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

싱가포르 화교에게 손 뻗는 중국공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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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인종 도시국가 싱가포르에서 가장 오래된 거리로 손꼽히는 워털루가에는 중국 사당, 음식점, 신문 가판대가 힌두교 사원과 유대교 사원을 마주하고 있다. /사진=Amrita Chandradas (Washington Post)

2023.09.15 13:18

Washington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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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는 동남아의 대표적인 친미국가입니다. 거대한 이웃 국가들에 둘러 싸인 인구 500만의 이 작은 섬나라가 독립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미국과의 특별한 협력관계 때문입니다. 아시아와 중동, 유럽을 잇는 말라카해협 입구에서 해양통제에 미국과 협력하고 그 대신 안전을 보장받는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싱가포르 생존전략이었습니다. 그런데 중국이 새로운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중화민족'의 정체성을 내세우며 해외 화교들에게 접근하면서 싱가포르를 비롯한 동남아 정부들이 긴장하고 있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중국이 '통일전선' 공작에 따라 어떻게 중국 영향력의 촉수를 싱가포르 사회 깊숙이 뻗치고 있는지 상세히 보도합니다. 중국계(화교)가 '인종의 섬'을 이뤄 살고 있는 싱가포르에서 싱가포르인이라는 정치적 내셔널리즘과 중국인이라는 혈통적 내셔널리즘이 충돌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빠르게 국제적 영향력을 확장하는 가운데, 시진핑 주석은 해외 화교 커뮤니티에 대한 거창한 구상을 제시했다. 화교 커뮤니티가 "중화민족의 부흥을 선도하는 강력하고 단합된 힘에 일조"하기를 희망한다는 것이었다.


"공유된 미래"를 구축한다는 부드러운 수사법이 종종 동원되는 가운데, 중국 정부는 마치 주문을 외듯 화교 공동체를 중국의 지정학적 야심을 위한 수단으로 홍보하곤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타국 시민들 중 자국에 충성할 사람들을 찾고자 한다는 말은 중국이 화교 거주 국가의 국론 분열을 추구한다는 말과 같으며 이는 중국과 대만 밖의 화교 인구 중 80퍼센트 이상이 살고 있는 동남아시아 권역의 안정을 해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우려가 가장 도드라지는 곳은 싱가포르다. 다문화 도시국가 싱가포르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화교는 점차 중국 정부에 동조하는 경향을 보인다. 2002년 퓨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가 19개국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중국과 시진핑에 호의적인 국가는 오직 셋 뿐이었는데 싱가포르가 그 중 하나였다. 그해 6월 유라시아그룹재단Eurasia Group Foundation이 싱가포르, 대한민국, 필리핀에서 수행한 연구 결과, 싱가포르는 미국보다 중국에 대한 호감이 큰 유일한 국가였다. 싱가포르인 응답자 중 미국에 호의적인 이들은 절반이 되지 않은 반면, 중국에 호의적인 응답자는 56퍼센트를 기록한 것이다.


"시진핑의 '중국몽'을 따를 정도로 어리석은 중국계 싱가포르인들이 너무 많아지면 싱가포르 발전의 토대가 되었던 다인종 사회 통합은 파괴되고 말 겁니다." 싱가포르 외교부 차관을 지낸 빌라하리 카우시칸Bilahari Kausikan의 말이다. "한번 파괴되고 나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죠."


싱가포르 정부는 타국이 국내 정치에 개입하지 못하게 하는 법을 통과시켰고 이는 지난해 발효됐다. 정부는 중국계 싱가포르인들을 향해 "적대적인 외국의 영향력과 공작"을 경계해야 한다고 경고하면서 싱가포르인과 중국인의 정체성 차이에 대해서도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미국이 동남아시아에 미치는 영향이나 중국의 국내정치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 메시지는 이미 싱가포르에 단단히 자리를 잡은 상태다. 여기에는 중국어로 발행되며 싱가포르 정부의 오랜 지원을 받아온 주요 매체가 포함돼 있다.


그 중 가장 유력한 매체인 '롄허짜오바오?合早?'는 싱가포르 중국어 매체의 입장 변화를 잘 보여준다. 과거 롄허짜오바오의 논조는 싱가포르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취하던 신중한 중립을 반영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신장 지역의 인권 침해 증거를 부정하거나 홍콩과 중국 본토에서 벌어지는 시위가 "외세"에 의해 촉발되었다고 주장하는 등, 오늘날 중국에서 내놓는 가장 성마른 선동을 주기적으로 되풀이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와 호주전략정책연구소Australian Strategic Policy Institute가 롄허짜오바오가 2022년부터 2023년 초까지 발행한 기사 700건 이상을 분석한 결과다.


워털루 거리에서 한 남자가 중국어 신문 롄허짜오바오를 비롯한 신문을 팔고 있다. /사진=Amrita Chandradas (Washington Post)

워털루 거리에서 한 남자가 중국어 신문 롄허짜오바오를 비롯한 신문을 팔고 있다. /사진=Amrita Chandradas (Washington Post)


게다가 롄허짜오바오는 2016년 이후 적어도 두 명의 중국공산당 관료가 자신의 소속을 명시하지 않은 채 그저 중국 문제 전문가를 자처하며 쓰는 칼럼을 게재하고 있다. 그 중 하나인 덩칭보??波는 후난성 온라인 여론관리부에 재직하며 온라인 선동과 댓글 관리를 담당하는 관리자급 인물이다. 또 다른 칼럼니스트인 딩쑹취안丁松泉은 저장성 소재 후저우대학교의 공산당 위원회 소속으로, 저장성 교육 분과에서 여러 직책을 맡아 왔다. 홍콩 소재의 또 다른 칼럼니스트 싱윈차오邢云超는 때로 같은 원고를 '중국일보'와 롄허짜오바오에 동시 기고함으로써 중국 관영언론과 싱가포르 민영언론의 경계를 흐리게 만든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섬세하게 조율된 줄타기를 해나가는 싱가포르는, 미국과의 긴밀한 군사적, 경제적 연결을 지속하는 가운데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 역시 긴밀하게 유지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미국제 무기를 구입하며 자국 병력을 미군 기지에서 훈련시키고, 미 해군 함정은 자주 싱가포르에 기항한다. 한편 싱가포르와 중국은 지난 봄 리셴룽 총리의 방중에 맞춰 자유무역을 강화하고 환경 문제에서의 협력과 통신 교류 강화 등을 통해 양국 관계를 공식적으로 격상시켰다.


중국 정부는 동남아시아를 핵심 영향권으로 보고 있으며 시진핑 집권 이후 수십억달러를 쏟아부은 캠페인을 통해 공공외교와 언론 노출을 늘리고 있다. 연구자들은 중국이 특히 화교 커뮤니티를 목표로 삼고 있다고 지적한다. 중국의 입법부는 중국 정부의 메시지와 "시진핑 사상"을 홍보하기 위한 목적의 "애국 교육" 조치를 통과시킬 예정인데 법안에 따르면 해외 중국인 집단의 능력을 활용해 "각자의 장점을 발휘하게 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중국의 메시지는 두 가지로, 자국의 이미지와 사업을 지지하는 한편으로 "미국이 위험하고, 도발적이며, 안정을 위협한다"는 인식을 형성시켜 미국이 동남아시아에서 수행하는 역할을 제한하고자 한다는 게 싱가포르국립대학교 조교수이자 카네기 차이나Carnegie China의 비상임연구원인 총자이안Chong Ja Ian의 말이다.


동남아시아에서 중국 국영 텔레비전 방송이 중국어와 영어로 나오는 것은 보편적인 일이며, 차이나 라디오 인터내셔널China Radio International처럼 중국어와 더불어 대부분의 동남아시아 언어로 방송되는 매체도 있다. 중국 정부는 또한 동남아시아 권역의 언론 기관에 중국의 공식 뉴스 채널인 신화통신과 콘텐츠 공유 협약을 맺도록 홍보하고 있다. 중국 본토와 비즈니스적으로 깊은 이해관계에 있는 중국 기업과 사업가들은 말레이시아 현지의 중국어 신문들을 인수했다. 이렇듯 기성 언론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SNS에서 벌어지는 정보 교란 작전을 보완하는 것으로, 호주전략정책연구소의 국제사이버정책센터 소속 분석가 앨버트 장Albert Zhang에 따르면 그 목표는 해외의 중국계 커뮤니티를 "해외 영향력의 거점"으로 삼으려는 것이다.


중국 정부의 직접적인 노력과는 별도로, 중국의 경제력이 갖는 무게감은 중국 정부의 눈치를 보게 하는 동기가 돼 싱가포르가 전통적으로 지켜오던 중립적 입장을 흔들고 있다. 가령 롄허짜오바오는 해외 매체로서는 드물게 중국 내 독자층을 만끽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광고와 발행부수 측면에서 더욱 중국 독자층에 의존하게 됐다. 자유로운 발언을 위해 익명을 요구한 전현직 기자 10명을 인터뷰한 바에 따르면, 롄허짜오바오의 경영진은 중국 정부의 검열로 인해 중국 시장에서 추방될 위험을 두려워하고 있으며 비판적인 보도보다는 중국 시장 접근성을 우선시한다고 한다.


소규모 온라인 매체의 경우에도 재정적 동기가 생긴다. 독자와 광고를 위챗WeChat 같은 중국 SNS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의 한 중국어 매체의 편집장은 위챗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정치적인 주제를 피하면서 중국에 우호적인 메시지에 힘을 싣는 식으로 자기검열을 하고 있음을 인정했다. 위챗에서 밀려나는 것은 독자도 잃고 광고도 잃는 일이라는 것이다.


롄허짜오바오의 편집장 고신텍Goh Sin Teck은 워싱턴포스트의 질의에 대해, 롄허짜오바오는 "객관적이고 중립적이며 팩트 기반" 매체이며 발행되는 내용은 정치적 편향성에 따라 선택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칼럼 지면은 "폭넓은 관점"을 수렴하도록 되어 있으며 "칼럼니스트의 배경을 이유로 특정한 관점을 배제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덧붙였다. 또한 신문의 공식적인 입장은 오직 사설을 통해서만 실린다고 했다.


"롄허짜오바오는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 모든 필자의 배경을 검증하지만 필자가 스스로를 소개하고자 하는 바를 존중합니다." 고 편집장은 말했다. 신문의 논조에 대해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분명 특정 주제를 다룰 때 우리는 서구의 장단에 춤추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우리를 친 중국공산당 매체로 분류하는 것은 대단히 경솔하며 자의적인 일입니다."

일지양국(一紙兩國)

중국 정부는 동남아시아 언론계에서 그 존재감을 늘리고 있다. 싱가포르 홀란드 빌리지의 탐비 매거진 스토어는 국내, 해외 매체를 판매한다. /사진=Amrita Chandradas (Washington Post)

중국 정부는 동남아시아 언론계에서 그 존재감을 늘리고 있다. 싱가포르 홀란드 빌리지의 탐비 매거진 스토어는 국내, 해외 매체를 판매한다. /사진=Amrita Chandradas (Washington Post)


롄허짜오바오는 1983년 경쟁 관계였던 두 중국어 신문이 합병되면서 태어났다. 싱가포르의 초대 총리 리콴유가 이를 장려했다. 리콴유는 학교 수업이 영어로 진행되자 중국어 신문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었다. 2003년 롄허짜오바오의 20주년 기념식에서 리콴유는 이렇게 말했다. "우수한 중국어 신문이 적어도 하나 정도는 유지되는 것은 싱가포르의 국익이 달린 문제입니다. 짜오바오가 바로 그 신문이죠. 이는 국가적 과업이고 우리는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롄허짜오바오는 싱가포르의 3대 토종 매체 중 하나로, 각 3대 매체들은 각기 중국계, 말레이계, 인도계라는 특정한 인종 집단을 주 독자층으로 삼는다. 싱가포르의 540만 인구 중 대부분은 이중언어 구사자로 영어를 기본으로 사용하며 그 위에 중국어(관화), 말레이어, 혹은 타밀어를 구사한다.


롄허짜오바오는 특이하게도 독자층이 두 나라, 싱가포르와 중국에 걸쳐 있다. 1980년대 덩샤오핑의 지도 아래 중국이 개방을 시작할 무렵, 짜오바오의 기사와 칼럼은 복사되어 중국 공산당 고위층 사이에서 회람되었다. 1993년 짜오바오는 베이징 호텔 서점에서 팔리기 시작했고 2년 후에는 온라인 서비스를 시작했다. 짜오바오는 현재 중국에서 접속 가능한 소수의 해외 뉴스 사이트 중 하나다.


"우리는 그걸 '일지양국'이라 부르죠." 2011년 은퇴할 때까지 짜오바오에서 30년 이상 근무하며 편집장을 역임한 림짐쿤Lim Jim Koon의 말이다. "우리가 중국에 없는 걸 제공한다는 데 우리의 가치가 있었죠… 우리는 중국에게 세계를 향한 창이 됐습니다."


롄허짜오바오의 중국 독자층이 점점 더 두터워지는 반면, 싱가포르의 독자층은 특히 젊은층 사이에서 중국어 사용이 줄어들면서 지속적인 감소세를 보였다. 짜오바오는 비디오 콘텐츠를 강화하고 페이스북 라이브를 제공하며 밀레니얼과 Z세대가 만드는 디지털 전환을 통해 새로운 독자를 확보하려 했지만 구독자 수는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 공시에 따르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합쳐 2015년 18만7000명이었던 싱가포르 내 짜오바오 구독자 수는 2020년 현재 14만4000명까지 떨어진 상태다.


언론계 전반적으로 매출이 떨어지는 가운데 짜오바오의 모기업인 싱가포르프레스홀딩스Singapore Press Holdings는 2021년 영어 매체인 스트레이츠타임스Straits Times와 기타 토종 매체를 비롯한 미디어 비즈니스를 계열 분리하여 SPH미디어SPH Media라는 비상장 신탁회사로 전환했다. 발행 부수 및 기타 재정 사항들은 더 이상 공개되지 않는다.


중국 시장 접근성은 이제 매체의 사활이 걸린 문제가 되었다. 짜오바오의 중국 내 독자는 월 400만 명이 넘는데 이는 싱가포르의 전체 중국어 사용자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다. 이렇게 만들어진 중국 독자와의 접점은 중국 내의 광고와 구독이라는 측면과 중국 소비자들과 접하고 싶은 외국 기업들의 창구가 된다는 측면에서 금전적 보상을 제공한다.


짜오바오는 여전히 싱가포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싱가포르 정부가 오래도록 싱가포르 매체에 엄격한 통제력을 발휘해왔고 짜오바오가 역사적으로 정부와 밀착한 매체였다는 점도 이유 중 한다. 창간 기념일 행사에는 현직 총리를 비롯한 싱가포르 고위 인사가 참석한다. 로이터연구소Reuters Institute에 따르면 짜오바오의 독자 신뢰도도 높은 편이다. 독자들은 줄어들고 있지만 SPH미디어는 싱가포르 내 인쇄 매체 분야에서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롄허짜오바오는 1920년대 중국인 사업가에 의해 창간된 두 신문이 합병하면서 1983년 탄생했다. '싱가포르 중국어 신문을 선도해온 우리의 70년 역사'라는 책자를 통해 1980년대와 1990년대 신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Amrita Chandradas (Washington Post)

롄허짜오바오는 1920년대 중국인 사업가에 의해 창간된 두 신문이 합병하면서 1983년 탄생했다. '싱가포르 중국어 신문을 선도해온 우리의 70년 역사'라는 책자를 통해 1980년대와 1990년대 신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Amrita Chandradas (Washington Post)


짜오바오 기자들에 따르면 신문의 친중親中 전환은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가속화되었다. 당시 홍콩 시위가 정점에 달했고 짜오바오의 위챗 페이지가 차단됐다. 짜오바오의 위챗 페이지는 여전히 차단 상태고 그 이유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이는 또 다른 주요 중국 SNS 플랫폼인 웨이보의 짜오바오 계정이나 짜오바오 웹사이트 자체가 차단될 수 있다는 경고로 해석되고 있다. 중국에서 접속 가능한 짜오바오 웹사이트는 싱가포르에서 접속 가능한 웹사이트와 다르며, 여러 기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편집국은 중국판에서 민감한 기사를 발행하지 않는다고 한다.


여러 전현직 기자들에 따르면 중국에서 차단당하지 않는 게 롄허짜오바오 경영진의 최우선 과제가 됐다. "우리가 무얼 하건 가장 중요한 건 그거예요." 한 기자의 말이다. 중국 시장 접근성을 지키려는 노력은 신문의 논조에도 폭넓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기자들은 말한다. 심지어 싱가포르 독자를 위한 보도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중 구속 상태입니다." 싱가포르의 검열과 중국의 검열 사이에 낀 상태를 두고 기자는 말했다.


2021년 12월, 롄허짜오바오는 중국 테니스 스타 펑솨이彭?의 단독 인터뷰를 게재했다. 펑솨이는 본인의 웨이보 계정을 통해 전 중국 공산당 고위 간부가 본인에게 성관계를 강요했다고 폭로했고 이후 대중의 눈 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이후 짜오바오에 올라온 6분 길이의 인터뷰에서 펑솨이는 자신이 성폭행을 당하지 않았으며 자유롭게 살고 있다고 이야기했는데 이는 성폭력 고발 게시물을 올린 후 펑솨이가 직접 모습을 드러낸 유일한 사례로 남아 있다. 몇몇 기자들은 이를 짜오바오가 공산당 공식 입장의 선전을 위해 간택된 것으로 본다. 또한 짜오바오가 중국 국영매체보다 세계 독자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매체로 여겨짐을 보여준다고 한다.


"짜오바오가 중국공산당이 하고 싶은 말을 도와주는 모습을 보여준 거죠." 전직 짜오바오 기자의 말이다. "중국 정부가 해외 매체에 취재를 허용하는?정말 드문 일이니까요?경우와 짜오바오가 스스로를 외교적 창구이자 중국적 사고방식의 통역자라고 여기는 자부심이 겹칠 때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를 보여준달까요."


보다 최근에는 작년 코로나 19 통행금지와 중국공산당의 통치에 반발하여 벌어진 "백지시위"와 지난 2월 미국이 중국의 정찰용 풍선을 격추시켰을 때도 중국 정부의 입장을 좇았다. 미국의 반응이 비이성적이며 미국의 몰락을 보여준다는 식의 해석을 지속적으로 내보낸 것이다.


짜오바오는 인권 침해와 연루되어 있는 것으로 지적된 중국 기업과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2002년 말, 짜오바오는 센스타임SenseTime이라는 인공지능 기업과 협력해 디지털 전환 작업을 시작했는데 센스타임은 안면인식 기술을 통해 위구르 소수 민족을 탄압하고 있다는 이유로 미국 정부의 제재를 받은 기업이다. 짜오바오의 편집장은 그 협력이 "AI 기술을 이용해 시각 콘텐츠 제공과 사용자 경험을 증진하기 위한" 1년짜리 단기 계약이라고 해명하면서 짜오바오는 "미국과 중국 간의 갈등에 끼어들고 싶지 않다"고 덧붙였다.


"롄허짜오바오가 주고 있는 친중적 인상은 중국 독자들로 하여금 싱가포르가 실제로는 미국 중심의 안보 정책을 펼치고 있는데도 이러한 현실보다 훨씬 더 친중적이라고 여기게 만들 수 있습니다." 네덜란드 킬링겐다엘연구소Clingendael Institute의 연구위원 센스 호프스테드Sense Hofstede의 지적이다.

중국계 싱가포르인이라는 정체성

싱가포르 차이나타운의 트렌가누 거리. /사진=Amrita Chandradas (Washington Post)

싱가포르 차이나타운의 트렌가누 거리. /사진=Amrita Chandradas (Washington Post)


신임 주싱가포르 중국 대사가 부임하여 더욱 공개적으로 중국 정부의 의제를 밀어붙이면서 짜오바오 내에도 변화가 시작되었다. 2022년 부임한 쑨하이옌孫海燕 대사는 외교부가 아닌 중국 공산당에서 해외정당과의 관계를 담당하는 대외연락부 출신이다. 대사가 된 후 그는 페이스북에 'AmbChina.sg' 페이지를 개설하고 하루에 적어도 한 개씩 글을 올렸다.


워싱턴포스트는 2022년 이후 쑨 대사가 올린 모든 글을 검토한 결과, 다른 인종 집단보다도 중국계 싱가포르인, 중국어 매체 및 중국 관련 협회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발견했다. 대사 취임 후 첫 공식 행보가 중국어 온라인 매체와의 만남이었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한 편집자의 말에 따르면 쑨 대사는 중국의 신장, 티벳 문제 등 유엔에 의해 광범위한 인권 침해와 강제 노동의 증거가 확인된 민감한 사안들을 거론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쑨 대사는 짜오바오의 모기업인 SPH미디어의 편집자에게 중국에 대해 긍정적인 이야기를 더 실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중국공산당이 지배하는 국가, 중국 문화, 중국 민족을 구분하지 않고 뭉뚱거리는" 친중 노선의 선전활동은 "특히 중국과 미국 및 미국의 우방과 동맹들 사이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지금, (중국계 싱가포르인들의) 정체성과 애국심의 혼란을 야기한다"는 게 싱가포르국립대의 총자이안 교수의 말이다.


주싱가포르 중국 대사관은 워싱턴포스트의 질의에 대한 서면 답변에서 중국은 싱가포르의 다지역 다문화 사회를 존중하고, 인도계, 말레이시아계 의원들과의 관계를 거론하며 "주기적으로 다양한 지역 커뮤니티와 접촉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사관은 "공보와 매체 관리는 쑨 대사의 중요한 업무 중 일부"라고 말했다.


롄허짜오바오는 7월 말 쑨 대사가 직에서 물러나고 공산당 대외연락부 부부장으로 영전한다는 보도를 내보냈다. 공산당의 대외관계 기구에서 최연소 부부장이 되는 것이다. 주싱가포르 중국 대사관은 쑨 대사의 이임이나 새로운 직책에 대한 질의에 답하지 않았다.


싱가포르중국계문화센터에서 한 방문객이 상설 전시 '중국계 싱가포르인이란 무엇인가?'를 보고 있다. /사진=Amrita Chandradas (Washington Post)

싱가포르중국계문화센터에서 한 방문객이 상설 전시 '중국계 싱가포르인이란 무엇인가?'를 보고 있다. /사진=Amrita Chandradas (Washington Post)

싱가포르중국계문화센터는 중국이라는 나라와 별개로 싱가포르 현지 중국계 문화를 강화하기 위해 세워진 것으로, 싱가포르 정부가 많은 예산을 제공했다. /사진=Amrita Chandradas (Washington Post)

싱가포르중국계문화센터는 중국이라는 나라와 별개로 싱가포르 현지 중국계 문화를 강화하기 위해 세워진 것으로, 싱가포르 정부가 많은 예산을 제공했다. /사진=Amrita Chandradas (Washington Post)


외교적 사안의 민감성을 고려해 익명을 요구한 다수의 관계자에 따르면 싱가포르 정부는 쑨 대사의 광폭 행보를 면밀히 검토했다. 중국의 영향력 전반에 대한 싱가포르 정부의 우려도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음력 설날을 기념하는 어느 중국계싱가포르인협회(영국 통치기 동안 중국계 이민자들의 상호 부조를 위해 출범한 조직)행사에서 K 샨무감K Shanmugam 내무장관은 "중국계 싱가포르 문화가 더욱 육성되어 싱가포르에 깊게 뿌리내릴 수 있도록 힘을 보태주십시오. 싱가포르의 정책은 오직 싱가포르인에 의해 결정되는 것임을 정부가 지켜낼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샨무감 장관의 호소는 중국 정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까 우려해 종종 중국에 대한 언급을 삼가는 싱가포르 정부쪽 발언으로는 이례적인 것이었다. 지난 건국기념일 집회에서 싱가포르 총리 역시 중국어 연설을 통해 같은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위챗과 왓츠앱, 텔레그램을 거론하며 SNS로 공유되는 메시지가 싱가포르인들로 하여금 어떤 편을 들게끔 만들려는 "숨은 의도"를 지니고 있다고 지적했다.


몇몇 중국계 싱가포르인 집단들은 그럼에도 중국 정부의 궤도에 더 가깝게 끌려 들어가고 있다. 가장 큰 단체인 차오저우파이후이관Teochew Poit Ip Huay Kuan을 비롯한 세 중국계협회 대표자들은 지난 5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최초로 개최된 제10회 해외 중국인 우호회의에 참석했다. 시안차이의료재단Sian Chay Medical Institution을 비롯한 싱가포르 단체들 역시 130개국에서 온 500여개 단체들과 함께 그 자리에 참여했다. 시진핑과 중국의 대외 작전을 관할하는 통일전선공작부의 스타이펑石泰峰 부장 등이 그들을 반겨주었다. 중국 관영 매체들은 그 행사가 "거대한 중화 가족을 하나로 묶는" 일에 도움을 주리라고 보도했다. 싱가포르 단체들은 본지의 질의에 답을 주지 않았다.


연구자들은 그러한 행사가 중국의 전반적인 '통일전선' 전략의 일부라고 지적한다. 중국 공산당의 관점을 앞세우는 역할을 맡는 비국가행위자를 동원해 반대 의견을 억누르고 정보를 수합하는 정치적 작업의 일부라는 것이다. 참석자들을 향한 스 부장의 발언도 그런 점을 강조하고 있었다. "단합된 전진"을 통해 해외의 중국인들이 "중화민족의 위대함"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통일전선은 많은 부분에서 중국계의 혈연 민족주의를 자극합니다." 호주의 애들레이드대학교에서 중국 정부가 추진하는 통일전선의 역할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게리 그룻Gerry Groot의 말이다. 우호협회들이 "중국과의 감정적 연결고리를 형성하는 일을 맡고 통일전선공작부가 이렇게 형성된 감정적, 혹은 다른 연결고리를 중국공산당의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목적에 활용하는거죠."


분석가와 현지인들에 따르면, 자신들은 중국어로 교육받았는데 사회 전반의 영어친화적 분위기 속에서자신들의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중국계 노년층이 중국 정부의 메시지에 흔들릴 우려가 가장 큰 집단이다. 한 인터뷰 대상자는 70대와 80대인 자신의 부모가 "극단적인" 친중 입장을 지니고 있으며 중국 공산당을 마치 '소설 속 영웅'처럼 보고 있다고 묘사했다.


한 여성이 싱가포르의 차이나타운을 걷고 있다. 도시국가 싱가포르의 정부는 중국계에 "적대적인 외국의 공작"에 주의하라고 경고하면서 중국계 싱가포르인이라는 별도의 정체성에 방점을 찍고 있다. /사진=Amrita Chandradas (Washington Post)

한 여성이 싱가포르의 차이나타운을 걷고 있다. 도시국가 싱가포르의 정부는 중국계에 "적대적인 외국의 공작"에 주의하라고 경고하면서 중국계 싱가포르인이라는 별도의 정체성에 방점을 찍고 있다. /사진=Amrita Chandradas (Washington Post)


"심지어 본인이 중국인이 아님에도, 중국인이라는 것이 그분들의 정체성의 전부가 됐어요."


싱가포르 통신정보부 대변인은 워싱턴포스트의 문의에 대한 이메일 회신에서 싱가포르 정부는 "미국과 중국 그 어느 편도 택하지 않으며 일관된 원칙을 견지한다"고 말했다. 정부 내부 여론조사에 따르면 싱가포르인 중 86퍼센트는 중립 정책에 찬성하고 있으며, 오직 4퍼센트만이 중국으로 더 기울어야 한다고 응답했다.


싱가포르는 '싱가포르 중국계Singapore Chinese' 라는 정체성을 강화하는 노력을 한층 더 기울이고 있다. 비영리단체인 싱가포르중국계문화센터는 현지 중국계 문화를 확립하기 위해 세워졌으며, 중국과는 다른 지역 음식, 방언, 전통 등을 인스타그램 친화적으로 상설 전시하고 있다. 센터의 예산 대부분은 싱가포르 정부에서 나왔다.


"저희 센터는 매우 분명한 목적 의식 하에 설립됐습니다. 싱가포르의 중국계 문화와 중국계 커뮤니티의 독특한 성격을 강조하기 위해서죠." 싱가포르중국문화센터의 최고경영자 러우쯔위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우리는 중국인들과 같은 선조를 공유하고 있지만 이 공통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이후 많은 이들이 서로 다른 궤도를 그리며 살아왔다는 사실 또한 분명합니다."


싱가포르의 540만 인구 중 다수는 이중국어 구사자로, 영어를 기본으로 중국어, 말레이어, 타밀어 중 하나에 능숙하다. /사진=Amrita Chandradas (Washington Post)

싱가포르의 540만 인구 중 다수는 이중국어 구사자로, 영어를 기본으로 중국어, 말레이어, 타밀어 중 하나에 능숙하다. /사진=Amrita Chandradas (Washington Post)



시바니 마타니Shibani Mahtani는 워싱턴포스트의 싱가포르 주재 국제탐사기자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탐사보도를 실시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에서 7년간 근무하고 2018년 워싱턴포스트의 동남아·홍콩지국장이 됐다.


옮긴이 노정태는 자유기고가·번역가로,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서강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칸트 철학을 전공해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7년부터 2008년까지 시사·정치 전문지 『포린폴리시』 한국어판 편집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프리랜서』, 『탄탈로스의 신화』, 『논객시대』 등이 있다.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그들은 왜 나보다 덜 내는가』, 『실전 격투』, 『정념과 이해관계』, 『밀레니얼 선언』,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 『아웃라이어』,『칩 워』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1877년 창간돼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과 함께 미국의 대표적인 일간지로 손꼽힙니다. 닉슨 대통령의 사임으로까지 이어진 1972년 워터게이트 스캔들 보도로 유명합니다. 2013년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가 인수한 이래 디지털 전환을 적극적으로 추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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