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로이터/뉴스1
2025.06.13 15:02
유럽은 세계적인 기술 혁명에서 뒤처지고 있다.
유럽에는 구글, 아마존, 메타와 같은 기업에 필적할 만한 기업이 없다. 애플의 시장 가치는 독일 주식시장 전체보다 크다. 유럽 대륙이 대형 테크 기업을 더 많이 창출하지 못하는 것은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로 여겨지며, 유럽 경제 침체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더 높은 관세가 경제 성장을 더욱 억제할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이 문제는 더욱 시급해지고 있다.
투자가들과 기업가들은 유럽 테크 산업 성장의 장애물이 뿌리 깊은 것이라고 말한다. 소극적이고 위험을 회피하는 기업 문화, 엄격한 노동법, 숨 막히는 규제, 더 작은 벤처 캐피털 시장, 그리고 부진한 경제 및 인구 성장이 그것이다.
독일의 테크 기업가인 토마스 오덴발트는 지난해 1월 실리콘 밸리를 떠나 독일 하이델베르크에 본사를 둔 스타트업 알레프알파에 합류했다. 이 회사는 인공지능(AI) 선두주자인 오픈AI와 정면으로 경쟁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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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덴발트는 캘리포니아에서 거의 30년을 보냈지만 미국과 경쟁할 유럽의 거대 테크 기업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는 자신이 본 것에 충격을 받았다. 동료들은 엔지니어링 기술이 부족했다. 그의 팀원 중 누구도 스톡옵션을 가지고 있지 않아 성공에 대한 동기가 부족했다. 모든 것이 느리게 움직였다.
두 달 후 오덴발트는 회사를 그만두고 캘리포니아로 돌아갔다. "실리콘밸리에서 상황이 얼마나 빨리 변하는지 보면… 너무 빨라서 유럽이 그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요." 그는 말했다. 알레프알파는 이후 대규모 AI 모델 구축에서 벗어나 정부 및 기업의 외주 업무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회사는 90% 이상의 직원이 스톡옵션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고 전했다.
1차 디지털 혁명을 대부분 놓친 유럽은 2차 혁명마저 놓칠 위기에 처한 것으로 보인다. 벤처캐피털과 정부 자금이 풍부한 미국과 중국은 생산성과 생활 수준을 향상시킬 잠재력을 지닌 AI 및 기타 기술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유럽의 벤처캐피털 테크 투자는 미국의 5분의1 수준에 불과하다.
미국의 테크 투자가 마크 앤드리슨은 자신의 X 계정에 오픈AI와 중국의 경쟁사인 딥시크와 같은 거대 AI 기업들이 주도권을 놓고 다투는 이미지를 보여주는 밈을 게시했다. 근처 테이블에는 유럽연합(EU) 깃발이 붙은 인물이 홀로 앉아 음료수 병에 매달린 플라스틱 뚜껑 이미지를 응시하고 있었다. 이는 재활용을 장려하기 위한 유럽의 새로운 법적 규제다. 메시지는 분명했다. 유럽은 엉뚱한 싸움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생존이 걸린 도전 과제입니다." 유럽연합으로부터 유럽 경제가 침체한 원인을 진단해 달라는 요청을 받은 마리오 드라기 전 유럽중앙은행 총재가 썼다. 작년 9월 발표된 보고서에서 드라기는 번영하는 테크 섹터의 부재를 핵심 요인으로 지목했다. "유럽연합은 미래 성장을 이끌 신흥 기술에 취약합니다." 그는 썼다.
유럽은 미국보다 인구가 많고 교육 수준이 비슷하며 세계 경제 생산량의 21%를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세계 50대 테크 기업 중 유럽 기업은 단 4곳뿐이다. 양자 컴퓨팅에 투자하는 상위 10개 기업 중 유럽 기업은 전무하다.
이는 단순히 테크 부문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유럽 경제 전반에 걸친 문제를 반영한다. 시장을 뒤흔들고 혁신을 촉진하는 새롭고 파격적인 기업들을 충분히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MIT 슬론경영대학원의 수석 연구 과학자이자 AI 스타트업 워크헬릭스Workhelix의 공동 창업자인 앤드류 맥아피Andrew McAfee의 계산에 따르면, 지난 50년간 미국은 시가총액 100억 달러가 넘는 기업을 241개나 무에서 창출한 반면, 유럽은 단 14개를 만드는 데 그쳤다.
자동차가 마차를 대체한 것처럼, 새로운 기업과 산업은 한 국가가 동일한 수의 노동자로 더 많은 상품을 생산하게 하여 번영의 핵심 동력이 된다. 유럽은 옛날에 생산성 향상을 이끌어낸 자동차와 은행 같은 구식 산업이 지배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미국 상위 10대 상장 기업의 평균 설립 연도는 1985년인 반면, 유럽은 1911년이다.
디지털 혁명이 시작되던 1990년대 후반, 유럽연합(EU) 근로자의 시간당 생산량은 미국 근로자의 95% 수준이었으나, 현재는 80% 미만으로 떨어졌다.
유럽연합 경제는 현재 미국보다 3분의1가량 작으며, 지난 2년간 미국 성장률의 3분의1에 머무는 저성장 늪에 빠져 있다.
디지털 겨울
유럽은 세계적 수준의 연구 대학과 풍부한 공학 및 과학 인재 풀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들 중 다수는 미국의 최고 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스포티파이와 핀테크 기업인 레볼루트Revolut, 클라나Klarna는 성공 사례다. 벤처캐피털의 등장은 비교적 늦었지만, 지난 10년간 세쿼이아캐피털Sequoia Capital, 라이트스피드Lightspeed, 아이코닉Iconiq, NEA 등 미국의 대형 벤처캐피털 회사들이 유럽에 진출했다.
"유럽은 훨씬 작은 시장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좋은 기회가 없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런던 소재 세쿼이아캐피털의 파트너인 루치아나 리산드루는 말했다.
유럽도 그 시작은 유망했다. 1990년대 디지털 혁명이 시작될 당시, 유럽은 여러 선도적인 반도체 회사(네덜란드의 ASML, 영국의 ARM), 소프트웨어 대기업(독일의 SAP), 그리고 휴대폰 시장의 지배자(핀란드의 노키아)를 자랑했다.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은 유럽의 연구소에서 근무하던 영국인 팀 버너스리Tim Berners-Lee가 발명했다.
유럽이 현재 뒤처진 큰 이유는 속도의 부족으로 요약될 수 있다. 기업가들은 자금 조달, 현지 규제 준수, 직원 고용 및 해고 등 유럽에서는 모든 것이 더 오래 걸린다고 불평한다.
"독일에서는 사람들이 다들 너무 신중해요." MP3 디지털 오디오 압축 형식을 발명하는 데 기여한 독일 엔지니어 칼하인츠 브란덴부르크는 말했다. 그는 독일의 가전제품 회사들이 이 발명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 충분히 투자하지 않았으며, 그 후 애플이 2000년대 초 이 발명을 활용해 만든 아이팟을 거의 5억 대 판매했다고 말했다. 브란덴부르크는 현재 차세대 헤드폰 스타트업을 위해 500만 유로(80억 원)의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미국이 다른 점이라면 거의 모든 면에서 속도가 다르다는 거죠." 수십 년간 실리콘 밸리에서 살았던 이탈리아 출신의 초기 기술 기업가 파브리치오 카포비앙코는 말했다. "미국인들은 결정을 매우 빠르게 내려요. 유럽인들은 모든 사람과 이야기해야 해요. 몇 달이 걸리죠."
3년 전 이탈리아로 돌아온 카포비앙코는 현재 이탈리아 알프스에 유럽 테크 기업을 발굴하기 위한 스타트업 팩토리를 짓고 있다. 우승자를 위한 상품은 실리콘밸리행 편도 티켓이다.
"유럽에 실리콘밸리를 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카포비앙코는 말했다. 그는 다른 유럽 기업가들이 자신의 선례를 따르기를 원한다. 미국의 테크 허브에 자리를 잡고 임금과 생활비가 저렴한 유럽에 위치한 엔지니어 팀을 관리하는 것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가장 가치 있는 일자리가 미국에 있게 됨을 의미한다고 카포비앙코는 말했다.
대부분의 유럽 스타트업은 미국 경쟁사와 같은 속도로 확장하는 것이 너무 어려워 보통 미국으로 이전하거나, 미국 회사에 인수되거나, 그들과 제휴한다. 영국 최대 스타트업 중 하나인 배달 회사 딜리버루Deliveroo는 최근 미국 소재의 도어대시DoorDash에 39억 달러(5조4600억 원)를 받고 사업을 매각하기로 합의했다.
유럽의 가장 주목받는 AI 기업들조차 미국 기업과 경쟁하기보다는 연계하고 있다. 런던 기반의 딥마인드DeepMind는 2014년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에 인수되었다. 대규모 AI 모델 구축 경쟁에서 10억 달러(1조4000억 원) 이상을 조달한 파리 기반의 미스트랄AI는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과 유통 계약을 체결했다.
유럽에서는 대부분의 기업 금융이 여전히 은행에서 나오는데 은행은 일반적으로 손실을 대비해 건물 같은 물리적 담보를 요구한다. 다른 자금 조달 방식으로는 위험 회피적인 연기금이 있다. 초기 벤처캐피털 투자자들 또한 창업자들의 발목을 잡는 조건을 요구했다고 기업가들은 말한다.
"흩어져 있는 소액 자본은 많고, 그 다음에는 매우 크고 느리게 움직이며 관료적인 준정부 기구들이 있어요. 하지만 그 중간, 그러니까 미국에 있는 것 같은 더 역동적인 기부 자본endowment capital 같은 것은 별로 없어요." 런던 소재 벤처캐피털 회사인 혹스턴 벤처스Hoxton Ventures를 설립한 미국 기술 투자가 후세인 칸지는 말했다.
복잡한 규제
유럽에서 빠르게 규모를 확장하기는 어렵다. 미국은 거대한 통합 시장인 반면, 유럽은 각기 다른 언어, 법률, 세금을 가진 수십 개의 국가로 이루어져 있다. 노동법은 노동자의 고용과 해고를 어렵게 만들어 노동 이동성을 둔화시킨다. (유럽에서는 회사를 떠날 때 보통 3개월의 통지 기간이 있으며, 경우에 따라 6개월의 비경쟁 조항이 있는데, 영국에서는 이를 농담 삼아 '정원 가꾸기 휴가'라고 부른다.)
지난 1~2년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 스톡옵션은 권리가 확정되기 전에 소득으로 과세되었기 때문에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세금은 더 높고, 대기업을 규제하기 위해 고안된 규정들은 스타트업에게 비용이 많이 들고 시간 소모적인 골칫거리가 된다.
독일 소프트웨어 대기업 SAP의 최고 전략 및 운영 책임자인 세바스티안 슈타인호이저는 "유럽에서 성장하여 훨씬 더 복잡한 규제 체계를 충족시키기 위해 처음부터 투자해야 하는 것"보다 미국이나 중국의 대규모 AI 기업이 유럽으로 이전하는 것이 더 쉽다고 말했다.
유럽의 규제 사랑은 한 샤오Han Xiao가 자신의 베를린 소재 AI 스타트업을 미국으로 이전하는 걸 고려하기 시작한 계기였다. 그와 두 친구는 독일에서 공부한 후 5년 전 지나AI를 설립했으며, 기업을 위해 비정형 데이터에서 정보를 검색하는 데 머신러닝을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독일인들이 AI에 대해 이야기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이야기가 윤리와 규제"인 반면, 미국과 중국의 투자자들은 혁신에 집중한다고 샤오는 말했다. 베를린에서 엔지니어를 찾기도 어렵다고 그는 덧붙였다. 실적이 저조한 직원을 해고하려 했다가 법정까지 갔다. 그의 직원 17명은 노동조합을 결성하려 했다.
샤오는 처음에 미국과 중국의 벤처캐피탈과 SAP의 미국 지사로부터 700만 달러의 펀딩을 유치했다. 그의 최근 3000만 달러(420억 원) 투자 유치는 실리콘밸리 투자회사인 캐넌파트너스가 주도했다. 샤오는 유럽의 AI 기술 시장은 매우 작고 현지 고객들은 새로운 기술을 느리게 채택한다고 말했다. 팰로앨토에서 11월과 12월을 보낸 후, 샤오는 미국으로 이주하기로 결정했다.
아마존의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유럽 기업들은 IT 예산의 40%를 규제 준수에 사용한다. 또한 유럽 기업의 3분의2는 지난 여름 발효된 유럽연합의 AI법에 따른 의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메타는 유럽연합 규제 때문에 최신 AI 모델의 유럽 출시를 거의 1년 연기했다. 지난 3월부터 이미지 생성이나 편집과 같은 기능이 포함되지 않은 제한된 버전을 출시하기 시작했다. 애플 또한 아이폰용 새로운 AI 기능의 유럽 출시를 최근 몇 주까지 연기했다.
네덜란드의 가장 성공적인 스타트업 중 하나인 소프트웨어 회사 버드Bird는 최근 심한 AI 규제로 인해 주요 사업부를 유럽에서 미국, 두바이 및 기타 지역으로 이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유럽, 규제를 멈추세요. 우리가 첫 번째일지는 몰라도, 마지막으로 떠나는 기업은 아닐 겁니다." 창업자인 로버트 비스는 자신의 링크드인 페이지에 썼다.
문화도 관건
유럽 도시들은 삶의 질 순위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며 미국 도시들을 훨씬 앞선다. 그러한 생활 방식은 노골적인 야망에 눈살을 찌푸리는 평등 문화와 더불어 리스크에 대한 선호도를 낮추는 데 기여할 수 있다.
"'5000만~1억 달러(700억 원~1400억 원) 규모의 회사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사업계획서를 많이 받는데 그 정도 규모는 별로 흥미롭지 않아요."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 출신으로 현재는 런던에 거주하며 에덴베이스EdenBase의 펀드를 운용하는 크리스 힐은 말했다. 그는 또한 런던 금융가의 술집들이 목요일 오후 2시면 보통 꽉 찬다는 점도 지적한다.
런던에서 벤처캐피털의 부상은 나중에는 돈과 인재, 아이디어가 빠르게 순환하는 기업가적 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고 미국 외교협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s의 연구위원인 세바스찬 말라비는 말했다. 그의 저서 '파워 로The Power Law'는 실리콘밸리가 어떻게 기업가 문화를 구축했는지 자세히 설명한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오랜 관행이 쉽게 사라지지 않을 수 있다. MIT의 맥아피는 드라기 보고서가 유럽의 뒤처진 테크 섹터에 대해 훌륭하게 진단했지만, 규제 및 기타 문제로 인해 민간 자금이 부재한 것이 핵심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정부에 더 많은 공적 자금을 투입하여 해당 부문을 활성화할 것을 촉구했다고 말했다.
"보고서를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그 대목에서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말았죠." 맥아피는 덧붙였다.
PADO는 여러 나라들이 가진 문제점과 고민을 다룬 기사들을 많이 소개하려고 노력합니다. 남을 알아야 나를 제대로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남의 고민을 들어보면 내가 갖고 있는 고민과도 상통하더라는 경험, 다들 한번쯤은 있을 겁니다. 여기 소개하는 월스트리트저널(WSJ) 5월 19일자 기사를 봐도 그렇습니다. ASML, ARM, 노키아 같은 기업을 일궈냈던 유럽의 테크 산업은 왜 이렇게 왜소해졌을까요? 기사가 전해주는 이야기를 읽다보면 남의 이야기 같지가 않습니다. 한국이 'IT 강국'이라는 것도 이젠 옛 이야기입니다. 인프라 투자도, 에너지도, 민간 자본도, 핵심 기술도 이젠 부족합니다. 독일에서 AI 스타트업 창업 후 갖가지 규제 등으로 고생하다가 실리콘밸리를 가보고는 미국 이민을 결심하게 된 창업가의 사례는 그대로 한국에도 대입 가능할 것입니다. 본문에서 언급되는 것처럼 실리콘밸리에서 창업을 하고 엔지니어를 인건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본국(유럽 또는 한국)에서 관리하는 시스템이 현재로서는 한국의 야심 있는 창업가들에게도 최선일 것입니다. 유럽과 한국은 기존 산업만 붙들고 있다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까요? 아니면 미국과 중국처럼 아이디어와 기업가 정신으로 저돌적으로 창업하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을까요? 유럽에 왜 테크 부문이 약할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한 이 기사를 읽으시면서 타산지석, 반면교사로 삼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