 대해 무제한적인 발언권을 갖고 있어요. 조직이 그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는 작은 기미만 있어도, 파시스트가 조직을 운영하고 그 파시스트가 조직을 우익으로 몰아가려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죠… 모두가 동의하는 주장도 옳지 않을 수 있다는 의견에 발언 기회를 주려 한다고 해서, 제가 폭스뉴스 시청자를 빼앗으려는 우익 파시스트가 되는 건 아닙니다."


릭트는 파시스트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폭스뉴스와 MSNBC에서 시청자를 빼앗아 오려 했다. 릭트는 CNN이 성공하려면 훌륭한 저널리즘 그 이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공격적이고 초당파적인 방식으로 뉴스를 보도하는 것이 시청자를 되찾으려는 노력의 핵심이 될 것이다. 하지만 텔레비전은 본질적으로 엔터테인먼트다. 릭트는 시청자가 위기 상황에서는 언제나 CNN을 시청할 거라고 말했다. 그가 알아내야 할 것은 얼마나 많은 시청자가 즐거움을 위해 CNN을 보겠는가였다.




릭트는 얼굴을 찌푸리고 팔짱을 낀 채 짜증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돈에게 모든 뉴스에 대해 시시콜콜 코멘트하는 게 가장 큰 실수라고 말할 겁니다." 특정한 누구에게 하는 말이 아니면서도 모두에게 하는 말이었다. "'오, 끔찍한 일이로군요.' 이런 말 좀 하지마세요. 우리도 끔찍하다는 걸 알아요. 뭔가 구체적인 통찰이 있거나 추가할 게 있으면 말해주세요. 하지만 모든 염병할 이야기에 일일이 코멘트하지는 마세요."


릭트는 후드티에 헤드셋을 착용한 스무 명 가량이 모니터를 조작 중인 어두운 컨트롤룸B의 1열과 2열 사이에 의자를 끼워 넣었다. 모두가 긴장한 표정이었다. 2022년 대선을 96시간 앞둔 이날은 릭트가 방송사 수장으로서 처음 선보이는 대형 프로그램 'CNN 디스 모닝'(CNN This Morning)이 시작하는 날이었다. 그런데 방송은 끔찍해 보였다.


"더 많은 움직임이 필요합니다. 움직임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그는 첫 번째 줄 중앙에 앉은 새 프로그램의 총괄 프로듀서 에릭 홀에게 말했다. "제가 가장 싫어하는 게 뭐죠?"


홀과 재커리 슬레이터라는 젊은 프로듀서가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박스요."


릭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시트콤 '브래디 번치12'를 연상시키는 뉴스 화면을 가리키며 "박스"라고 말했다. "미칠듯이 움직이는 걸 바라는 건 아니지만 움직임이 있어야 해요. 사람을 제대로 볼 수 있어야지요."


좋은 TV 프로그램을 만드는 건 최상의 조건에서도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당시 상황은 최상이 아니었다. CNN에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키고 싶었던 릭트는 자신이 잘 아는 아침 시간대부터 시작했고, 팀원들에게 선거일에 맞춰 프로그램을 준비시켰다. 리허설은 급박하게 진행됐다. 공동 진행자인 돈 레몬과 포피 할로우, 케이틀린 콜린스는 함께 연습한 시간이 적었던 터라 호흡을 맞추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콜린스는 이날 조지아에서 리포팅을 하고 있었다.) 릭트는 CNN 라인업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이 트리오를 짜고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는 자기주장이 강하고 남부 출신인 흑인 동성애자인 레몬과 직설적인 여성 뉴스 리포터의 조합이 시청자들에게 "재미"를 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릭트가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음을 감지했다.


리허설 쉬는 시간, 방 안은 한숨으로 가득찼다. 릭트는 의자에 등을 기대고 휴대폰을 꺼내 정리해고를 단행하면서 CNN 다큐멘터리 부서를 아예 없애기로 한 자신의 결정을 다룬 '버라이어티' 기사를 읽었다. 그가 몇 가지 문구를 거론한 후 기사에 대해 말하려던 찰나, 방송이 다시 시작됐다. 카메라는 레몬을 비췄다. 그는 털이 달린 칼라가 있는 흰색 재킷으로 옷을 갈아입었는데 안에는 터틀넥을 입고 있었다.


"대체 뭘 처입은 거야?" 라이트가 말했다. 긴장 섞인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카메라는 천천히 줌아웃을 시작해 방청객들을 보여준 다음, 세트 중앙의 유리 테이블 주변을 돌았다. "좋아요. 마음에 들어요." 릭트가 홀에게 말했다. "속도만 조금 늦춰 안정적으로 보여주세요."


잠시 후, 젊은 프로듀서가 레몬의 이어폰에 대고 말했다. "돈, 음… 여기 사람들이 재킷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네요." 레몬은 발끈한 듯했다. 릭트는 웃으며 되받았다. "왜 그렇게 돈에게 못되게 굴어요?"


그러나 릭트의 농담은 통하지 않았다. 분명 릭트도 레몬?그의 의상, 애드리브, 의견?에 대해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이 모든 게 놀랄 만한 일은 아니었다. 레몬은 언론계에서 가장 극단적인 인물로 손꼽히는, 부인할 수 없는 재능과 절제되지 않은 본능을 가진 사람이었다. CNN 내부에선 릭트가 늘 중도로 가야한다고 주문처럼 외던 걸 고려했을 때 그가 신규 아침 프로그램의 사활을 CNN 내 최고 선동가에게 건 것을 의아하게 여겼다. 어떤 사람들은 릭트가 자슬라브의 명령으로 레몬을 밤 10시 시간대에서 하차시킨 것이라 생각했다(릭트는 이를 부인했다). 미디어 담당 기자 브라이언 스텔터와 백악관 특파원 존 하우드를 비롯해 '임무에 부합하지 않는' 직원들을 이미 해고한 릭트가 레몬이 백인 위주의 CNN 내 몇 안되는 흑인만 아니었다면 레몬도 해고했으리라 생각한 사람들도 있다. 사실이 무엇이든, 이제 두 사람의 운명은 서로 얽히게 됐다.


휴식을 마치고 다시 방송이 시작됐다. 재킷을 벗은 레몬이 거대한 디스플레이 앞에 섰다. 중앙에는 '불편한 진실'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릭트는 홀에게 이게 무슨 코너인지 물었다. 홀은 과거 카니예 웨스트라고 불렸던 래퍼 예(Ye)가 오랫동안 혐오 발언을 해왔지만 미국 기업은 그를 버리지 않았었는데 반유대주의적 발언 이후 아디다스 같은 기업들이 그를 버렸다고 대답했다. 이를 배경으로 레몬은 이런 질문을 던질 예정이었다. '노예제 등 여러 주제에 대한 불쾌한 발언에도 예와 함께했던 스폰서들이 왜 이제 와서 반유대주의를 문제삼아 그를 버렸나?'


릭트는 회의적인 표정을 지었다. "이걸 어느 시점에 넣을 계획이죠?" 그가 물었다.


"아마도 쇼의 후반부일 거에요." 홀이 답했다.


"아침 7시 40분 출근길에 이걸 이해할 여유가 있을 것 같아요?" 릭트가 물었다.


바로 그때 코너가 시작됐다. 그런데 레몬이 바로 오프닝 멘트를 망쳤다. 격앙된 홀은 짜증을 쏟아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릭트는 얼굴을 찡그렸다. "빌어먹을. 프롬프터를 읽으라고." 그가 말했다.


"풀샷... 왼쪽으로 이동... 뒤로 빠지고…"라며 속삭이듯 홀에게 지시를 내리던 릭트는 CBS에서 함께 일했고 그 방에 있는 그 누구보다 릭트를 잘 아는 경영진, 라이언 캐드로를 쳐다봤다. 캐드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너무 길어요." 그가 말했다.


"너무 길지. 그리고 이건 빌어먹을 아침 시간대라고." 릭트가 독백을 쏟아내는 레몬 옆, 고문당하는 노예의 강렬한 이미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건 아침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라고요."


리허설이 끝나고 세트장으로 들어간 릭트는 앵커 자리에 있던 레몬을 구석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몇 가지는 효과적이었지만 예(Ye)를 다룬 코너는 그렇지 못했다고 솔직하게 피드백을 했다. 그는 레몬이 코멘트를 줄이길 원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레몬?그리고 다른 출연자들?이 아침 시간대에 맞게 가벼운 분위기를 이어가길 바랐다. 레몬의 표정에서 망설임이 묻어났다. "아침에 설교를 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사람들이 책임감을 느끼게 하고 싶어요." 그가 말했다. 릭트는 이해한다며 고개를 끄덕인 뒤, 같은 말을 반복했다. 예(Ye)를 다룬 아이디어가 핵심을 벗어났다는 것이었다.


릭트가 나간 후 나는 레몬과 할로우,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담당 임원인 도닉과 함께 자리에 앉았다. 앞선 대화로 약간의 긴장이 감도는 것을 느낀 나는 레몬에게 뉴스에 대한 접근법이 릭트와 일치하는지 물었다. 특히 나는 릭트와 나눴던 '분노 포르노' 대화를 언급했다. 레몬은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


"어떤 사람들은 이걸 '분노 포르노'라고 규정하려 하겠죠. 하지만 지난 몇 년 동안 분노해야 할 일이 많았습니다." 그가 말했다. "5, 6년 동안 하루에도 몇 번씩 터무니없는 트윗이나 성명서, 행동이 있었습니다. 그게 우리를 분노하게 했죠… 우리가 했던 일은 민주주의를 위한 싸움이었습니다. 우리는 '가짜'라고 공격받는 것들을 바르게 기록하기 위해 싸웠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보다 공격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게 됐을지도 모르지만 그게 '분노 포르노'라는 뜻은 아닙니다."


할로우는 스트레이트 뉴스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상황을 다소 다르게 보았다. 하지만 레몬은 그렇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CNN에서 일어난 일을 두고 뒷북치며 말을 얹고 있죠. 당시 우리가 처했던 상황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매일 트럼프 행정부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었어요. 이건 과장이 아니라… 바로 이 방송국에 폭탄이 배송됐다니까요."


실제로 폭탄이 발견되었을 당시, 할로우는 생방송 중이었다. 그녀는 거리로 대피해야 했고 그곳에서 방송을 계속했다. CNN 모두에게 충격적인 시련이었던 이 사건을 레몬이 지적한 것이다. 그는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동안 줄곧 위협에 시달렸다. 위협적인 인물들이 거리에서 그를 따라다는 일도 있었고, 24시간 경호를 받기도 했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여성과 소수자, 공무원과 일반 시민에 대한 계속되는 폭언은 어떠했는가? 모든 게 충격이었다. 그 상황에서 그는 분노하지 않은 척해야 했을까?


도닉이 끼어들었다. "크리스가 그런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요?" 그는 잠시 멈칫했다.


"이건 당신과 크리스가 대립하는 문제가 아니에요." 도닉은 말을 이었다. "그의 관점은 이런 것 같아요… 정상적인 행정부였다면 이 사태는 (10점 만점에) 11점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성에 대한 터무니없는 발언을 11점으로 평가하면 그가 실제로 완전히 미친 짓을 하고 민주주의를 훼손했을 때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중재자 역할을 맡은 할로우는 레몬에게 이 지적이 타당한 것 같다고 말했다. 얼마 전 그녀는 자기 아이들에게 양치기 소년 이야기를 들려줬다고 했다. 그녀는 트럼프가 규범을 파괴하는 것도 걱정했지만, 자신과 같은 직업을 가진 일부 사람들이 보여주는 자각 부족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레몬은 그 말에 이의를 제기할 준비가 된 듯했다. 하지만, 어쩌면 할로우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화를 하면서 나는 레몬과 할로우의 끈끈한 유대를 엿볼 수 있었다. 할로우는 자신의 남편이 레몬과 파트너가 되는 경우에만 기자직을 버리고 진행자 역할을 맡으라 조언했다고 말했다. 레몬은 할로우가 아닌 다른 사람과는 함께 아침 프로그램을 맡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이 조합에서 콜린스가 어디에 들어맞을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이제 갓 30대인 콜린스는 몇 년 만에 '데일리 콜러'(The Daily Caller)의 엔터테인먼트 담당 기자에서 CNN 백악관 특파원으로 성장했다. 그녀는 뛰어난 취재 능력과 풍부한 취재원을 갖고 있었다. CNN의 모든 사람들은 콜린스가 향후 수십 년간 CNN의 대명사가 될 차세대 스타이자 브랜드의 미래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왜 그의 소중한 기자 역할 대신 두 명의 공동 앵커와 함께 책상에 앉게 된 것일까?


아무도 그 이유를 몰랐다. 릭트는 호흡과 캐릭터, 역동적 개성과 지리적 다양성을 이야기했다. (레몬은 루이지애나 출신, 할로우는 미네소타 출신, 콜린스는 앨러배마 출신으로, 이들은 릭트가 원했던 잊혀진 미국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이는 그냥 이론에 불과했다. 사실은 릭트도 이게 먹힐지 알지 못했다. 그가 알고 있었던 것은 CNN의 시청률이 점점 더 하락한다는 것과 무기력한 네트워크를 깨울 수 있는 대담한 움직임이 없다면 불만은 점점 더 커지리라는 것이었다. 릭트는 조 스카버러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기억했다. "돈을 잃는 게 두려우면 절대 이기지 못한다."


릭트는 도박을 할 준비가 돼 있었다. 그는 레몬에게 주도권을 주고, 할로우가 안정감을 맡고, 콜린스가 서둘러 적응하기를 바랐다. 릭트는 스카버러가 자신의 자아를 절제하는 법을 익히면서 포용력 있고 매력적이며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가는 것을 지켜보며, 매우 유익한 경험을 얻었다. 그는 레몬도 그렇게 하기를 바랐다.


"여기서 제가 선배격인 거 같네요." 레몬이 우리에게 말했다. 그는 대놓고 이런 말을 하는 게 현명하지 않다는 것을 즉시 감지했다. "네, 네." 할로우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를 많이 도와 주세요." 레몬이 그의 손을 잡았다. "그럴게요.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할 생각은 없어요."


그녀는 정중하게 미소지었다. "이 프로그램에 그런 건 없어요."




오전 6시 7분, 릭트의 콧잔등에 땀이 맺혀 있었다.


그는 허드슨강에서 두 블록 떨어진 헬스장에서 머신으로 팔과 다리 운동을 하고 있었다. 물방울 무늬 파자마 바지에 녹색 옥스퍼드 셔츠, 복숭아색 비니를 쓴 전직 복서 조 메이소넷이 팔짱을 낀 채로 서서 그에게 소리쳤다. "제가 그만하라고 했나요? 그만하라고 한 적 없는데요!"


3년 전 릭트의 체중은 226파운드(103kg)였다. 생활 방식에 대한 자제력을 잃고 있다는 걱정에 그는 큰 결심을 했다. 아침을 더 이상 먹지 않았다. 주중에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탄수화물이나 단 것도 먹지 않았다. (어느 날 내가 식사를 거르는 이유를 묻자 릭트는 "나는 염병할 기계예요"라고 말했다.) 또한 뉴욕의 엘리트들?배우와 운동선수, 사업가?이 주로 찾는 체육관 'J트레인'을 운영하는 메이소넷을 찾았다. 2023년 3월 아침 기준, CNN 대표의 몸무게는 178파운드(81kg)까지 줄었다.


릭트가 머신에서 내려왔다. 메이소넷의 지시에 따라 그는 쪼그려 앉아 바닥에 놓인 긴 금속 막대를 잡았다. "저커는 이 짓거리 못할 걸요." 이를 악물고 힘겹게 막대를 들어올리며 릭트가 말했다.


CNN 역사상 가장 높은 시청률과 수익성을 기록한 스타 CEO 제프 저커의 그늘 아래서 일하는 게 결코 쉬울리 없었다. 하지만 릭트는 이를 필요 이상으로 어렵게 만들었다. 취임 후 그는 가장 먼저 17층의 핵심 스튜디오와 컨트롤룸 바로 옆에 있던 저커의 옛 사무실을 회의실로 바꿨다. 그런 다음 그는 22층으로 가서 직원들이 찾기 힘든 외딴 곳에 집무실을 마련했다. 이 곳은 릭트와 직원들의 관계를 상징하는 공간이 됐다. 그는 모든 면에서 분리되어 있고 냉담했으며 접근이 불가능한 사람이었다.


저커와 비교대상이 되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릭트는 그런 비교를 싫어했다. 전임 상사는 직원들에게 별명을 지어주고 아이들의 생일을 기억하는 등 사교적이고 따뜻했던 반면, 릭트는 인간 관계를 피하는 무뚝뚝한 사람으로 비춰졌다. 워싱턴DC 직원들을 위한 휴일 저녁 만찬에서 릭트는 '카페 밀라노'의 프라이빗룸을 돌아다니며 기자들과 악수를 나누고 짧은 대화를 나눈 뒤, 이내 자리에 앉아 저녁 식사 내내 휴대폰만 들여다보았다. 릭트는 모두의 예상대로 좌중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옆에 앉은 사람과도 거의 교류하지 않았다. 상황이 너무 어색해지자 참석자들은 혹시 국제부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은 아닌지 서로에게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러다 참석자 중 몇몇이 릭트의 휴대폰을 봤는데 당시 릭트는 13이 자신에 대해 비판적으로 쓴 기사를 읽고 있었다.


언론의 부정적 보도가 잇따르고, 릭트는 자신의 주장과 달리 거기에 휘말리고 있었다. 특히 조직 내부에서 흘러나간 이야기가 릭트를 분노케 했다. 릭트는 많은 이들이 전임 CEO에 대한 충성을 유지하고 있고, 일부 경영진과 앵커, 기자들이 저커와 정기적으로 대화를 나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도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이런 대화가 CNN의 리더십을 면밀히 분석한 기사에 실린다는 것을 알게 됐다. 릭트는 지인들에게 저커?릭트는 과거 CNN 브랜드의 손상에 대해 매일 비판하면서 그의 업적을 깎아내리고 있었다?가 자신에 대한 공격적인 기사를 쓰게 함으로써 보복하는 게 틀림없다고 말했다. 특히 릭트는 뉴스레터를 통해 그를 여러 차례 공격했던 CNN 전 직원이자 현재 퍽의 기자인 딜런 바이어스를 이용해 저커가 사내 반란의 이야기를 퍼뜨리고 있다고 확신했다.


릭트와 저커는 NBC유니버설에서 함께 일한 적이 있던 터라 서로를 잘 알고 있었다. 몇 년 전 워너미디어와 디스커버리의 합병 가능성에 대한 소문이 한창일 때, 릭트는 햄프턴에서 초대받은 소수만 참석 가능한 데이비드 자슬라브의 연례 노동절 파티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이를 두고 저커는 친구들에게 이상하긴 해도 위협적이진 않다고 말했었다. 사실 릭트는 이런 VIP 행사에 참석하는 유형은 아니었다. 합병이 불가피해 보이기 시작하던 2021년 가을, 저커는 자슬라브의 전화를 받았다. 자슬라브는 저커에게 CNN 내 그의 위치는 안전하다는 확신의 말을 했다. 그런 다음 그는 릭트에 대한 저커의 의견을 물었다. 훗날 저커는 친구들에게 그 순간이 결정적이었다고 회상했다. 몇 달 후 저커는 물러났고 릭트가 들어왔다. 그때부터 두 사람의 냉전이 이어졌다. 평화를 중재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2022년 8월, CNN의 탑클래스 방송인 몇몇을 대리하는 에이전트인 제이 수어스가 저커의 별장에서 두 사람의 만남을 주선했다. 화기애애한 만남이었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이미 의심의 골이 깊었다. 두 사람은 이후 경쟁하듯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폭로하기 시작했다.


저커에 대한 릭트의 비판이 자기위주이긴 했지만, 릭트에겐 전임자를 경계해야 할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 시절에 CNN은 훌륭한 보도를 내놓기도 했지만, 여러 차례 자사는 물론 업계 전체를 당혹스럽게 했다. 제프리 로드와 코리 르완도스키 같은 사람들을 해설가로 고용한 것(특히 르완도스키는 트럼프 캠프에서 여전히 돈을 받고 있던 상황에서 방송에 출연했다)은 저널리즘 측면에서 합당한 명분이 없는 행위였다. 또한 코로나19 상황에서 정부 당국을 지속적으로 찬양하고 휴교 및 기타 제한 조치에 대해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조롱하는 논조는 시청자들에게 해로웠다. 저커와 CNN의 유명 방송인들의 과도한 친분은 책임성의 결여로 이어졌고, 결국에는 사고가 발생했다. 크리스 쿠오모는 윤리적 규범을 박살내고 반복적으로 경영진에게 거짓말을 했다. 짐 아코스타는 트럼프 행정부 시절 백악관을 출입하며 질문과 취재원을 활용한 보도 대신, 강연과 비꼬는 논평으로 자기 자신을 기삿거리로 만들었다. (아코스타가 공보관에게 마이크를 넘겨주기를 거부하고 계속 서서 동료 기자의 질문을 방해한 바이럴 영상은 저커 시대의 말기를 상징하는 장면이 됐다.) 릭트는 느슨한 규칙과 해이한 기준의 조직 문화를 물려받았다. 릭트는 (정당하게) 저커를 탓했다.


그러나 릭트는 자신의 가장 큰 문제가 된 인물에 대해선 저커를 탓할 수 없었다. 바로 돈 레몬이었다.


내가 아침 헬스장에서 릭트를 취재하기 몇 주 전인 2월 중순 무렵이었다. 레몬이 51세의 니키 헤일리 전 UN미국대표부 대사를 두고 "전성기가 지났다"라고 말해 소셜 미디어를 뜨겁게 달구고 공동 진행자인 할로우와 콜린스를 분노하게 한 일이 벌어졌다. 레몬은 "여성은 20대, 30대, 어쩌면 40대까지만 전성기를 누린다"고 설명했다. 이는 그가 저지른 일련의 말썽 중 가장 최근의 사건일 뿐이었다. 몇 달 동안 레몬은 섣부른 의견으로 컨트롤룸을 민망하게 만들었고, 모든 코너에서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며 할로우와 콜린스를 자극했다. 릭트가 명시적으로 경고했던 불필요한 논평을 넣어 그를 화나게 만들기도 했다. 12월의 어느 날이었다. 콜린스가 뉴스 리포팅 도중 레몬의 말을 끊었다. 레몬은 손가락을 들어 "잠깐만요"라며 콜린스를 저지한 뒤,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방송이 끝난 후 제작진 앞에서 콜린스를 질책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회복되지 않았다. 레몬이 '전성기' 발언을 했을 때 릭트는 자신의 아침 프로그램이 망가질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음을 알게 됐다.


레몬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할 방법은 없었다. 고위 경영진은 릭트에게 그를 해고하라고 요구했다. 릭트는 이것이 헤일리 사건에 대한 대응으로 비춰질 수는 있지만 혹독한 선례를 남길까봐 걱정했다. 레몬은 여성 혐오에 대한 황금시간대 특집을 여성들과 함께 진행하는 수습책을 제안했고, 릭트는 이를 거부했다. 그러자 릭트와 가까운 한 직원이 내게 레몬이 자신이 해고되면 알 샤프턴, 벤 크럼프 등의 다른 흑인 지도자들이 자신을 지지하기 위해 집결해 CNN의 백인 위주 성향을 힐난하리라는 이야기를 하고 다닌다고 말했다. (레몬의 대변인은 이를 부인하며, 릭트의 직원들이 릭트의 실패에 대한 주의를 다른 데 돌리기 위해 소문을 퍼뜨리고 있고 비난했다.)


이 모든 부담 때문에 릭트에겐 J트레인에서 하는 운동이 절실했다. 릭트는 메이소넷을 "상담치료사"이자 "코치", "1인 포커스그룹14"이라고 불렀다. 그는 릭트가 신뢰하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였다. 이 체육관은 릭트의 안식처였고, 그 누구도 이곳에서 그를 방해할 수 없었다. 자슬라브는 예외였다. 릭트는 자슬라브가 새벽 6시 30분에 전화하는 것을 좋아해 트레이너를 짜증나게 만든다고 말했다. 가끔은 자슬라브가 웨스트코스트에 있을 때도 그런 새벽 전화가 왔는데 그럼 자슬라브는 새벽 3시 30분에 전화를 건다는 뜻이다. 이 이야기를 하는 릭트 얼굴이 고통스럽다는 듯 일그러졌다.


사이드 플랭크 자세를 취한 릭트는 메이소넷에 대해 "존나 진보적"이라며 CNN에 대한 자신의 계획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메이소넷은 릭트의 어깨 쪽으로 발을 밀어 넣었다. "난 이제 레이첼 매도15 팬이에요." 그가 말했다.


릭트가 곁눈질을 했다. 메이소넷은 계속 그를 자극했다. "그건 그렇고, 얼마 전 제이미 래스킨이 MSNBC에 나온 거 봤나요?" 그는 민주당 메릴랜드주 하원의원을 언급하며 권투 선수처럼 발을 끌기 시작했다. "당신네 공화당 애들을 땅에 발라버리던데요!"


"내 애들이 아니라고요." 끙 하는 소리와 함께 릭트의 자세가 무너졌다.


메이소넷은 릭트에게 반대편으로 몸을 뒤집으라고 손짓했다. 그리고 갑자기 진지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그의 비전 중에서 마음에 드는 점이 뭐냐면요, 그는 우리가 다시 대화를 할 수 있게끔 만드려고 해요. 무엇에 대해서건 토론하는 건 가능하지만 우리가 서로 대화하지 않는다면 불가능하죠."


나는 그에게 좀 더 자세히 말해달라고 했다. 메이소넷은 지난 몇 년 동안 일어난 조지 플로이드 살해 사건, 코로나19 확산, 조 바이든의 당선, 국회의사당 점거 폭동 등에 대해 릭트와 수많은 대화를 나눴다고 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미국에서 가장 난해하고 분열적인 문제를 놓고 국가적 대화를 촉진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릭트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어쩌면 릭트는 공화당원의 CNN 복귀를 홍보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쓴 나머지, 대화의 장을 홍보하는 데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 부분에 대해 사람들은 잘 모르는데, 바로 그 부분이 CNN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반쯤 선 채 무릎에 손을 얹은 릭트는 이게 바로 자신이 모닝 쇼에서 하려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메이소넷은 듣지 않는 척하며 릭트에게 방 건너편에서 웨이트판을 올린 커다란 슬레드를 가져오라고 했다. 1분 후, 릭트가 한 걸음마다 으르렁대며 거대한 슬레드를 밀고 방을 가로지르는 동안 메이소넷은 최근 스포츠계 소식을 언급했다. 세 명의 스타플레이어를 중심으로 팀을 구축했던 브루클린 네츠가 마지막 선수를 트레이드하며 한때 유망했던 실험을 비극으로 끝냈다는 뉴스였다.


"그 뛰어난 선수들이 다 모였지만 케미스트리가 없었죠." 메이소넷이 말했다.


/사진제공=Josh Hallett (Flickr, CC BY 2.0)

/사진제공=Josh Hallett (Flickr, CC BY 2.0)




스튜디오에 모인 직원들은 CNN 최고의 오디오 저널리스트인 오디 코니시가 상사가 대답하고 싶어하지 않은 질문을 상사에게 던지는 것을 지켜봤다.


봄에 열린 이 사내 타운홀은 릭트가 우려를 잠재우고 조직을 결집해 새로운 CNN에 대한 계획을 발표하는 게 목적이었다. 검은색 의자에 앉은 수십 명의 직원들과 전 세계 각지에서 지켜보는 수천 명의 직원들에게 릭트는 지금이 바로 기회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인들이 특정 정당에 편향되지 않고, 사실에 입각한 권위 있는 보도를 하며, '국가적 대화'를 촉진할 수 있는 방송에 목말라 있다고 주장했다. CNN이 그 모든 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릭트는 먼저 서로가 협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몇 년간 CNN 브랜드가 타격을 입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의 에디토리얼 전략을 중심으로 단결된 '원팀'이 되어야 했다.


하지만 CNN 뉴스룸에 적어도 3개의 파벌이 생기면서 통합을 요원해졌다. 일부 기자들은 릭트의 접근법이 거짓된 공정성(false equivalency)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하며 릭트를 강력하게 반대했다. 다른 기자들은 미온적이었는데, 방향 전환에는 열려 있었지만 최근 몇 년간 자신들이 해온 일에 대한 릭트의 부정확한 비난에 혼란을 느꼈다. 심지어 릭트의 방향에 적극 동참하던 사람들?CNN에 대한 릭트의 이론적 목표에 찬사를 보냈던?조차도 구체적인 내용이 부족하다는 사실에 당혹했다. 10개월 전 CNN 입성 당시만 해도 그는 큰 화제였다. 하지만 그 이후?특히 국회의사당 점거 폭동에 대한 첫 번째 청문회 보도에서 CNN이 실패한 이후?에는 거의 눈에 띄지 않게 됐다. 프로듀서와 진행자들은 프로그램에 릭트의 모호한 코멘트를 나름대로 해석해 프로그램을 재구성했다. 릭트가 22층으로 옮긴 것도 심각한 문제가 됐다. CNN 직원들은 사장이 어디 있는지 궁금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확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했다. 황금시간인 오후 9시 시간대는 아직도 고정 진행자를 찾지 못했다. 릭트의 핵심 기획?레몬과 모닝 쇼?은 업계의 웃음거리가 됐다.


나와 대화를 나눈 모든 직원들은 같은 질문을 여러 방식으로 반복했다. '릭트는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아요?'


코니시는 이날 타운홀에서 이를 파헤치기로 결심한 듯했다. 다소 불편한 분위기에서 진행된 Q&A 세션에서 그녀는 사내 "문화와 사기(士氣)", 릭트의 계획에 대한 혼란, 릭트의 프로그램에 적응하지 못한 일부 직원과 관련된 "어려운 결정" 등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릭트에게 질문했다. 릭트의 표정과 목소리에선 침착함을 잃은 듯한 느낌이 났다. 코니시는 최근 폭스뉴스를 공격하지 말라고 지침을 내린 것과 공화당원들에게 방송에 출연해달라 구애한 것을 강조하면서, 릭트에게 CNN이 의도적으로 우파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는 인식에 대해 물었다.


릭트는 '썩은 미소'를 짓지 않으려 애썼다. 그는 지금까지 폭스뉴스에 대한 CNN의 보도는 교과서적이었다며, 도미니언 보팅 시스템즈 소송에서 드러난 충격적인 사실?폭스가 고의로 시청자를 오도했다는?을 제시하고 시청자가 CNN의 주요 라이벌인 MSNBC이 하는 히스테릭한 분석을 피할 수 있게 해주었다고 말했다. 릭트는 공화당에게 발언권을 주는 것에 대해선 이렇게 답했다. "우리가 우리 나라를 이해하려면 이것이 정말로 중요하다 생각해요. 저는 정말로 공화당원들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공화당원들이 CNN에 출연하면 인터뷰는 빡세겠지만 그래도 존중을 받을 수 있으리라 여기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코니시는 저널리즘에 대한 기계적 중립의 강조로 CNN이 악의적 행위자들을 조장하고 있다는 내부의 "두려움"을 강조한 후, 릭트에게 CNN의 평판에 대해 물었다. 다른 많은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릭트가 사용하는 '브랜드'라는 모호한 단어의 의미를 알고 싶어 했다.


"직설적으로 말해서 과거에는 우리의 보도 톤이 저널리즘의 가치를 떨어뜨릴 때가 가끔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를 없애고 신뢰를 되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릭트는 말했다. "신뢰는 두려움이나 호의 없이 진실을 접할 수 있다는 데서 나옵니다. 우리에 대한 신뢰가 현저히 약화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이터가?"


코니시가 그의 말을 끊었다. "취지와 톤 때문에요?"


"네." 릭트가 말했다.


몇 분 후 복도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릭트는 내게 아까 타운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가 날카로워 보였다고 말했다. 짜증나는 질문 앞에서 외교적인 태도를 유지하려고 애쓰는 듯 보였다고.


"네. 어느 순간에는 '우리는 버즈피드가 되려는 게 아니에요. 아시겠어요?'라고 말하고 싶더라고요." 릭트가 말했다. "하지만 도움이 되진 않았겠죠."


아마 그랬을 것이다. 회의실에 자리를 잡고?비서가 점심으로 스위트그린 샐러드를 주문해줬다?나는 릭트에게 조직에 퍼진 불안감을 이해하는지 물었다.


"어디서든 불확실성이 있으면 불안이 생긴다고 봐요. 이들은 언론인이라 말만 갖고는 불안을 완화할 수 없어요. 보여줘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의 모든 목적은 이런 거였죠. '봐요, 계획이 있습니다. 이게 우리가 할 일입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참여하게 될 겁니다. 이게 목적의식이고 이게 전략입니다.'"


그는 제프 저커의 축출을 촉발한 크리스 쿠오모의 해고 사건 이후 회사가 계속 흔들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불확실성과 불안이 '뉴 노멀'이 되는 건 누구도 바라지 않겠죠. 그런데 어느 정도는 그렇게 됐습니다."


릭트는 CNN에 대한 이러한 불안의 대부분은 자신의 비전이 시청자를 다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할지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고, 적어도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릭트는 누가 CNN의 낮은 시청률을 언급할 때마다 눈에 띄게 언짢아 했다. 하지만 그는 내게 데이비드 자슬라브는 다른 지표에 더 신경을 쓴다고 강조했다. CNN에서 성공은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측정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회사의 평판 자산을 보는 것이죠. 수익 성장 동력에 대한 평가가 아닙니다." 릭트는 말했다.


나는 그에게 상장된 거대 영리 기업의 맥락에서 "평판 자산"을 정의해 달라고 했다.


"워너브라더스 디스커버리에게 CNN은 '평판 자산'이죠." 릭트는 해당 단어를 강조하며 말했다. "제 상사는 강력한 CNN이 세계에도 도움이 되고 투자에도 중요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예전만큼의 수익이 나지 않는다고 해도 그렇다는 걸까?


"전 그렇게 들었어요." 릭트가 답했다.

이 때 릭트의 감정은 특히 뉴스 제작자 경험에서 나오는 아주 정직한 것처럼 느껴졌다. 자슬라브의 세계관이 무엇이든, CNN을 중도로 이끄는 것은 비즈니스적인 결정이었다. 자슬라브는 릭트를 통해 미디어가 파편화된 시대에 CNN의 호소력을 넓혀 지쳐있는 대다수 뉴스 소비자에게 다가가는 것이 득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덤으로 미국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자슬라브가 여전히 이 방식이 실현 가능하다고 믿는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워너브라더스 디스커버리가 CNN을 계속 유지할 것인지에 대해선 처음부터 세간의 의구심이 있었다. 업계에선 자슬라브가 CNN을 안정화하고 비용을 절감하여 수익 감소를 막은 다음, 이를 되팔아 이익을 얻을 계획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어쨌든 CNN의 사업 상태는 불안의 원인 중 하나에 불과했다. 나는 릭트에게?내가 직원들과 나눴던 대화와 그날 코니시가 던진 질문을 바탕으로?CNN의 저널리즘 정신 자체에 대한 불안감이 훨씬 더 큰 것 같다고 말했다. 릭트가 코니시에게 공화당원들을 향해 "거들먹거리는 어조"를 취하는 것에 대해 경고했을 때, 일부 기자들은 그가 CNN을 이용해 국가의 민주적 제도를 불안정하게 만드려는 미친 우익들을 소중히 다뤄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들었을 것이다.


릭트는 짜증이 난 듯했다. "우리는 활동가 매체가 아니에요. 활동가 매체에서 일하고 싶으면 다른 곳으로 가야죠. 갖가지 대의를 위해 운영되는 활동가 매체가 많습니다. 우리가 제공하는 건 그것과 다릅니다. 그리고 세상에 난리가 나면 그런 대의를 위한 활동을 할 시간이 없을 겁니다. 편견 없는 진실의 창구가 필요하죠."


나는 그에게 나를 포함한 일부 언론인들은 진실 그 자체가 대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 누구도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가 진실을 회피한다고 하진 않아요." 그가 답했다.


"절대적 진실을 믿습니까?" 내가 물었다.


"이상한 질문이네요." 그가 이마를 찡그리며 말했다.


그렇게 이상한 질문은 아니었다. 그는 나와 진행한 이전 인터뷰에서 이 표현을 사용한 적이 있지만, 현대 미디어의 맥락에서 이 표현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절대적 진실. 흠…." 그는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마침내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또 그 비유를 해야겠군요, 그렇죠? 어떤 사람은 비를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비를 싫어하죠. 그렇지만 비가 오는데 비가 안 온다고 말할 수는 없죠."


그렇게 간단했다면 좋았으리라. 몇 주 전, 뉴욕타임스가 공개적인 갈등에 휩싸인 일이 있었다. 몇몇 필자와 직원들이 뉴욕타임스의 트랜스젠더 커뮤니티에 대한 보도가 "편향적"이라고 비난하는 서한에 서명 것이다. 다수의 저명한 뉴욕타임스 기자들이 서명한 또 다른 서한은 언론의 정당한 탐사보도에 재갈을 물리려는 시도를 규탄했다. 나는 릭트에게 양측 모두 자신들이 진실을 대변하고 있다고 여겼다고 말했다.


그는 테이블에 몸을 기댔다. "신념은 다를 수 있지만 진실은 하나 뿐이에요. 그리고 사람들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질문을 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악마화되거나 낙인찍히지 않고 어려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능력을 완전히 잃어버렸어요. 질문하고 어려운 대화를 나누는 것은 문제될 일이 아닙니다. 마음속으로 무언가를 강하게 믿을 수는 있지만 그게 진실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고요."


릭트는 특정 실수에 대해서는 직원들에게 관용을 베풀겠지만, 논란이 되는 주제에 대한 보도를 축소시키려는 노력에는 관용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저커가 코로나19의 '실험실 유출설'이 아시아계 미국인을 위험에 빠뜨리는 외국인 혐오적인 계략이라고 우려해 이 주제에 대한 토론을 방송에서 사실상 금지했다고 말했다. 릭트는 이는 팬데믹 초기에 미국 보건총감이 시민들에게 마스크 착용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마스크 착용이 실제로 도움이 안되기 때문이 아니라 정부가 응급 구조대원에게 필요한 마스크 부족을 막으려 했기 때문이었다.


"진실을 말했을 때 일어날 일을 우려해서 우리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은 거죠." 릭트는 말했다.


그리고는 의자에 등을 기댔다. "네, 저는 절대적 진리를 믿습니다."




그날 오후 뉴욕에서 워싱턴으로 가는 급행열차에서 릭트는 미디어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이어나갔다. 그는 특히 코로나19에 대해 계속 이야기했다. 릭트는 트럼프 대통령 임기 때와 마찬가지로 팬데믹이 CNN과 미국의 심각한 단절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CNN도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이 미친 상황을 이해하게 도와주는 믿을 만한 채널이었습니다. 그러다 '이야, 계속 시청률을 올려야겠다, 계속 긴장감을 줘야겠네'라는 상황에 이르렀던 것 같아요."


그는 우리 사이에 놓인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열광적으로 방송하는 흉내를 냈다. "코로나, 코로나, 코로나! 확진자 숫자를 봐요! 이것 좀 봐요! 이것 좀 보라고요!" 릭트가 말했다. "맥락이 없습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일종의 망신주기16(shaming)죠. 그리고 사람들은 밖으로 걸어 나가면서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이건 내 삶이 아니다. 내 현실이 아니야. 당신들은 그저 시청률이 필요하고 클릭이 필요해서 이런 말을 하는 거야. 난 당신들을 믿지 않아.'"


그들이 틀렸던 것일까?


"틀리지 않았죠." 릭트가 말했다.


워너브라더스 디스커버리 이사회의 명령을 따르는 걸로 널리 알려진 사람치고는 릭트는 자신만의 확고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는 CNN을 자슬라브의 변덕에 맞추라는 압력을 받고 있었다. 릭트는 고위 직원들에게 회사 차원의 편집권 개입으로부터 직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릭트도 그가 미화된 심부름꾼이라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었다. 그 이야기에는 일말의 진실이 담겨 있었기 때문인지, 그는 대화 내내 자신만의 뚜렷한 세계관을 내비치기로 결심한 듯 보였다.


릭트는 자신의 언론관이 이데올로기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이 힐난하는 것은 보도의 진보 성향 그 자체가 아니라 엘리트에 편향된 문화적 감수성이라고 했다. 부유한 도시 거주 언론인들이 자기네 공동체 구성원을 소외시킬 수 있는 난감한 진실을 회피하는 보도 관행이 문제라는 것이다. 트랜스젠더 문제에 대한 보도, 특히 사춘기 전 호르몬 치료와 삶을 뒤바꾸는 수술17의 과학에 대한 문제로 돌아왔을 때, 그는 언론이 답을 찾는 것보단 같은편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는 걸 더 신경쓰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감히 질문을 던졌다는 이유로 입막음을 당하지 않고 어려운 문제에 대해 질문할 수 있어야 해요. 거기에 진실이 있고, 그 진실이 어느 편에는 도움이 안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진실에 도달해야죠. 어떤 건 옳고 어떤 건 틀릴 겁니다. 또 어떤 건 틀리고 어떤 건 옳겠죠."


그가 잠시 말을 멈췄다. "덧붙이자면, 바로 여기서 언어가 중요합니다. '출산이 가능한 가능한 사람18' 같은 표현을 쓰면 어떤 사람들은 즉각 관심을 놓게 됩니다. 사람들은 당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되고 당신은 신뢰를 잃는 거죠. 미덕 과시19를 하지 말고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 어느 한편을 위해 팩트를 수집하는 게 아니라 진실을 얻기 위한 질문을 해야 하고요. 어려운 문제를 던지고요. 매우 민감하고 의견이 엇갈리는 문제라도 팩트에 입각해 접근하면 나라 전체가 동의할 수 있는 교집합이 나옵니다."


릭트는 언론의 맹점은 언론 자체의 다양성 부족에서 오는 것이지, 언론이 집착하는 다양성 부족에서 오는 게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신앙심이 깊은 기자, 저소득층에게 정부가 지원하는 식료품 할인 쿠폰을 사용할 정도로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기자, 총기를 소지한 기자를 채용하고 싶다고 했다. 릭트는 최근 한 컨퍼런스에서 CNN의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DEA) 담당 직원과 언쟁을 벌인 일을 떠올렸다. "저는 '흑인, 중남미계, 아시아계 여성이 모두 같은 해에 하버드를 졸업하는 건 다양성이 아니다'라고 말했죠."


잠시 후?이 일화를 공유하면 어떻게 곤경에 처할 수 있을지를 깨닫고 다음에 무슨 말을 할지 고민하다가?릭트가 덧붙였다. "뉴스룸에 임대주택에서 사는 기자들이 많았다면 '경찰 예산을 끊어라20' 운동에 대한 논조가 달랐을 겁니다." 나는 이유를 물었다. "그들은 경찰에 대한 각자의 필요를 바탕으로 경찰과 다른 관계를 맺고 있으니까요."


릭트는 비서를 흘끗 쳐다보았다. "이제 큰일 났네요."


나는 그가 언론계 대화 매너의 경계를 넘나드는 걸 즐기며 곤경을 자처하는 건 아닐까 궁금했다. 취재를 해보니 릭트는 주변에 사람이 많지 않았고 그마저도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는 건 분명했다. 그는 주변의 몇몇 사람들을 신뢰하지 못하는 게 분명했다?저커에게 충성하거나 자신을 깎아내리기 위해 정보를 흘리는 사람, 또는 둘 다. 그 불신은 불길한 예감을 불러일으켰지만 동시에 어떤 해방감도 줬다. 그를 인터뷰할 때마다 늘 CNN 직원들이 동석하긴 했지만 우리가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면서 릭트는 마치 이를 심리치료처럼 느끼기 시작했다. 불만을 토로하고 두려움을 인정하며 찾기 힘든 돌파구를 찾는 안전한 공간과 같았던 것이다.


나는 그의 과거 직장 동료들로부터 '모닝 조' 초창기의 릭트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당시 NBC의 경영진은 그의 신생 프로그램을 장난처럼 취급했고 릭트는 홀로 세상과 싸우는 모양새로 잔뜩 웅크려 NBC를 후회하게 만들어주겠다고 다짐했다 한다. 지금 릭트가 하고 있는 게 그때와 꼭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다른 점이 있었다. 릭트는 더 이상 오합지졸 반란군 연합을 대표하지 않았다. 그는 CNN 월드와이드의 대표 겸 CEO였다. 그가 바로 제국이었다.


델라웨어주 윌밍턴을 지날 때쯤, 나는 릭트에게 CNN 내부에 그의 실패를 바라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다.


"확신해요." 고개를 끄덕이는 그의 표정에서 다음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게 역력했다. 그는 안전한 방법을 택했다. "하지만 분명 조직에서 아주 작은 부분, 아주 작은 집단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그 생각에 많은 시간을 쓰진 않아요."


이윽고 그의 목소리가 바뀌었다. 갑자기 생기가 돌았다. "하지만 제가 실패하기를 바라는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네요. 이 자리에 누구를 앉히고 싶습니까? 기자를 원하십니까? 모기업과 전화 한 통으로 '이봐, 이게 뭐야'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하나요? 일을 해본 사람을 원하시나요? 누가 일을 많이 해본 사람인가요? 내가 요구하는 일을 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은 누구죠? 우리의 미래가 훌륭한 저널리즘을 실행하는 데 있다고 믿는 사람인가요? 제 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제가 실패하길 원한다면 대체 뭘 원하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릭트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래서 저는 그것에 대해 신경을 잘 안 써요." 그 말을 반복했다.


그가 '스타일'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책임회피처럼 보였다. 나는 릭트에게 직원들과 대화해보니, 크게 세 가지 불만을 갖고 있더라고 말했다. 첫 번째는 그가 보도에서 어떤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나 어떻게 다르게 했으면 좋았을지를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고?나와 한 인터뷰에서도 그랬다?과거의 CNN을 집요하게 공격한다는 것이었다. 릭트는 이에 대해 특정 기자를 지목하고 싶지 않았으며, 특히 "그 기자가 그런 행동에 대해 전 상사에게 보상받았을 때는 더욱 그렇다"고 설명했다.


릭트는 특정 개인의 경우 자신이 직접 나쁜 행동을 해결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릭트는 짐 아코스타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고, 이렇게 말했다. "저와 저녁 식사를 같이 했던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옛날 방식으로, 잘못된 톤을 갖고 있다고 여겨지는 인물이었죠. 사람들은 그가 저와는 맞지 않는다고 지레짐작했어요. 저는 그 사람과 저녁을 먹으면서 '이를 전장의 안개라고 봐도 될까요? 전쟁 중에는 때때로 우리 본연의 모습과 다른 행동을 하기도 하잖아요'라고 말했죠. 그러자 그는 '물론 그렇게 가정해도 됩니다. 저한테 어떤 걸 원하세요?'라고 말하더군요. 그 후론 우리 사이에 어떤 문제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릭트에 대한 직원들의 두 번째 불만, 그의 접근 방식이 일관성이 없어 보인다는 점으로 넘어갔다. 브라이언 스텔터는 해고됐지만 아코스타는 살아남았다. 존 하우드는 "브랜드"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쫓겨났지만, 돈 레몬은 새로운 대규모 계약과 함께 릭트의 아침 쇼 앵커로 승격되었다. 동료를 무시하고 방송에서 터무니없는 발언을 한 후에도?당분간은?레몬이 계속 일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를 친구로 여겼던 CNN 직원들조차 당황했다.


행동과 브랜딩은 차치하더라도, 레몬의 프로그램은 성과가 좋지 않았다. 그게 바로 직원들의 세 번째 불만이었다. 릭트는 뛰어난 프로듀서라고 하지 않았나? 텔레비전 천재 아니었나? 어떻게 그가 방송에 내보낸 콘텐츠 시청률들이 그렇게 저조할까? 나는 그의 트레이너, 조 메이소넷이 브루클린 네츠에 대해 한 말을 상기시켰다. 큰 이름값과 큰 자아가 팀의 케미스트리를 망쳐서 경영진이 그들을 트레이드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다. 나는 릭트에게 모닝 쇼를 시작한 지 4개월이 지난 지금, 그 시기에 가까워지고 있는지 물었다.

"아직 모르는 일이죠." 그가 대답했다.


나는 다시 릭트에게 돌이켜볼 때 다르게 했으면 좋았으리라 생각하는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그렇다고?"100%"?라고 대답했지만 더 이상 말하기를 꺼리는 듯했다. 내가 더 묻자 릭트는 자신의 가장 큰 실수는 저커가 무엇을 잘했는지를 비롯, 현장을 배우기보다는 자신이 책임자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나는 제프와는 훨씬 다른 리더가 될 거야"라고 소리치며 현장에 뛰어든 것이라고 말했다.


"저는 구체제와 새로운 체제의 차이점을 분명히 하려고 했어요. 얼마나 달라질 것인지 거창하게 선언하는 대신 천천히 들어왔어야 했는데 말이죠."


그 거창한 선언 때문에 릭트는 많은 직원들과 멀어졌다. 그는 이제 그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는 모든 것을 되돌릴 시간이 있다고 자부했다. 그의 임무는 잰걸음을 내고 있었다. 커다란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는 곧 전 세계가 새로운 CNN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크리스는 의심할 여지 없이 CNN을 위한 최적의 선택이었습니다." 교수가 학생들 앞에 앉은 남성을 가리키며 말했다. "오늘날 미국에서 신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저는 크리스가 성공하기를 기도해요. 그가 10년 동안 자리를 지켰으면 좋겠어요. 10년 미만으로는 지구상에서 가장 중요한 뉴스 조직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올 기회를 얻지 못할 테니까요. 저는 그가 성공할 것이라고 믿으며, 성공하지 못한다면 이 나라에 대한 엄청난 우려를 갖게 될 겁니다."


그는 릭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교수의 눈은 촉촉히 젖어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감정이 복받쳐 다소 메어 있었다. "내 희망과 꿈이 당신에게 담겨 있습니다." 그가 말했다.


정말 인상적인 소개였다. 특히 이 소개를 한 사람이 프랭크 런츠였다는 점을 상기하면 더욱 그렇다.


여론조사 및 포커스그룹 전문가인 런츠는 조직적으로 CNN의 권위를 실추시키려 시도했던 공화당의 메시지 전문가로 30년간 활동해왔다. 이에 대해 런츠는 특별히 후회하지 않았다. 비록 도널드 트럼프에게 예속된 공화당을 탈당했지만, 그는 여전히 언론이 그 어떤 정치인 못지않게 국가에 많은 피해를 입혔다고 믿고 있기에 릭트가 CNN의 수장으로 임명된 것에 대해 매우 기뻐했다. 둘은 10여 년 전 '모닝 조' 시절 처음 만났다. 그 이후 런츠는 릭트가 유권자에게 필요한, 스마트하고 공정하며 세심한 토론의 틀을 짜는 데 능하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저커가 퇴사한 후 런츠는 (릭트가 이미 차기 CEO직 제안을 받고 수락했다는 걸 모른 채) 로비 모드로 전환해 릭트에게 그 자리를 노려볼 것을 애청하기도 했다.


런츠는 워싱턴DC의 자기 아파트에 반원형으로 둘러앉은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학생들에게 릭트가 공정한 평가를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가 취임한 지 불과 몇 주 만에 비난이 쇄도했기 때문이다.


"며칠!" 릭트가 그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런츠는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릭트는 괜찮다고 말했다. 그의 상사 데이비드 자슬라브는 몇 달이 아니라 몇 년의 관점에서 생각했다. 릭트는 CNN의 정체성 위기 탈출 계획을 가지고 있었고, 자슬라브는 그 계획을 실행할 수 있는 인내심을 갖고 있었다. 런츠는 움찔했다. 그는 NFL 구단주들이 코치들에 대해 그렇게 말하기로 유명하다고 언급했다. 팀에 계획이 있고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더니 코치를 해고하는 것이다. 런츠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한다고 릭트에게 말했다.


CNN의 수장이 유명한 공화당 책사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는 사실?그리고 릭트가 이른 봄에 런츠의 집(케빈 매카시 하원의장도 찾는 곳이다)을 방문한다는 사실?은 좌파가 릭트에 대해 갖고 있는 최악의 공포를 인증할 것이다. (내가 릭트에게 보수주의자인지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답했다. "저는 결코 제 자신을 어떤 범주로 분류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해요.") 사실 릭트는 런츠를 위해 여기 온 것이 아니었다. 전날 밤, 테드 터너21를 기리는 행사에서 오랜 친구들을 우연히 만났을 때 런츠는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그는 USC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고 다음 날 자신의 아파트로 학생들을 초대할 예정이었는데, 릭트가 깜짝 등장해 CNN에 대한 학생들의 질문에 답해주면 어떨까?

대부분의 경영진은 그렇게 계획에 없는 일정 요청을 결코 수락하지 않는다. 그러나 놀랍게도 릭트는?현재 CNN에서 고용 불안에 대한 소문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뒤덮고 있는 등으로 위태로운 상황이었지만?이를 수락했. 다음날 그는 런츠의 아파트에 나타나 학생 16명과 한 시간을 보냈다. 이번에도 내게는 그가 자신의 직원들과는 피하고 있던 바로 그런 열린 상호작용으로 비쳤다. 학생들과 함께한 릭트는 결점이 될 정도로 직설적이고 진솔했다. 한 번은 단어연상 게임을 하던 중 한 젊은 여성이 CNN을 '진보'라고 말하자, 릭트는 짜증을 감추지 않고 그 여성이 패배를 인정할 때까지 구체적인 내용을 질문했다. 결국 그 여성은 자신의 답이 현실보다는 인식에 관한 것이라고 고백했다.


그 여성의 동급생이 손을 들었다. 그는 릭트에게 CNN이 '가짜 뉴스'의 얼굴이 된 데서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지 물었다. 릭트는 CNN이 오직 사실만 다루는 접근법을 강화해야 한다고 답했다. "평판을 망치는 것은 너무나 쉽지만 이를 회복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릭트는 학생들에게 자신의 조직은 허용되는 실수의 여지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CNN 웹사이트의 모든 기사, 방송의 모든 자막, 기자들의 SNS 계정에 올라온 모든 댓글을 면밀히 검토할 것이었다. "이 모든 게 중요합니다. 상대방에서 무기를 주는 순간 이를 악용하기 때문이죠."


그리고는 내가 지금까지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말을 했다. "사람들이 CNN, 폭스, MSNBC를 한 문장 안에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릭트는 학생들에게 MSNBC가 CNN이 고안해낸 '상시적 충격 상황' 모델을 사용하고 있다고 말하며, 특히 "한 프로그램은" 거의 모든 세그먼트에 속보 배너를 사용하고 있는 것 같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오후 4시에 방송되는 니콜 월러스의 프로그램을 언급한 것이었는데 CNN의 제이크 태퍼 방송과 경쟁관계였다.) 릭트는 이 전략이 시청률 상승을 가져왔지만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그는?충분히 그럴만하지만 여전히 놀랍게도?폭스뉴스를 더 강력히 비판했다. 릭트는 직원들에게 폭스를 취재할 때는 "경솔하게 행동하지 마라"고 반복해서 경고한 바 있다. 그는 "로라 잉그레이엄이 하는 모든 말에 경악하는 게 우리 기자들의 일이 아니"라며 "그건 뉴스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릭트는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뉴스라고 말했다. 터커 칼슨은 황금시간대에 트럼프를 옹호하면서 문자메시지로는 트럼프를 비난했다. 잉그레이엄과 션 해니티는 대선 부정 의혹을 시청자들에게 팔아먹으면서도 사석에서는 이를 일축했다. 실제로 도미니언 소송에서 드러난 증거는 "한 메이저 언론사가 고의로 사람들을 오도하고 있으며 실제 세계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고 릭트는 말했다.


릭트는 이 사례를 들어 폭스뉴스를 표리부동한 선전 매체라고 비난하고 MSNBC가 히스테리를 밀매한다고 힐난하며 두 방송사와 CNN을 차별화하고자 했다. "우리가 매일 폭스뉴스를 공격한다면 그것은 모두 소음처럼 들릴 겁니다." 릭트는 학생들에게 말했다. "하지만 지금 CNN을 보고 있다면 '와, 이건 정말 중요한 일이네. 폭스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으니 말야'라고 생각할 거예요."


그때 런츠의 학생 중 한 명이 릭트에게 거짓된 공정성(false equivalency)의 함정에 대해 질문했다. 이 학생은 폭스뉴스와 MSNBC가 저지른 행위를 법정으로 가져가는 데는 별 관심이 없어보였고?그게 학생의 질문에 녹아들어 있긴 했지만?그보다는 뉴스에 대한 릭트의 전반적인 태도에 대해 관심이 더 있어보였다. 학생은 미국이 직면한 몇 가지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서 "진실은 하나"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2020년 대선에서 패배했고, 버락 오바마는 미국에서 태어났으며, 우리는 코로나19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는지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릭트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잠깐만요. 우리는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몇 명인지 모릅니다."


학생은 그를 향해 이맛살을 찌푸렸다.


"정말입니다. 우리는 몰라요." 의사의 아들인 릭트는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 수에 대해 "공정한 대화"가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릭트는 팬데믹 시작 전에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으로 병원에 입원했다가 확진 판정을 받고 사망한 환자도 있었을 것이라고 가정했다. "우리가 '어허, 그런 이야기는 하면 안돼요'라고 말하는 지점에서 문제가 시작됩니다." 그는 학생들에게 말했다. "이는 다른 무엇보다도 신뢰와 관련이 있습니다. 사실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토론을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릭트는 양쪽 이야기를 모두 다 다루는 방식으로 우파를 달래는 것이 "우리 조직의 가장 큰 걱정거리"이라고 수긍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그는 사망자 수의 정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모든 사람을 '코로나 부정론자'로 몰아가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했다. 그리고 팬데믹 시대 마지막에 추진된 긴급 지원금에 대해 "이 지원금에 찬성하지 않으면 가난한 사람들을 증오하는 사람"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것은 정직하지 않은 일이었다고 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비유를 들어 말했다. 우리는 밖에 비가 내린다는 것을 인정하는 한, 비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논쟁을 할 수 있다.


마지막 질문은 간단했다. 한 젊은 여성이 릭트에게 CNN의 과거 성과에 대한 그의 혹독한 비판을 고려할 때, 이번에는 CNN이 트럼프를 어떻게 다룰 계획인지를 물었다.


"늘 그 질문을 받죠." 릭트는 곤혹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상식과 완전히 엇나가는 답을 드릴 거예요. 저는 그에 대해 별로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는 트럼프는 이제 재활용품이 됐으며 뉴스 헤드라인을 지배하는 그의 "초능력"은 옛날의 일이라고 설명했다. 릭트는 오히려 CNN의 에이스 기자 케이틀란 콜린스와 함께 트럼프를 방송에 출연시키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의 태연자약함에 학생들은 깜짝 놀란 듯했다.


"다른 후보자들처럼 그를 보도해야죠." 릭트는 학생들에게 말했다.




이후 릭트를 만난 건 두 달 후, 맨체스터에서였다.


CNN 뉴스룸은 5월 10일 타운홀 미팅 소식에 깜짝 놀랐다. 내부적으로는 2024년 대선을 앞두고 CNN이 트럼프에게 발언의 장을 열어줄 것인지 가늠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타운홀 개최 협상에 대해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트럼프와 그의 최측근과 오랜 관계를 유지해온 CNN의 스타 방송인들조차도 몰랐다. 타운홀 일정이 발표되자 릭트는 직원들에게 라이브 이벤트의 장점을 강력히 주장했다. 선거 운동이 한창 진행 중이었고, 트럼프는 선두 주자였기 때문에 반드시 다뤄야 한다는 것이었다. 릭트는 집회를 통해 트럼프가 시청자에게 여과 없이 접근하는 대신 CNN이 진행 방식에 대한 결정, 질문, 실시간 팩트 체크를 통해 트럼프가 어떻게 비쳐지는지를 통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릭트를 회의적으로 보던 사람들도 내게 릭트의 말에 수긍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타운홀이 다가올수록 불안감은 커져 갔다. 직원들은 트럼프를 인터뷰했던 CNN 앵커?앤더슨 쿠퍼, 제이크 태퍼, 에린 버넷, 울프 블리처, 크리스 월리스?중 누구도 질문을 만들거나 모범 사례를 제안하거나 단순히 콜린스에게 조언하는 식으로 타운홀 준비에 초대받지 못한 것을 이상하게 여겼다. 트럼프는 SNS에서 타운홀이 재앙으로 변할 것이라는 추측을 남발했고, 이에 경영진은 트럼프가 세트장을 걸어서 빠져나가는 장면으로 이목을 끌려 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그러자 스태프들 사이에서는 CNN이 트럼프가 세트장을 뛰쳐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 정확히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두려움이 일었다. 행사를 목전에 두고 릭트가 청중에 대해 "매우 트럼프스럽다"고 한 표현이 슬랙과 문자메시지를 통해 퍼지면서 청중 구성에 대한 우려가 급증했다.


이 모든 우려는 기우가 아니었다. 타운홀 준비에는 분명 문제가 있었다. 콜린스는 훌륭하게 토론을 진행했지만 중요한 순간에 트럼프에게 밀렸고, 거의 전적으로 트럼프와 이념적으로 반대 입장에서 나온 그녀의 질문은 방청객을 트럼프를 중심으로 결집시키는 데 효과적으로 기여했다. 타운홀 스튜디오에 결집이 필요했던 것은 아니다. 방청객은 압도적으로 친트럼프 성향이었고 CNN은 자연스러운 환경을 원했기 때문에 참여에 제한을 거의 두지 않았다. 계속되는 청중 전체의 박수?내가 셌을 때 적어도 9번이었다?는 콜린스가 인터뷰하는 리듬을 방해했다. 트럼프가 E 진 캐롤을 조롱할 때와 콜린스가 액세스 할리우드 녹취22를 언급할 때는 때아닌 웃음이 터져 나와 인터뷰를 방해하기도 했다. 행사가 끝날 무렵에는 사실상 MAGA 집회와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방청객들은 광고 시간 동안 "사랑해요!"를 외쳤고 프로그램이 끝나자 "4년 더!"를 외쳤다.


방청객이 로비를 가득 채운 모습은 마치 응원하던 팀이 증오하던 라이벌을 상대로 승리한 걸 축하하는 팬들 같았다. 나와 대화를 나눈 사람들에게선 트럼프에 대한 찬사와 CNN에 대한 혐오를 같은 비율로 표현했다. 뉴햄프셔주 공화당 당협위원장인 크리스토퍼 애거는 그들의 정서를 가장 잘 포착했다. "우리는 CNN의 리더십이 바뀌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 리더십은 과거와는 다른 논조로, 트럼프에게도 공평하고 공화당원에게도 공평할 것 같았죠. 하지만 오늘 밤에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이건 과거의 CNN이었습니다."


250마일 떨어진 뉴욕의 세트장에 있는 CNN 직원들은 당혹스러웠다. 당초 계획에는 트럼프에게 호감이 많지 않은 공화당원 스콧 제닝스가 타운홀 후속 프로그램에 전문가 패널로 합류할 것이었다. CNN은 이 행사를 위해 제닝스를 뉴욕으로 초청했다. 하지만 타운홀이 열리기 몇 시간 전, 내부적으로 교체가 발표되었다. 제닝스 대신 바이런 도널즈가 출연한다는 것이었다(결국 제닝스는 그날 밤 다른 패널과 함께 방송에 출연했다). 플로리다주 공화당 하원의원인 도널즈는 릭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폭우가 쏟아지는데도 비가 오지 않는다고 말하는 선거 부정론자였다. 원조 선거 부정론자인 트럼프가 릭트가 줄곧 반복하던 기준을 경멸한다는 사실은 일부 CNN 직원들에게 이미 큰 문제였다. 그런데 왜 도널즈가 CNN의 후속 토론 프로그램에 패널로 출연하는 걸까?


출연진 구성의 특이점은 이것 뿐만이 아니었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공무원으로 트럼프에게 비판적이 된 새러 매튜스도 타운홀 사전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매튜스의 자리는 갑자기 트럼프에게 변함없이 헌신적인 전 백악관 참모 호건 기들리의 몫이 됐다.


생방송은 변동성이 크다. 출연자와 세트, 대본은 항상 갖가지 이유로 변경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NN 직원들에겐 의심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들은 트럼프가 타운홀에 참여하는 대가로 정해진 패널을 배치하는 것을 약속하는 모종의 거래가 트럼프 팀과 체결된 것은 아닌지 궁금해했다. 공식적인 합의가 없었다 할지라도 CNN 경영진이 트럼프를 만족시키기 위해?어쩌면 트럼프가 무대를 뛰쳐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제대로 보도를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타운홀 사전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화면 자막에 '성적 학대'라는 단어가 나오자 릭트의 수하 하나가 컨트롤룸로 전화를 걸었다. 그의 지시를 들은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자막을 즉시 내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타운홀이 끝나자 두 개의 후속 패널 프로그램이 동시에 시작돼 CNN 경영진은 보도와 분석 사이를 유연하게 전환할 수 있었다. 태퍼가 앵커를 맡은 한 패널 프로그램은 기자들이 나와 트럼프의 거짓말을 파헤쳤다. 쿠퍼가 이끄는 다른 패널은 도널즈를 포함한 양당의 전문가들이 서로 토론하는 자리였다. 릭트가 내게 설명해 준 임무에 따르면 그날 밤은 태퍼의 패널 프로그램이 주역이 됐어야 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릭트는 쿠퍼의 패널 프로그램을 더 띄우기로 결정했다(퍽이 최초로 보도한 사실이다). 이 결정은 '최고위층'에서 내려졌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타운홀이 끝나고 며칠 후 자슬라브는 여러 사람에게 태퍼의 패널 여럿이 트럼프를 공격하는 게 저커의 CNN을 떠올리게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MAGA 친화적이었던 다른 패널 프로그램조차도 도널즈에게는 충분하지 않았다. 방송에서 CNN을 비판한 후, 도널즈 하원의원은 세트장에서 내려와 제작진과 동료 패널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휴대폰을 들고 트위터에서 CNN을 맹폭하기 시작했다.


릭트가 아직도 격렬한 반발을 받아들이려 애쓰고 있던 그날 밤, CNN의 인기 뉴스레터인 '믿을 수 있는 소식통'이 릭트의 메일함에 도착했다. 그는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첫 줄을 읽었다. "수요일 저녁 CNN에서 방영된 거짓말의 장관(壯觀)이 미국에 어떤 도움이 됐는지 알 수 없다." CNN의 미디어 담당 기자 올리버 다아시는 이렇게 썼다.

릭트는 미디어 업계 라이벌로부터 조롱받는 것은 감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월급을 주는 사람이 자신의 커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날에 공개적으로 자신을 비난한다는 것은 새로운 차원의 배신감으로 느껴졌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타운홀 행사 결과에 대해 내게 양가적 감정을 드러냈던 릭트는 전쟁 모드로 전환했다.


다음날 아침, 그는 의도적으로 고른 표현으로 9시 편집회의를 시작했다: "저는 어젯밤에 우리가 한 일이 미국에 크게 기여했다고 절대적으로, 명백하게 믿습니다."




그날 아침 회의에 참석했던 CNN 직원 다수는 릭트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들은 릭트의 행사 진행이 끔찍했다고 생각했고, 그의 전술적 결정이 타운홀 통제권을 트럼프에게 넘겨주고 콜린스를 불가능한 입장에 처하게 만들었으며 제작에 참여한 모든 사람을 부끄럽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의견은 널리 퍼져 있었다. 그렇다고 이런 의견이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CNN의 모든 사람들은 릭트가 단 한 명의 시청자를 위해 일하고 있음을 오래전에 깨달았다. 자신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다른 기자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심지어 시청자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데이비드 자슬라브가 어떻게 생각하는지였다.


나는 이를 확인하고 싶었다. 몇 달 동안 자슬라브의 커뮤니케이션 책임자인 나다니엘 브라운은 자슬라브가 이 취재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보호막을 쳤다. 그는 처음에 저에게 자슬라브는 익명을 전제로만 나와 대화할 것이며, 내가 인용하고 싶은 내용은 자슬라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내가 인용에 대한 사전 승인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보도를 전제로 한 질문을 허용해야만 자슬라브를 만나겠다며 이를 거절하자, 브라운은 마지못해 나의 조건에 동의했다. 하지만 시간을 촉박하게 만들어 자슬라브가 인터뷰에 응할 수 없게 만드는 일을 반복했다. 결국 온갖 우여곡절 끝에 인터뷰가 성사되었다. 트럼프 타운홀 일주일 후인 5월 17일 수요일, 나는 뉴욕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자슬라브를 만나기로 했다.


인터뷰를 24시간도 채 남겨두지 않은 화요일 저녁, 브라운이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이번 인터뷰는 배경 설명용으로만 하는 것이고 아무것도 실명으로 인용할 수는 없습니다." 이는 우리의 합의를 뻔뻔스럽게 어긴 것이었고, 브라운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브라운은 "모든 일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자슬라브가 배경적으로 몇 가지 설명하는 건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나를 안심시키려 했다.


나는 별로 놀랍지 않았다. 지난 1년간 자슬라브를 알고 릭트와의 관계를 지켜본 사람들은 그를 통제광, 마이크로매니저, 분투하고 있는 CNN의 리더를 헬리콥터맘처럼 조종하는 무자비한 운영자로 묘사했다. 자슬라브가 편집 결정에 끊임없이 간섭하는 것을 CNN 고참 직원들은 이상하고 부적절하다고 느꼈고, 그가 릭트를 마리오네트처럼 부리는 것은 더욱 이상하게 봤다. 그런 의미에서 릭트의 오랜 친구이자 동료 중 일부는 그가 불쌍하다고 내게 말했다. 흑막 뒤의 사내는 아무런 흠집도 나지 않는 동안 릭트는 난도질을 당하고 있었다. 나는 브라운의 제안을 거절했다. 이번이 자슬라브가 릭트의 리더십과 자신의 리더십을 입증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말했다. 만약 그가 해명하고 싶다면 우리가 합의한 대로 보도를 전제로 인터뷰를 하면 된다고 했다. 자슬라브는 거절했다.


이 기사가 발행되기 전날 밤, 자슬라브는 브라운을 통해 이런 내용의 성명을 보냈다. "현재 진행 중인 중요한 작업을 완료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크리스와 CNN 팀이 만들고 있는 진전에 대해 큰 확신을 가지고 있으며 전략에 대한 확신을 공유합니다." 브라운은 또한 "최초 요청과 예정된 인터뷰 사이에 몇 달이 지나면서 인터뷰의 전제가 변경되었다는 것이 분명해졌기 때문에" 보도를 전제로 한 인터뷰를 취소했을 뿐이라는 자슬라브의 입장도 함께 전했다.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예정된 인터뷰 이틀 전, 브라운은 "보도를 전제로 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 수요일에 나를 만나겠다고 썼다).


인터뷰가 취소된 다음 날, 나는 허드슨 야드가 내려다보이는 레스토랑에서 릭트를 마지막으로 만났다. 나는 그에게 자슬라브가 릭트가 자기 일를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세간의 인식에 대해 전했다. 릭트는 잠시 얼어붙은 표정이었다.


"전혀 그런 느낌은 없어요. 저를 지지해주고 이 비즈니스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훌륭한 파트너가 있다는 느낌이 들죠."


"이 일을 하면서 스스로에게 충실할 수 있었다고 느끼시나요?" 내가 물었다.


"왜 그런 질문을 하시는 거죠? 무슨 뜻이죠? 자기 자신이라니?"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릭트는 잠시 입술을 깨물었다. "제 생각에 CEO의 일은 매우 다른 거 같아요. 말하는 모든 단어가 분석 대상이 됩니다. 누군가를 바라보는 모든 시선도 분석됩니다. 정말 다르죠. 그래서 저는 직업의 자연스러운 범위 내에서 가능한 한 제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합니다."


나는 질문의 배경을 설명했다. CNN의 사람들은 그가 "연기를 한다"고 생각한다고 릭트에게 말했다. 마치 그가 총알에도 꿈쩍않는 터프가이의 페르소나를 투사하는 것 같단다. 그것이 자슬라브가 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직원들은 또한 그가 이러한 이미지를 만드는 데 너무 몰두한 나머지 그의 성공을 바라는 주요 인물들과 진정성 있고 의미 있는 관계를 구축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CNN 직원들은 내게 여러 차례 릭트에게서 겸허함을 찾아달라고 요청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그에게 스스로에 대한 자각이 조금이라도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들은 릭트가 자신의 임기가 얼마나 형편없이 진행되고 있는지, 그리고 왜 그런지를 알고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릭트는 미끼를 물지 않았다. 인터뷰 도중, 사무실을 22층으로 옮긴 것을 후회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릭트는 1분 넘게 침묵을 지켰다?앉아서 목을 풀며 주위를 둘러보았고, 어느 순간에는 질문에 전혀 대답하지 않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마침내 그가 무겁게 숨을 내뱉었다. "이렇게까지 큰 일이 되리라고 생각한 건 아니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됐죠. 그러니까요."


"단지 그 때문에 후회한다는 건가요?" 내가 물었다.


"물론이죠." 그가 대답했다.


릭트는 이 잘못을 인정해 내게?보다 정확히는 CNN 직원들에게?만족감을 줄 생각이 없었다. 다른 잘못들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타운홀 이틀 후 CNN의 시청률이 뉴스맥스에 뒤쳐졌지만 릭트는 흔들리지 않았다. 다아시의 뉴스레터 사건 일주일 후, CNN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성취를 이룬 언론인으로 꼽히는 크리스티안 아만푸어가 컬럼비아 저널리즘스쿨 강연에서 릭트를 책망하는 등 직원들의 노골적인 반란에도 릭트는 요지부동이었다.


나는 릭트에게 이번 행사에 정말 아쉬운 점이 없었는지 물었다. 방청객들이 "과도하게 트럼프적"이었던 게 아쉽진 않았나? (릭트는 방청객이 공화당 지지층을 대표했기 때문에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첫 번째 질문을 그의 선거 관련 거짓말에 할애한 것은? (릭트는 심지어 E 진 캐롤에 대한 평결마저도 트럼프 선거제도에 대한 공격보다는 뉴스 가치가 적었기 때문에 아쉽지 않았다고 했다.) 방청객들이 마음대로 환호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은? (릭트는 토론 사회자들이 자주 하는 것처럼 방청객들에게 박수를 멈춰달라고 요청하면 사건의 현실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그렇지 않다고 했다.) 릭트가 유일하게 인정한 것은 방청객 중에 트럼프에게 투표했거나 2024년에 트럼프에게 투표할 계획이 있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손을 들어보이는 식으로 방송 시청자들에게 보여줘야 했었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외의 어떠한 것에서도 양보하지 않았다. 타운홀 후속 프로그램에 도널즈 의원이 참석한 것에 대해서도 그랬다. 릭트는 하원의원을 전문가 패널에 앉힌 것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밖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심지어 내가 도널즈는 2020년 조 바이든의 승리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기 위해 패널 자리를 이용한 선거 부정자라고 지적했음에도 매한가지였다.


나는 CNN과 트럼프 측이 도널즈나 기들리 같은 게스트를 프로그램에 넣기로 합의를 했었는지 물었다.


"절대 아닙니다.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합의나 거래는 없었다는 겁니다. 아무것도요."


나는 그에게 현 상황에 대해 보다 널리 통용되고 있는 설명을 전했다. 많은 CNN 직원들은 공식적인 합의는 없었겠지만 모종의 양해가 있었다고 여겼다. 트럼프가 CNN에 출연하는 선의를 보였다면 CNN은 타운홀 사전, 사후 방송에 유독 친트럼프적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배치하는 호의를 보여야 했다는 것이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릭트는 타운홀 제작이라는 더 큰 그림에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릭트도 모르게 이런 합의가 나왔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릭트에게 말했다. 그래서 나는 릭트의 측근이 트럼프 측과 그런 합의를 했을 가능성이 있을지 물었다.


"아아아뇨." 그는 시간을 벌기 위해 단어를 질질 끌면서 말했다. "하지만 뭐든 가능하죠. 하지만 저는 '우리의 타운홀에 대한 분석이 완전히 일방적이라면 청중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더 사실에 부합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타운홀에 대한 가장 큰 오해 중 하나는 제가 시청률을 위해 타운홀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봤자 빌려온 시청자겠죠"?시청자 대부분이 CNN 단골 시청자가 아니라는 뜻이다?"그래서 저는 시청률을 위해 타운홀을 한 게 아니었습니다. 비용이 들었기 때문에 수익을 목적으로 한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트럼프와의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따라서 음모론적인 거래설은 배제해도 좋겠죠."


그 이야기가 음모론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난 한 해 동안 릭트의 직원들이 예측했던 많은 것들?릭트는 그것이 틀렸거나 근시안적이거나 혼란스러운 억측이라며 일축했을 것들?이 사실로 드러났다. 레몬은 아침 프로그램의 재앙이었다. (결국 릭트는 4월에 그를 해고했다.) 콜린스는 뉴욕에서 공동 앵커를 맡았지만, 백악관 출입으로 활동했던 것에 미치지 못했다. (릭트는 올여름부터 그에게 9시 시간대 진행을 맡겼다.) 릭트는 자신에게 부정적인 언론에 집착했다. (릭트는 3월의 한 파티에서 딜런 바이어스와 마주쳤을 때 그가 쓴 자신에 대한 기사 때문에 화를 냈음을 내게 인정했다.) 자슬라브는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회사에 개입하는 인물로 밝혀졌다. (한 사례로, 뉴욕포스트가 릭트가 곧 해고될지 모른다고 보도한 다음 날, 자슬라브는 CNN 경영진 회의에 불쑥 나타나 릭트의 부하 직원들에게 "이것이 바로 운명과의 만남!"이라고 선언한 적이 있다.)


릭트는 자신과 자슬라브는 CNN의 "근본적인 혁신"을 위해서는 2년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시계가 더 빨리 돌아가는 것 같은 일이 벌어졌다. 우리의 마지막 인터뷰가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워너브라더스 디스커버리는 자슬라브의 측근인 데이비드 리비를 CNN의 새로운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임명한다고 발표했다. 측근이 요직에 임명되면서 권력 투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고 릭트의 종말이 시작됐다는 관측도 나왔다.

사실 제프 저커의 CNN도 처음 몇 년간은 매우 힘들었다. 해고와 프로그램 실패가 이어졌고 시청률은 하락세였다. 저커가 CNN을 시청률의 강자로 만들 수 있었던 건 직원들이 '벌떼 전략'(swarm strategy)이라 부르는, 가장 인기 있는 소식?사라지는 비행기, '똥 크루즈23', 궁극적으로는 트럼프의 대선행?에 리포팅 리소스를 투입하는 전략을 통해 뉴스의 리듬을 찾고 나서였다. 릭트의 좋지 않은 출발에 만회의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와 그의 충실한 동료들은 내게 릭트가 성과를 낼 수 있는 시간이 아직 남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릭트의 첫해 성적표에 성공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징후는 거의 없었다. 그의 가장 큰 업적?찰스 바클리와 게일 킹을 방송의 공동진행자로 영입한 것?만으로는 CNN의 황금시간대 라인업을 되살리기 어려웠다. 바클리와 킹이 진행할 프로그램 '킹 찰스'는 일주일에 한 번만 방영되기 때문에 릭트는 여전히 CNN의 시청률을 끌어올리고 자신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업적을 구해야 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나는 릭트에게 내 입장에서 생각해보라고 부탁했다. 그가 나라다면 CNN의 리더에 대해 긍정적인 골자로 기사를 쓸 수 있을까?


그는 오랜 시간 침묵을 지켰다. "물론이죠." 릭트가 마침내 말했다.


대답이 "물론"이라면 왜 그렇게 오래 생각했냐고 물었다.


"확실히 하고 싶었어요." 그가 대답했다.


그는 내가 1년 전에 만났던 사람과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혼자서 트럼프를 길들일 수 있다고 확신했던 릭트는 여전히 불굴의 CEO처럼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는 이제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에 휘청대고 있었다. 그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릭트는 자신을 싫어하거나 회사에 대한 그의 비전을 의심하거나 자신의 역량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노골적으로 파멸을 응원하는 사람들로 둘러싸인 외딴 섬에 살고 있다. 그는 트럼프 타운홀이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신봉자로 만들기를 바랐다. 하지만 타운홀은 몇 명 남지 않았던 지지자들조차 비판자로 돌아서게 만들었다. 나는 타운홀 행사 다음주의 CNN만큼 자신감이 떨어진 모습의 기업을 본 적이 없었다. 일부 직원들은 바깥에서 회의를 열어 집단 퇴사의 장점에 대해 공개적으로 논의했다. 많은 사람들이 경쟁 언론사에 일자리를 문의하기 시작했다. 몇몇은 전 상사였던 제프 저커에게 전화를 걸어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함께 커피를 마시는 동안 릭트는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


"사람들이 크리스 릭트에게 충실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들이 CNN에 충실해야죠." 그가 말했다.


나는 릭트가 충실함을 필요로 하는 유일한 사람은 자슬라브라고 지적했다.


릭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그가 뭔가 운을 떼자마자, 손목에 찬 스마트워치가 윙윙거리기 시작했다. 릭트는 스마트워치를 내려다보았다. 자슬라브로부터 온 전화였다. 그는 나를 올려다보았다. 내가 눈치챈 것을 알아차린 릭트는 웃음을?진솔한 웃음을?터뜨렸다. 그리고는 테이블에서 일어나 전화를 받았다.



팀 앨버타는 애틀랜틱의 기자로 폴리티코의 수석 정치부 기자로 일했다. 저서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American Carnage'(2019)가 있다.



1857년 창간된 미국의 대표적인 시사·문예 매거진. 진보적 성향으로 롱리드 피처, 인터뷰 기사로 유명합니다. 본래 월간지였으나 현재는 1년에 10회 발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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