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세력재편과 세계대전의 위험성

역사학자이자 《도가니: 현대 중동의 형성》의 저자인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는 역내 분쟁을 계기로 강력한 새로운 동맹들이 형성되면서 중동의 전통적인 적대 관계가 퇴조하고 있는 현실을 분석한다

/그래픽=PADO(생성AI 사용)

월스트리트저널 10월 4일자 기고문은 중동발 세계대전의 위험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중국 견제를 위해 중동에서 발을 빼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중동은 바야흐로 '춘추전국' 시대에 돌입하고 있습니다. 사우디-튀르키예는 이스라엘-아랍에미리트(UAE)와 대립하고 있고, 여기에 전통적으로 역외(域外) 국가로 여겨져왔던 남아시아의 파키스탄과 인도가 가담하고 있습니다. 사우디, 튀르키예, 파키스탄은 이슬람 성지 메카에서 '메카 방어동맹'을 체결했습니다. 이스라엘과 UAE는 외교적, 군사적, 경제적 관계를 강화하고 있고, 인도와도 '경제 회랑'을 만들자며 협력하고 있습니다. 호르무즈해협을 통제하려는 인도는 후티 반군을 지원하면서 홍해의 길목을 차단하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홍해 너머 동아프리카 지역을 둘러싸고 카타르, UAE가 세력확대 경쟁을 펼치고 있습니다. 사하라사막 남쪽의 사헬(Sahel) 지역에도 중동 국가들이 개입해서 정부군, 반군의 대립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이른바 '중동'이 이제는 더욱 넓어져서 범(汎) 중동이라고 불려도 될 정도가 되었고, 이 거대한 지역에서 이합집산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초강대국인 미국은 이 지역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않았고, 중국은 여러 나라로부터 개입해달라는 러브콜을 받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이란을 위시해서 북아프리카, 동아프리카에 계속해서 개입하고 있습니다. 또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이란-미국-이스라엘 전쟁과 융합되는 조짐도 보이고 있습니다. 이 기고문의 필자인 역사학자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는 범 중동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분쟁과 전쟁의 하나로 합쳐지면서 자칫 세계대전의 조건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려하고 있습니다. 사라예보의 총성 하나가 1차 세계대전으로 비화(飛火)했듯, 여러나라의 이해관계가 하나로 엉켜들면서 작은 사건 하나가 세계대전으로 확대되어버릴 위험이 있다는 것이 이 글의 주장입니다.

중동에서 벌어지는 격렬한 폭력 사태에서 한발 물러나 큰 그림을 바라보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일련의 사태 전개 속에서 새로운 사실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대한 협정과 동맹의 체결은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알릴 뿐 아니라, 서로 다른 지정학적 무대들이 급격히 하나로 연결되는 현상을 촉진하면서 세계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최근 몇 달 사이에 일어난 사건들만 몇 가지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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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에미리트(UAE)가 두바이발 텔아비브행 항공편에서 발생한 사건을 '테러 공격'으로 규정하기 며칠 전, 무함마드 빈 자이드 UAE 대통령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UAE 방문 사실을 처음으로 공개 인정했다. 이는 UAE가 이란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이스라엘의 아이언돔 방공 기술과 이스라엘 인력을 자국에 배치한 지 몇 달 만의 일이었다. 아브라함 협정은 여전히 건재하다.


지난 8월에는 사우디아라비아, 튀르키예, 파키스탄이 나토(NATO)와 유사한 상호방위조약인 '메카 공동방위협정'을 체결했다. 그러나 후티 반군이 홍해 연안을 장악하고 이라크 민병대가 사우디의 동서 횡단 송유관을 공격하면서, 이 협정은 체결되자마자 벌써 곤혹스러운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같은 달 그리스는 이스라엘과 35억 달러 규모의 방위협정을 체결했다. 이스라엘 역사상 최대 규모의 무기 수출 계약으로, 그리스에 '아킬레스의 방패'라는 방공(防空)미사일 시스템을 제공하는 내용이다. 이스라엘은 지난 2월 이스라엘을 방문해 따뜻한 환대를 받은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도 경제-군사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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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아라비아반도 국가들을 순방하며 사우디, UAE, 카타르와 드론요격팀 파견을 위한 역사적인 안보협정을 체결했다.


동아프리카에서는 세력 확장을 위한 새로운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여기에는 수단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혹한 내전도 포함된다. 이 내전에는 6개가 넘는 중동 국가들이 개입해 홍해 연안과 아프리카 내륙에서 영향력과 접근권,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분쟁 초기 한쪽 세력을 지원했던 UAE도 그중 하나다. 당시 반대편 세력에서는 이란제 드론이 등장했다. 중동의 주요 국가들은 에티오피아에서 새롭게 불붙고 있는 전쟁에서도 각기 세력을 지원하고 있다.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과 뒤이은 가자지구에서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후, 수년간 비교적 평온했던 중동 지역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미국, 러시아, 중국이라는 세 초강대국은 이 모든 분쟁 무대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미국은 이란 경제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면서 갈수록 뚜렷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러시아는 이란이 미군을 공격할 수 있도록 정밀한 정보들을 제공하고 있다. 중국은 이란을 지원하면서 미군 시설에 관한 정보까지 제공하는 동시에, 사우디와 UAE 등 미국의 동맹국들과 새롭게 구축한 관계를 지키려 하고 있다. 실제로 중국은 이란산 원유의 약 90%를 구매하고 있으며, 자국이 수입하는 원유의 3분의 1은 사우디, UAE에서 들여오고 있다.


복잡하게 들린다면, 실제로도 그렇다.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고 빠르게 변화하는 오늘날의 세계에서 외교정책에는 그 어느 때보다 명확한 판단과 일관성, 신중함이 요구된다. 중동의 경쟁과 분쟁은 단순히 인접 지역으로 확산되는 데 그치지 않고, 아프리카 사헬지대의 사막에서 벵골만에 이르는 하나의 거대한 분쟁 무대로 합쳐지고 있다.


중동의 3대 군사강국인 튀르키예, 이란, 이스라엘은 각각 우월한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이란은 생존을 도모하는 한편, 가능하다면 걸프 지역의 주도권까지 장악하려 하고 있다. 튀르키예는 시리아에서 과거 오스만제국의 존재감을 되찾고자 한다. 이스라엘은 현 정부의 극우 장관들이 추구하는 종교적 민족주의 구상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안보를 확보하려 하고 있다. 다만 이들 장관은 임박한 선거를 통해 물러날 가능성이 있다.


한편 막대한 비용을 들여 군비를 확충했지만 여전히 취약성을 안고 있는 사우디는 광대한 영토와 공격에 취약한 석유 시설, 수니파 이슬람 세계의 지도국 지위를 지키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새로운 경쟁자로 부상한 파키스탄은 오래전부터 이슬람 세계의 세력 관계를 조정하는 중재자 역할을 열망해 왔다.


이들 국가는 모두 과거의 전통과 체제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은 채 여러 국가가 참여하는 새로운 세력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어느 한 국가도 패권을 장악하지 못하고 있으며, 모두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강력하지는 않다. 중동은 여러 측면에서 세계 신경계의 대뇌와도 같다. 교역로와 송유관이라는 신경이 외부에 노출되어 있어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특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는 후티 반군과 같은 소규모 무장세력이 벌이는 국지적 충돌에서 발생한 우발적인 사태조차 그 세력의 규모를 훨씬 뛰어넘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중동에서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세력 구도는 수니파 대 시아파, 또는 서방 대 이슬람의 대립보다는 미국의 동맹국들인 사우디, 이집트, UAE가 대표하는 개방적이고 친서방적인 이슬람과 이란 및 그 종속 세력들이 내세우는 폐쇄적이고 반서방적이며 급진적인 저항 노선 사이의 대립에 더 가깝다.


기존의 통념은 여전히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작동해 온 방식으로 중동을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국가들의 이합집산이 새롭게 이뤄지고 있는 현상이다. 이 과정에서 각국의 선택을 좌우하는 것은 전통이나 이념, 신학적 교리보다는 안보와 권력, 기술, 경제라는 냉철한 이해관계다.


그렇다면 전 세계적으로 새롭게 형성되는 이러한 세력 간 결합은 궁극적으로 안정을 가져올 새로운 균형으로 이어질 것인가? 아니면 분쟁들이 치명적으로 얽히면서 순식간에 전 지구적 규모의 거대한 전쟁으로 번지는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




지금 벌어지는 사태를 지켜보면서 독자들은 이런 의문을 품을 법하다. 중동에 관한 글에 수단, 그리스, 아제르바이잔, 인도가 왜 등장하는가? 이를 이해하려면 오늘날 중동에서 서로 다른 여섯 개의 지정학적 무대가 하나로 융합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러시아와 이란의 동맹 관계, 그리고 지난 8월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걸프 국가들과 체결한 일련의 협정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무대가 이란-이스라엘-미국-걸프 국가들이 얽힌 분쟁의 무대와 하나로 합쳐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두 번째는 캅카스와 중앙아시아 지역이다. 러시아의 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튀르키예는 튀르크계 민족이자 이슬람 국가이며 석유 자원이 풍부한 형제국 아제르바이잔과 동맹 관계를 구축할 수 있게 됐다. 아제르바이잔은 역사적으로 페르시아와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지배를 받았으며, 최근에는 아르메니아와 여러 차례 전쟁을 치렀다.


아제르바이잔은 이스라엘과 튀르키예 양국 모두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튀르키예 사이의 긴장은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아제르바이잔이 파키스탄의 동맹국인 튀르키예와 밀착하면서, 아제르바이잔의 적대국인 아르메니아는 파키스탄의 적대국 인도로부터 무기를 공급받고 있다.


한편 중앙아시아에서는 우즈베키스탄 역시 튀르키예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석유 자원이 풍부한 카자흐스탄은 러시아 및 인접한 중국으로부터 독립적인 입지를 강화하려 하고 있으며, 이스라엘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 동시에 미국이 주도해 출범시킨 아브라함 협정에도 참여하고 있다.


세 번째로 합쳐지고 있는 지정학적 무대는 필자가 '비잔틴 전역(戰域)'이라고 부르는 지역이다. 튀르키예는 오랫동안 유럽과 아시아, 기독교 세계와 이슬람 세계를 잇는 핵심적인 가교 국가 역할을 해왔다. 유럽연합(EU)과의 긴밀한 관계와 NATO 회원국이라는 지위 덕분에 미국의 오랜 동맹국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슬람주의 성향의 에르도안 대통령 집권 아래 튀르키예는 군사적, 경제적 힘과 이슬람주의적 사명, 오스만제국의 유산을 적극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튀르키예의 야망은 남유럽과 중동 양쪽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이며,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뿐 아니라 전통적인 적대국인 그리스와도 대립하고 있다.


오늘날 튀르키예-그리스 사이의 해양 영유권 분쟁과 동지중해의 천연가스 발견은 그리스가 이스라엘과 더욱 긴밀한 전략적 동맹 관계를 구축하는 계기가 됐다. 양국은 빠르게 공동의 이해관계를 확인하고 협력에 나섰다.


가장 위험한 분쟁 무대는 남아시아다. 모두 핵보유국인 파키스탄과 인도는 1947년 종교를 기준으로 두 나라가 분리되는 과정에서 유혈 참사가 벌어진 이래 줄곧 적대 관계를 유지해 왔다. 이후 양국은 다섯 차례 전쟁을 치렀으며, 가장 최근의 전쟁은 2025년에 벌어졌다.


파키스탄은 만성적으로 불안정한 병영국가다. 위세를 과시하는 군부 실력자들과 봉건적 정치 명문가들이 대중적 이슬람주의 세력과 권력을 다투는 가운데, 급증하는 부채와 경제 침체, 국내 정치적 탄압, 두 건의 유혈 반란에 시달리고 있다. 파키스탄은 언제든 무력 충돌로 번질 수 있는 인도와의 첨예한 적대 관계를 안고 있을 뿐 아니라, 과거 자신이 지원했던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과도 새로운 소규모 전쟁을 벌이고 있다. 파키스탄은 지난 일주일 동안 탈레반을 상대로 폭격을 가해 왔다.


전통적으로 파키스탄은 중국과 미국이라는 두 후원국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호의를 외교적 영향력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트럼프는 파키스탄군 최고사령관 아심 무니르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원수"라고 부른 바 있다. 파키스탄은 이란과의 중재 외교, 경제 거래, 사우디 및 튀르키예와의 새로운 동맹을 통해 이러한 호의를 영향력 확대로 연결하고 있다.


동시에 세계 최대 인구 대국이자 잠재적 초강대국인 인도는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더욱 긴밀히 하면서도 전통적인 이란과의 관계 및 이란산 석유에 대한 의존, 러시아와의 우호 관계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인도의 힌두 민족주의는 이스라엘의 민족주의와 일정한 공통점을 지니고 있으며, 러시아와의 우호 관계는 과거 소련과 맺었던 동맹 관계의 유산을 반영한다.


인도와 걸프 지역, EU를 연결하는 '인도-중동-유럽 경제회랑(IMEC)' 구상에는 이스라엘도 포함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2023년 10월 7일 이후 발발한 전쟁으로 이 계획은 보류됐다. 파키스탄-튀르키예-사우디의 '메카 동맹'과는 다른 비전을 제시하는 이 구상은 향후 재추진될 가능성이 있으며, 실현될 경우 유라시아에 새로운 경제권을 형성할 수 있다.


동아프리카와 홍해 지역에서는 이미 잔혹한 신제국주의적 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번 '아프리카 쟁탈전'에서 제국주의적 세력은 더 이상 유럽 국가들이 아니라 중동과 아프리카의 국가들이다. 이제 이스라엘, 튀르키예, 이집트, 이란, 걸프 국가들은 이 지역에서 어느 세력이 승리하고 어느 세력이 패배할지를 좌우하는 데 더욱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수단: 후티 반군의 사우디 송유관 공격과 바브엘만데브 해협 장악, 리야드 공격은 중동 국가들이 전쟁으로 황폐해진 아프리카 해안 지역에서 격화되는 세력 다툼에 더욱 주목하는 계기가 됐다. 이 지역에서는 걸프의 소규모 부자 강국들(UAE와 카타르)이 이미 신제국주의에 가까운 막대한 이해관계를 구축해 놓고 있다. 이들은 수단의 금과 항구를 확보하는 한편, 사막지역의 자국에 식량을 공급하기 위해 농지를 확보하려 하고 있다. 수단 내전에서 벌어지는 잔혹 행위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면서, 이제 많은 국가가 전쟁이 다른 지역으로 번지기 전에 이를 중단시키려 하고 있다.


소말리아: 이스라엘과 UAE는 1990년대 소말리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뒤 최근 국제사회의 국가 승인을 얻기 위해 다시 적극적인 외교에 나선 소말릴란드를 지원하고 있다. 양국은 후티 반군에 대응하기 위한 군사기지를 이곳에 확보하려 할 수도 있다. 소말리아는 이러한 움직임에 반대하고 있으며, 사우디와 튀르키예의 지원을 받고 있다. 특히 튀르키예는 제국주의 강대국처럼 소말리아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다.


에티오피아: 에티오피아는 내부적으로 여러 반란 세력에 직면해 있으면서도 대외적으로는 팽창주의 제국과 같은 행태를 보이고 있다. 내륙국인 에티오피아는 홍해로 통하는 항구를 확보하려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소말릴란드로부터 항구 사용권을 얻거나, 새로운 전쟁을 벌여 에리트레아로부터 항구를 빼앗을 가능성이 있다. 에티오피아는 바로 이달 에리트레아와 수단, 이집트가 자국내 반군의 폭력 행위를 선동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사헬은 북아프리카 최남단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지역이다. 국가 기능이 붕괴 위기에 처한 사헬지역 여러 나라에서는 젊은 장교들이 이끄는 군사정권들이 지하디스트 민병대와 전투를 벌이고 있다. 이들 군사정권은 전통적으로 옛 식민 지배국인 프랑스의 지원을 받았으며, 최근에는 러시아와 러시아 용병들의 지원도 받고 있다.

이들 국가 중 하나라도 무너진다면 지하디스트 세력은 남쪽으로 진격해 나이지리아에 침투하거나, 북쪽으로 세력을 확장해 내전 중인 리비아의 무장세력과 합류할 수 있다. 나아가 긴장과 불안 속에서 가까스로 유지되고 있는 이집트의 질서마저 위협할 수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이러한 지정학적 융합을 고려하면 '중동(Middle East)'이라는 명칭 자체가 머지않아 시대에 뒤떨어진 용어가 될 수도 있다. 기업과 정치권 모두 이제 더 넓은 지역을 하나의 공간으로 바라보며 전략을 조율해야 한다.


이 지역을 '서아시아'라고 부르면 아프리카와 유럽이 빠진다. 최근 유행하는 'SWANA'라는 용어는 서남아시아와 북아프리카(Southwest Asia + North Africa)를 뜻하지만, 이 역시 비잔틴 지역과 중앙아시아, 동아프리카, 나아가 남아시아의 지정학적 무대를 포괄하지 못한다.


필자는 남유럽(South Europe), 중동(Middle East), 사하라(Sahara), 남아시아(South Asia), 동아프리카(East Africa)를 하나로 묶는 'SEMESTEA' 같은 명칭을 선호한다.


어떤 명칭이 널리 쓰이게 되든, 오늘날의 불안한 지정학적 현실에서 누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즐거움 중 하나는 새로운 두문자어(頭文字語)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적어도 그 정도의 즐거움은 누려보자.


지금 이 지역의 정세가 얼마나 유동적인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새롭게 형성되는 국가 간 결합은 유연하며 서로 중첩된다. 메카 방위협정이 여전히 유효한 아브라함 협정이나 인도-아라비아-이스라엘을 연결하는 경제회랑 구상과 반드시 양립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큰 위험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미국-이란-이스라엘 간 전쟁, 그리고 인도-파키스탄 간의 무력 충돌과 하나로 합쳐지는 것이다. 서로 다른 분쟁 무대에서 타오르는 불길이 화재 전문가들이 '플래시오버(flashover)'라고 부르는 현상처럼 하나로 연결된다면, 국지적인 불길은 걷잡을 수 없는 거대한 화염으로 번져 세계대전으로 비화(飛火)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여러 영역에 걸쳐 전 지구적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초강대국은 반드시 중동에 진출해야 했다. 냉전 시대의 초강대국들이든, 유럽 열강이든, 오스만제국이든 예외가 없었다.


오늘날 중국은 아직 중동에 전면적으로 개입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전투함대를 증강하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미국의 실책을 기회로 활용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만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405년부터 1433년까지 아라비아와 동아프리카를 항해했던 명나라의 환관 출신 제독 정화(鄭和)와 그가 이끈 대규모 보물선단을 얼마나 자주 언급하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우디를 비롯해 안보 불안을 느끼는 역내 국가들은 최대의 경제협력 상대인 중국이 중동 문제에 적극 관여하기를 바라고 있다. 이들은 중국이 신뢰할 만한 안보 협력국으로서 미국을 대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다.


현재 진행 중인 분쟁들, 즉 이란과의 전쟁까지 포함하는 이른바 '10월 7일 전쟁들'은 당분간 깔끔하게 종결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37년간 이어진 알리 하메네이의 통치가 끝난 뒤 이란에 통합된 지도부가 부재하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렇다.


역설적인 것은 이란의 아랍 국가들에 대한 공격이 역내 여러 국가에 미국의 존재를 더욱 절실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누구도 미국을 신뢰하지 않지만, 많은 국가는 미국의 존재와 보호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이란의 공격은 이스라엘이 여러 결함에도 불구하고 아랍 국가들에 과거 어느 때보다 전략적으로 매력적인 협력 상대가 되도록 만들고 있다.


최근 협상 과정에서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내부의 권력 경쟁에 휘둘리면서 튀르키예와 레바논, 이란에 대해 서로 다르고 심지어 모순되기까지 한 정책들을 추진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지난 2월 전쟁 개시가 아무리 충동적으로 보였다고 하더라도, 베네수엘라에서의 작전과 2025년 이란 핵시설 폭격은 미국이 은밀하면서도 집중력을 갖고 일을 해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제 이란 전쟁이 시작된 지 7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봉쇄는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 공급과 사우디의 동서 횡단 송유관을 비롯한 다른 경로의 원유 공급량은 현재로서는 전쟁 이전 수준을 향해 회복되고 있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상처 입은 호랑이만큼 위험한 존재는 없다.


전쟁이 어떤 결말을 맞든, 여러 분쟁 무대가 갈수록 하나로 융합되고 전쟁의 불길이 순식간에 전면적으로 확산될 위험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은 신중하고 일관된 정책을 추진하는 미국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음을 의미한다. 갈수록 위험해지고 서로 연결되는 이 새로운 세계를 관리할 수 있는 유일한 강대국은 미국이기 때문이다.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는 역사학자로, 러시아와 중동의 역사를 다룬 다수의 베스트셀러와 수상작을 집필했다. 그의 저서들은 48개 언어로 출간됐으며, 대표작으로는 《예카테리나 대제와 포툠킨》(Catherine the Great & Potemkin), 《예루살렘 전기: 중동의 역사》(Jerusalem: The Biography—A History of the Middle East) 등이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곤빌앤드키스 칼리지에서 역사를 공부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저서로 《도가니: 현대 중동의 형성》(The Cauldron: The Making of the Modern Middle East)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