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

트럼프의 비공식 외교 채널: 제도·절차보다 인맥

전통적인 정책결정 절차를 거치기보다, 외국 정부들은 미국 대통령의 귀를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몇몇 측근들을 직접 접촉하고 있다
기사이미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가 2025년 12월 29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 마라라고에서 열린 트럼프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회담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로이터/뉴스1

2026.01.02 15:51

Financial Times
icon 10min
  • 0
kakao facebook twitter

지난해 6월 PADO가 소개한 니얼 퍼거슨의 인터뷰에서 이 세계적인 역사학자는 현재의 미국을 "로마 공화정 말기와 닮았다"고 진단했습니다. 로마가 공화정에서 제정帝政으로 넘어가기 직전의 혼란상이 미국에서 엿보인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최근 미국의 변화는 심상치 않습니다. 지난달 26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한 트럼프의 '국가자본주의'는 연방정부가 시장과 기업에 깊숙이 개입하며 기존 자본주의와는 결이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변화는 미국이라는 국가의 물리적 팽창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1776년 건국 당시 300만 명에 불과했던 인구는 이제 3억 명을 훌쩍 넘었습니다.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이 설계했던 초기 공화정 시스템으로 이 거대한 나라를 유지하기란 버거운 일이 되었습니다. 로마 역시 확장을 거듭하며 비대해진 관료제와 상비군을 감당하기 위해 결국 제정으로 이행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국정 운영 방식은 이러한 '제정화' 경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트럼프의 외교 정책이 과거와 달리 '제왕적'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공식 외교 라인 대신 가족이나 측근을 통해 타국과 교섭하는 방식은, 거대한 가문을 통해 국가를 통치하던 옛 제왕들의 '가족 비즈니스'를 연상케 합니다. 퍼스트레이디나 자녀들이 국정에 참여하는 관행이 없던 건 아니지만, 트럼프 시대에 이르러 그 경향은 더욱 노골화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를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재단할 수는 없습니다. 역사적으로 공화정은 드문 체제였고, 대다수 인류사는 왕정과 제정의 시간이었습니다. 니얼 퍼거슨은 "250년 이상 지속된 공화국은 전례가 드물다"고 말합니다. 공교롭게도 올해는 미국 건국 2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로마 공화정은 귀족파와 평민파의 극한 대립 속에서 마리우스와 폼페이우스, 카이사르를 거쳐 결국 옥타비아누스라는 제왕의 등장을 맞이했습니다. 미국이 건국 250년을 기점으로 설계된 공화정을 수성할지, 아니면 로마처럼 새로운 형태의 제정으로 이행할지 전 세계가 주시하고 있습니다. 역사가 반복될지 새로운 길이 열릴지는 미지수이나, 미국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합니다. 우리는 가치 판단을 유보하고, 냉철하게 이 거대한 변화를 직시해야 합니다.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남부 플로리다 소재 비공식 '제2백악관'과 맞닿은 지역구를 둔 공화당 소속 브라이언 매스트 연방하원의원은 자신의 워싱턴 사무실에 커다란 원목 회의테이블을 두고 있다. 그는 이 테이블 위를 방문객들을 위한 작은 생수병들로 늘상 채워둔다.


이곳에는 워싱턴의 각국 대사관과 전 세계 수도들에서 온 손님들이 매일같이 찾아온다. 바로 전날만 해도 나이지리아, 터키, 아제르바이잔, 대만, 그리고 그가 기억하지 못하는 두 나라에서 방문객이 왔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한 가지 준비를 하고 온다고, 하원 외교위원장을 맡고 있는 매스트 의원은 말한다. 바로 '자기 나라가 미국에 무엇을 팔 수 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다.


"이들 모두가 여기 들어와서는 '우리나라의 이 광물은 품질이 세계 최고입니다' 아니면 '우리나라는 이 광물 정제 능력이 최고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는 자신의 의회 사무실에서 이렇게 말했다.



매스트 의원은 이를 새로운 유행에 비유하려다 적절한 표현을 찾지 못하고 잠시 망설인다. 요즘 가장 유행하는 "잇(it) 드레스" 같은 걸까?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새 핸드백이라고 부르죠. 모두가 이 핸드백을 들고 옵니다."


거래적 접근이 트럼프 2기 외교정책을 규정하는 핵심 주제 가운데 하나라면—즉, 미국이 외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가 아니라, 외국이 미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묻는 방식—,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은 '특사'다.


한 전직 국방관료의 표현을 빌리면 "사람에 따른 정책"이 지금까지 수십 년간 미국 외교정책을 떠받쳐온 절차와 제도를 대체했다. 국무부 대신 전면에 나선 인물은 부동산 개발업자 출신인 스티브 위트코프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오랜 친구이자 사업 파트너로, '평화 협상'을 담당하는 특사로 임명돼 모스크바, 리야드, 예루살렘 등지를 오가며 이른바 '거래'를 성사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위트코프의 곁에는 트럼프의 사위이자 벤처캐피털리스트인 재러드 쿠슈너가 있다. 그는 공식적인 정부 직함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걸프 지역 군주국들과의 비즈니스를 병행하는 와중에도 미국을 대표해 중동과 우크라이나 평화 협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냈다.


트럼프의 오랜 측근이자 선거자금 후원자인 톰 배럭은 주튀르키예 미국 대사로 활동하는 한편, 더 눈에 띄게는 시리아와 레바논에서의 평화를 중개하는 전방위 '중개인' 역할을 맡고 있다. 트럼프의 딸 티파니의 레바논계 미국인 시아버지인 마사드 불로스는 서아프리카에서 오랫동안 비즈니스 제국을 이끌어온 인물이다. 놀랍지 않게도 그는 트럼프의 아프리카 특사이기도 하다.


이 분야를 한때 지배하던 전통적인 조언과 감독의 경로, 그리고 '정책 관여의 위계 구조'는 사라졌다고, 현 행정부를 포함해 여러 행정부에서 근무한 한 전직 미국 관리는 말한다. 수십 년에 걸쳐 축적된 전문 외교의 경험과 해당 분야 전문가들 역시 자취를 감췄다.


"인적 범위가 충격적일 정도로 작습니다." 이 전직 관리는 말했다.


시리아를 대표해 여러 미국 행정부를 상대로 로비를 해왔고, 시리아의 새 정부와도 소통해온 모아즈 무스타파 '시리아 긴급대응 태스크포스'(STF) 사무국장은 핵심을 이렇게 짚는다. "스티브 위트코프나 톰 배럭처럼 오래된 부동산 업계 친구라면, 그들이 바로 핵심 인사들입니다. 이방카와 재러드도 마찬가지로 핵심이죠." 그는 트럼프의 딸과 사위를 가리켜 이렇게 말했다.


"아마 도널드 주니어도 포함될 겁니다." 그는 덧붙였다. 그리고 그보다 한 단계 아래에는 트럼프의 국무장관 겸 국가안보보좌관인 마코 루비오, 그리고 부통령 JD 밴스가 자리하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이들이 바로 트럼프 2.0 체제에서 전 세계를 상대하는 핵심 인물들이다. 이들이 곧 '비공식 외교 채널'이다. 백악관은 이를 오랫동안 유지돼 온 '상향식' 접근에서 벗어나, '대통령이 주도하는 톱다운 과정'으로의 의도적인 전환이라고 설명한다.


백악관 부대변인 애나 켈리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이 중 상당 부분은 대통령이 소수의 신뢰하는 고위 인사들에게 직접 지시하는 방식으로 이뤄집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대통령은 비전통적인 배경을 갖고 있고, 그의 팀 구성원들 다수 역시 비전통적인 이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재러드(쿠슈너)와 스티브(위트코프)는 비즈니스 거래 전문가들입니다만, 대통령의 신뢰를 받고 있죠"라고 말했다.


물론 어느 행정부든 특사들은 존재해 왔다. 그중에는 직책에 비해 과도한 권한을 행사하거나, 조직적 틀을 상대적으로 경시했던 인물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오랜 경력의 공직자들이 지적하듯 과거에는 최소한 관료 조직이 기능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미국 외교관협회의 표현을 빌리면 "미국의 외교 역량이 내부로부터 붕괴되고 있는" 환경에서, 이를 견제할 사람들이 없는 상황이다.


국무부의 자원을 대폭 삭감하고 다수의 고위 관료들을 주변으로 밀어낸 데다, 소수의 재계 거물들을 고문 겸 대리인으로 임명해 해외에서 미국의 정책들을 수행하도록 하면서, 트럼프는 워싱턴에서 외교정책을 수행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고 직업 외교관들, 외국 외교관들, 그리고 의회 인사들은 입을 모은다.


"국가안보회의(NSC)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국무부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모아즈 무스타파는 말한다. "중요한 건 핵심 측근들뿐입니다."




전통적인 외교 채널에 익숙했던 많은 전통적 동맹국들로서는, 트럼프 행정부에 접근하는 방법을 파악하는 일 자체가 상당한 도전이 됐다. 예컨대 한국의 경우, 협상단은 올해 초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접 입장을 호소하기 위해 워싱턴을 오가는 30시간짜리 왕복 일정을 고된 방식으로 여러 차례 감행해야 했고, 때로는 일주일에 두 번이나 그런 여정을 반복해야 했다고 한다.


한 일본 외교관은 "초기에는 싱크탱크와 로비 단체들이 트럼프 1기 때와 마찬가지로 백악관과의 긴밀한 연결 고리를 갖고 있다고들 말했었다"고 회상한다. 그러나 곧 "그런 연결은 모두 끊어졌거나,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고 그는 말했다.


더 나아가 트럼프의 핵심 인맥 안에 있으면서도 트럼프에게 솔직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인물들의 풀은 극도로 제한돼 있다. 한 유럽 외교관은 "요즘은 트럼프와 가깝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수천 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아르헨티나의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은 이른바 '마가(MAGA)의 우드스톡'으로 불리는 보수정치행동회의(CPAC)에 해마다 순례하듯 참석하며 트럼프의 측근 그룹과의 연결 고리를 구축해 왔다. 그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자신이 CPAC를 모방해 만든 행사에서 트럼프의 며느리 라라 트럼프와 함께 춤을 추기도 했다.


그러나 양측의 공통된 정치적 세계관은 개인적 인맥으로 한층 보강됐다. 밀레이 정부의 경제부 차관인 호세 루이스 다사와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 사이의 관계가 대표적이다.


월가에서 함께 일하던 시절 다사와 친분을 쌓은 베센트는 이후 유용한 우군이 되었다. 재무장관은 4월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방문해, 미국의 대외 지원이 세계 곳곳에서 급속히 위축되는 와중에도 행정부 차원의 지원 패키지를 주도했다.


트럼프가 독재자들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절차를 경시하는 태도를 공유하는 외국 관리들은 트럼프의 워싱턴에서 가장 편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여러 행정부에서 근무한 한 미국 외교관은 "가장 빠르게 적응한 이들은 걸프 국가들이었다"며, 이들 국가가 개인, 정치, 경제를 섞어버리는 트럼프 행정부의 방식과 "똑닮은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미국 외교관은 트럼프가 재집권한 뒤 어느 걸프 지역 상대국으로부터 "우리는 정말 행복하다"는 말을 들었다고 회상했다. 그 걸프 국가 관리는 바이든 행정부의 구조보다 새로운 체제가 훨씬 다루기 쉬웠다며, 트럼프의 특사들 가운데 "우리의 친구들"에게 접근하면 사안이 신속히 해결되고 더 이상 "번거로운 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다"고 안도 섞인 평가를 내놨다.


"모두가 적응해야 했다. 왕에게 접근하는 통로는 많지 않다." 비공식 채널과 아첨이 접근의 필수 조건인 국가들과 일해온 경험이 있는 한 동남아시아 외교관은 이렇게 말했다. "개인적 연결이 무엇보다 중요한 국가를 상대하는 일이 우리 지역의 많은 나라들에겐 낯선 일은 아니다."


트럼프는 자유세계의 지도자로서의 역할과 자신의 개인적 사업 이해관계가 뒤섞였다는 의혹을 부인해 왔다. 그러나 그의 발언을 보면, 어디까지가 미국의 국익이고 어디서부터 개인의 이해관계가 시작되는지는 때때로 불분명해 보인다.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자리입니다." 그는 최근 집무실인 오벌오피스를 두고 이렇게 말한 뒤, 옆에 앉아 있던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에게 고개를 돌려, 외국인의 기부를 제한하는 규정만 아니었다면 새 연회장 건설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왕세자에게 "수표를 달라고 요청했을 것"이라고 농담처럼 덧붙였다.


스위스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집무실 서재를 꾸미기 위해 기업 경영진들이 롤렉스 탁상시계와 "45 & 47" "대통령" 각인이 들어간 금괴를 기증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국내에서 논란이 일었다. 그러나 이 제스처는 39%에 달할 수 있었던 관세 부과 위협을 15%로 낮추는 데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외교의 이 새로운 시대에는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제안'이 필수적이다. 7월 백악관에서 여러 아프리카 국가 정상들이 공동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을 때, 이들 모두는 자국의 수익성 높은 광물 자원을 앞세워 그를 설득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런 게임에서 특히 두각을 나타낸 나라는 파키스탄이다. 미국과 걸프 지역에 기반을 둔 파키스탄계 사업가들이 트럼프 일가 및 위트코프와의 인맥을 활용해 핵심 광물과 암호화폐 관련 거래를 제안하고 있다. 위트코프의 아들이 올해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파키스탄의 실세로 꼽히는 아심 무니르 육군 원수와 만났다는 점도 이런 커넥션의 일부다. 이는 자신을 파키스탄의 "경제외교 대사"라고 소개하며 미 대통령의 핵심 인맥과 비선(秘線)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두바이의 한 투자자의 설명이다.


그는 "파키스탄인들에게는 이것이 훨씬 자연스러운 사업 방식"이라며 "트럼프와 위트코프는 인적 관계의 가치를 이해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2기 집권 첫해에 무엇을 배웠느냐는 질문에 어느 유럽 외무장관은 이렇게 답했다. "모든 것은 조건부라는 점. 직접적인 이익을 제시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미국 행정부는 트럼프의 거래적 성향이 미국 국민에게 이익이 된다고 주장한다. 미국은 막대한 부채를 완화해야 하고, 군사, 인프라, 데이터를 떠받치는 핵심 광물에 대한 접근권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백악관 부대변인 애나 켈리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 시절에는 "하급 관리가 한 번 회의를 하고, 중간급 관리가 또 회의를 하고, 고위 관리가 다시 회의를 한 뒤에야" 비로소 "어쩌면 양자 회담"—양국 고위 대표가 참석하는 공식 회의—으로 이어졌다.


애나 켈리는 "물론 [트럼프에게도] 활용하는 외교 정책 기구는 있다"고 덧붙인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중간 단계를 생략하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다고 본다.


이에 대해 트럼프의 비판자들은 그가 절차를 대거 제거한 이유가 자신의 사업적 이해관계를 외교정책과 보다 매끄럽게 결합하기 위해서라고 반박한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국무부 고위 관료를 지낸 조너선 위너는 "콩고민주공화국, 이라크, 시리아, 리비아 등에서 진행 중인 업무에서도 이런 현상을 직접 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비즈니스 모델이란, [외국 정부 인사들이] 미 행정부와 가까운 인물들과 거래를 하고, 트럼프와 매우 가까운 사람들에게 사적 이익이 돌아가도록 만드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상원 외교위원회의 중진 민주당 의원인 코리 부커는 수년간 알고 지내온 외국 인사들의 태도 변화에 "경악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제 미 행정부 인사들과의 대화에서 대통령의 사업적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일을 극도로 "의식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들의 외교 전략의 한 부분이 대통령의 사적 이해관계를 챙기는 것이라는 사실은 충격적입니다."


이달 초 미국 행정부가 르완다와 콩고민주공화국과의 협정을 통해 미국 기업들에 광물 자원 접근권을 부여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직접 나서 이렇게 자랑했다. "미국에 10개월 만에 18조 달러 이상이 투자되거나, 투자 약속이 이뤄졌다."


한 전직 미국 관리는 "다른 나라 행정부에서라면 외무장관이 상대국 외무장관을 만나 '상공회의소 회의를 열어 사업 기회를 찾아보자'고 말했을 텐데, 이러한 방식이 완전히 뒤집힌 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새로운 운영 방식 아래에서는 은행과 기업인들이 먼저 사적으로 만나 '사업 거래를 발굴'한 후, 각국 정부는 이를 트럼프의 호의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한다고 이 전직 관리는 말한다.


미국의 일부 적대자들조차 트럼프식 워싱턴을 '궁정 문화'에 비유하며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이라크 민병대의 한 지도자는, 지난해 8월 유럽 정상들이 우크라이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대통령 집무실을 찾았을 때 트럼프가 그들을 맞이한 방식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가 유럽 지도자들을 "마치 학교 아이들처럼 자신의 책상 앞에 앉도록 강요했다"고 회상했다.


"트럼프는 강한 지도자다. 그의 정책에는 동의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그 점을 존경한다." 그는 이렇게 떠올렸다.


미국의 많은 유럽 동맹국들은 이런 아첨 외교를 수치스럽게 느낀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은 이를 비전통적인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한 핵심 전략으로 인식하고, 결국 그 흐름에 몸을 싣고 있다.


나토(NATO) 사무총장 마르크 뤼터는 유럽이 트럼프를 우크라이나 방어에 계속 관여시키는 데 사활을 걸고 있던 지난 6월, 공동 기자회견에서 그를 "대디"(Daddy, 아빠)라고 지칭해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그리고 골프가 있다. 일본의 고(故) 아베 신조 전 총리는 2017년 트럼프가 첫 취임 선서를 하기 전, 다른 어떤 세계 지도자보다 먼저 미국을 찾았고, 골프를 사랑하는 차기 대통령에게 금도금 퍼터를 선물한 데다 함께 라운드를 돌며 적잖은 화제를 낳았다.


아베는 다만 시대를 앞서 갔을 뿐이었다. 올봄 트럼프와 영국 총리 키어 스타머 경의 회담을 앞두고, 영국 정부 내에서 누가 가장 좋은 골프 스윙을 갖고 있는지를 두고 논의가 오갔다.


핀란드 대통령 알렉산데르 스투브는 국가대표 골퍼 출신으로, 아버지가 "골프 실력이 훗날 인생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자주 말하곤 했다고 밝혔다. 당시에는 믿지 않았지만, 3월 트럼프와의 라운드 한 번으로 그는 유럽 외교의 '상석'에 오르게 됐다. 그는 우크라이나 문제에 대해 트럼프가 자신의 말을 들어주길 바랐고, 이를 위해 트럼프가 좋아할 것을 내놓았다. 바로 북극 항로를 위한 쇄빙선이었다.




반대로 너무 적게 내놓거나, 찬사를 바치는 데 주저한 이들은 반갑지 않은 대가를 치렀다. 브라질 당국이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에 대한 연방 차원의 쿠데타 혐의를 철회하지 않자, 트럼프는 50% 관세를 부과했다.


이후 브라질은 미국 기업들의 로비를 일부 동원해 관세의 일부를 철회하는 데 성공했다.


트럼프 1기 당시 널리 알려진 친분에도 불구하고,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 역시 '적절한 찬사'를 내놓지 않았다는 이유가 일부 작용한 듯 불이익을 받았다. 모디는 지난 5월 인도와 오랜 적국인 파키스탄 간 나흘간의 충돌 이후 트럼프가 휴전의 공을 트럼프 자신에게 돌리자 격분했다. 이는 미국 대통령에게 찬사를 쏟아낸 파키스탄의 반응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모디 정부는 워싱턴의 '슈퍼 로비스트'이자 트럼프 선거캠프 출신 인사인 제이슨 밀러를 고용했지만, 오랫동안 기대를 모아온 미-인도 무역 협상은 여전히 교착 상태에 놓여 있다. 싱가포르국립대의 C 라자 모한 교수는 "트럼프는 모디가 직접 전화를 걸어 '당신은 최고입니다. 협상을 해주세요'라고 한번 말해주길 원한다"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의 지지자들은 기존 동맹국들에 대한 이런 강경한 접근을 전혀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며,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긴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출신 공화당 상원의원 린지 그레이엄은 "트럼프는 '윈윈'을 좋아하지만, 만만하게 여겨지는 것은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래서 관계 개선을 원하는 외국 정부들은 "이전에는 테이블 위에 올려놓지 않았을지도 모를 선택지들"을 무엇으로 제시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된다는 것이다.


혹은 매스트 의원의 표현을 빌리면, 트럼프 행정부가 세계를 바라볼 때 던지는 기본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어떤 국가나 지역으로부터 무엇이 필요한가?" 그 다음 질문은 "그 국가나 지역은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는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부분이 있다. 우리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줬을 때, 우리는 우리가 필요한 것을 얻는가, 얻지 못하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


1888년 창간된 영국의 대표적인 일간 경제지. 특유의 분홍빛 종이가 트레이드마크로 웹사이트도 같은 색상을 배경으로 쓰고 있을 정도입니다. 중도 자유주의 성향으로 어느 정도의 경제적 지식을 갖고 있는 화이트 칼라 계층이 주 독자층입니다. 2015년 일본의 닛케이(일본경제신문)가 인수했습니다.
 
close
comment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