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은 중국과 싸울 것인가? 대만인들에게 물었다

군인들이 2026년 8월 5일(현지시간)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연례 한광 훈련 중 사격 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AP/뉴시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연임을 앞두고 '대만침공' 이야기가 많이 나왔습니다만, 최근에는 비교적 잠잠해졌습니다. 150km가 넘는 대만해협을 수많은 대함미사일의 공격을 뚫고 건너는 것도 어렵지만, 수심이 깊은 항구가 별로 없는 중국 맞은 편 대만 해안에 상륙하는 것도 매우 어렵습니다. 상륙 후에는 높은 대만의 산들에서 쏟아지는 포화를 이겨내는 것도 역시 어렵습니다. 거기에 미국과 일본 해군의 견제, 서방 우호국가들의 보이지 않는 대만 지원까지 고려하면 대만섬 침공은 계획 단계에서 실현 불가로 판단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때문인지 시진핑 4연임 결정일이 다가오고 있는 지금 중국은 대만에 대해 비군사적 침투로 정책노선을 바꾼 것 같습니다. 국가서열 4위인 정치학자 왕후닝 상무위원이 대만 업무를 맡게 되었고, 주로 대만에 대한 영향력 공작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인지 최근 들어 대만에 간첩 사건이 빈번해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고위급 장성들도 연루되고 있습니다. 또한 20, 30대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중국의 이미지가 빠르게 좋아지고 있습니다. SNS 등을 통해 중국의 번영하는 모습들을 젊은이들이 많이 접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8월 10일자 기사는 '만약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 맞서 싸울것인지'라는 질문을 대만사람들에게 물어본 후 대답을 듣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맞서 싸울지' 여부에 대한 여론조사는 그렇게 믿을 것이 못됩니다. 침공이 벌어지지도 않은 지금 '싸우지 않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막상 침공이 시작되고 친구와 가족이 죽는 상황이 되면 누구보다도 용감하게 싸우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 기사는 그것보다 중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며 중국과 대만의 관계는 어떻게 가져가면 좋을지에 대한, 말하자면 중국과 대만 사이에서 자신의 정체성, 그리고 대만의 미래에 대한 대만 시민들의 다양한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이러한 질문은 사실 우리나라 국민들에게도 물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남북한의 관계를 과연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지라는 문제입니다. 북한이 주장하듯이 '한국과 조선'이라는 '2개의 국가' 체제로 나아가야 할지, 대한민국이 아직 점유하지 못한 곳인 북한 지역을 언젠가는 수복해야 할 지역으로 생각해야 하는지 등등 우리도 국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청취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양안문제, 남북한 문제는 이래저래 비슷하고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미·중 초강대국 경쟁의 한복판에 놓인 민주주의 대만섬의 국민들은 미래를 좌우할 중대한 선택에 직면해 있다.


중국과 더 가까워져야 할 것인가, 아니면 대만을 굴복시키려는 중국의 공세에 맞서 싸워야 할 것인가?


어떤 이들에게 그 답은 자신을 대만인으로만 보는지, 또는 중국인으로도 간주하는지에 따라 갈린다.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지켜내겠다는 열망에 이끌리는 이들도 있다. 모두가 2300만 대만 주민을 굴복시키고자 군사적 위협 등을 동원하는 중국의 전방위 공세 대상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대만 각지의 다양한 연령과 배경을 지닌 대만 시민들을 만나 그들이 중국을 신뢰하는지, 미국을 신뢰하는지, 아니면 오직 자신들만을 믿는지 등 각자의 입장을 물었다. 이들이 전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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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받았고, 준비돼 있다'

코니 셰는 중국과 싸울 준비가 돼 있다.


셰는 대만의 대표적인 장교 양성 학교에서 학위를 받았고, 6년간 군에 복무했으며, 훈련받은 예비군이다.


모병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남성에 한해 의무 복무 기간이 1년에 불과한 대만에서는 이례적인 일이다. 33세이며 스스로를 젠더플루이드(성 정체성이 고정되지 않은 사람)로 규정하는 셰는 자원입대했다.


"중국이 실제로 공격해오고 군이 제가 최전선으로 돌아와 제 몫을 하며 저항하기를 원한다면, 저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그렇게 할 거예요." 셰는 말했다.


젠더학 연구원이라는 직업 외에도, 셰는 대만의 국방력 강화를 다루는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중국의 침투와 허위 정보에 맞서고 민주주의를 수호하며 대만 전역의 사회적 회복력을 구축하는 방안을 논의하면서, 국가 방위와 민간 방위 모두를 알리고 있어요." 셰는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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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는 자체 방위력 강화가 필수라고 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의 침공에 맞서 대만을 방어하도록 미군을 파견할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셰가 임박한 전쟁보다 더 걱정하는 것은 2028년 대만 총통 선거다. 국방 강화를 지지하는 집권 민주진보당(민진당)이 패배하고 베이징과의 관계 개선을 주장하는 야당 국민당에 정권이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실상 대만을 중국에 고스란히 갖다 바치는 셈이에요." 셰는 말했다.

독재 체제에서 보낸 성장기

도브 린(54)은 다른 많은 이들처럼 대만의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


공산당의 장악을 두려워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린은 이를 막기 위해 싸우겠다고 말한다. 마오쩌둥의 군대가 국민당 정부를 중국 본토에서 몰아낸 뒤 국민당이 대만에 세운 군사독재 정권 아래에서 탄압을 직접 겪었기 때문이다.


1970∼80년대 계엄령 아래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린과 같은 세대는 스스로를 중국인으로 여기도록 교육받았다. 린이 이해하기로 대만은 더 큰 중국의 일부였고, 그 정치적 중심이 우연히 중국 본토에서 약 160km 떨어진 섬에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 1980년대 후반 군부 통치가 민주주의에 자리를 내주기 시작했다.


"사회가 개방되고 모두가 대만인 의식을 공개적으로 말하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이 대만인이라는 정체성 아래 결집하자 순식간에 그 정체성이 확립됐죠." 린은 말했다.


린의 종조부는 '백색테러'로 불리는 국민당 탄압 통치기에 투옥됐다. 수십 년 동안 이 사실은 집안의 금기였고, 린도 나이가 들어서야 알게 됐다.


"저는 스스로를 대만에 남은 대중화 민족주의의 유물 같은 존재라고 봐요." 린은 말했다. "우리 세대가 사실상 마지막이에요."


린은 타이베이에서 소규모 IT 서비스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본토와의 비즈니스 및 문화 교류에 반대하지는 않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본토를 방문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대만이 현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고 본다. 중국의 침공을 촉발할 만한 어떤 변화도 시도하지 않으면서 민주주의와 사실상의 독립을 지켜가야 한다는 것이다.


린은 중국이 실제로 침공한다면 대만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우겠다"고 말한다.


"여기가 우리의 고향인데 왜 도망치거나 항복해야 하나요?"

'나는 나를 중국인이라고 부를 수 없다'

어머니가 중국 출신인 27세 예술가 쉬메이즈는 한 예술 축제에서 얻은 깨달음을 계기로 자신의 정체성을 대만인으로 규정하게 됐다.


그 깨달음을 얻은 곳은 대만의 뤼다오(綠島)였다. 쉬의 아버지가 태어난 곳이자 국민당이 정치범 수천 명을 가두고 처형한 악명 높은 장소다.


축제는 예술을 통해 백색테러를 들여다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쉬는 민주주의를 향한 대만의 투쟁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됐고 큰 감동을 받았다.


"저는 그 역사를 잊고 싶지 않아요." 쉬는 말했다. "저는 이 땅을 사랑하고 이곳에 기여하고 싶어요. 그래서 제 자신을 대만인이라고 생각해요."


쉬는 중국과 대만이 서로 별개로 남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술가로서 쉬는 파편화된 가족사의 경험을 작품을 통해 탐구한다.


쉬의 어머니는 딸이 중국인 정체성을 거부한 이유를 이해하기 어려워한다.


"그곳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중국인이라 부를 수가 없어요." 쉬는 말했다. "저는 그들이 쓰는 방언은 못하지만 대만어는 해요."


그럼에도 쉬는 어머니의 고향인 항구도시 칭다오에 사는 조부모를 찾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가족이에요.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같은 나라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에요." 쉬는 중국 친척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중화연방' 만들기

벤 천(63)은 1980년대 후반 알래스카에서 중국 본토 출신 같은 반 친구들과 사귀게 된 일을 즐겁게 회상한다. 국공내전에 참전한 아버지를 둔 대만 출신으로서, 천은 처음에는 그들이 두려웠고 그들을 "공산당 비적"(共匪)으로 여겼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들을 알아가게 되면서 어느새 만두를 함께 나눠 먹는 사이가 되었다.


"이념적 차이와 오랜 단절 속에서 쌓인 의구심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관습을 공유하고 있었어요." 천은 말했다. "저녁이 되면 모두가 그저 즐겁게 함께 술을 마시고 농담을 주고받곤 했죠."


토양·수자원 보전 엔지니어인 천은 당시 경험을 바탕으로 오늘날의 긴장을 해소할 방안을 제시한다. 중국과 대만, 홍콩, 마카오가 하나의 틀 안에서 공존하는 '중화연방Chinese Commonwealth'을 세우자는 구상이다. 이 구상에서 대만은 독자적인 국기와 군대, 외교적 지위를 보유하고 다른 구성원들과 나란히 유엔 의석도 갖는다.


그런 연방이 실현될 가능성은 낮을지 몰라도, 천은 대만의 일부 사람들처럼 하나 이상의 정체성을 함께 품는 일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는 대만 남부 출신인 천의 어머니가 객가客家인이라는 점이다. 객가인은 일찍이 17세기부터 중국 본토에서 이주하기 시작한 민족 집단이다.


"대만에서 자랐으니 저는 대만인이에요. 하지만 중국인이기도 해요. 아버지가 중국 출신이고 양쪽은 같은 언어와 문화유산을 공유하니까요."


천은 또한 미국 정부가 1979년 대만과의 공식 외교 관계를 단절했을 때 대만 문제에 대해 발언할 도덕적 명분을 잃었다고 믿는다.


더욱이 천은 전쟁은 선택지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중국이 이미 현대적인 세계 초강대국이 된 만큼, 대만이 중국을 적으로 대한다면 파멸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굴욕을 통한 평화

에릭 리(25)는 전쟁이 나면 전투에 뛰어들 사람을 만난 적이 한번도 없다고 말했다. "다들 숨고, 또 숨고, 무조건 숨겠다고 말해요." 그는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대만의 민주화 시대에 태어난 그의 세대가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지킬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뜻은 아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아무도 전쟁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현상 유지를 선호해요." 리는 말했다. "모두가 그저 평화롭게 살며 즐겁게 일하고 싶어 해요."


리는 타이베이의 한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했지만 친구들과 정치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대만 정치권의 극심한 반목 속에서 갈등을 피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거듭 질문하면 리의 견해는 분명히 드러난다. 리는 대만의 선거와 개방경제를 소중히 여긴다고 말했다. 중국 본토에서는 누릴 수 없는 자유다.


리는 중국과의 관계에 더 우호적으로 접근하는 것도 지지한다. 대만이 위협에만 집중하기보다 중국의 성공에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그는 말했다.


중국 본토를 여러 차례 방문한 리는 중국의 기반시설과 드론·로봇공학 기술 발전에 특히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 분야에서 대만은 혁신을 주도하기보다 뒤따르는 쪽에 가까웠다.


리는 또한 중국이 무시하기에는 너무 강한 나라라고 본다. 대만이 공식 명칭인 '중화민국Republic of China'을 고집하기보다 '차이니즈 타이베이Chinese Taipei'라는 명칭으로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처럼,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베이징에 상징적인 양보를 하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조금 손해를 보면서도 실리를 챙길 수 있다면 저는 전혀 괜찮아요." 리는 말했다. "실제로 뭔가를 잃는 것도 아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