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6월 24일 토요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두바이 e스포츠 및 게임 페스티벌'에서 팬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AP/뉴시스
2025.10.10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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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입 암살 게임 시리즈 '어쌔신 크리드'가 올가을 예상치 못한 업데이트를 맞이한다. 개발사인 프랑스의 유비소프트는 최근 사우디아라비아를 배경으로 한 새로운 미션 세트를 발표했다. 이 소식은 유비소프트가 사우디 국영 기업인 새비게임스 그룹Savvy Games Group과 파트너십을 체결했다는 올해 초 보도에 뒤이어 나왔다. (유비소프트는 사우디 배경의 레벨이 "현지 및 국제기구"의 도움을 받아 제작되고 있다고 밝혔다.) 플레이어들은 사우디 정부가 관광지로 홍보하고 있는 역사적인 도시 알울라Al Ula를 누빌 수 있게 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현재 영화, 스트리밍, 음악 산업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닌 게임 산업에 수십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지난 9월 29일, 사우디는 가장 거대한 행보를 보였다. 1조 달러(1400조 원) 규모의 사우디 국부펀드(PIF)가 이끄는 컨소시엄이 미국 3위 게임 회사인 일렉트로닉아츠(EA)를 550억 달러(76조 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디오 게임 업계의 초강대국으로 빠르게 변모시키고 있는 일련의 기습적 투자의 가장 최근 사례다.
EA 인수에서 사우디의 파트너는 사모펀드 회사인 실버레이크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가 설립한 투자회사 어피니티파트너스이며, 쿠슈너의 참여는 규제 승인 과정을 순탄하게 만들 수 있다. EA의 새로운 소유주들은 '매든Madden', '심즈The Sims', 그리고 사우디의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가장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진 축구 게임 시리즈 'FC'(구 'FIFA')를 포함한 프랜차이즈들을 관리하게 된다.
EA는 이미 화려한 사우디의 보유 자산 목록에서 가장 빛나는 보석이 될 것이다. PIF는 사우디아라비아를 게임의 중심지로 만들기 위해 새비게임스에 380억 달러(52조 원)의 실탄을 쥐여줬다. 2년 전, 새비는 미국 개발사 스코플리Scopely를 인수했다. 스코플리의 '모노폴리 고!'는 2023년 출시 이후 50억 달러(7조 원) 이상을 벌어들인 세계 최고 수익 모바일 게임으로 손꼽힌다. 지난 5월에는 '포켓몬' 모바일 게임을 만드는 미국 회사 나이언틱Niantic의 게임 부문을 인수했다. 새비는 또한 라라 크로프트가 등장하는 '툼레이더' 등의 타이틀을 소유한 스웨덴 회사 엠브레이서Embracer 그룹의 주요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사회 의석도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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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F 자체도 게임 업계의 거물급 기업들에 대한 지분을 추가로 구축해왔다. PIF는 일본의 닌텐도, 캡콤('스트리트 파이터'), 코에이('닌자 가이덴'), 한국의 넥슨과 엔씨소프트, 그리고 현재까지 약 4억5000만 장이 팔린 시리즈 '그랜드 테프트 오토'의 제작사인 미국의 테이크투의 3대 주주 중 하나다. 또한 일본의 토에이('드래곤볼 Z')와 스퀘어에닉스('파이널 판타지')의 5대 주주로 손꼽히며, 스퀘어에닉스에서는 이사회 의석도 차지하고 있다. 본지 집계에 따르면, EA를 제외한 PIF의 게임 보유 자산은 총 117억 달러(16조 원)에 달한다. 다른 사우디 국영 펀드들도 추가적으로 게임에 투자를 하고 있다.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에요." 새비의 책임자로 임명된 캐나다 출신 업계 베테랑 브라이언 워드Brian Ward가 말했다. 그의 팀은 매년 "수백 건"의 잠재적 인수 대상을 검토한다. 다른 자금 조달원이 대부분 고갈되었다는 사실은 새비가 좋은 거래를 성사시킬 수 있는 능력을 더욱 강화한다. 모바일 보급률 정체와 팬데믹 시기 캐주얼 게이머 이탈로 인한 업계 침체 속에서, 게임 산업에 대한 벤처캐피털 자금은 2021~22년 정점 이후 약 4분의3 감소했다.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의 게임 전문가인 요스트 판 드뢰넨Joost van Dreunen은 사우디의 전략이 "시장 지배력을 확립하기 위해 막대한 금액을 쏟아붓는 것"이라고 기술했다.
워드는 빈살만 왕세자로부터 받은 지시가 "게임과 e스포츠를 위한 디즈니 같은 회사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계획의 일부는 슈퍼팬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이다. 디즈니에게 디즈니랜드가 있다면 사우디는 라이브 게임 토너먼트에서 기회를 본다. 2022년 새비는 e스포츠 기업인 ESL과 페이스잇faceit을 총 15억 달러(2조 원)에 인수했다. 또한 텐센트가 후원하는 중국 기업 히어로E스포츠의 지분 30%도 보유하고 있다. 새비는 전 세계 e스포츠 시장의 40%를 장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직 e스포츠 부문은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 목적은 팬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며, 그 점에서는 성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2년간 사우디아라비아는 리야드에서 e스포츠 월드컵을 개최해왔으며, 이곳에서 팀들은 '리그 오브 레전드'와 같은 게임으로 경기를 치른다 (빈살만 왕세자는 프로 선수들이 방문했을 때 그들과 함께 게임을 하기도 한다). 올여름 행사에서는 티켓이 약 25만 장 판매되었고, 온라인에서는 트위치나 더우인 같은 플랫폼을 통해 7억5000만 건의 스트리밍을 기록했으며, 시청자의 절반은 중국에서 접속했다. 한 서방 투자자에 따르면, 업계 거물들은 같은 시기에 열리는 콘퍼런스를 위해 방문하며, 이 행사는 게임 업계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로 자리 잡았다. 내년에 사우디는 2년마다 열리는 e스포츠 네이션스컵이라는 또 다른 토너먼트를 리야드에서 시작할 예정이다.
이 모든 일의 명분은 왕세자의 취미를 만족시키는 것 외에도 새로운 국내 산업을 창출하는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석유 중심의 경제에서 벗어나 다각화를 꾀하고 있다. 사우디의 '비전 2030' 계획은 2030년까지 게임 분야에서 일자리 3만9000개를 창출하겠다고 약속한다. 새비는 여대인 프린세스누라대학교Princess Nourah University에서 게임 아티스트를 양성하고 있다. 사우디 정부에 따르면 자국 게이머의 48%가 여성이며 새비 직원의 4분의1을 약간 넘는 수가 여성인데, 이는 남성 중심적인 업계 표준과 거의 일치하는 수치다.
새비 직원의 3분의1을 약간 넘는 수가 외국인이며 브라이언 워드는 업계가 성숙해짐에 따라 이 비율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한다. e스포츠 월드컵을 주최하는 독일인 랄프 라이헤르트는 더 많은 사람이 직접 사우디를 보게 되면서 서양인들이 투자하거나 일하도록 설득하는 것이 더 쉬워지고 있다고 말한다. "사우디에 비판적인 사람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겠지만 이를 둘러싼 잡음은 극적으로 줄어들었죠." 최근 영화 및 코미디 축제와 F1 그랑프리를 시작한 스포츠 및 엔터테인먼트 투자와 마찬가지로, 사우디의 게임 산업 진출은 사우디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는 데 도움이 된다.
"중동에는 5000~1만 년에 달하는 인류 역사가 있지만 그 이야기 중 어떤 것도 게임에서는 다뤄진 적이 없어요. 그건 엄청난 기회죠." 워드가 말한다. 그는 자국 전통을 인기 게임으로 각색하는 우수 사례로 일본, 중국, 한국을 꼽으며, 서유럽이나 미국보다 많은 3억3000만 명의 게이머를 보유한 아랍어권 세계가 충분한 대접을 못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중국의 전승에 기반한 게임인 '검은 신화: 오공'은 글로벌 게임 플랫폼 스팀 사용자들에 의해 '올해의 게임'으로 선정되었다. 워드는 사우디 문화를 투영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동아시아 게임처럼 미래의 사우디산 게임도 전 세계적인 매력을 갖기를 희망한다.
많은 게이머는 사우디의 소유권이 게임 콘텐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해한다. 중국이 중요한 영화 시장이 되면서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은 1990년대에는 기꺼이 다루려 했던 티베트와 같은 민감한 주제를 회피해왔다. 게임 업계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쉽게 상상할 수 있다. 1992년 걸프전 직후, EA는 가상의 아랍 독재자가 악당으로 등장하는 '데저트 스트라이크'를 출시했다. 2005년 테러와의 전쟁 속에서 EA의 '배틀필드2'는 미군이 '중동 연합'을 포함한 적들과 맞서 싸우는 내용을 담았다. EA의 새로운 소유주 아래에서도 이러한 게임이 출시될까? EA의 대표인 앤드루 윌슨은 직원들에게 여전히 "과감하고 표현력이 풍부한" 콘텐츠가 우선이며 회사의 "가치는... 변함이 없다"고 단언했다.
사이드 퀘스트
그러나 곧 출시될 '어쌔신 크리드' 업데이트는 사우디 자본이 어떻게 콘텐츠에 미묘하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것이 유일한 사례는 아니다. 지난 3월, 격투 게임 '아랑전설Fatal Fury'의 팬들은 게임의 최신 버전에 새로운 캐릭터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추가된다는 소식에 놀랐다. 게임에서 호날두는 불타는 공으로 상대를 공격하며 "숙련된 격투가에게도 막을 수 없는 힘"으로 묘사된다.
이 이례적인 콜라보는 사우디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 호날두는 리야드에 연고를 둔 팀인 알나스르FC의 주장이며 이 축구팀의 대주주는 PIF다. '아랑전설'의 일본 개발사 SNK의 대주주는 사우디의 비영리 단체인 미스크Misk재단이며, 이 재단의 설립자이자 회장은 바로 게임을 사랑하는 그 왕세자다.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의 리더십 아래, 사우디아라비아가 탈석유 시대를 겨냥한 다각화 전략을 구사하고 있음은 PADO 독자들에게는 친숙할 겁니다. 사우디가 펼치고 있는 문화 사업 중에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분야는 바로 게임인데 이제 게임을 좋아하는 분들께서는 사우디의 존재감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세계 3위 게임 기업인 일렉트로닉아츠를 사우디 국부펀드가 인수하게 됐기 때문입니다. 인수 규모로 보면 코스피 시총 3~4위 수준입니다.
사실 사우디 국부펀드는 이미 한국의 대표적인 게임 기업인 넥슨과 엔씨소프트의 3대 주주 중 하나입니다. 이는 사우디의 '오일 머니'가 단순히 해외 유명 게임사를 사들이는 것을 넘어, 이제는 국내 게임 산업의 지형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는 주체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즐기는 게임의 미래가 지구 반대편의 결정에 좌우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목표는 단순히 돈을 버는 것을 넘어섭니다. 그들은 게임과 e스포츠를 통해 석유 중심 경제에서 벗어나고, 나아가 문화적 영향력, 즉 소프트파워까지 손에 쥐려는 '게임계의 디즈니'가 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연 사우디는 어떤 방식으로 자신들의 '게임 제국'을 건설하고 있을까요? 이코노미스트의 10월 3일 분석 기사를 통해 이 거대한 자본의 움직임이 앞으로 우리가 즐길 게임의 내용과 한국 산업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