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02 12:23
중국은 미국이 자신을 억누르기 위해 무엇이든 하리라고 결론을 내렸다. 미국은 중국이 자신을 대신해 세계 최고 강대국 자리에 오르려 획책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고조되는 적대감에 대한 냉정한 분석, 그리고 이런 적대감이 초강대국 간 전쟁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계획을 들으려면 뉴욕 맨해튼 한가운데에 있는 아르데코 스타일 빌딩의 33층을 찾으면 된다. 헨리 키신저의 사무실이다.
5월 27일에 키신저는 100세가 된다. 현재 살아있는 인물 중 그보다 국제정치 경험이 많은 사람은 없다. 그는 19세기 외교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이후 미국의 국가안보보좌관과 국무장관으로서, 그리고 지난 46년간 군주, 대통령, 총리의 자문역 및 특사로 활동하며 국제정치를 경험했다. 그런 키신저가 걱정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양측 모두 상대방이 전략적 위협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대격돌로 향하고 있어요."
지난 4월 말 이코노미스트는 키신저와 중국과 미국의 경쟁이 전쟁으로 치닫는 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지에 대해 8시간 넘게 이야기를 나눴다. 요즘 그는 구부정한 자세로 힘겹게 걷고 있지만 정신은 바늘처럼 날카롭다. 인공지능(AI)과 동맹의 본질에 관한 차기 저작 두 권을 구상하면서 그는 여전히 과거를 회상하기보다는 미래를 내다보는 데 관심이 많다.
키신저는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기술 및 경제적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격화되는 모습을 우려한다. 러시아가 중국쪽에 한층 가까워지고 전쟁의 그림자가 유럽의 동쪽에 드리워져 있는 지금, 그는 인공지능에 의해 미중 경쟁이 더욱 격화될 가능성을 두려워한다. 전 세계적으로 힘의 균형과 전쟁의 기술적 기반이 너무 빠르고 다양한 방식으로 변하고 있어 국가들이 세계질서를 확립할 수 있는 확실한 원칙을 못 가지고 있다. 이런 원칙을 찾지 못한다면 무력에 의존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우리는 지금 1차 세계대전 직전과 유사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어느 쪽도 정치적 양보를 할 수 있는 여지가 많지 않고 한번 균형이 깨지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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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연구
키신저는 베트남전쟁에서 한 역할로 인해 많은 사람들에게 호전광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그 자신은 강대국 간의 분쟁을 막는 것을 일생의 과업으로 삼았다. (독일계 유태인으로서) 나치 독일의 대학살을 목격하고 홀로코스트에서 가까운 친척 13명이 살해당하는 아픔을 겪은 후, 그는 파괴적인 싸움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냉정한 이성에 따른 외교뿐이고, 이런 외교가 특히 공유된 가치에 의해 지원을 받을 때 더욱 효과적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입니다. 저는 제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평생 노력해 왔다고 생각해요." 그가 보기에 인류의 운명은 미국과 중국이 과연 공존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그는 특히 인공지능의 급속한 발전으로 인해 인류에게는 그 해법을 찾을 시간이 5~10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키신저가 세계 1위를 놓고 다투는 미국과 중국에게 전하는 첫 번째 조언은 다음과 같다. "현 위치를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가차없이." 이러한 관점에서 전쟁을 피하기 위한 첫걸음은 중국의 변화에 대한 갈망을 분석하는 것이다. 키신저는 중국 정부에 유화적이라는 세간의 평판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많은 정치이론가들이 미국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으며 "따라서 역사적 진화의 결과로 결국 중국이 미국을 대체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한다.
그는 중국 지도부가 서방 정책결정자들이 항상 말하는 '규칙에 기반한 글로벌 질서'라는 것이 실제로는 미국의 규칙과 미국의 질서를 의미할 뿐이라며 분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통치자들은 중국이 행동을 똑바로 하면 특혜를 주겠다는 서방의 오만한 협상태도에 모욕감을 느낀다(중국은 그것이 '특혜'가 아니라 떠오르는 강대국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중국의 일부 사람들은 미국이 결코 중국을 동등하게 대우하지 않을 것이며 그런 것을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키신저는 중국의 야망을 정확히 해석해야 한다고 말한다. 미국 정부는 "중국이 세계 지배를 원한다고 말하지만... 중국은 단지 강해지고 싶다는 것이 정답입니다. 그들은 히틀러처럼 세계 지배를 지향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세계 질서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고 생각해 본 적도 없습니다."
나치 독일에서는 아돌프 히틀러가 전쟁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전쟁이 불가피했지만 중국은 다르다고 키신저는 말한다. 그는 마오쩌둥을 시작으로 많은 중국 지도자들을 만났다. 그들은 이데올로기적 신념이 강했지만, 그가 보기에 이것이 항상 중국의 국익과 실제 역량에 대한 예리한 현실감각과 결합되어 있었다.
키신저는 중국 체제를 마르크스주의보다는 유교적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중국 지도자들은 자국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자신의 업적에 대해 존경을 받으려고 노력한다. 중국 지도자들은 국제 사회에서 (다른 나라가 아닌) 자신들이 자국의 이익에 대한 최종 판단자로 인정받기를 원한다. "만약 그들이 맘대로 할 수 있는 세계패권을 가진다고 남들에게 중국 문화를 강요하는 데까지 나아갈까요? 모르겠어요. 제 직감은 '아니오'입니다… [하지만] 외교와 무력을 결합하여 혹시라도 그러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막는 것이 우리의 능력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PADO 트럼프 특집: '미리보는 트럼프 2.0 시대']
중국의 야망에 대한 미국의 자연스러운 대응 중 하나는 두 초강대국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중국을 철저히 연구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미중 사이에 상시적인 대화채널을 구축하는 것이다. 중국은 "글로벌 역할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양국의 전략적 역할 개념이 서로 양립할 수 있는지 아닌지 매 순간 평가해야 합니다." 양립할 수 없다면 무력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중국과 미국이 전면전의 위협 없이 공존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저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는 성공이 보장되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인정한다.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실패에 대비해 충분한 군사력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당장의 시험대는 중국과 미국이 대만에 대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이다. 키신저는 1972년 리처드 닉슨이 중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 마오쩌둥만이 대만에 대해 협상할 권한이 있었다고 회상한다. "닉슨이 구체적인 주제를 제기할 때마다 마오는 '나는 철학자라 이런 주제는 다루지 않습니다. 저우언라이(周恩來)와 키신저에게 맡기시죠'라고 말했죠. 하지만 대만에 관해서는 매우 분명했습니다. '대만은 반혁명 무리입니다. 지금은 대만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100년은 기다릴 수 있습니다. 언젠가 우리는 대만을 요구할 것이지만 그건 아주 먼 훗날의 이야기입니다'라고 하더군요."
키신저는 닉슨과 마오쩌둥 사이에 맺어진 합의가 그 100년이 다 지나기도 전인 50년 만에 도널드 트럼프에 의해 뒤집혔다고 여긴다. 그는 무역에서 중국의 양보를 뺏아내 자신의 강한 이미지를 부풀리려 했다. 정책적으로 바이든 행정부 역시 트럼프가 시작한 것을 이어받았고 단지 진보주의적 수사를 첨가했을 뿐이다.
키신저라면 대만에 대해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에 우크라이나 전쟁 같은 게 대만에서 일어나면 대만은 파괴되고 세계경제는 파국을 맞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전쟁은 또한 중국을 국내적으로도 후퇴시킬 수 있는데 중국 지도자들은 여전히 국내의 격변을 가장 두려워한다.
전쟁에 대한 두려움은 물론 희망의 발판이 되기도 한다. 문제는 어느 쪽도 양보할 여지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모든 중국 지도자들은 중국과 대만의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강조해 왔다. 하지만 "지금까지 상황이 전개되어 온 것을 보면, 미국이 다른 곳에서 입지를 약화시키지 않고 대만을 포기하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죠."
키신저는 재직 당시의 경험에서 이런 딜레마를 벗어나기 위한 해법을 찾는다. 그는 먼저 냉정을 되찾고 점차 신뢰와 협력 관계를 구축하기를 제안한다. 미국 대통령은 중국에 대한 모든 불만을 나열하는 대신 중국 주석에게 이렇게 말한다. "주석님, 지금 평화를 위협하는 가장 큰 두 가지 위험은 바로 우리 둘입니다. 우리는 인류를 파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과 미국은 공식적으로는 아무것도 발표하지 않고 조용히 자제를 추구한다.
정책결정을 관료제가 주도하는 걸 결코 좋아하지 않는 키신저는 서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소수의 보좌진이 조용히 협력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어느 쪽도 대만에 대한 입장을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않겠지만, 미국은 군대를 어떻게 배치할지 신중을 기하고 대만의 독립을 지지한다는 의심을 사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키신저가 미국과 중국에게 던지는 두 번째 조언.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정확한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수단, 구체적인 수단을 찾아야 합니다." 대만 문제는 이 두 초강대국이 공통점을 찾아 글로벌 안정을 도모할 수 있는 여러 협력분야 중 첫 번째에 불과할 것이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최근 연설에서 기후 변화와 경제를 이 협력분야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키신저는 두 가지 모두에 회의적이다. 그는 기후에 대한 행동에 "전적으로" 찬성하지만, 그것이 두 초강대국 간의 신뢰를 형성하거나 전략적 균형을 잡는 데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갖는다. 경제와 관련해서는 중국에 발전의 여지를 전혀 허용하지 않으려는 매파들이 무역 의제를 장악하는 것이 위험하다.
이러한 '모 아니면 도' 식의 태도는 더 넓은 범위의 화해 모색에 위협이 된다. 미국이 중국과 함께 살 방법을 찾고 싶다면 (공산주의) 정권 교체를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된다. 키신저는 커리어 초기부터 갖고 있던 테마를 가져왔다. "안정을 위한 외교에는 19세기 세계의 요소가 좀 있어야 합니다. 19세기의 세계는 경쟁하는 다른 국가들의 존재를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일부 미국인들은 중국이 패배해야 민주적이고 평화로운 나라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아무리 중국이 민주주의 국가가 되기를 바란다고 하더라도 그런 변화가 민주적이고 평화로운 나라를 가져왔다는 전례가 없는 게 키신저의 생각이다. 오히려 중국 공산당 정권의 붕괴는 이념적 갈등으로 굳어진 내전으로 이어져 세계의 불안정성을 가중시킬 가능성이 더 높다. "중국을 붕괴로 몰아가는 것은 우리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미국은 고집부리는 것을 멈추고 중국도 나름의 이해관계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우크라이나가 좋은 예다.
최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처음으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접촉했다. 많은 전문가들이 시 주석의 통화가 중국이 러시아와 너무 가깝다고 불평하는 유럽인들을 달래기 위한 쇼에 지나지 않는다고 일축했지만 키신저는 이를 진지한 의도의 선언으로 본다. 전쟁을 둘러싼 외교를 복잡하게 만들 수 있는 한편, 초강대국 간의 상호 신뢰를 구축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키신저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비난하는 것으로 자신의 분석을 시작한다. "결국 푸틴의 치명적인 판단 실수였습니다." 하지만 서방도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회원국 자격을 개방하기로 한 결정은 매우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토의 보호를 제공할 구체적 계획도 없이 나토 가입안만 띄운 것으로는, 우크라이나를 제대로 된 방어도 없이 공격에 노출시키고 푸틴 뿐만 아니라 많은 러시아인들을 분노하게 만들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과제는 다음 분쟁의 씨앗을 남기지 않고 전쟁을 종식시키는 것이다. 키신저는 러시아가 2014년에 정복한 영토를 최대한 많이 포기하기를 원하지만, 현실은 어떻게 휴전하든 러시아가 최소한 세바스토폴(크림 반도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러시아 흑해함대 소재지)은 유지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가 일부 이득을 잃고 다른 이득을 얻는 이러한 합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에게 불만을 남길 수 있다.
그가 보기에 이렇게 휴전하게 되면 또 싸움이 발발한다. "지금 유럽에서 하는 말들은 제가 보기에는 정말 위험합니다. 왜냐면 '우크라이나는 너무 위험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이 나토에 들어오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을 무장시키고 최첨단 무기를 제공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셈이니까요." 이를 지켜보는 키신저의 결론은 어둡다. "우리는 이렇게 우크라이나를 유럽에서 가장 잘 무장된 국가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무장된 나라가 여전히 전략적으로는 가장 경험이 적은 지도부를 갖고 있죠."
유럽에 지속적인 평화를 구축하려면 서방은 두 가지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첫 번째는 우크라이나를 견제하고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우크라이나를 나토에 가입시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유럽이 안정적인 동부 국경을 만들기 위해 러시아와 화해를 도모하는 것이다.
많은 서방 국가들은 당연히 이러한 방안 앞에서 주저할 것이다. 중국이 러시아의 동맹국이자 나토의 적으로 개입하면 과제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중국은 러시아가 너무 망가지지 않고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기를 바란다. 시진핑은 푸틴과 "어떤 한계도 없는" 파트너십을 맺고 있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가 붕괴되면 중앙아시아에 생기는 권력의 공백으로 '시리아형 내전'이 발생해 중국에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진핑 주석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전화를 건 후 키신저는 중국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미국과 중국을 하나로 묶어 소련에 맞서게 한 외교정책을 입안했던 인물인 그는 중국과 러시아가 잘 협력할 수 있을지 의심하고 있다. 그들은 미국에 대한 의심을 공유하고 있지만 또한 서로에 대한 본능적인 불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저는 중국에 대해 좋은 말을 하는 러시아 지도자를 한번도 만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러시아에 대해 좋은 말을 하는 중국 지도자를 만나본 적도 없습니다." 그들이 동맹으로 남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키신저는 중국이 국익을 위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외교에 나섰다고 말한다. 그들은 러시아가 무너지는 것을 용인하지 않지만 우크라이나가 독립 국가로 남아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며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에 대해 경고했다. 심지어 중국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 "중국은 부분적으로는 미국과의 충돌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중국은 최선을 다해 나름의 세계 질서를 만들고 있는 겁니다."
중국과 미국이 협력해야 할 두 번째 분야는 인공지능이다. "우리는 기계가 전 세계에 전염병이나 기타 팬데믹을 멋대로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이 막 만들어지고 있는 단계에 있습니다. 핵 뿐만 아니라 인간을 파괴할 수 있는 모든 분야가 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는 인공지능 전문가들조차도 인공지능의 능력이 어느 정도일지 모른다고 생각한다(우리는 키신저와의 인터뷰를 가지고 실험해봤는데, 그의 억센 독일어 억양을 글자로 옮기는 것은 아직 인공지능의 능력을 넘어서는 것 같다). 하지만 키신저는 인공지능이 5년 이내에 안보 문제의 핵심 요소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는 인공지능의 파괴적인 잠재력을 16~17세기의 파괴적인 전쟁을 일으키는 데 일조한 사상을 퍼뜨린 인쇄술 발명과 비교한다.
"[우리는] 전례 없는 파괴력의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인간의 통제 아래 있어야 한다는 원칙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움직이며 우리가 멈출 수도 없는 무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군사 역사를 살펴보면 지리적 한계와 정확도의 한계로 인해 적을 모두 파괴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한계가 없어졌습니다. 이제 모든 적을 100% 파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인공지능을 금지시킬 수도 없다. 따라서 중국과 미국은 하나의 억지(抑止) 방안으로서 인공지능의 군사적 이용을 규율해야 할 것이다. 또한 과거 군비통제 회담이 핵무기의 위협을 제한했던 것처럼 인공지능의 위협도 제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인공지능 기술이 서로에게 미치는 전략적 영향에 대한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군비통제를 향해 첫 발걸음을 시작해야 하며, 이를 통해 양측이 인공지능 능력 중 어떤 것들이 통제가능한지에 대해 정보를 교환해야 합니다." 실제로 그는 협상 자체가 상호신뢰와 초강대국들이 서로 자제할 수 있겠구나 하는 믿음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열쇠는 인공지능을 극단까지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해할 만큼 현명하고 강한 지도자들이다. "그리고 힘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사람들은 세상을 파괴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키신저의 세 번째 조언은 "이 모든 것을 국내적 목표와 연결시키라"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이 국내적 목표 중 하나는 보다 실용주의를 강화하는 것인데, 리더십의 자질에 집중하며, 무엇보다도 미국의 정치 문화를 새롭게 하는 것이다.
키신저가 실용적 사고의 모범으로 삼는 나라는 인도다. 그는 한 행사에서 인도의 전직 고위 관리 한 사람을 만났는데, 이 인도인은 한 국가를 거대한 다자 구조에 묶어두지 말고 사안별로 비영구적 동맹을 만들어 외교를 해나가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외교에 대한 이러한 거래적 접근 방식은 미국에게는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키신저의 국제관계사 저서 '외교'를 관통하는 주제는 미국이 미국의 대외개입을 자유롭고 민주적인 자본주의 사회라는 미국적 이상에 맞춰 세계를 만들어낸다는 관점에서 설명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가지는 문제는 도덕적 원칙이 바람직한 변화를 가져오지 않을 때에도 도덕적 원칙이 국익보다 우선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는 인권이 중요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인권을 정책의 중심에 두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인권을 강요하는 것과 인권문제가 외교관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하는 것 사이에 차이는 있겠지만, 결정은 받아들이는 쪽이 하는 것이다.
"우리는 수단에서 [이를 강요]하려고 했습니다. 지금 수단이 어떻게 됐는지 보세요." 옳은 일을 해야 한다는 무조건적인 고집은 정책이 실제 가져올 많은 결과를 미리 챙기지 않는 것에 대한 핑계가 될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키신저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힘을 사용하려는 사람들은 보통 이상주의자들이라고 주장한다. 현실주의자들이 더 일반적으로 무력을 기꺼이 사용할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인도는 중국의 세력확장을 견제할 꼭 필요한 균형추다. 그러나 인도는 종교적 불관용, 사법적 편향성, 언론에 대한 억압 등 나쁜 요소들도 가지고 있다. 키신저가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한 가지 시사점은 인도가 미국이 현실적일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일본은 또 하나의 시험대가 될 것이다. 키신저 전 장관의 예측대로 일본이 5년 이내에 핵무기를 확보하기 위한 조치를 취한다면 미일(美日) 관계는 험난해질 것이다. 키신저는 19세기에 평화를 어느 정도 유지했던 외교적 움직임에 주목하면서 영국과 프랑스가 미국이 아시아 세력균형에 대해 전략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급구: 초강대국에 걸맞는 지도자
리더십도 중요하다. 키신저는 항상 개인의 역할을 중시했다. 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고립주의에 빠져있던 미국이 추축국과의 전쟁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준비할 수 있을 만큼 선견지명이 있었다. 샤를 드골은 프랑스에 미래에 대한 믿음을 주었다. 존 F 케네디는 한 세대에 영감을 불어넣었다.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독일 통일을 설계했고, 영민함과 절제로 통치했는데, 그가 축출된 후 자신이 설계하고 통치한 통일 조국은 전쟁열(戰爭熱)에 빠져들었다.
키신저는 24시간 쉬지 않고 소식을 전하는 뉴스와 SNS가 자신의 외교 스타일을 어렵게 만든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오늘날의 대통령은 저와 같은 권한을 가진 외교사절을 보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는 해법이 있는지 고민하는 것조차 잘못이라고 주장한다. "제가 존경하는 지도자들을 보면 그들은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 일은 꼭 필요한가'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닉슨 행정부에서 자신의 참모였던 윈스턴 로드의 예를 떠올린다. "우리가 캄보디아에 개입했을 때 그는 사임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에게 '자네가 그만두고 플래카드를 들고 이곳을 행진할 수도 있고, 아니면 우리와 함께 베트남 전쟁을 해결할 수도 있네'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남기로 결정했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 즉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연민과 회한에 빠져 있는 대신 무언가를 어떻게든 해내고 싶어하는 사람들입니다."
리더십은 한 나라의 정치 문화를 반영한다. 키신저는 많은 공화당원들과 마찬가지로 현재의 미국 교육이 미국의 가장 어두운 순간을 너무 많이 다루고 있다고 믿는다. "전략적 관점을 가지려면 우리 나라에 대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모두가 함께 갖고 있던 미국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현재의 언론이 균형감과 판단력이 부족하다고 불평한다. 재임 당시 언론은 물론 그에게 적대적이었지만 그는 여전히 언론과 대화를 나눴다. "언론 때문에 화났던 적이 많았죠. 하지만 그게 언론의 역할이었습니다... 언론이 부당하게 행동했던 건 아니었죠." 이와는 대조적으로 오늘날의 미디어에는 사려와 사색에 대한 유인이 없는 것 같다고 한다. "제가 말하려는 것은 균형과 절제의 필요성입니다. 이를 제도화해야 합니다. 그게 목표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최악은 정치 그 자체다. 키신저가 워싱턴에 오면 공화, 민주 양당의 정치인들과 일상적으로 함께 식사를 하곤 했다. 그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조지 맥거번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지금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그는 믿었다. 닉슨이 사임한 후 대통령직을 이어받은 제럴드 포드는 그와 싸웠던 사람들조차 대통령이 된 그가 자신들에게 품격 있게 행동하리라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오늘날에는 승자(勝者)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이 퍼져있다.
"트럼프가 그랬고 지금의 바이든도 [적대감을] 도에 넘게 키웠다고 봐요." 그는 지금이라면 워터게이트와 같은 상황이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고 위기 속에서 나라를 이끌 리더십이 없다고 우려한다. "바이든은 영감을 줄 수 없을 것 같고... 공화당이 더 나은 후보를 내놓기를 바랍니다." 그는 이렇게 한탄한다. "지금이 역사상 좋은 순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포자기할 순 없는 일이잖습니까."
그는 미국이 장기적인 전략적 사고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믿는다. "이것이 우리가 해결해야 할 큰 과제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예상하듯 실패를 겪게 될 것입니다."
시간이 없고 리더십이 부재하다면 중국과 미국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은 어디에 있을까?
"우리 모두는 우리가 새로운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무엇이든 잘못될 수 있으니까요. 확실한 길도 없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희망을 느낀다고 고백한다. "제 개인적 삶은 힘들었지만 비관할 필요가 없음을 입증했죠. 어려움은 미래를 향한 도전이기도 합니다. 어려움이 장애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는 인류가 엄청난 발전을 이뤘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발전은 종종 예컨대 30년 전쟁, 나폴레옹 전쟁, 2차 세계대전 등 끔찍한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이루어졌지만 지금의 미중 라이벌 관계는 다를 수 있다. 역사에 따르면 이런 유형의 두 강대국이 서로 마주칠 때 일반적인 결과는 군사적 충돌이다. "하지만 지금은 일반적인 상황이 아닙니다. 상호확증파괴1와 인공지능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유럽, 중국, 인도가 참여할 수 있는 규칙을 기반으로 세계질서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들만 참여해도 이는 이미 인류의 상당 부분이 참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보면 잘 끝날 수도 있고, 적어도 재앙 없이 끝날 수도 있죠. 이것만 해도 진전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초강대국 지도자들의 과제다. "임마누엘 칸트는 평화는 인간의 이성 또는 어떤 재앙을 통해 이루어 질 것이라고 말했죠. 그는 이성을 통해 평화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걸 확신한 건 아니었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세계 지도자들에게는 막중한 책임이 있다. 앞으로 닥칠 위험을 직시하는 현실주의, 강대국들 사이에 힘의 균형을 이루는 데 그 해결책이 있다고 보는 비전, 그리고 공격력을 극단적으로 사용하려는 유혹을 참아내는 절제력이 필요하다. "이것은 전례 없는 도전이자 큰 기회입니다."
이를 제대로 해내느냐에 인류의 미래가 달려 있다. 자신의 100세 생일을 몇 주 앞둔 날, 대화가 네 시간쯤 지났을 무렵 키신저는 특유의 방식으로 눈을 깜빡이며 덧붙였다. "저는 세상이 어느 쪽으로 가는지를 미처 못 보겠지만요."
외교는 상대방을 악마시하지 않고 서로의 이익을 맞춰보는 작업입니다. 과거 중국이 한창 좌익극단주의를 달리던 문화대혁명(문혁) 시기에 닉슨과 키신저는 그런 중국과 손을 잡고 소련에 맞서는 외교적 혁명을 단행했고, 이것이 훗날 중국의 개혁개방과 소련 붕괴로 이어졌습니다. 19세기 외교에서 교훈을 찾으려는 외교사학자인 독일계 유태인 키신저는 평생 미국인들에게 외교가 무엇인지를 얘기해왔습니다. 오랫동안 신대륙에서 고립되어 살아왔던 미국인들은 외교를 국내정치하듯 해왔기 때문입니다. 금년 5월에 100세가 되는 그가 이제는 미중패권 경쟁이 3차 세계대전으로 비화할 것을 우려합니다. 오랫동안 외교를 공부하고 실천해왔던 키신저는 어떤 지혜를 들려줄까요? PADO는 2023년 5월 20일자 이코노미스트에 실린 '키신저와의 대화'를 전문해석으로 소개합니다. 이코노미스트도 자인했듯 키신저의 억센 독일어 억양과 100세 외교가(外交家)의 조심스런 표현 때문에 애매한 부분도 있습니다만, 그가 얘기했듯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그의 긴 인터뷰 내용에 귀를 기울여봐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