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이슈

돌봄노동이 여성을 병들게 할 때

동유럽의 많은 여성들이 이탈리아의 노인과 환자들을 돌보기 위해 이주노동을 했다. 그러자 그들 스스로도 점차 아프기 시작했다. 의사들은 이를 '이탈리아 신드롬'이라고 부른다
기사이미지

더 나은 임금을 받아 아들을 부양하기 위해 몰도바를 떠났던 베로니카 두루기안은 이탈리아 노인들을 간병한 후 우울증을 앓게 되었다. /사진=Andreea Campeanu/The New York Times

2025.11.07 15:38

New York Times
icon 6min
  • 0
kakao facebook twitter

이민과 이주노동의 문제는 인구절벽을 맞고 있는 한국에게 이미 중차대한 문제입니다. 그나마 한 가지 다행은 이미 서구에서 그 대부분의 문제를 선행하여 겪었기 때문에 우리가 의지만 갖고 있다면 어느 정도 대비가 가능하다는 겁니다. 노인 인구의 증가로 인한 '돌봄노동'의 증가와 이주노동의 결합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탈리아 증후군'으로 나타난 동유럽의 사례 또한 우리가 깊이 참고해야 할 것입니다.


이 신드롬은 단순히 타향살이의 외로움이나 번아웃을 넘어섭니다. 아래 소개하는 뉴욕타임스의 10월 29일자 기사에서 볼 수 있듯, 24시간 감금과도 같은 노동 환경, 언어와 문화의 장벽, 그리고 고국에 두고 온 자녀들에 대한 그리움은 수많은 여성의 정신을 무너뜨렸습니다. 심지어 이 영향은 '포스트-이탈리아 신드롬'이라 불리며, 이들이 남겨두고 온 자녀 세대에게까지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죠. '돌봄'이라는 필수 노동이 어떻게 한 개인과 그 가족을 무너뜨리는지, 그리고 이는 우리가 준비 중인 미래에 어떤 경고를 주는지 자세히 들여다보겠습니다.


정신과 의사 안드리 키셀료프 박사는 동료에게 우크라이나에서 자신의 병원을 찾은 두 여성이 "어쩐지 다른 모든 환자와는 달랐다"고 말했던 것을 기억했다. 그 여성들은 전통적인 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유형의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여성들에게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었다. 둘 다 이탈리아에서 간병인으로 일하다가 돌아왔다는 것이다.


곧 키셀료프 박사는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다른 여성들도 비슷한 증상을 보임을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료는 이 증상을 비공식적으로 '이탈리아 신드롬'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때는 20년 전 소비에트연방 붕괴 직후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동유럽 전역의 많은 여성이 노인 돌봄 수요가 팽창하던 이탈리아로 이주하던 시기였다.



이후 수십 년간 동유럽 전역의 의사들은 이 용어를 과학적 또는 의학적 진단명으로서가 아니라, 간병인의 심리적 고통을 설명하는 별명처럼 사용해왔다.


이제 이 용어는 간병인 고용주를 대표하는 단체들, 그리고 가족과 떨어져 해외에서 노인이나 장애인을 돌보며 거의 감금된 상태로 지낸 후 느끼는 불면증, 고뇌, 우울증에 대해 서로 속삭이는 여성들에게도 익숙한 용어가 되었다.


루마니아 이아시 소콜라정신의학연구소의 크리스티나 엘레나 도브레 박사는 '무언가 바뀌지 않는다면 이 문제는 계속될 것'이라며 '마치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루마니아 이아시 소콜라정신의학연구소의 크리스티나 엘레나 도브레 박사는 '무언가 바뀌지 않는다면 이 문제는 계속될 것'이라며 '마치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저를 키운 나라의 이름이 그런 증상에 붙었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아요." 외국인 돌봄 노동자 문제에 집중해 온 이탈리아 심리학자 마리아 그라치아 베르가리는 말했다.


이 여성들의 고통은 많은 이민자에게는 중요한 재정적 생명줄이자 유럽연합(EU)에서 평균 연령이 가장 높은 이탈리아에 점점 더 필수적이 된 이주노동의 숨겨진 비용이다.


이 고통은 처음 이탈리아의 이름으로 알려졌지만 이주 돌봄노동은 몰도바, 우크라이나, 루마니아뿐만 아니라 페루나 필리핀 출신의 수많은 노동자가 서유럽 대부분 지역에서 노인을 돌보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모든 노동자가 상처를 입고 귀국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신드롬은 유럽 전역에 지리적으로뿐만 아니라 세대를 거쳐 파급되고 있다. 의사들은 어머니가 일하러 외국으로 떠난 동안 남겨진 아이들에게서도 정신건강 및 행동 문제가 진단된다고 말한다.



"이제는 '포스트-이탈리아 신드롬'도 있어요." 이탈리아 간병인력의 최대 송출국인 루마니아의 소콜라정신의학연구소 소장 크리스티나 엘레나 도브레 박사는 말했다.


"아름다운 집을 갖게 되고 계좌에 돈도 좀 생겼지만 가족은 완전히 산산조각 나는 거죠."

떠나는 여성들

19세기 대규모 복합 단지인 소콜라정신병원은 루마니아 동부의 푸르른 숲속에 자리 잡고 있다. 주변 시골 지역에는 장미 덤불과 벚나무로 장식된 예스러운 집들이 점재해 있으며, 이들 중 다수는 해외로 일하러 떠난 수많은 루마니아 여성이 보낸 돈으로 지어졌다.


한때 빈곤했던 소련의 위성국이었던 루마니아는 오늘날에도 인구의 4분의1이 해외에 거주한다.


루마니아 이아시의 소콜라정신의학연구소. 병원 의료진은 이른바 '이탈리아 증후군' 환자 중에는 탈진(번아웃), 정신병, 그리고 자살 시도 사례가 포함되어 있다고 밝혔다.

루마니아 이아시의 소콜라정신의학연구소. 병원 의료진은 이른바 '이탈리아 증후군' 환자 중에는 탈진(번아웃), 정신병, 그리고 자살 시도 사례가 포함되어 있다고 밝혔다.

2016년 이후 이탈리아 증후군 환자 900명 이상을 치료해 온 루마니아 소콜라정신의학연구소의 정원 구역 모습.

2016년 이후 이탈리아 증후군 환자 900명 이상을 치료해 온 루마니아 소콜라정신의학연구소의 정원 구역 모습.


고국을 떠났던 이들 중에는 이탈리아 토스카나주 피스토이아의 한 이탈리아 노부부 집으로 들어간 코리나 바실로아이아(48)도 있었다.


2년 후, 고용주 중 한 명이 치매에 걸려 조증 발작과 환각 증세를 보였다고 바실로아이아는 루마니아 자택에서 가진 최근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 고용주는 한밤중에 소리를 지르며 아침 식사를 달라고 요구하곤 했다고 바실로아이아는 말했다.


곧 자신도 잠을 잘 수 없게 되었고 "미쳐버릴 것 같다"는 두려움이 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서서히 환청이 들리기 시작했다. 바실로아이아는 처음에 환청을 무시하려 했지만 증상은 계속되었고, 결국 어느 날 소리를 지르며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신이시여, 도와주세요, 제발 저를 여기서 나가게 해주세요!'라고 소리치고 있었어요."


바실로아이아는 이탈리아에서 입원했다가 루마니아에서도 입원했다. 바실로아이아는 어떤 기저질환도 없었지만,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지 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약물 치료를 받고 있다고 소콜라병원의 담당 정신과 전문의인 랄루카 모도라누 박사는 말했다.


"이탈리아에 가기 전에는 괜찮았어요." 바실로아이아가 말했다.

'이유 없이 울었어요'

루마니아 보건부는 '이탈리아 신드롬'의 존재를 인정했지만 증상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공식적인 집계를 하지 않아 현상의 규모를 파악하기 어렵다. 소콜라병원 대변인은 2016년 이후 900명 이상의 이탈리아 신드롬 환자를 치료했다고 밝혔다. 소콜라병원 의사들은 환자 중 일부가 번아웃, 정신병, 자살 시도를 경험했다고 말한다.


모도라누 박사는 이탈리아 신드롬이 만성화된 수십 명의 환자를 추적 관찰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면 부족은 종종 돌봄 직업의 전형적인 다른 요인들과 결합된다고 의사들은 말했다.


병원이나 요양원의 간호사들이 전문교육을 받고, 교대 근무를 하며, 사생활과 집을 가진 것과 달리, 입주 간병인들은 24시간 내내 대기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다른 이주민들과 달리 간병인으로 일하는 여성들은 자녀를 데려갈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들 여성은 자신이 헌신적으로 보살폈던 환자들의 죽음을 목격할 가능성이 높다.


많은 여성이 이해심 많고 관대한 고용주를 만나 이탈리아에서 긍정적인 경험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몇몇은 본국에서 엔지니어, 교사, 건축가와 같은 고학력 전문가였던 이들이 청소, 목욕, 옷 입히기, 식사 돕기 등을 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어려움이 가중된다.


"이 사람들은 돌봄 노동으로 인해 완전히 지워져 버렸죠." 베르가리는 말했다.


임금이 낮고 체불되는 일도 잦아 몰도바를 떠난 의사 베로니카 두루기안(73)의 경우가 그랬다.


전직 의사였으나 이탈리아에서 간병인으로 일했던 두루기안은 그 경험이 "나를 망가뜨렸다"고 말했다.

전직 의사였으나 이탈리아에서 간병인으로 일했던 두루기안은 그 경험이 "나를 망가뜨렸다"고 말했다.


이탈리아에서 두루기안은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말이 서툰 여성을 돌봤고, 그다음에는 밤새 부모를 찾는 또 다른 여성을 돌봤다. 세 번째로 돌본 여성은 끊임없이 적대적이었고 자신의 모든 행동을 비난했다.


"이유 없이 울었고, 아침에 일어나서도 울었으며 밤에는 잠을 못 잤어요." 두루기안은 말했다. "그 일이 저를 망가뜨렸어요."


두루기안은 항우울제를 처방받았고 약 10년 동안 계속 복용했다.


이탈리아에서 약 20년을 보낸 후 몰도바로 돌아온 두루기안은 은퇴한 여성들을 위한 학습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데, 이들 중 다수도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여성들이다.


"우리 중 많은 이들이 이탈리아 신드롬을 겪고 있어요. 많은 이들이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가죠."

어려운 치료

전문가들은 만성 환자를 돌보는 사람들을 위한 '간병인 신드롬'과 많은 이주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인 '율리시스 신드롬'에 대해 설명해 왔다.


어떤 면에서 '이탈리아 신드롬'은 이 둘을 결합한 것이다.


이탈리아는 노동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몇 가지 조치를 도입했지만 가정 내에 주로 숨겨져 있는 이 산업을 규제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전체 가사 노동자의 거의 절반이 여전히 미등록 상태로 고용되어 있어 특히 취약한 상태에 놓여 있다.


간병인 고용주 단체인 '도미나Domina'의 사무총장 로렌초 가스파리니는 이탈리아 가정들이 노동자들을 합법적으로 고용할 여력을 갖도록 세금 감면을 촉구하고 노동자들이 업무에 대비할 수 있도록 워크숍을 조직하고 있다.


"그들의 고통을 없앨 수는 없어요." 가스파리니 사무총장은 말했다. "하지만 완화할 수는 있습니다."


이탈리아 바리에서 교육 중인 조지아 공화국 출신 가정 도우미들. 도미나가 주관한 이 교육 과정에는 간병인 탈진(번아웃)에 대한 세션이 포함되었다.

이탈리아 바리에서 교육 중인 조지아 공화국 출신 가정 도우미들. 도미나가 주관한 이 교육 과정에는 간병인 탈진(번아웃)에 대한 세션이 포함되었다.

외국인 간병인들을 치료했던 이탈리아 심리학자 마리아 그라치아 베르가리는 '이러한 증후군에 나를 키운 나라의 이름이 붙었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는다'고 말했다.

외국인 간병인들을 치료했던 이탈리아 심리학자 마리아 그라치아 베르가리는 '이러한 증후군에 나를 키운 나라의 이름이 붙었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는다'고 말했다.


돌봄노동의 수요는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도미나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이탈리아에는 가사 노동자가 약 160만 명 있으며, 이들 대부분은 이주 여성이고 그중 약 절반이 노인을 돌보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치매 사례도 증가하고 있지만, 문화적 규범과 경기 침체로 인해 가족들이 부모를 요양원으로 모시기가 어렵다.


"할아버지를 내버리는 것 같을 거예요." 로마에서 알츠하이머병을 앓는 할아버지를 위해 루마니아 출신 전일제 간병인을 고용하고 있는 마르지아 멜로니(28)는 말했다.


멜로니는 가족이 간병인에게 공정한 급여를 지급하고 매년 한 달씩 고향에서 보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멜로니는 "힘든 일"이라고 인정하며 덧붙였다. "제가 제 가족을 떠나면 감당할 수 없었을 거예요."

'포스트-이탈리아 신드롬'

동유럽 이주 물결이 한 세대를 지난 지금, '이탈리아 신드롬'의 영향은 많은 가정에서 전이되고 있다. 집을 떠난 여성들의 자녀들도 정신과 병동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미하일 탐바는 어머니가 간병인으로 일하기 위해 몰도바를 떠나 이탈리아로 갔을 때 겨우 8살이었다. 탐바는 사촌들처럼 해외에서 장난감과 새 옷을 받게 되기를 바랐다. 어머니가 누텔라 한 병을 들고 돌아왔을 때, 탐바는 어머니를 알아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탐바는 어머니와 관계를 맺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청소년기 대부분 동안 어머니는 이탈리아를 오갔고, 탐바는 삼촌, 이웃과 함께 살았지만 주로 술을 마시고 폭력적인 성향이 있는 의붓아버지와 함께 지냈다.


"주변에 저를 보호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탐바(30)는 말했다. "그때부터 우울증이 시작됐어요."


"우리는 단지 먹고살기 위해 버려짐, 외로움, 그 모든 것을 겪어야 했어요.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에요."


여덟 살 때 어머니가 이탈리아로 떠난 미하일 탐바는 새로운 '포스트 이탈리아 증후군'으로 여겨지는 증상들로 고통받고 있다.

여덟 살 때 어머니가 이탈리아로 떠난 미하일 탐바는 새로운 '포스트 이탈리아 증후군'으로 여겨지는 증상들로 고통받고 있다.


루마니아 의사들은 어머니 없이 자란 청소년들이 현재 우울증, 애착 문제, 약물 남용,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ADHD), 심지어 자살 시도까지 겪는 비율에 대해 경각심을 표하고 있다.


루마니아 수체아바시의 아동 심리학자 로레다나 발란은 지난해 자신의 환자 중 거의 절반이 적어도 한 명의 부모가 해외에서 일하고 있었고 15%는 어머니가 이탈리아에 있었다고 말했다.


여전히 이탈리아 베로나의 한 가정에서 일하고 있어 이름만 밝히기를 요청한 몰도바 출신 간병인 루치아(58)는 2000년대 초 이탈리아에 도착한 후, 16살이던 딸이 자살을 시도했다고 말했다.


이제 루치아는 밤에 자신이 돌보는 노부인이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하며 잠에서 깨지만, 가보면 노부인은 잠들어 있다. 하지만 "스트레스와 외로움으로 병들었음에도" 루치아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


"이제 집에서 저를 기다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루치아는 말했다. 자녀들을 볼 때면 "낯선 사람들 같아요."


1825년 창간된 미국의 진보 성향 일간지로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합니다. 미국에서 가장 많은 퓰리처상을 수상(130회 이상)했습니다.
 
close
comment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