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28 11:26
1840년대에 수술용 마취제로 사용되던 디에틸 에테르와 클로로포름은 19세기 말이 되자 수술실 밖에서도 사용되었다. 오늘날에는 약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용해성 물질인 에테르와 클로로포름을 당시 사람들은 증기로 흡입하여 흉부 및 폐 질환으로 인한 통증을 완화하는 데 썼고 공황 발작과 신경증에 빠르게 작용하는 진정제로도 활용했다. 의사와 저널리스트들은 티룸에서 클로로포름을 "방탕하게" 사용하는 행태와 젊은 여성 무리가 클로로포름에 취해 피식피식 웃고 졸도하는 모습이 공공연히 목격되는 작태를 비판하는 글을 쓰곤 했다. 한편 1893년 시카고 세계박람회 기간 중 클로로포름을 이용하여 무수한 사람들을 살해했던 헨리 하워드 홈즈 사건처럼 충격적인 범죄사건이 다수 발생하면서 클로로포름의 오명은 더욱 커져갔다. 1890년대 후반에는 황색 저널리즘과 약물중독, 자살, 강간, 살인에 대한 대중의 상상이 결합했고, 피해자의 얼굴 위에 클로로포름을 적신 천을 덮으면 즉시 의식을 잃는다는 뿌리깊은 오해를 낳았다 (실제로 의식을 잃으려면 지속적으로 깊이 클로로포름을 들이쉬어야 한다).
약물치료와 의식의 확장, 약물중독, 의존증, 범죄가 밀접하게 얽혀 있던 19세기 말 파리에서는 에테르와 클로로포름이 모르핀, 아편, 코카인, 해시시, 웜우드를 우린 압생트와 더불어 자유분방한 화류계 여성들 사이에 유통되었다. 종종 천식, 결핵, 신경쇠약 환자들은 이 용액을 작은 유리병이나 약병에 넣어 다니다가 쉽게 구할 수 있는 강장제와 시럽에 섞었다. 가끔은 칵테일에 넣기도 했는데 샴페인에 에테르를 적신 딸기를 띄우면 강한 쾌감을 자아냈다. 이때 딸기는 휘발성 액체인 에테르가 너무 빠르게 증발하지 않게 해주는 역할을 했다. 이 시대에는 에테르를 데카당스1의 상징으로 그리거나 사실적인 서사를 꿈과 상징이 가득한 풍경으로 바꾸는 문학적 소도구로 사용한 작품이 많이 나왔다. 복용하면 정신 상태를 흐트러뜨리는 에테르의 특성은 이 작품들 속에서 낯선 정신적 상태, 정신적 망상, 기이한 자기 복제, 공간과 시간의 벗어남을 경험할 수 있는 창구가 됐다.
에테르는 기 드 모파상2의 1882년 단편 '꿈'의 주제이기도 했다. '꿈'은 삶이 따분하고 신경쇠약에 걸린 다섯 친구가 저녁 식사 자리에서 하루하루를 갉아먹는 권태, 밤잠을 설치게 하는 불면증과 악몽을 한탄하는 내용이다. 그 중 의사가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경험인 진정한 몽상"은 현대의학의 선물이라고 말한다. 친구들은 의사가 언급한 것이 자기들도 이미 해 본 아편이나 해시시라고 생각한다. 한 명이 식상하다는 듯 말한다. "내가 보들레르도 읽어봤고 그 유명한 약도 해 봤는데 하고나니 몸이 너무 아팠다니까." 그러나 의사가 말한 약은 에테르였다. 그는 처음에 에테르를 자신의 신경통 완화를 위해 쓰다가 "이후에는 약간 과하게 사용해 온 것"이었다. 그는 에테르 병을 손에 들고 누워 천천히 들이마셨던 경험을 회상한다.
"(내 몸이) 살아 있는 것과 이 행복감에 푹 빠진 달콤함을 자각하는 데 필요한 만큼의 피부만 남기고 뼈와 살이 녹아내린 것처럼 가벼워졌어. 그때 내 고통이 사라진 것을 느꼈다네. 고통이 없어지고, 녹아버리고, 증발해 버렸지. 그때 목소리가 들렸어. 목소리 네 개가 둘로 나뉘어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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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시시나 "다소 역겨운" 환영을 불러일으키는 아편을 사용했을 때와 달리, 에테르를 흡입한 다음에는 고도로 정신이 맑아졌다.
"나는 엄청난 힘과 지적인 즐거움을 느끼면서 내 정신적 능력과 분리되는 순간에 크게 도취한 상태로, 극도로 선명하고 깊이 있게 사유했지… 선악과(善惡果)를 맛본 듯 모든 수수께끼가 풀린 것 같았고, 새롭고 낯설지만 거부할 수 없는 논리에 지배되었네. 논증과 추론, 증거가 한덩어리로 떠올랐다가 즉각적으로 더 강력한 증거와 추론, 논증에 자리를 내주었다네. 실제로 내 머릿속은 온갖 관념의 전쟁터가 되었지. 나는 불굴의 지성으로 무장한 우월한 존재가 되어 내 힘이 현현하는 것을 보면서 큰 기쁨을 누렸다네."3
의사는 오랫동안 병 안에 든 에테르를 계속 들이마셨고 머릿속 몽상에 빠져 있다가 병을 들여다보니 비어 있었다. 모파상 자신도 '꿈'의 의사처럼 의료적, 감각적, 철학적 목적으로 에테르를 사용했다. 모파상도 처음에는 끊임없이 지속되던 편두통, 류머티즘, 부분 실명, 내출혈, 열병을 포함한 일련의 질병과 신경증을 치료하려고 에테르를 썼다. 그를 담당한 의사들은 병의 원인에 대해 서로 다른 의견을 냈고 그 원인을 소급해 보면 대부분 말년의 병세 악화와 매독으로 인한 사망과 연관이 있었다. 습관적인 에테르 복용은 모파상에게 기이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친구들에게 안락의자에 앉은 붉은 난쟁이들을 본 적이 있고 자신의 영혼이 몸에서 분리돼 집으로 걸어들어와 소파에 앉아 있는 자신을 바라보는 경험을 몇 번 했다고 말했다4.
모파상의 병세는 1890년대를 거치며 악화돼 환각과 정신병 증상이 더욱 심해졌다. 퇴행성 뇌질환 때문일 수도 있고 에테르를 비롯한 약물의 과용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모파상의 환청 묘사를 보면 에테르의 흔적을 뚜렷이 읽을 수 있다. 귓가가 울리기 시작하다 점점 소리가 커지더니 이어지는 몽상 속에서 사람 목소리로 바뀐다. 어떤 말인지 들리지 않거나 의미를 알 수 없을 때가 많지만 말하는 이의 특징과 어조는 선명히 알 수 있다. 의학 및 심령 관련 문헌에서도 육신이 없는 목소리는 자주 등장하는데 이 목소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체험되고 해석되었다. 영국의 의사 어니스트 던바는 심령현상연구협회5에 기고한 보고서에서 클로로포름에 취한 상태에서 이런 목소리를 들었다고 기술한다.
"내 의식 저 깊은 곳 어딘가에서 여러 목소리가 다투고 있는 듯했다… 이 이상한 대화는 이렇게 시작하곤 했다. '우리가 널 다시 붙잡은 거 알겠지.' 그럼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오! 나를 내버려두지 않을 건가? 난 좀 쉬고 싶은데.' 그러면 목소리가 이런 식으로 답한다. '그건 우리가 정하는 거야.' 그러자 중얼거리고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가끔씩 이 소리가 푸념하는 불평으로 바뀌기도 했다. 내가 클로로포름을 흡입할 때마다 이런 목소리가 들렸다."6
이런 목소리를 두고 심령 연구자는 텔레파시를 이용한 전언이나 죽은 자의 영혼, 천사의 목소리라고 여긴 반면, 모파상은 이를 자기 정신이 복제되거나 분열된 것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말년에 이 목소리가 자아를 넘어선 다른 존재를 암시할 가능성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전통적인 관념의 영혼이나 악마는 아닐지라도 육신이 없는 존재가 근대사회를 떠돌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1887년 출판된 단편 '오를라7'는 모파상이 이러한 가능성을 가장 끈질기게 탐험한 소설이다. 이 단편은 모파상의 초기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우아한 자연주의를 버리고 서술자의 의도를 끊임없이 벗어나는 분열되고, 양가적이며, 뒤틀린 서사로 나아가는 작품이다. 주인공은 늘상 끔찍한 내용의 일기를 쓰면서 잠궈둔 방 안의 물건을 누군가가 건드리고 있다는 이중의식 또는 자기강박을 기록한다. "무기력한 내 상상력에 내가 놀아난 것이 분명하다." 주인공이 내린 결론이다. 아니면 기억 상실증에 걸리거나 몽유병 환자가 된 것이거나,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지금까지 설명되지 않은?이를테면 최면 암시같은?것의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른다."8 그런데 그가 정말 미쳤다면 이렇게 냉철하고 합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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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문제가, 오늘날 생리학자들이 기록하고 밝히려고 애쓰는 그런 종류의 문제 중 하나가 내 머릿속에 생긴 것일 게다. 그리고 이 문제가 내 정신에, 내 생각의 논리와 순서에 깊은 균열이 생기게 했다."9
에테르에 취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주인공이 제시하는 논증과 증거는 더욱 독창적으로 발전하고 곧이어 또다른 논증과 증거로 대체된다. 이상현상이 계속되면서 그 강도가 세지고 균열은 커진다. 얼마 후 화자는 추측한다. "누군가가 내 영혼을 차지하고 마음대로 뒤흔들고 있다!"10 과학 연구자들이 인간의 의식을 먹고 사는 통제 불가능한 존재를 풀어놓았다는 생각이 화자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메스머는 그것을 간파했다. 그리고 벌써 10년 전부터 의사들은 정확한 방법으로 그놈들이 힘을 사용하기도 전에 그 힘의 정체를 발견했다. 의사들은 이 새로운 조물주의 무기, 즉 신비한 의도를 가지고 노예가 되어버린 인간의 영혼을 지배했다. 그들은 이것을 최면술, 암시 작용이라 부른다… 새로운 존재! 왜 불가능하겠는가? 분명히 왔어야 했다! 왜 우리가 최후의 인류란 말인가?"11
19세기 말 프랑스에서 에테르와 가장 밀접하게 연관된 문학계 인물은 소설가이자 시인, 저널리스트, 단편 작가인 장 로랭(Jean Lorrain, 1855~1906)이다. 그는 1895년에 어둡고 냉소적인 이야기를 담은 전집 '에테르 중독자의 악몽'을 출간했다. 로랭은 데카당스가 유행한 파리에서도 극단적인 인물이었다. 화장을 하고 보석을 두르는 댄디이자 추문을 몰고다니는 보헤미안이었고, 악마숭배에 잠시 발을 담그기도 했으며, 파리에서 불법이었으며 격렬했던 게이 지하세계의 주민이었음과 동시에 파리에서 가장 높은 보수를 받는 작가였다. "악덕이란 무엇일까?"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한다. "당신이 공유하지 않는 취향일 뿐이야."12 '에테르 중독자의 악몽'에 실린 소설들이 약물을 간접적으로 언급하는 편이고 로랭 자신도 모파상의 '꿈'처럼 자기 경험을 직접 묘사한 적은 없었지만, '에테르의 토머스 드 퀸시13'라는 그의 뻔뻔한 자기 광고는 너무나도 그다운 행위였다. 로랭의 글에서 에테르는 산발적으로 등장하여 현실의 베일을 찢고 이를 초현실적인 대치와 명멸하는 초자연적 명료함으로 재배열한다. 에테르는 '기이한 범죄' 같은 작품의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한다. 도입부에서 화자는 이렇게 입을 뗀다.
"2년 전 내 신경증이 최악으로 치달았던 때였다. 나는 에테르 중독에서는 회복되었지만 에테르가 잉태한 무시무시한 환청, 환각, 밤마다 찾아오는 공황발작, 악몽에서는 벗어나지 못했다. 설포날과 브롬화칼륨14이 최악의 증상은 줄여줬지만 약물 치료를 해도 내 고통은 계속되었다. 이 증상은 내가 오랫동안 약물에 빠져 살았던 강 건너편 생 기욤가의 아파트에서 최고조에 달했으며 유독한 교감신경의 마법에 의해 벽과 세간에 가득 퍼져 있는 것 같았다… 모퉁이에는 창가의 커튼 주름을 연상케 하는 기이한 그림자가 모여 있었고 문가에 드리운 커튼이 이름없는 섬뜩한 생명같은 형상에 의해 살아움직였다."15
한때 표절 문제로 자신에게 결투를 요청했던 경쟁자 모파상처럼, 로랭도 처음에는 만성 결핵 증상을 완화하려는 의료 목적으로 에테르를 썼다. 그의 병은 에테르를 이용한 자가 치료와 함께 엮여 지극히 세련된 사회적 페르소나로 구현되었다. 데카당스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인 '거꾸로'(1884)의 작가 조리스-카를 위스망스(Joris-Karl Huysmans)의 절친이기도 했던 로랭은 작가로서 고도의 유미주의, 고소득 저널리즘, 상업적고 자극적인 통속소설, 인쇄물로 내기에 부적합한 성도착의 세계를 넘나들었다. 위스망스의 걸작처럼 로랭의 많은 작품도 서사물이라기보다는 비네트16, 무드 피스17, 정신 상태를 분석한 글에 가까웠다. 그의 글이 선보인 내적 독백은 훗날 모더니스트들이 즐겨 쓴 '의식의 흐름' 기법의 전조가 되기도 했다. '거꾸로'는 향기와 향기로 불러일으킬 수 있는 황홀경과 연상 작용을 장황하게 설명한다. 모파상의 글과 특히 로랭의 글에서 에테르는 이 강박이 증폭되어 광기가 된 결과물으로 볼 수 있다. 파리의 살롱과 카페에서는 보지 않고 냄새만으로도 로랭이 방에 있는지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에테르 냄새와 에테르가 자아내는 환상의 논리는 로랭의 소설 전반을 장악하여 연상 과정에 혼란을 일으킨다. 병원 대기실, 여성의 침실, 폐의 극심한 고통, 현실로부터의 가벼운 이탈, 악몽을 꾸다 갑자기 깨어남?그리고 무엇보다도 본인의 습관으로 인해 점차 악화되던 위궤양의 고통이 뒤얽혀 있다.
비록 그가 쓴 에테르 관련 소설들이 깊은 망상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로랭은 유령이나 영혼의 존재는 믿지 않았다.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18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마 그는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을 너무 많이 보았네."19 위스망스와 마찬가지로 로랭도 악마숭배를 연구했다. 둘은 쥘 미슐레20의 제자들이 마법을 논하고 지하실과 지하묘지의 비밀 의식을 찾아다니던 보헤미안의 활동 중심지였던 '르 샤 누아'(Le Chat Noir) 카바레의 단골손님이었다. 로랭 소설의 배경에는 비밀 마녀 집회와 오컬트 의식에 관한 소문이 가득하다. 그러나 결국에는 과학도, 초자연적 존재도, 심지어 에테르도 충분히 설명을 제시하진 못했다. "에테르 탓이라고 하지 말게!" 단편 '빙의'의 주인공이 무서운 강박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친구에게 하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야만 해. 파리가 환상에 사로잡히는 11월이 되면 나는 분명 다시 병들겠지. 자네도 알겠지만 나의 사례에서 기이한 점은 내가 더는 보이지 않는 존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걸세. 나는 현실이 공포스러워."21
로랭의 괴이하고 충격적인 '포카스 씨'(1901)는 그에게 추문의 최고봉에 오른 작가라는 표식을 남겼을 뿐 아니라 프랑스 데카당스 문학의 정점을 찍은 소설이다. 표절과 외설 관련 소송으로 파산한 그는 20세기 들어 인기를 잃었고, 1906년 에테르로 인한 장 궤양의 통증을 줄이려고 관장약을 썼다가 결장에 구멍이 뚫려 발생한 복막염으로 수치스러운 죽음을 맞이했다. 로랭에게 에테르는 드 퀸시의 아편이 그랬듯이 그의 부적이자, 상징이자, 재앙이 되었다. 에테르는 최면술이나 정신의학도 영매나 퇴마사 이상의 설명을 제시하지 못했던, 정신의 보이지 않는 차원으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로랭이 1891년에 쓴 비네트 '마법의 랜턴'에서 불안에 사로잡힌 주인공이 외쳤듯, "현대의 삶만큼 환상이 번창하고 불길하며 공포스러웠던 적은 없었다!"
마이크 제이는 과학과 의학의 역사를 광범위하게 연구하며 '런던 리뷰 오브 북스'와 '월스트리트저널'에 정기적으로 기고하고 있다. 최근작으로 'Psychonauts: Drugs and the Making of the Modern Mind'가 있고 약물의 역사를 다룬 이전 저작으로는 'Mescaline, High Society', 'The Atmosphere of Heaven' 등이 있다.
이 에세이는 마이크 제이의 'Psychonauts: Drugs and the Making of the Modern Mind'(2023)에서 발췌·편집했으며 출판사 예일대학교출판부와의 계약 하에 한국어로 옮겨 발행했습니다. Copyright ? 2023 Mike Jay.
향정신성 물질의 활용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그 역사와 폭이 매우 깊고 넓습니다. 신령과 소통을 꾀하던 고대의 샤먼부터 보다 깊은 영감을 찾는 예술가와 철학자, 심지어 새로운 영감을 모색하는 실리콘밸리의 창업가들도 이용할 정도니까요. (조만간 실리콘밸리의 향정신성 물질 사용에 대한 기사도 소개할 예정입니다.) 소크라테스, 이백 등 수많은 철학자, 예술가들이 오랫동안 즐겨왔던 술도 낮은 차원의 향정신성 물질로 볼 수 있죠. 소크라테스는 노년에 음주를 권했고, 이백은 술을 찬미하며 시를 남겼습니다. 과학, 의료의 문화사에 대해 많은 책을 쓴 마이크 제이는 최근 저서에서 19세기의 예술가, 철학자, 과학자들이 인간 정신의 탐구를 위해 이런 물질을 어떻게 활용했는가를 집중적으로 다뤘는데 그 중 19세기 말 파리 문학의 거장 모파상과 장 로랭을 다룬 부분을 소개합니다. 향정신성 물질의 남용은 두 문호 모두에게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왔지만 이들의 예술 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