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에 대한 찬미가 아닌 가난을 노래하는 소네트

2022년 퓰리처상 수상 시인 다이앤 수스의 현대적 소네트
비루하고 처절한 현실을 응시하면서도 소망을 노래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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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다이앤 수스의 시집 <frank: sonnets> /제공=Graywolf Press

2023.04.23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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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평소에 즐겨 읽지 않더라도 소네트란 단어에는 친숙한 경우가 많을 것이다. 이탈리아어로 '작은 노래'를 뜻하는 '소네트'의 어여쁘고 우아한 어감만큼이나 고전적인 소네트는 아름답고 고상한 문학 형식이었다. 이상적인 여성 로라를 향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호소하는 페트라르크의 목소리로 쓰인 최초의 소네트들은 열네 줄의 짧은 시 속에 상대방에 대한 열렬한 찬미와 자신의 감정에 대한 과장된 고백을 함께 담고 있다.


2022년 퓰리처상 시 부문 수상작인 다이앤 수스(Diane Seuss)의 소네트들은 이렇게 귀족적인 사랑 노래로 시작된 시 형식을 취하면서 그 속에서 현대적인 반란을 일으킨다. 사실 셰익스피어와 밀턴 이후로 오랜 세월 동안 영미시에서 고전 이탈리아 소네트를 새롭게 변화시키려는 여러 시도가 있었지만, 수스의 소네트들은 그 시도들이 무색할 만큼 예쁜 포장 따위는 걷어치우고 날것 그대로의 현실을 여과 없이 보여 주기에 더욱 인상적이다. 미시간의 시골 마을에서 홀어머니와 함께 가난한 환경에서 자라난 수스는 주류 문화에서 소외되고 배제된 삶을 정직하게 그려 내면서 독자의 공감과 연대를 끌어낸다.

다이앤 수스 - 소네트는, 마치 가난처럼 (번역: 조희정)

소네트는, 마치 가난처럼, 없어도 견딜 수 있는 게 무엇인지를

가르쳐 준다. 우리 엄마 말씀처럼, 한 손에는 소원을,

다른 손에는 똥을 들고 사는 것. 그건 내가 즉석카메라와 아버지를

원했을 때 돌아온 답이었다. 엄마는 말씀하셨다, 한 손에는 소원을,

다른 손에는 똥을 들고 있으라고. 엄마는 아직도 그 말을 하신다. 내가 거기 있어서

엄마가 끓인 콩 수프를 좀 먹을 수 있었으면 하고 바라실 때

스스로 답하신다. 한 손엔 소원을, 다른 손엔 똥을 들고 있어야지, 엄마 말씀이다.

가난은, 마치 소네트처럼, 좋은 선생님이다. 교실을 가로질러

사전을 던져 존재했던 모든 단어로 머리를 치는 유형의 선생님 말고,

자로 손가락 마디를 때리는 유형의 선생님.

관에 들어가 깊이 묻힌 아버지도 여전히 아버지야,

선생님은 말씀하신다. '그-' 없어도 상관없어. '그리고' 없어도. 익힌 콩

요리에 소시지가 없어도. 소네트는 엄마다. 모든 단어는

은빛 동전이다. 엄마가 말씀하신다, 한 손엔 똥이 있어도, 다른 손엔 소원을 가지렴.




수스의 소네트 연작에 담긴 의미를 소개하는 이 시의 첫 줄에서부터 소네트는 '가난'과 비유된다. 사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노래하던 수백 년 전의 소네트도 대상에 대한 욕망을 재생산하는 어떤 결핍에서 출발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수스의 소네트에서 결핍은 삶을 지탱하는 것 자체를 위협하는 현실적 결여이다. 이런 결여는 당연하게도 욕망으로 이어지게 마련일 텐데, 이 소네트는 그렇게 배태된 욕망이 처음부터 좌절될 운명이라는 것을 전제한다. 수스가 생각하는 시란 그래서 '가난'을 닮아있다. 어머니가 늘 말씀하시듯이 못내 가지고 싶은 무언가를 소망하지만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음을 알려 주는 것, 그것이 바로 시의 역할이다. 빈곤과 박탈로 얼룩진 수스의 개인적 경험들을 통해 전달되는 현실은 꿈도 소망도 용납하지 않는 비루한 곳이며 아름답고 향기롭기는커녕 배설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이 소네트의 진짜 메시지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상화되지 않은 현실을 정직하게 보여 주어야 하는 것이야말로 틀림없는 시의 사명이지만, 수스는 중반부에서 소네트와 '가난' 사이의 비유를 뒤집음으로써 시에 대한 또 하나의 새로운 깨달음을 향해 독자를 이끌어 간다. '가난', 그리고 시는 현실 그 자체를 아프게 인지시켜서 부재와 결핍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수긍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 '그-'(the)라고 지칭할 특정한 것을 원하는 대로 갖지 못해도, '그리고'(and)라고 덧붙이며 하나 더 갖는 게 불가능해도, 심지어 소시지를 살 돈이 없어서 익은 콩 요리를 밋밋한 맛으로 먹어야 해도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처절한 현실을 긍정한 끝에야 드디어 잉태되는 것은 새로운 소망이다. 마지막 행에서 어머니의 말씀은 배설물로 가득한 시궁창에서도 소망을 버리지 말라는 것으로 변화한다. 시는 비루하고 처절한 현실 속에서도 끝내 다시 꿈을 꾸라고 말하는 것이다.


수스에게 시는 자신의 정신적 뿌리가 되었던 어머니와도 같은 존재이다. 원하는 것을 쉽사리 손에 넣을 수 없는 현실을 직시하게 하면서도 그 척박한 상황을 딛고 다시 소망을 가질 수 있게 하는 저력, 그것이야말로 시의 힘이고 시가 감당해야 할 역할이다. 우리가 마땅히 가져야 할 무엇인가에 쉽사리 다다를 수 없게 하는 현실의 복잡한 문제들을 그 나름의 방식으로 드러내지만, 또 이 문제들의 분명한 인지를 통해 역설적으로 더욱 튼실해진 꿈을 꾸게 하는 시의 힘. 수스의 소네트는 시의 그 묵직한 잠재력을 길어내는 과정을 솔직하고도 감동적으로 전달해 준다.

원문: The sonnet, like poverty, teaches you what you can do

The sonnet, like poverty, teaches you what you can do

without. To have, as my mother says, a wish in one hand

and shit in another. That was in answer to I wish I had

an instamatic camera and a father. Wish in one hand, she

said, shit in another. She still says it. When she tells me

she wishes I were there to have some of her bean soup

she answers herself. Wish in one hand, she says, shit in another.

Poverty, like a sonnet, is a good teacher. The kind that raps your

knuckles with a ruler but not the kind that throws a dictionary

across the room and hits you in the brain with all the words

that ever were. Boxed fathers buried deep are still fathers,

teacher says. Do without 'the'. Without 'and'. Without hot

dogs in your baked beans. A sonnet is a mother. Every word

a silver dollar. Shit in one hand, she says. Wish in another.





조희정은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하버마스의 근대성 이론과 낭만주의 이후 현대까지의 대화시 전통을 연결한 논문으로 미시건주립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인간과 자연의 소통, 공동체 내에서의 소통, 독자와의 소통, 텍스트 사이의 소통 등 영미시에서 다양한 형태의 대화적 소통이 이루어지는 양상에 관심을 가지고 다수의 연구논문을 발표하였다.



"[The sonnet, like poverty]" from <frank: sonnets>. Copyright ? 2021 by Diane Seuss. Used with the permission of Graywolf Press, Minneapolis, Minnesota, USA, www.graywolfpres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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