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9월 17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국방 협정 체결 후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오른쪽)와 샤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가 포옹하고 있다. /사진=로이터/뉴스1
2025.09.26 14:48
- 0
1998년 5월, 인도가 파키스탄 국경 인근에서 핵실험을 실시한 지 불과 몇 주 뒤, 파키스탄 총리 나와즈 샤리프는 당시엔 사우디의 왕세자였던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에게 전화를 걸었다.
샤리프 총리가 맞대응 차원에서 핵실험을 감행한다면—이는 파키스탄의 군사적 위용을 과시하겠지만 서방의 대규모 제재를 불러올 것이 분명했는데—사우디아라비아는 과연 이 이슬람 형제국을 지지할 것인가?
며칠 뒤 파키스탄의 핵실험이 뒤따르자 답은 곧 분명해졌다. 하루 5만 배럴에 달하는 사우디 석유가 무상으로 제공되었고, 파키스탄은 이어진 제재를 버틸 수 있었다.
이번 주, 파키스탄의 셰바즈 샤리프 총리—나와즈 샤리프 전 총리의 동생—가 군 최고 실력자인 아심 무니르 참모총장과 함께 사우디 수도 리야드를 찾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파키스탄이 지원을 받으러 간 것이 아니라 지원을 제공하러 간 것이다. 미국의 무기와 기술에 깊이 의존해온 사우디는 핵무장을 한 파키스탄과 방위협정을 체결했다. 이는 파키스탄이 인도와 충돌한 지 불과 몇 달 뒤의 일이었다.
[새로운 PADO 기사가 올라올 때마다 카톡으로 알려드립니다 (무료)]
양국의 공동선언은 제약 없이 행동하는 이스라엘, 타격을 입은 이란, 그리고 예측 불가능한 미국으로 인해 중동의 판도가 흔들리는 가운데 발표됐다. 9월 9일, 이스라엘이 미국의 핵심 동맹국인 카타르 안에 있던 하마스 정치 지도부를 타격했을 때,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방관했다. 카타르 수도 도하 한복판을 겨냥한 이스라엘의 공격은 걸프 지역 지도자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협정의 세부 사항은 여전히 모호하고, 사우디 당국자들은 시점이 우연일 뿐이라고 강조했지만, 그 함의는 분명했다. 이스라엘과 미국이 중동 질서를 재편하고 있다면, 사우디는 오랜 동맹국이자 여러모로 기민한 친구와의 관계를 다시 다지고자 했던 것이다.
워싱턴 소재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에서 인도와 파키스탄에서 모두 활동한 바 있는 조슈아 화이트 연구원은 "이번 협정을 특정 사태에 대한 대응보다는 지역 내 더 큰 지각변동에 대한 반응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두 나라 모두 지금 미국의 행보 때문에 다변화를 꾀할 유인이 크다. 둘 다 선택지를 확대해야 할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사우디 당국자들은 이번 상호방위협정이 몇 년 전부터 준비되어 온 것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FT)에 밝혔다. 하지만 사실 양국의 군사적 이해관계는 수십 년 전부터 얽혀 있었다.
1974년, 인도의 첫 핵실험과 이스라엘의 1973년 중동전쟁 승리 직후, 당시 파키스탄 총리 줄피카르 알리 부토는 자국의 핵무기 개발 추진을 뒷받침해 달라며 사우디의 파이살 국왕을 찾아갔다.
핵무기 개발을 향한 여정은 수십 년간의 절도, 집요한 내셔널리즘, 그리고 치밀한 외교술로 이어졌다.
파키스탄 핵무기의 아버지로 불리는 압둘 카디르 칸은 1980~90년대에 서방에서 파키스탄으로, 그리고 다시 이란, 리비아 등으로 첨단 원심분리기 기술을 밀반출한 장본인으로, 이는 그의 자백과 여러 차례의 조사로 확인됐다.
그러나 군사사가軍事史家들의 지적에 따르면, 핵 보유국으로 가는 긴 과정에서 사우디의 석유달러도 큰 도움을 줬다. 브루킹스 연구소 추정치에 따르면, 1960년대 이후 파키스탄은 아랍 세계 외의 어떤 나라보다도 사우디로부터 많은 원조를 받아왔다. 이 원조는 파키스탄의 비밀 핵개발 프로그램을 직접적으로 지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학교, 모스크, 이슬람 자선 프로그램 등에 대한 재정 지원은 물론 정부에 대한 직접 자금 지원도 포함하고 있었다.
1990년대 서방 제재로 파키스탄 경제가 휘청이던 시기, "사우디아라비아는 파키스탄 핵 프로그램이 지속될 수 있도록 관대한 재정 지원을 제공했다"고 파키스탄 예비역 준장 페로즈 칸은 저서 '풀을 먹다: 파키스탄 핵폭탄의 탄생Eating Grass: The Making of the Pakistani Bomb'에서 기록했다.
1998년 파키스탄의 핵실험 이후, 이른바 "이슬람 (핵)폭탄"의 탄생을 무슬림 세계 상당수가 환영했다. 파키스탄은 이미 사우디의 원조에 대한 공개적 감사 표시로 한 도시의 이름을 파이살 국왕의 이름으로 바꾼 바 있다. 그러나 비공식적으로, 이러한 지원은 수니파 다수 동맹국 간에 더 깊은 군사적 연대를 맺어야 한다는 기대감을 불러왔다.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파키스탄군은 사우디 북부 국경을 지켰고, 파키스탄 정보기관인 ISI는 사우디와 미국 자금이 아프간 무자헤딘에게 흘러들어가 소련을 몰아내는 통로가 됐다.
오늘날에도 경험 많은 파키스탄 군사 고문들은 상대적으로 경험이 부족한 사우디군을 훈련시키고 있으며, 전직 파키스탄 육군 참모총장이 리야드에 본부를 둔 사우디 주도의 대테러 연합군을 지휘하고 있다.
페로즈 칸에 따르면, 1999년 사우디 국방장관이 파키스탄의 우라늄 농축 시설을 방문한 뒤 사우디는 파키스탄에 핵 프로그램과 관련한 "기술적, 과학적 지식 공유"를 요청했으나, 파키스탄 정부는 이 요청에 제대로 응하지 않았다.
그는 "사우디의 경제적 지원이 훗날 파키스탄의 핵무기를 빌려 쓰는 대가라는 식의 서면합의는 결코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는 덧붙였다. "만약 이란이 핵을 보유하고 이스라엘이 완전히 제약 없이 행동한다면, 장기전에 대비하는 사우디에게 파키스탄은 유용한 존재다."
이스라엘 역시 파키스탄의 핵 개발 과정을 예의주시했다. 모사드 전 조사연구국장 우지 아라드에 따르면, 1980년대 초 이스라엘은 핵무기 개발을 노리는 모든 적대적 아랍 국가를 파괴, 폭격한다는 정책을 이미 실행에 옮겼다. 그러나 파키스탄은 복잡한 도전 과제였다.
"파키스탄은 아랍 국가는 아니었지만 이슬람 국가였고, 중동의 일부는 아니었지만 미국은 중동의 일부로 대했다. 무엇보다 1980년대 파키스탄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의 핵심 파트너였고, 따라서 파키스탄의 핵 야망은 미국이 처리할 문제로 간주됐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대신 1981년 이라크 원자로를 폭격했고, 이후에는 이란에 주목했다. "파키스탄은 훗날로 미뤄두었다"면서도, 이스라엘은 파키스탄이 이란, 리비아 등에 핵기술을 확산하는 움직임을 추적하는 데 자원을 투입했다고 그는 밝혔다.
그러나 파키스탄과 걸프지역 후원국들의 관계가 언제나 원만했던 것은 아니다. 2015년 예멘 공습에 파키스탄이 국민 여론에 밀려 불참을 결정하면서 양측의 관계는 긴장됐다. 당시 한 아랍에미리트(UAE) 외교관은 사우디와 UAE가 "불가피하게" 경제적, 재정적 지원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파키스탄은 걸프 국가들보다 이란을 더 중시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했다.
그럼에도 파키스탄은 여전히 사우디, 중국, UAE로부터의 정기적인 석유 공급, 구제금융, 상환연장 지원에 의존하고 있다.
이번 상호방위협정의 내용은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발표됐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브루킹스연구소의 조슈아 화이트는 "억지력을 위해서는 일정한 건설적 모호성이 필요하다"며 "이 협정은 사우디가 여러 선택지를 갖고 있음을 알리고, 적들의 머릿속을 혼란하게 만드는 의문을 심어준다"고 말했다.
사우디 왕실과 가까운 평론가 알리 시하비는 더 단호했다. 그의 부친은 1980년대 주파키스탄 대사를 지낸 바 있다. 그는 "이번 협정은 공격을 받을 경우 사우디가 파키스탄의 핵우산 아래 들어간다는 의미"라고 주장했다.
파키스탄 국방장관 카와자 모하마드 아시프는 목요일 현지 TV에서 "우리가 가진 것과 보유한 능력을 이번 협정에 따라 사우디에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튿날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는 "핵우산은 협정 내용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파키스탄 라호르대학 안보전략정책연구센터의 라비아 악타르 소장은 이번 협정이 "전통적 안전보장, 파키스탄 훈련 및 방위 전문성 접근권, 그리고 핵무기를 다수 보유하고 있는 이슬람 국가가 사우디 곁에 있다는 상징성을 강화한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파키스탄에는 위험도 따른다. 자국은 중동보다 인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트럼프 행정부와 비교적 따뜻한 관계에도 부담이 된다.
파키스탄의 핵 독트린에 대한 파키스탄과 이스라엘 관리들의 대화내용을 알고 있는 전직 관리 한 명은 "미국과 이스라엘은 언제나 파키스탄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이 이스라엘에 위협이 될 것을 두려워했다. 이번 협정은 그 불안을 더욱 부추길 수 있다"고 말했다.
사우디가 미국과 추진해온 방위협정은 가자전쟁으로 좌초되었고, 이는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관계정상화도 지연시키고 있다. 그러나 페로즈 칸은 이번 합의가 여전히 이스라엘의 반발과 미국의 경계를 불러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파키스탄은 중국, 이란, 사우디, 미국과의 지정학적 균형을 흔들지 않도록 매우 조심해야 한다"며 "이번 협정이 인도와 이스라엘을 더 가깝게 만들고, 파키스탄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며, 인도의 파키스탄 고립 전략을 부추긴다면 파키스탄의 전략적 실책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인도 외교부는 이번 사안이 자국 안보에 미칠 영향을 분석하겠다고 밝혔다.
국제위기그룹International Crisis Group의 인도 담당 선임분석가 프라빈 돈티는 "모디 총리가 집권한 이후 인도는 이스라엘과 외교 및 군사 관계를 강화해왔지만, 인도정부가 방위 협력을 서둘러 공식화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인도는 이번 도전을 맞아 여러 방향으로 친구를 만드는 외교 전략을 한층 날카롭게 다듬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시에 사우디아라비아는 자국과 인도의 긴밀한 관계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 믿고 있다고 사우디 평론가 시하비는 전했다.
그는 "인도는 이해할 것이다. 인도는 사우디가 안보상의 필요를 가지고 있음을 이해하고 있으며 사우디와 파키스탄 사이의 역사를 잘 알고 있다"면서 "이 협정은 미국에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사우디에는 다른 선택지가 있으며 미국만이 유일한 파트너는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동시에 이스라엘에도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방위협정의 공개적이면서도 모호한 성격은 과거 파키스탄 핵무기 '암시장'과 같은 핵확산 위험을 동반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스라엘과 미국에 동시에 알리는 효과도 있다고 한 이스라엘 관리가 밝혔다. 이는 양국에게 향후 대응할—또는 대응 안 할—여지를 남겨둔 셈이라고 이 이스라엘 관리는 덧붙였다.
이 이스라엘 관리는 "파키스탄이 사우디아라비아에 핵을 넘기지는 않을 것"이라며 이스라엘 정부 내 논의를 인용했다. "하지만 사우디 역시 매우 분명한 메시지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겐 다른 친구들도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외교정책이 지그재그로 움직이고 있고, 이스라엘은 미국의 동맹국 중 하나인 카타르 수도 도하를 폭격할 정도로 자기중심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상황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파키스탄이 군사동맹을 맺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카타르를 공습하고, 미국은 방관만 하고 있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은 듯 합니다. 파이낸셜타임스 9월 19일자 기사는 사우디와 파키스탄의 협력이 매우 오래전부터 이어져온 것임을 역사적으로 짚어가며 양국이 가진 장점, 즉 오일머니와 핵무기가 현재와 같은 불확실한 정세 속에서 손을 잡은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2025년의 국제정치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이 파키스탄의 움직임입니다. 파키스탄은 인도와 공중전을 벌이더니 갑자기 미국에 접근하고, 이번에는 사우디와 군사협정을 맺어버렸습니다. 2억4000만의 인구를 가진 인구대국이면서 이슬람 국가로선 유일하게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나라가 파키스탄입니다. 아직 핵무기를 멀리 투발할 탄도미사일 기술이 충분치 않은 것으로 평가되지만 장거리 탄도미사일만 갖춘다면 세계적인 군사강국이 될 것입니다. 오랫동안 인도와 대치해와서 재래식 군사력도 강합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불투명해진 정세 속에서 사우디와 파키스탄 양국이 '더 많은 친구를 만드는' 외교의 다변화를 추구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는데, 우리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 외교도 미국과의 동맹을 주축으로 하고 있지만,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이 어떻게 흔들릴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도 여러 선택지를 만들어놔야 할 것입니다. 우적(友敵)을 혼동해서는 안되겠지만, 친구는 많이 만들어놔야 할 것입니다. 일본,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들, 유럽, 인도 등과의 외교 관계를 강화해놓을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마키아벨리는 비르투(virtù: 자기역량)와 포르투나(fortuna: 행운)를 구분하면서 한 나라의 운명이 비르투가 아니라 외부적 행운 즉 포르투나에만 의존하다가 이 포르투나가 배반할 때 어떻게 파멸하게 되는지를 '군주론'에서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침공을 몇 주간 막아내지 않았다면 미국과 유럽은 우크라이나를 포기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가 버텨내는 것을 보고 여러 나라들이 지원하기 시작했고, 그 덕에 우크라이나는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외교안보 정책도 포르투나만이 아니라 비르투를 강화하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