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 러시아의 공격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준 워게임

미국이 유럽에서 발을 빼기 시작하면서 러시아는 예상보다 더 빠르게 전쟁 채비를 갖출 수 있다

/그래픽=PADO (생성 AI 사용)

4년이라는 긴 세월 우크라이나와 소모전을 치른 러시아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 등 여타 유럽 국가를 재차 침공하리라 예상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이번 전쟁에서 드러난 러시아군의 졸전과 막대한 인명 피해, 그리고 국방 및 경제 자원의 심각한 고갈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저널(WSJ)의 2월 4일 자 보도에 따르면, 나토 고위 관계자들이 참여한 '워게임' 결과는 이러한 낙관론에 경종을 울립니다. 비록 자원이 고갈된 러시아라 할지라도, 나토의 지휘통제 체계가 기민하게 작동하지 못하는 허점을 파고들어 신속하게 전략 거점을 장악한 뒤 즉각 방어 태세로 전환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분석입니다.


이는 무기와 전술의 발달로 인해 현대전의 양상이 '방어 우위'로 기울고 있음을 전 세계가 목도했기 때문입니다. 1차 세계대전의 참호전을 전차의 등장으로 극복하며 2차 세계대전이 '공격 중심의 기동전'으로 변모했던 것과 달리,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저비용 드론과 휴대용 대공미사일(MANPADS), 대전차 미사일이 지상전의 왕자였던 기갑 전력을 무력화시켰습니다. 결과적으로 '기습 타격 후 신속한 진지 구축 및 방어전 전환'이 새로운 핵심 전략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러시아가 유럽 내 지정학적 우위를 점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전선이 휴전 상태에 접어드는 즉시 남은 여력을 나토의 취약 지점에 투입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실현 확률이 낮다 하더라도 국가 안보는 항상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해야 하므로, 유럽 국가들의 대비는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WSJ 역시 러시아가 발트함대 기지가 있는 역외 영토 '칼리닌그라드'와 본토를 잇는 육상 회랑 확보에 사활을 걸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이 지역은 나토 회원국인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의 국경선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결국 지정학적 요충지를 맞댄 이 두 국가가 최우선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안보적 위기감은 결코 기우가 아닐 것입니다.

유럽 각국이 러시아와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새롭게 공개된 워게임은 유럽이 준비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유럽의 많은 안보 및 정치 지도자들은 그린란드, 우크라이나, 무역 및 기타 문제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과 유럽 간의 긴장으로 인해 러시아가 나토(NATO) 및 유럽연합(EU) 국가들을 침공하거나 전면적으로 침략할 가능성이 더 커졌다고 말한다.


이들은 러시아가 전쟁경제로 전환하여 우크라이나 전쟁의 필요를 훨씬 뛰어넘는 재무장 프로그램과 군 병력 모집에 국가 자원을 집중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핵심 질문은 '얼마나 빨리?'이다. 과거 독일과 다른 국가들은 러시아가 2029년경까지는 나토를 위협할 수 없을 것으로 믿었다. 이제는 자체 국방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 유럽이 반격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추기 전에 그러한 위기가 훨씬 더 빨리 닥칠 수 있다는 공감대가 커지고 있다.


"우리는 러시아가 1년 안에 대규모 병력을 이동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합니다." 네덜란드 국방부 장관 루벤 브레켈만스가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러시아가 이미 전략물자 비축을 을 강화하고 있으며 나토 국경을 따라 병력과 무기를 늘리고 있는 게 관측됩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제국의 영광을 부활시키고자 하며 이로 인해 한때 제국의 일부였던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와 같은 발트해 국가들이 명백한 표적이 되고 있다. 이들 국가 모두는 20년 동안 유럽연합과 나토의 회원국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불안감이 매우 뚜렷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스스로를 방어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리투아니아 국가안보보좌관 데이비다스 마툴리오니스가 말했다. 마툴리오니스는 리투아니아가 러시아의 침공 시 미국과 다른 나토 동맹국들의 지원을 기대하지만 자국 군대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증원군이 오기 전에도 우리는 분명히 싸울 겁니다."


나토 군사기획가들은 또한 발트해의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섬, 폴란드 일부, 그리고 노르웨이와 핀란드의 최북단에 대한 러시아의 잠재적 계획과 더불어 서쪽으로는 네덜란드 로테르담 항구에 이르는 유럽의 전략적 인프라에 대한 공격 작전에 대해서도 우려하고 있다.


독일 신문 '디 벨트Die Welt'가 독일연방군 헬무트슈미트대학의 독일 워게임 센터와 함께 2025년 12월에 주최한 리투아니아에 대한 러시아의 침공 모의 훈련은, 신문이 그 결과를 발표하기 전부터 유럽 안보계 내에서 뜨거운 화제가 되었다. 이 훈련에는 16명의 전직 독일 및 나토 고위 관리, 국회의원, 저명한 안보 전문가들이 2026년 10월을 배경으로 한 시나리오에서 역할 연기를 펼쳤다.


훈련에서 러시아는 러시아의 역외 영토인 칼리닌그라드에서의 인도주의적 위기를 명분으로 러시아와 벨라루스 사이의 좁은 회랑에 있는 주요 교차로인 리투아니아 도시 마리얌폴레Marijampole를 점령하고자 했다. 러시아가 침공을 인도주의적 임무로 포장하자 미국은 동맹국의 지원을 요구하는 나토 5조 발동을 거부했다. 독일은 우유부단했고, 폴란드는 동원령을 내렸지만 리투아니아 국경 너머로 군대를 보내지 않았다. 리투아니아에 이미 배치된 독일 여단은 개입에 실패했다. 러시아가 드론을 이용해 기지에서 나가는 도로에 지뢰를 설치했기 때문이었다.


"억제력이란 능력 뿐만 아니라 적이 우리의 의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려 있어요. 그리고 워게임에서 제 '러시아 (역할) 동료들'과 저는 독일이 주저하리란 걸 알았죠. 그것만으로도 이기기에 충분했죠." 러시아 총참모장 역할을 맡은 비엔나의 군사 분석가 프란츠-슈테판 가디가 말했다.


3만5000명의 인구를 가진 도시인 마리얌폴레는 유럽에서 가장 전략적인 것으로 손꼽히는 고속도로 교차로가 있는 곳이다. 남서쪽으로는 폴란드로 향하는 '비아 발티카' 국제고속도로가 있으며 이 도로는 EU 전역과 우크라이나에서 온 트럭들로 붐빈다. 서쪽으로는 벨라루스와 칼리닌그라드 사이의 통과 도로가 있는데 리투아니아는 조약에 따라 이 도로를 러시아 차량에 개방해야 한다. 취재를 위해 방문한 날, 이 도로는 대부분 컨테이너의 표시가 제거된 러시아 트럭들로 붐볐는데 이 트럭들은 국경 바로 앞에서 우크라이나와 리투아니아 국기와 '승리를 향해 함께'라는 표어가 달린 탑을 지나갔다.


워게임에서 미국의 리더십이 부재한 가운데, 러시아는 단 1만5000명의 초기 병력만을 배치하여 며칠 만에 나토의 신뢰도를 훼손하고 발트해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하는 데 성공했다.


"러시아는 부대를 많이 움직이지 않고도 대부분의 목표를 달성했어요." 훈련에서 폴란드 총리 역할을 맡은 폴란드의 안보 분석가 바르트워미에이 코트가 말했다. "제가 이걸 보고 느낀 것은 러시아 측이 확전을 입에 올리기 시작할 때, 긴장을 완화해야 하는 쪽은 우리라는 생각이 우리 사고방식에 박혀 있다는 점이에요."


리투아니아 국방참모총장인 기드리우스 프레메네카스 소장은 실제 상황이었다면 리투아니아와 다른 동맹국들이 이 시나리오를 피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정보 경고를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프레메네카스 총장은 동맹국 없이도 평시 1만7000명, 동원 후 5만8000명에 달하는 리투아니아 자체 군대만으로도 마리얌폴레에 대한 제한적 위협에 대처할 수 있었으리라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 스스로도 여기에 중차대한 이해관계가 걸려 있음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칼리닌그라드를 유지하는 것은 러시아에게 딜레마일 거예요. 만약 러시아가 무언가를 시작한다면 나토가 '그렇게 할 경우 러시아는 칼리닌그라드를 잃을 것이다'라고 매우 분명하게 말해야 해요."


독일 지상군사령관 크리스티안 프로이딩 중장은 리투아니아를 방문한 자리에서, 나토 정보당국이 여전히 러시아가 2029년까지 동맹 회원국들을 상대로 행동에 나설 수 없을 것으로 평가하지만 독일과 그 동맹국들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오늘 밤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프로이딩 중장은 유럽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남았는지에 대해 추측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러시아 위협이 얼마나 임박했느냐에 대한 논쟁은 유럽 군사 계획의 성격을 좌우한다. 회의론자들은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의 진격 속도가 느리다는 점을 지적한다. 푸틴은 우크라이나에서 백만 명이 넘는 병력을 잃으며 값비싼 소모전에 발이 묶여 있다. "푸틴은 그가 하려고 했던 거의 모든 일에 실패했어요." 알렉산데르 스투브 핀란드 대통령이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에서 성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나토를 겨냥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어요. 그러니 러시아의 역량을 과대평가해선 안됩니다."


리투아니아의 프레메네카스 총장은 러시아가 매달 약 3만5000명의 신병을 모집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매달 약 3만 명을 잃어 병력 증강 능력이 둔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매일 피와 희생으로 우리에게 더 잘 준비할 시간을 주는 우크라이나인들에게 매우 감사합니다." 그가 말했다. "우리는 이 시간을 현명하게 사용하고 있습니. 왜냐하면 만약 우크라이나에서 평화 협정이 성사되면 러시아가 유럽에 대한 전쟁 준비를 가속하리라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겐 러시아가 우리가 약하다고 느끼게 할 여유가 없습니다."


일부 유럽 관리들과 안보 분석가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는 우크라이나 종전 합의가 이뤄지지 않더라도, 러시아군이 공세 작전에서 방어선 유지로 전환하는 것만으로도 20만 명에 달하는 실전 경험이 풍부한 병력을 즉각 다른 용도에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푸틴이 2022년 우크라이나에 대한 초기 전면 침공에 사용했던 것보다 더 많은 병력이다.


"푸틴은 기회주의자입니다. 기회가 보이면 그것을 가지고 놀며 반응을 시험하고, 더 많은 능력을 갖게 되면 결과를 확장하려고 시도할 겁니다." 워게임에 참여했던 전 독일 국방부 고위 관리이자 뮌헨안보회의의 선임 연구원인 니코 랑게가 말했다. "지금 당장도 일어날 수 있어요. 목표가 나토 5조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유럽을 분열시키는 것이라면 의지만 있으면 돼요. 엄청난 군사적 능력이 필요한 게 아니에요. "푸틴이 왜 유럽이 대비될 때까지 기다리겠어요?"


러시아 관리들은 러시아가 유럽연합이나 나토 회원국의 영토에 대한 어떠한 계획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러시아는 4년 전에도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의사가 없다고 주장했었다.


1월에 발표된 트럼프 행정부의 새로운 국방전략은 러시아가 나토 동부지역 회원국들에게 "지속적이지만 관리 가능한 위협"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유럽 동맹국들이 인구, 경제, 그리고 잠재적 군사력 측면에서 러시아를 압도하기 때문에 러시아가 "유럽의 패권을 차지할 수 없다"고 덧붙인다.


그렇기 때문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실행하고 있는 종류의 소모전을 나토를 상대로 벌이려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러시아가 전쟁을 완전히 단념할 이유는 없다. "장기전은 러시아에게 해로울 겁니다. 우리가 러시아보다 더 많이 생산하고 동원할 것이기 때문이죠." 노르웨이 국방대학교에서 지상전과 교리를 가르치는 아문드 오스플라텐 중령이 말했다. "그래서, 만약 러시아가 무언가를 하려고 한다면 나중에 쉽게 방어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들어갈 수 있는 초기에 하려고 할 겁니다."


그것이 바로 '디 벨트'의 시나리오에서 일어난 일이다. 워게임에서 푸틴 역할을 맡았던 카네기 러시아 유라시아 센터의 알렉산더 가부예프 소장은 "인도주의적" 개입이라는 연막이 러시아의 침략을 가능하게 하는 데 결정적이었다고 지적했다. "사악한 리투아니아인들이 우리가 칼리닌그라드의 가난하고 굶주린 사람들에게 보급하는 것을 막고 있기 때문에 인도주의적 통로가 필요하다고 계속해서 주장하는 게 매우 도움이 됐죠."


유럽 관리들은 특히 트럼프 행정부의 많은 이들이 공개적으로 푸틴의 말을 곧이곧대로 수용하는 시기에 이러한 하이브리드 전술이 나토의 의사결정에 점증하는 위협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회색지대가 존재하는데 러시아가 추가적인 조치를 취함에 따라 그 회색지대는 더욱 어두워지고 있어요." 브레켈만스 네덜란드 국방부 장관이 경고했다. "결국 러시아가 나토 5조의 선을 넘었는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공격을 받은 나토 동맹국과 나머지 31개 NATO 동맹국에 달려 있습니다. 러시아는 물론 이게 미묘한 사안이라는 걸 알고 있고, 우리는 러시아가 그걸 더욱 밀어붙이려 할 것임을 알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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