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86년, 아직 젊고 무명이었던 조르주 쇠라(Georges Seurat, 1859-1891)는 당시 아방가르드의 리더였던 클로드 모네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는 제8회 인상주의 전시에 점묘로 이루어진 얼어붙은 인물들의 장대한 프리즈 형식의 작품 〈그랑드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를 출품했다. 이 작품은 조롱과 야유를 불러일으켰지만, 쇠라는 그로써 프랑스 회화의 새로운 '앙팡테리블(문제인물)'로 부상하며 이른바 신인상주의를 출범시키게 된다. 그러나 5년 뒤, 그는 3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당시에도, 그리고 오늘날에도〈그랑드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것은 1886년 전시에 함께 출품되었던 쇠라의 아름답고 빛에 찬 노르망디 바다풍경들이었다. 그러나 한 비평가는 "깎여 들어간 듯 들쭉날쭉하게 정렬된 절벽들, 멀리서 다시 태어나는 듯한 파도, 그리고 하늘과 바다 사이를 순환하는 거대한 공기의 흐름... 그 고요한 장엄함이 빛난다"고 평했다. 이러한 특성은 코톨드 갤러리의 《쇠라와 바다》 전시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이번 전시는 쇠라의 바다 풍경화에 초점을 맞춘 최초의 전시로, 이들 작품이 사실 그의 전체 작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탁월하면서도 학술적이고 계시적인 전시는 쇠라의 예술적 목표와 감수성, 창의성, 그리고 동시대 예술가들과의 관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새롭게 정립하며, 런던 겨울 시즌에서 가장 강렬하게 관람객을 사로잡는 전시라 할 수 있다.

1886년 전시에 출품된 두 점의 장엄한 그림은 풍요로운 감각과 기하학적 질서가 결합된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랑캉의 베크 뒤 오크(Le Bec du Hoc, Grandcamp)〉은 부리 모양의 곶이 교차하는 청록라벤더빛 바다 위로 솟아오르고, 그 표면에는 반사되는 노란 점들이 스며들 듯 흩어져 있다. 한편 엄정한 분위기의 〈그랑캉의 로드스테드(The Roadstead at Grandcamp)〉에서는 질주하는 배들이 삼각형의 행렬처럼 배열된다. 이 시점에서 이미 조르주 쇠라는 색채와 빛의 미묘한 효과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인상주의를 떠나 치밀하게 설계된 고정된 구성을 지향하고 있다.
1886년작 〈옹플뢰르의 '마리아'호(The 'Maria', Honfleur)〉는 여객선을 클로즈업으로 포착한 인상적인 작품으로, 복잡한 장비와 돛대, 어둡게 처리된 굴뚝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한편 〈옹플뢰르 항구 입구(Entrance of the Port of Honfleur)〉는 해안, 바다, 하늘이 수평의 띠처럼 배열되고, 방파제와 등대, 높이 솟은 조위신호대(潮位信號臺)는 이를 둘러싸며, 그 형태가 물 위에 반영되는 등 역시 치밀하게 질서화된 구성을 보여준다. 보색 점들의 점묘에서 황금색 빛이 맥동하듯 퍼져 나오며, 조르주 쇠라는 자신의 이름을 교차하는 점들로 대담하게 서명함으로써 이러한 기법 자체를 의식적으로 드러낸다.



부드러운 질감의 콩테 크레용 드로잉은 1891년 조르주 쇠라의 작업실을 떠난 이후〈옹플뢰르 항구 입구〉와 항상 떨어져 있던 작품으로, 화면의 위치 설정과 더불어 흑, 백, 회색으로 이루어진 명암의 범위를 정교하게 규정한다. 모든 것은 통제되어 있으며, 우연에 맡겨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소설가이자 비평가인 조리스 카를 위스망스는 옹플뢰르 연작이 지닌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바다의 자장가"를 즐기면서도, 그 작품들이 "열정 없는 하늘 아래 무심히 놓인 듯한" 거리감을 지닌다고 평했다.
하나의 수수께끼는 논리와 정밀성을 최우선으로 삼으면서도 조르주 쇠라가 어떻게 이처럼 섬세하고 미묘한 효과를 포착할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옹플뢰르의 등대(The Lighthouse at Honfleur)〉에서는 햇빛 속에서 진동하듯 떨리는 붉은 지붕이 나타나고, 〈바스 뷔탱 해변(Beach at Bas Butin)〉에서는 가파른 흰 절벽 아래로 물러나며 바다가 짙은 남색에서 에메랄드빛으로 변해간다. 또 다른 의문은 이처럼 이성적인 예술가가 왜 가장 덧없고 예측 불가능한 주제—북해 위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빛의 베일—를 선택했는가 하는 점이다. 그것은 사실 균형과 구조에 기반한 회화를 구축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어떤 이들은 내 그림에서 시를 본다고 말하지만, 나는 오직 과학만을 본다"고 조르주 쇠라는 주장했다. 그러나 그의 바다 풍경화는 무지갯빛으로 빛나는 조화로, 엄격하고 위계적인 인물화에 비해 시적 효과를 발산하는 통로로 기능한다. 또한 바다 풍경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그는 잘 알려져 있듯이 날씨의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했던 클로드 모네 못지않게—어쩌면 그 이상으로—변화하는 자연조건에 좌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그가 인정하고 싶었던 것보다 인상주의에 더 크게 빚지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1886년 옹플뢰르에서 폴 시냐크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바람, 그리고 그에 따른 구름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 처음 며칠의 안정된 상태가 다시 돌아와야 할 것이다. 무엇을 더 말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다시 한 번 빛에 취해보자, 그것은 위안이다."
1888년 조르주 쇠라는 연작을 구상함으로써 질서와 규율을 한층 강화했다. 코톨드 갤러리 전시의 결정적인 성과는 1889년 첫 전시 이후 한 번도 함께 모인 적 없었던 '포르탕베생(Port-en-Bessin)' 연작 6점을 한자리에 모은 데 있다. 또한 세련된 '그라블린(Gravelines)' 연작(1890) 4점은 점차 추상에 가까운 안개 속으로 스며들면서도 지형적 충실성을 유지하며, 하루 동안 변화하는 조건들을 기록한다. 이 작품들을 함께 경험하는 것은 우리의 감상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포르탕베생 연작의 첫 번째 작품 〈어느 일요일(A Sunday)〉은 내셔널갤러리에서 열린 헬레네 크뢸러뮐러의 신인상주의 컬렉션 전시에 걸려 있었다. 그곳에서는 점묘의 패턴으로 고정된 물과 하늘이 다소 답답하게 느껴졌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여섯 점의 연작 속에서—항구의 종합적 이미지를 구성하면서 동시에 인공성과 추상의 다양한 층위를 실험하는 맥락 속에서—비로소 강한 설득력을 획득한다. 깃발이 펄럭이고, 배와 돛대, 파도 형태의 구름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요소는 건물들과 함께 정지된 배열 속에 고정되어 있는 이 '정지의 이미지'는 오히려 더욱 강하게 다가온다. 이는 다양한 각도에서 묘사된 현대적 항구인프라를 보여주는 〈다리와 부두(The Bridge and the Quays)〉―여기엔 몇몇 정지된 인물들이 등장한다―와 만조와 간조를 모두 담은 〈외항(The Outer Harbour)〉과도 긴밀히 연결된다.
화면 전반은 공들여 찍어낸 개별 색점들로 생동하며, 이는 멀리서 볼 때 서로 섞여 보인다. 이러한 효과는 특히 도식적으로 정리된 두작품, 〈세마포어와 절벽(The Semaphores and the Cliff)〉—양식화된 구름의 서예적 형태 아래, 넓고 고요한 바다가 반짝이는 장면—과 뉴욕 현대미술관(MoMA) 소장의 〈외항 입구(Entrance to the Outer Harbour)〉에서 가장 눈부시게 드러난다. 이 작품에서는 바람이 어선들의 돛을 가득 채우고 있음에도, 물과 풀로 덮인 둑은 여전히 정지해 있다. 긴장은 초록빛 식생의 덩어리와 바다의 청록색 반점들이 서로 운율적으로 대응하고 그 사이에서 눈부시게 밝은 흰 돛들이 대비를 이루는 데서 발생한다. 전경에서는 크게 보이던 이 돛들은, 멀어질수록 정교하게 간격을 둔 점들로 점차 축소되어 간다.

'그라블린' 연작에 이르면, 장소만큼이나 시간 자체가 주요한 주제가 된다. 이 연작은 〈그랑포르필리프(Grand-Fort-Philippe)〉에서 시작되며, 창백하게 펼쳐진 모래 위로 눈부신 아침빛이 색채를 탈색시키듯 스며든다. 이어 〈바다쪽(Direction of the Sea)〉에서는 정박한 배들이 만들어내는 짧고 곧은 정오의 그림자가 화면을 채운다. 그리고 늦은 오후를 포착한 〈프티포르필리프(Petit-Fort-Philippe)〉에서는 이 그림자들이 길게 늘어진다. 이 작품은 유화 습작과 함께 전시되는데, 흥미롭게도 화면 전면에 두드러지며 다소 불안감을 자아내는 배를 매어두는 기둥—일종의 초현실적 요소—이 습작에서는 생략되어 있다.
〈저녁(Evening)〉에서 보이는 초록, 자주빛이 감도는 분홍, 노랑의 정교한 색면들은 물 위에 마지막 햇빛이 비치고, 가로등 기둥과 닻이라는 수직, 대각선 표식 사이의 부두에는 어둠이 내려앉는 장면을 형성한다. 이 공간은 압축되어 있으면서도 인위적으로 구축된 것으로—함께 전시된 습작들은 화면의 여러 요소가 각각 따로 계산되고 구성되었음을 보여준다—그 효과 또한 양가적이다. 조르주 쇠라는 형태를 통제된 방식으로 배열함으로써 우리를 자연으로부터 일정하게 거리 두게 만들면서도, 동시에 바다의 무한한 장엄(莊嚴)을 느끼게 한다.

점묘주의(pointillism, 點描主義)는 카미유 피사로, 앙리 마티스, 브리짓 라일리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세대와 경향의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조르주 쇠라가 요절하기 불과 몇 달 전에 그린 이 미세하게 떨리는 듯한 추상적 화면, 그리고 이곳에 모인 장대한 바다 풍경화 연작 전체를 마주하고 나면, 그가 20세기 회화에 무엇을 더 남길 수 있었을지에 대한 물음을 품지 않을 수 없다.
※ 전시는 5월 17일까지 개최된다.
courtauld.ac.uk
재키 불슐래거(Jackie Wullschläger)는 파이낸셜타임스(FT)의 수석 예술평론가로 활동중이다. 그는 '한스 크리스챤 안데르센: 이야기꾼의 삶'과 '샤갈: 삶과 망명'으로 스피어(Spear) '금년의 전기' 상을 두 차례 수상했다.
역자 이희정은 영국 맨체스터대 미술사학 박사로 현재 서울대와 국민대 출강중이다. 역서로 '중국 근현대미술: 1842년 이후부터 오늘날까지'(미진사, 2023)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