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에 '절망'한 시인의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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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 브루킨스의 시집 <프리덤 하우스>의 표지 /사진제공=KB Brookins

2023.04.23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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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영미시의 다양한 목소리를 가만 살피다 보면 시의 몫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때론 누군가의 순전한 정서의 토로일 시는 어떤 장에서는 적극적인 정치발언으로 존재하고, 때로는 순전히 미학적인 실험으로 존재하기도 한다. 시의 유구한 역사를 생각해보았을 때 이런 식의 단순화는 어불성설이겠지만 그럼에도 시에 대해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시의 목소리가 시인의 외부세계와 유리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20세기 초 미국의 시인 뮤리얼 루카이저(Muriel Rukeyser)의 그 유명한 말, "경험을 들이쉬고 시를 내쉰다"(Breathe-in experience, breathe-out poetry)는 이러한 현대영미시의 특징을 가장 간결하고도 핵심적으로 드러내는 말이겠다. 시인은 언제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기민하게 반응하고 어떻게든 "시를 내쉰다."


이러한 맥락에서 오늘날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동시대 영미시들을 살펴보면 그간 우리가 시에 대해 생각해 온 바 이상으로 정치적이거나 사회참여적인 목소리를 다수 발견할 수 있다. 개중에는 더러 특정한 안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본 호에서 읽고자 하는 시는 최근 가장 화급한 이슈일 기후변화(climate change)에 대한 시로, 이 용어는 그간 그 얼굴을 다양하게 바꿔가며 문제의 경각심을 일깨워왔다. 기후위험(climate risk)으로, 기후위기(climate crisis)로, 기후비상(climate emergency)으로, 기후재앙(climate disaster)으로 불리더니 최근엔 기후트라우마(climate trauma)로까지 불려져 왔다. 기후의 변화를 감지했던 인류는 그것을 인간에게 미칠 위기로 파악하고 비상사태를 선언하더니 그것이 어느덧 우리의 인식체계에 남길 트라우마로까지 발전되었다며 용어를 통해 해당 담론을 진화시켜온 것이다. 때 이르게 훌쩍 핀 봄꽃만으로도 우리는 더 이상 기후변화가 초래할 많은 위협을 부인할 수 없으며 다만 어떻게 생존해야할 것인지 고민해야 하는 시기에 살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미국의 시인 브루킨스(KB Brookins)는 자신의 시 「상담사는 그걸 기후 절망이라 불렀고」에서 기후 절망(climate despair)이란 표현을 쓴다.


시인 KB 브루킨스 /사진=Kale Garcia

시인 KB 브루킨스 /사진=Kale Garcia

KB 브루킨스 - 상담사는 그걸 "기후 절망"이라 불렀고 (번역: 박선아)

& 나는 누군가의 눈에 띄는 일을 힘들어하고 있다. 공공장소에서,

나는 가장 가까운 구석으로 저어 들어간다. 사람이 없는데선,

다섯 번째 주중 계획을 취소하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린다.

불이 한창 타는 동안에는 광고방송이 없다. 오늘 아침에

일어났을 때, 난 심장에게 그만 떠들라고 말했다. 빛이

창문을 통과해 비추었고 & 화씨 110도의 기온은

모두 같았다. 나는 가게로 걸어가고 & 싸움이 벌어진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고 & 정신이 나간다. 어지럼증이

나를 바닥에 내리 꽂고 그건 마치 경찰차가 따라붙을 때의 흑인 소년들 같다.

뒷면이 퉁퉁한 TV 한가운데엔 의식을 잃어가는 나를

끝도 없이 갖고 놀며 무한 반복되는 광고방송이 없다. 열기는 나를 쫓아

꼭 다른 사람이 고른 이름처럼 응급실까지 쫓아온다. 무거운 눈꺼풀은

부상에 대한 모욕. 내일 아침에 나는

병원침대를 끌어안는다. 유례없는 최악의 열폭풍 속 고립 같다.

그러다 엄마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다행이야, 법이 뜨거웠으니

안 그랬음 넌 벌써 타죽었을거야.' 우리가 '우리미국'이라고 부르는 만화에는

광고가 없다. 이미 외워버린 지침을 뇌로부터 지울 것.



절망이란 말은 곧 바라볼 것이 없어 모든 희망을 끊어버린 상태. 시에서 화자는 상담사를 찾아 나설 만큼의 불안을 겪고 있고 상담사는 그 불안에 "기후 절망"이라 이름 붙인다. 그의 진단처럼 시에는 기후변화를 가리키는 여러 시어들이 배치되어 있다. "불타는," "화씨 110도"(섭씨 43도 정도의 열기다), "열기," "열폭풍"과 같은 시어들은 분명 기후변화의 징후들을 가리키고 화자는 이를 일상적인 차원에서 감지하고 절망을 느낀다. 인류가 곧 멸망할 수도 있으리라는 종말론적인 전망에 화자는 "누군가의 눈에 띄는 일을 힘들어"하고, 있던 "계획을 취소하고" "심장에 그만 떠들라고 말"할 정도의 불안을 느끼는데 여기엔 분명 기후변화의 몫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시인이 기후위기의 징후들을 가리키는 몇몇 표현들을 가까이 살펴보면 마치 모든 인류에게 피할 수 없는 재앙처럼 느껴지는 이 절망의 기제들이 실은 모든 인간에게 똑같이 가해지는 게 아닐 수도 있음을 눈치챌 수 있다. 그에게 "어지럼증"을 불러일으키며 "바닥에 내리 꽂"는 열기에 대해 쓸 때 시인은 이 열기를 감각하는 것이 "경찰차가 따라붙을 때의 흑인 소년들"의 정서와 연결되어 있다고 쓴다. 이는 경찰에 의해 제압당하며 "숨쉴 수가 없다"(I can't breathe)를 외치다 사망하여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운동을 또다시 불붙게 했던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를 상기시킨다. 또한 "누군가의 눈에 띄는 일을 힘들어하"며 "가장 가까운 구석으로 저어 들어가는" 화자의 대인기피는 브루킨스 스스로 흑인이자 퀴어이며 트랜스젠더이기도 함을 감안하면, 혐오폭력에 대한 자기방어적 태도로도 읽을 수 있다. 결국 화자를 응급실로 가게 할 정도로 유례없는 최악의 열폭풍 속에서 화자는 고립을 감각하는데 이 때 화자의 어머니는 말한다. '다행이야, 법이 뜨거웠으니 / 안 그랬음 넌 타죽었을거야.' 얼핏 이해하기 힘든 이 구절은 법이 실제로 얼마나 흑인들에게 가혹하게 작동했는지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기후가 법만큼 뜨거웠으면 흑인 소년은 벌써 타죽었을 거란 흑인 어머니의 대범한 위트가 발해지는 대목이다. 기후재난 시절의 화급함과 미국에서 흑인으로 살아가는 일의 절망이 '다행이야'라는 반어로 기입되는, 참으로 시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시는 기후변화가 불러 오는 징후들이 다차원적인 계급적 불평등 문제와도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상기시킨다. 근 몇 년의 기억을 떠올려보자. 갑작스런 물난리는 반지하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갔고 이번 봄 가뭄 속 속절없이 번져간 산불은 많은 이들의 터전을 빼앗았다.시에서 그려지고 있는 열기는 요 몇 년간 유럽대륙을 괴롭히고 있는 살인적인 더위를 떠올리게 하며, 이 더위는 냉방이나 환기가 어려운 조건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나 생계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거리로 나와야 하는 사람들의 생존을 위태롭게 만든다. 말하자면 기후재앙은 제일 먼저 가난한 이들에게 찾아든다. 자유와 평등을 노래하는 미국(US)의 이상적인 우리(US)가 더 이상 불가능할 때, 브루킨스는 요청한다. 우리 모두가 "외워버린 지침을 뇌로부터 지울 것." 몸이 외워버린 기존의 삶의 방식을 지우고 기후위기를 극복할, 차별을 무력하게 할 새로운 감각이 필요한 시기다.


원문: My therapist called it "climate despair"

& I'm having a hard time being perceived. In public,

I puddle into the nearest corner. In private, I fidget

my fingers as I cancel the 5th plan this week. There are

no commercials in the midst of burning. When I awoke

this morning, I told my heart to stop talking. Light

shone through my window & all 110 degrees were

the same thing. I walk to the store & a fight breaks out.

I walk back home & my mind goes missing. Dizziness pins me

to the pavement like Black boys when cop cars are too close.

There are no commercials in the midst of fat-backed TVs

playing me, losing consciousness, on loop. Heat follows me

to the ER like a name somebody else chose. Heavy eyelids

are an insult to injury. Tomorrow morning I embrace

the hospital bed like isolation during the worst heatstorm

in history till I turn my head to mama. Be lucky the laws were hot

or you would've burned to death. There are no commercials

in the cartoon we call US. Remove the memorized

guide from my brain.


이 시는 Poetry 매거진 2023년 3월호에 처음 실렸습니다.




박선아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영미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현대 미국시의 모성시 연구로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뮤리얼 루카이저의 『어둠의 속도』를 번역했고, 주로 여성 작가들과 학자들의 저작을 번역하고 연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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