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이슈

이탈리아 럭셔리 패션하우스의 경영 승계 딜레마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브랜드를 지금의 자리에 올려놓은 것은 창업자들의 개성과 비전이었다. 과연 창업자들이 물러난 이후에도 성공을 계속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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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찌 2024 크루즈 패션쇼. /그래픽=PADO /사진=뉴시스

2023.08.11 11:46

Financial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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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는 명실상부 럭셔리 패션의 나라입니다. 세계 럭셔리 패션 상품의 78%가 이탈리아에서 생산된다고 하니까요. 그런데 세계 최대의 럭셔리 그룹인 LVMH와 케링은 모두 프랑스 기업이고 구찌, 펜디, 보테가베네타 등 많은 이탈리안 럭셔리 브랜드가 이들 프랑스 그룹 소유입니다. 여기 소개하는 2023년 6월 25일자 파이낸셜타임스 기사는 럭셔리 패션 산업에 대한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접근법의 차이가 이런 결과를 낳았다고 평가합니다. 경쟁에만 몰두하고 국내 자본의 투자가 부족한 상황이 계속되다가 외국 자본이 어느새 업계 주요 플레이어 상당수를 집어삼킨 상황을 개탄하는 이탈리아의 모습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한국도 패션산업이 발달할 수 있는 요소를 여럿 갖추고 있습니다. 첫째, 동아시아의 미적 감각을 여러 방식으로 주도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한류'가 그것입니다. 둘째, 한국은 계층적 갈등이 심하고 이른바 '인정받기' 경쟁이 강한 나라입니다. 셋째, 개인적 개성보다는 사회적 평판을 중시합니다. 유럽에서는 이런 요소를 갖춘 곳이 프랑스의 파리와 이탈리아의 밀라노입니다. 북유럽이나 영국 같은 나라들은 평등을 추구하고 개인적 개성이 중시되기 때문에 럭셔리 패션산업이 발달하기 어렵죠. 패션산업은 고급 노동이긴 하지만 노동집약적인 성격도 강해 일자리 창출과 소득분배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세상에 전해지는 유럽 패션하우스 인수합병의 역사에서 가장 놀라운 사건으로 손꼽히는 것은 1999년 구찌가 LVMH1에 인수될 뻔한 위기를 모면했던 일이다.


구찌는 1983년 형제들과 함께 회사를 경영했던 로돌포 구찌가 사망한 후 험난한 시기를 겪었다. 로돌포의 아들인 마우리치오 구찌가 구찌 지분의 50%를 상속받으면서 가문 내 내분이 수 년간 이어졌고, 최고경영자에 오른 마우리치오는 회사를 파산 직전까지 몰고 갔다.


1993년, 한때 구찌 가문의 변호사였으며 미국에서의 사업을 주도했던 도메니코 데 솔레가 CEO로 임명되었다. 수석 디자이너 톰 포드의 활약으로 구찌의 여성복 디자인이 세계적인 성공을 거뒀고, 데 솔레는 구찌를 적자 기업에서 수익을 내는 그룹으로 탈바꿈시켰다.


그러나 1999년, 수년 간 고조되던 권력 다툼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 말았다. 럭셔리 패션 그룹 LVMH의 창업자인 프랑스의 대부호 베르나르 아르노는 조용히 구찌 내 자신의 지분을 늘리고 있었고 지분 35% 가량을 취득한 시점에서 회사 장악을 시도했다.



LVMH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인수되는 일을 막기 위해 데 솔레는 다른 이탈리아 패션 기업과 여러 차례 자리를 만들었다. 그는 LVMH에게 인수되는 걸 피할 수 있는 투자 계획을 수립하고자 했다. "하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죠." 당시 상황에 대해 데 솔레가 파이낸셜타임스에 한 말이다. "[당시 브랜드 간에] 경쟁이 치열했고 이탈리아의 패션 그룹을 만들어 보려는 시도는 없었어요."


데 솔레는 마침내 백기사 투자자2를 찾았는데, 그가 바로 오늘날 케링(Kering)이 된 럭셔리 패션 그룹을 설립한 프랑스의 프랑수아-앙리 피노였다. "피노는 재빠르게 움직였어요. 런던에서 모건스탠리의 소개로 만났죠. 나는 피노에게 구찌 가문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우리는 악수를 했고, 거래가 성사됐죠." 데 솔레의 회고다. 피노는 30억 유로에 지분 42%를 사들여 LVMH의 지분율을 20% 정도로 희석시켰다.


구찌의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드라마와 피노의 구찌 인수로 프랑스 패션 재벌의 이탈리아 진출을 위한 교두보가 마련된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창업자가 여전히 권좌를 지키고 있는 이탈리아 패션하우스 중 많은 수가 승계를 둘러싼 딜레마를 겪고 있다.


홍콩 주식시장에 상장되어 있는 프라다는 올해 파트리치오 베르텔리와 미우치아 프라다의 아들인 로렌조 베르텔리가 기업을 이어받는다고 발표했다. 반면 아르마니와 돌체앤가바나?밀라노 소재의 패션 대기업 중 여전히 비상장 개인 소유 기업으로 남아 있는 곳은 이 둘 뿐이다?는 (아직까지는) 창업자가 자신의 제국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다수의 1세대 패션 브랜드 창업자는 뼛속까지 자기 회사에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어요." 사모펀드 칼라일그룹의 유럽 공동 대표 마르코 데 베네디티의 말이다.


조르지오 아르마니, 미우치아 프라다와 그의 남편 파트리치오 베르텔리, 도메니코 돌체와 스테파노 가바나 같은 창업자의 개성과 창조적 비전은 브랜드의 디자인 미학을 형성하고 브랜드 인지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아르마니


- 조르지오 아르마니와 세르지오 갈레오티가 1975년 밀라노에서 설립


- 2022년 개인 럭셔리3 부문 매출: 28억3000만 달러


- 승계 계획: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2016년 아르마니그룹의 지분을 보유하게 될(지분율은 알려지지 않았다) 자선 재단을 설립했다. 아르마니의 여조카인 로베르타와 실바나는 그룹 직원이고, 남조카 안드레아 카마레나는 그룹 임원이다. 이들은 남은 회사 지분을 물려받을 예정이며 규정에 따라 재단에만 지분을 매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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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자가 그룹에서 물러나도 인기가 유지될지 의심하는 투자자와 관계자들은 브랜드의 상업적 대성공이 창업자에게 얼마나 크게 기대고 있는지를 고려한다.


"브랜드마다 제각기 다르지만 회사가 승계 준비를 얼마나 잘 하고 있는지가 관건입니다." 데 솔레의 말이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역할이 브랜드에서 결정적이지만 경영도 마찬가지죠."


이탈리아 패션 기업들이 직면한 승계 문제는 업계 전체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탈리아는 문화유산이 풍부하고 뛰어난 장인정신을 자랑하지만 외국 기업의 경영권 인수로부터 업계를 보호할 의지와 자금력을 지닌 국내 투자자가 부족하다. "이탈리아에는 늘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사고방식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데 베네디티의 말이다.


애널리스트와 관계자들에 따르면 현재 이탈리아 하이패션에 닥친 가장 큰 위협은 남아 있는 귀한 브랜드들도 케링이나 LVMH 같은 프랑스 패션 대기업에 인수될 수 있다는 것이다.


70여 럭셔리 브랜드를 보유한 LVMH는 구찌 인수 실패를 겪은 이후 이탈리아 패션 기업 다수를 포트폴리오에 추가했다. 이 중에는 로마에 본사를 둔 펜디, 희귀한 원료로 의류를 제작하는 것으로 유명한 로로피아나, 고급 주얼리 브랜드 불가리도 있다.


구찌를 소유한 케링도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케링은 2001년에 가죽을 엮어 만든 디자인으로 유명해진 액세서리 브랜드 보테가베네타를 인수했고 이후에는 남성 럭셔리 수트 브랜드 브리오니와 럭셔리 주얼리 기업 포멜라토를 사들였다.


"전통적으로 이탈리아 패션 기업인들은 [국내에서] 과도한 경쟁 관계에 있어서 국내 경쟁사보다는 프랑스 기업에게 회사를 팔려고 했습니다. 이런 태도가 케링과 LVMH가 몸집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됐죠." UBS 이탈리아 지사장 리카르도 물로네의 말이다. LVMH의 시가총액은 4220억유로로 유럽 최대이며 케링의 시가총액은 630억유로다.


반면 이탈리아 최대 규모의 럭셔리 패션 그룹 프라다와 몽클레어의 시가총액은 각각 180~190억 유로에 불과하다.


최근 이탈리아 정계에서는 패션 산업이 이탈리아 국내 경제와 대외 소프트파워에 가져다주는 이익에 대한 인식이 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탈리아의 최고급 브랜드가 영원히 존속하리라는 보장은 없다고 말한다. 브랜드가 존속하려면 역사적으로 라이벌 관계에 있었던 패션 브랜드들이 서로를 대하는 방식에 전면적인 변화가 필요할 것이다.


올 2월 첫 선을 보인 다큐멘터리 '밀라노: 이탈리아 패션 인사이드 스토리'(Milano: the Inside Story of Italian Fashion)에서 저명한 패션 작가 고(故) 쥬지 페레는 이렇게 말했다. "이탈리아 브랜드가 회사를 직접 소유하는 미래를 상상할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아무래도 이탈리아가 너무 작거나 우리가 소심한 거겠죠?"

이탈리아 럭셔리 산업의 어제와 오늘

이탈리아는 전통적으로 수세기 동안 무두공장, 섬유공장, 장인들의 중심지 역할을 해 왔다. 1800년대부터 패션계를 장악해 온 프랑스는 1950년대에 접어들면서 이탈리아의 알타 모다(alta moda: 하이패션)를 위협적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이에 프랑스는 국가가 지원에 나서 섬유 기업에게 보조금을 지급하고 국내 쿠튀르 산업과의 연계를 강화할 목적으로 마련한 '쿠튀르 플랜'으로 응수했다.


이탈리아 패션 업계는 그런 국가적 지원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1970년대 경제 호황과 글로벌 시장 확대, 소비자 수요 증가로 탄력을 받아 결국 자국의 럭셔리 패션 산업을 세계 무대에 올려놓을 수 있었다.


소피아 로렌부터 샤론 스톤에 이르기까지, 유명인들도 영화 시사회와 공식 석상에서 이탈리아 디자이너의 의상을 즐겨 입으며 지원사격을 했다. 샤론 스톤은 영화 '원초적 본능'의 주연 오디션에서 "엄청 비싼 아르마니 수트"를 산 것이 처음으로 패션에 큰 돈을 쓴 경험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


팜비앙코와 PwC의 합동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글로벌 럭셔리 패션 상품의 78%가 이탈리아에서 생산된다. 2021년 코로나19 팬데믹이 세계를 휩쓸었을 때도 이탈리아의 패션 섬유 산업은 총 930억 유로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탈리아 패션기업연합에 따르면 6만여 중소기업이 이 부문에서 활동하고 있다.


"패션 산업은 이탈리아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크고 직, 간접적으로 고용하는 사람만 수백만 명에 달합니다." 밀라노패션위크를 주최하는 이탈리아 국립패션협회의 회장 카를로 카파사의 말이다.




돌체앤가바나


- 도메니코 돌체와 스테파노 가바나가 1985년 레냐노에 설립


- 2022년 개인 럭셔리 부문 매출: 13억 8천만 달러


- 승계 계획: 스테파노 가바나와 도메니코 돌체는 원래 은퇴 후 회사 문을 닫으려고 했다. 가바나는 이탈리아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우리가 죽으면 끝나는 겁니다. 일본인 디자이너가 돌체앤가바나 제품을 디자인하기를 원치 않아요." 그러나 2019년 두 패션 거물은 돌체 가문에게 사업체를 물려주겠다고 선언하면서 계획을 완전히 뒤집어버렸다.


스테파노 가바나(왼쪽)와 도메니코 돌체. /사진=Renan Katayama (cc-by-sa-2.0)

스테파노 가바나(왼쪽)와 도메니코 돌체. /사진=Renan Katayama (cc-by-sa-2.0)




최근 수십년 간 계속된 이탈리아 패션 산업의 성장세는 주식 시장 상장으로 이어졌다. 몽클레어, 페라가모, 브루넬로 쿠치넬리, 토즈는 밀라노에서 기업 공개를 했고, 프라다는 중국 시장 호황에 따라 2013년 홍콩에 상장했으며, 제냐는 2021년 뉴욕 주식 시장에 상장했다.


데 솔레는 기업 공개를 하면 임원진과 창업자가 갑작스럽게 투자자의 이해관계를 충족시켜야 할 상황에 놓이면서 사업의 본질이 변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변화는 이탈리아 패션하우스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패션 그룹은 승계 계획을 세우고 회사 운영에 더욱 엄격해지라는 압박을 받게 되었죠."


밀라노에 본사를 둔 프라다그룹의 경우, 새 경영진을 임명해서 로렌조 베르텔리가 부모인 미우치아 프라다와 파트리치오 베르텔리로부터 회사를 물려받는 경영 승계 과정을 감독하게 했다.


미우치아와 공동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고 있는 벨기에 출신 디자이너 라프 시몬스는 프라다에 전념하기 위해 몇달 전 자기 브랜드를 접었다. 미우치아가 은퇴하면 그가 프라다의 크리에이티브를 책임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도메니코 돌체와 스테파노 가바나는 처음에는 자신들이 죽으면 돌체앤가바나를 닫을 생각이었다가 최근 돌체 가문에게 경영권을 넘긴다는 새로운 승계 계획을 내놓았다.


현재 88세이고 아직까지 같은 이름의 회사에서 최고 경영자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고 있는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그룹이 인수되거나 해체되는 일을 막기 위해 자신의 제국의 지분 일부를 그가 세운 자선 재단에 옮기려고 한다.


아르마니가 다큐멘터리 '밀라노'에 등장해서 한 말을 들어보자. "조르지오 아르마니 [회사]의 미래는 저와 연결되어 있고 제가 영원할 수 없다는 걸 저도 압니다. 하지만 살아있는 한 회사를 운영하는 것이 내가 할 일입니다."


칼라일그룹의 데 베네데티는 외부 투자자에게 문호를 개방하길 꺼리는 성향이 이탈리아 패션하우스의 발전을 막았다고 생각한다. "대체로 문화적인 영향이 큽니다. 자금과 의지가 있는 투자자가 없던 건 아니었으니까요. 그런데 창업자가 기어코 사업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고 하면 잘 풀리지 않는 거죠."


브랜드가 더 큰 기업에 매수되면 회사가 기술에 투자하고 외부 인재를 영입할 기회가 생겨 브랜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LVMH가 인수한 브랜드 중 가장 수익성이 좋기로 손꼽히는 펜디가 이에 해당된다.


패션 디자이너 발렌티노 가라바니는 2007년에 회사를 런던 소재 사모펀드 퍼미라에 회사를 팔고 은퇴할 때 "상황이 바뀔 것"이라 예상하면서도 발렌티노의 크리에이티브 팀이 "[자신을] 자랑스럽게 해주기를" 바랐다. (훗날 디올로 자리를 옮긴)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와 발렌티노의 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는 현대 패션 산업의 비전을 세운 선각자로 평가되며, 발렌티노는 2013~2018년새 가장 빠르게 성장한 럭셔리 패션 기업이었다.


프랑수아 피노가 구찌를 인수한 이래, 세계 곳곳의 대기업과 사모펀드가 수십 개 브랜드와 공급업체를 사들이면서 이탈리아 럭셔리 업계에 자금이 유입되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형태의 투자가 궁극적으로는 이탈리아 국내 산업에 이익을 가져다 준 것으로 평가한다.


현재 카타르 왕가가 소유한 발렌티노, 마이클 코어스4가 인수한 베르사체, 구찌, 펜디는 외국 기업이 브랜드의 소유권을 갖고 있지만 여전히 이탈리아, 그리고 창업자의 유산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밀라노 IULM대학교에서 패션을 연구하는 소피아 뇰리 교수에 따르면 케링과 LVMH처럼 럭셔리 브랜드를 보유한 대기업이 일으킨 '혁명'은 힘의 균형추를 창업자 가문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쪽으로 옮겨가게 만들었다. "브랜드를 매각한다고 해서 무조건 쇠퇴하는 것은 아닙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잘 뽑으면 성공할 수 있어요."


뇰리 교수는 현대의 고객을 위해 각 브랜드의 전통을 재해석하는 것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통상적으로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브랜드의 영광스러운 옛 시절을 강조하며 3천유로(430만원)짜리 핸드백을 판매할 수 있다면 투자자들은 자금을 투자해서 새 브랜드를 만드는 대신 그 브랜드의 역사를 삽니다."


한때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톰 포드와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이 방식으로 브랜드 정체성을 바꾼 사람들이었다.


최근 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를 매각하고 패션계에서 은퇴한 톰 포드는 1990년대에 가죽 버킷 핸드백 같은 클래식한 디자인을 더블 G 모노그램 로고로 젊은 감각에 맞게 되살리고 이를 액세서리부터 여성복까지 확대하여 구찌의 상황을 성공적으로 뒤바꿔놓았다. 그리고 2015년 프리다 지아니니의 뒤를 이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미켈레는 중성적인 컬렉션으로 브랜드의 디자인 미학을 탈바꿈하여 젊은 소비자들 사이에서 구찌의 인기를 되살렸고, 2022년 구찌를 떠났다.

영리하게 뭉치는 이탈리아 패션 기업들

전문가들은 외국 투자자들이 향후에는 이탈리아의 플래그십 브랜드를 나꿔채기 쉽지 않으리라고 전망한다.


전문가 대부분이 이탈리아 패션 업계가 규모 면에서 프랑스 대기업과 경쟁할 수 있는 그룹을 세우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보지만 이탈리아 업계가 과거보다 더 긴밀하게 협력한다고 한다. 리카르도 물로네 UBS 이탈리아 지사장의 표현을 빌리면 이들은 "영리하게 뭉치고 있다."


패션하우스의 사고방식도 바뀌고 있다. "창업자들은 이제 경쟁 브랜드의 옷을 입고 서로의 패션쇼에 참석하며 중요한 이슈를 논의합니다." 물로네의 말이다.


전문가들은 젊은 세대가 통폐합이란 과제에 직접 착수하게 되리라 본다. 프라다의 아들 베르텔리 뿐 아니라 제냐, 쿠치넬리, 피렌체에 본사를 둔 페라가모의 후손들, 토즈의 디에고 델라 발레, 몽클레어의 레모 루피니까지 모두 가족의 패션하우스에서 일한다.


몽클레어와 더불어 시가총액이 가장 큰 프라다가 통폐합을 주도할 그룹으로 자주 거론된다. 그러나 2023년 5월 파이낸셜타임스가 주최한 컨퍼런스에서 프라다의 후계자 로렌조 베르텔리는 이렇게 말했다. "때가 됐을 때 남아있는 곳이 몇이나 될지 두고 봐야죠."


핵심 분야 중 하나인 공급망에서 통합은 이미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다.


"럭셔리 제품은 공급망 이력 추적5이 핵심입니다. 그래서 대기업들이 제품의 제작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공급업체 인수를 강력하게 추진하는 것입니다." 물로네의 말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이러한 추세를 가속화하는 사이 이탈리아의 여러 패션 그룹은 프랑스 경쟁사처럼 최고의 원료를 확보하고 생산 능률을 높이기 위해 공급망을 수직계열화6하고 있다.


한 예로 제냐그룹과 프라다그룹은 제품 디자인부터 포장까지 전 과정이 이탈리아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증하는 '메이드 인 이탈리아' 상품 표기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을 스스로 내걸었다. 두 그룹은 2023년 6월 고급 니트웨어 회사 페델리에 공동 투자하여 총 지분 30%를 매입했다고 발표했다. 2021년에는 울과 캐시미어 공급사인 필라티비아지올리의 최대 지분을 인수했다.




프라다


- 가죽 액세서리 전문가 마리오 프라다와 마르티노 프라다 형제가 1913년 밀라노에서 '프라텔리 프라다'(Fratelli Prada)라는 사명으로 설립


- 2022년 개인 럭셔리 부문 매출: 47억 5천만 달러


- 승계 계획: 올해 초 프라다그룹은 파트리치오 베르텔리와 미우치아 프라다 부부의 장남 로렌조가 그룹 회장직을 물려받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승계 과정을 관리하기 위해 룩소티카 전 CEO인 안드레아 게라를 그룹 CEO로 영입했고 지안프랑코 다티스를 프라다 브랜드 CEO로 임명했다.


이탈리아 밀라노의 프라다 매장. /사진=Pavel Gromov (CC-BY-3.0)

이탈리아 밀라노의 프라다 매장. /사진=Pavel Gromov (CC-BY-3.0)




베네토에 본사가 있고 디젤, 질샌더, 마르니를 보유한 OTB는 지난 5월 장기간 질샌더 액세서리 라인에 납품해온 가죽 제품 제조업체 프라시네티의 최대 지분을 매입했다고 발표했다.


씨티은행 글로벌 럭셔리 부문의 수장 로베르토 코스타는 공급사를 인수하는 형태의 투자가 브랜드 통합 확대의 기반을 다질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하면서도 이렇게 덧붙였다. "하지만 동시에 브랜드 간의 파트너십도 증가하면서 공급사에 대한 공동 투자도 늘 것입니다. 그러면 서로에게 반드시 필요한 노하우도 얻을 것입니다."


UBS의 CEO 세르지오 에르모티와 함께 제냐의 임원을 맡고 있는 도메니코 데 솔레는 시가총액 26억 유로 규모인 제냐도 프라다와 마찬가지로 이탈리아의 럭셔리 산업 중심지 조성에 앞장서겠다는 비전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업계와 이탈리아의 기관들이 과감하게 결단을 내려 외국 기업의 간섭으로부터 이탈리아 패션하우스와 숙련 기술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아돌포 우르소 이탈리아 경제개발부 장관은 정부가 이탈리아 기업에 대한 해외 투자를 평가할 때 "국가의 이익"을 고려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이전 정부는 패션 산업과 그 협력업체들을 전략 부문 목록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이 목록에는 기술, 운송, 통신처럼 정부가 해외 투자를 거부할 권한이 있는 분야가 포함되어 있다.


"패션 산업이 아니면 이탈리아에 전략적으로 중요한 산업이 뭐죠?" 카를로 카파사 국립패션협회 회장의 말이다. "패션은 전 세계에 이탈리아를 알린 분야고 젊은 세대는 미래에 패션 업계에서 일하기를 꿈꾸는데 말이죠."


그는 올 가을에 이탈리아 정부에 제출할 업계 '마스터 플랜'을 수립 중이다.


공공기관도 최근 패션 업계 지원에 나섰다. 일례로 이탈리아의 공공투자 펀드인 이탈리아전략기금은 2018년 화려하고 다채로운 니트웨어로 유명한 패션하우스 미쏘니에 7천만 유로를 투자하여 지분 40%를 매입했다. 현재 이탈리아 정부는 '메이드 인 이탈리아'에 국가 재정을 투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국내 투자가 제한적이었으며, 프랑스 기업과 정부가 자신들의 대표 산업과 긴 역사를 자랑하는 자국 쿠튀르 브랜드 보호를 위해 추진했던 정책을 실행할 비전이 이탈리아 기업과 정부에게는 부족했다고 평한다.


익명을 전제로 인터뷰에 응한 한 업계 임원은 이탈리아가 "패션 산업에 적극적으로 관여해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경제연구기관 센시스가 발행한 보고서에 따르면 향후 3년 간 패션 산업에 60억유로의 공공투자가 이루어질 경우 생산이 활성화되고 수입은 200억유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익명의 임원은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사모펀드와 외국 대기업이 할 겁니다."



1888년 창간된 영국의 대표적인 일간 경제지. 특유의 분홍빛 종이가 트레이드마크로 웹사이트도 같은 색상을 배경으로 쓰고 있을 정도입니다. 중도 자유주의 성향으로 어느 정도의 경제적 지식을 갖고 있는 화이트 칼라 계층이 주 독자층입니다. 2015년 일본의 닛케이(일본경제신문)가 인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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