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

폴 케네디: '강대국의 흥망' 출간 35년 후 다시 내다보는 국제정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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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국의 흥망'의 초판 표지.

2023.11.24 13:59

New States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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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케네디는 '강대국의 흥망'으로 세계적인 역사가의 명성을 얻은 예일대 교수입니다. 사실 주장은 간략합니다. 결국 경제력이 강대국의 흥망성쇠를 결정한다는 내용입니다. 주장은 간략하지만 방대한 역사자료를 가지고 설명을 합니다. 한국에서는 책 전체를 읽는 사람들보다 요약본을 읽는 사람들이 더 많았던 책이기도 했습니다. 35년이 지난 지금 미중 패권전쟁이라는 맥락에서 다시 그의 책을 읽을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이제 중국의 경제력이 미국을 따라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과거 소련과 달리 경제력을 함부로 군사력에 소진하지 않습니다. 폴 케네디는 경제력을 망가뜨리면서까지 정치적, 군사적 '확장'을 추구하는 것을 비판합니다. 2023년의 세계를 보면서 폴 케네디는 미국과 중국에게 어떤 조언을 해줄까요? 그는 '강대국의 흥망' 속에서 한국을 어떻게 바라볼까요? 영국의 진보적 평론지 뉴스테이츠먼에 기고한 이 글에서 그는 한국의 중요성을 몇 차례 언급합니다. 이제 80을 바라보는 노학자가 된 그의 조금은 산만하지만 중간중간 통찰을 담은 이 글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서재에서 35년 전에 사놓은 '강대국의 흥망'을 다시 꺼내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35년 전 1월, '강대국의 흥망'의 출간이 세상에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 전혀 예상치 못했었던 내 책의 영향은 지금 돌이켜봐도 놀라울 뿐이다. 1987년 말, 내 책의 편집자였던 제이슨 엡스타인은 이 책이 "보통의" 역사 서적과는 판매에 있어서 다른 길을 가게 될 것임을 직감하고 있었다. 그는 미국의 보수주의 지도자인 노먼 포드호레츠가 워싱턴포스트 칼럼에서 내 연구를 맹공격한 것을 보고는 출판사인 랜덤하우스에 책을 더 많이 찍어낼 것으로 지시했다고 말했다. 또 당시 뉴스테이츠먼에 기고한 글에서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흥망'이 마치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 유출된 문서 마냥 서방 각국 각료들과 대사들에게 읽히고 있다고 했다. 2011년 미국 특수부대는 아보타바드 소재 오사마 빈라덴의 은신처를 습격했을 때 빈라덴 서재에서 '흥망' 한 권을 발견하기도 했다.


이 책은 수 주 동안 워싱턴포스트, 로스앤젤레스타임스 등 많은 신문에서 논픽션 섹션 베스트셀러 1등에 올라 있었다. 아쉽게도 뉴욕타임스에서는 당시로서는 왜 인기가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도널드 트럼프: 협상의 기술'이라는 책에 1등 자리를 내주고 있었다. 다른 나라에서도 '흥망'의 판매는 엄청났다. 일본에서는 이 책이 28일만에 번역되어 출간되자마자 60만 부나 팔렸다. 어떤 추정치에 따르면, 전 세계적인 판매고는 거의 200만 부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도대체 이런 일이 왜 벌어졌고, 도대체 왜 이런 식으로 상황이 전개되었던 것일까? 1988년과 1989년은 역사적인 해였다. 전 세계 힘의 축이 이동하고 있었고, 독자들은 설명을 원했다. 그리고 '흥망'이 하나의 설명을 제공했다. 즉, 지정학적 영향력과 군사력은 언제나 경제력의 결과이며, 경제력은 계속해서 변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썼다. "국제관계에서 지도적 국가들의 상대적 힘은 항상 변한다. 여러 나라 사이에 경제성장률이 균등하지 않고, 기술 및 조직상의 혁신이 여러 나라에 불균등하게 적용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과거의 패턴은 현재와 미래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즉, 어느 강대국의 상대적 경제력은 계속해서 변하며, 따라서 어느 나라도 영원히 1등 자리에 있을 수는 없다. 대부분의 '회고적인' 역사저작들과 달리 '흥망'은 전망을 제시했다.


이 책의 주장은 레이건의 미국이 소련의 막강한 군사력과 일본의 힘찬 경제적 상승 사이에 끼어있는 것 같았던 1988년 1월1에 사람들의 신경을 건드렸다. 당시는 '쇠퇴'라는 표현이 언론보도, 대학 세미나, 토크쇼, 의사당 등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던 시기였다. 서방의 대학들과 수많은 학술지들은 당시 "강대국의 대전략"이라 불렸던 연구에 몰두해 있었는데, 대부분 2차 세계대전이나 냉전 초기의 외교 및 군사적 결정에 초점을 맞췄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강대국의 흥망성쇠가 실시간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감지했고, 논객들은 미국이 힘의 상승을 멈추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하는 일에 분주했다. 하지만 1989년 즈음에 이르자 군사적으로 과잉 확장되어 있던 소련이 매우 빠르게 쇠퇴하고 있음이 분명해졌다. 또 사람들의 관심이 소련의 쇠퇴에 집중되어 있던 1991년 말, 일본 경제는 가라앉고 있었고 중국은 경제적, 군사적 상승을 시작하고 있었다.



바로 몇 년 전인 1988년 1월, '흥망'이 막 읽히기 시작했을 때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레이건의 미국은 이른바 제국의 과잉확장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고, 경쟁국인 소련은 여전히 단단해보였고, 일본의 경제적 상승은 확실해보였다.


이 책이 나온 후 그 짧은 몇 년 동안 얼마나 빨리 역사의 수레바퀴가 방향을 틀었는지! 만약 이 책이 3년 후, 즉 미국 주도의 연합군이 제1차 걸프전쟁에서 사담 후세인의 군대를 격파하고, 30년 동안 쉴새 없이 성장해온 일본 경제가 일순간 멈춰버렸을 뿐만 아니라 고르바쵸프가 소련을 해체하고 있던 1991년에 출간되었더라면 흥행에 실패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강대국들이 가지는 세계질서상의 상대적 지위는 국내에서의 생산력 및 경제력에 달려 있으며, 국가들 사이의 불균등 성장률이 국가들의 서열을 변화시킨다는 이 책의 주장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는 진실이 담겨있다. '흥망'에서 인용한 문구들 중 1918년 레닌이 볼셰비키 동료에게 던진 질문만큼 중요한 것은 없을 것이다.


"반세기 전만 해도 독일은 자본주의 발전에 있어서 영국과 비교했을 때 형편없이 가난했고 별로 안 중요했던 나라였다. 일본도 당시 러시아와 비교했을 때 별 볼일 없는 나라였다. 하지만 지금의 상태를 본다면, 10~20년 사이에 제국주의 국가들의 상대적 힘이 아무런 변화 없이 계속 같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절대로 말이 안 된다."


레닌의 제국주의론을 몰라도 "이 법칙은 모든 나라에 적용된다"는 내 표현에 동의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진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언젠가는 미국이 몰락하는 날이 온다는 것이 아닌가? 1980년대 후반 '쇠퇴' 논쟁에 참여하던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은 다음과 같은 볼테르의 말을 인용하기 좋아했다. "로마와 카르타고도 몰락했는데, 도대체 어떤 나라가 불멸할 수 있겠는가?" 미국 역시 세계 권력 위계의 최정상에 영원히 머무를 수는 없는 것이다.


소련이 몰락하고 일본이 침체하는 것과 동시에 미국의 상대적 힘은 상승했다. 보수주의 평론가 찰스 크라우트해머가 말했듯이 미국은 "일극의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은 이제 지나갔고, 중국이 부상했으며, 중국은 소련이나 일본과 달리 미국의 패권을 정면으로 위협하고 있다. 중국의 인구 규모는 미국보다 훨씬 크다. 1988년 당시 소련의 인구 규모는 미국보다 아주 조금 컸을 뿐이고 일본은 미국의 절반에 불과했다. 중국이 분명히 경제적 부를 더욱 많이 군사 부문에 투입해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소련처럼 국내경제에 부담까지 지우며 자원을 군사 부문에 투입하고 있지는 않다. (군사부문 과잉투입은 역사적으로 강대국들이 빠지기 쉬운 덫이었는데, 나의 '흥망'이 상세히 설명해두었다.)


소련이 붕괴되고 국제정치의 풍경이 바뀐지도 벌써 30년이 지났다. 2003년의 이라크전쟁은 지금 돌이켜보면 미국이 동네 불량배를 신속히 혼내준 느낌을 준다. 그리고 20년간 진행되었던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벌써 세상사람들의 기억에서 희미해지고 있으며 웨스트포인트(미 육군사관학교)의 군사 교과서에서 사례연구 주제가 되고 있을 뿐이다.


고작 14년 전이었던 2009년, 오바마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에 주둔중인 6만8000명에 더해 3만명의 미군을 추가배치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2021년 8월,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에 남아 있던 병력을 모두 철수시켰고, 이것은 그가 표현한대로 "다른 나라를 다시 만들려고 대규모로 군사개입하던 시대"의 끝을 의미했다. 이 표현은 매우 중요한 것인데, 미국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전 세계 구석구석까지 펼쳐지던 것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했다.


1943년,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육군장관인 헨리 스팀슨은 "미국의 이해와 무관한" 곳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래에는 더 이상 이런 말이 적용되지 않는 곳들이 세상에 많이 존재하게 될 것이다. 미국의 안보망은 밀도는 높이되 범위를 줄일 것이며, 유럽의 나토 회원국들, 일본, 호주, 이스라엘, 한국, 그리고 아마도 대만 정도까지만 커버할 것이고 그 밖으로는 미치지 않을 것이다.


소련이 무너진 1991년 이후의 전 세계 강대국정치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음은 반복해서 이야기해도 좋을 것이다. 최근 25년간의 강대국 국제정치를 예컨대 1900년 이후 25년간과 비교해보자. 합스부르크 제국 같은 주요 플레이어가 사라진 것 같은 것은 없었다. 유럽의 파시스트 국가들이 등장하고 완전히 몰락한 1920년-1945년 기간과 또 비교해보자.


우리 시대의 세계정치는 훨씬 더 평화로웠다. 유엔의 평화유지 활동을 전담 부서는 현재 업무가 줄어 12개 평화유지 활동만 관리할 뿐인데, 12개 중 몇몇은 키프로스나 카슈미르의 분계선 감시 임무처럼 매우 오래되었고 규모도 작다. 이보다 큰 유엔 평화유지군, 예컨대 남수단이나 말리에 주둔하고 있는 유엔군도 그렇게 크진 않다. 일본, 독일, 인도, 중국, 미국 같은 힘 센 국가들 중에 현재 전쟁중인 나라는 없으며, 이들 국가들의 군대는 대부분 낙후되어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규모가 줄어들고 있다.


미국 국방부는 엄청난 예산을 들여 값비싼 "스마트 무기"에 쓰고 있는데 이들 무기는 대부분 미국 국내에 있으며 전쟁할 준비가 되어 있는 육해공군 해외 부대에 있지 않다. 언론이 뭐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워싱턴의 어느 누구도 미중 전쟁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런 평화로운 풍경에서 예외적인 존재가 있다면 푸틴의 러시아다. 푸틴 정권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진정한 현실주의적 전략이 취했을 길과 정반대의 길을 택한 것이다. 현실주의적 전략이라면 국가의 장기추세적 경제 및 구조 약화를 막아 세우는데 온 힘을 다 쏟아야 한다. 1991년 이후 러시아의 힘을 재건하는 노력은 여러 가지 사회적, 물리적 취약성에 방해를 받았는데, 무엇보다 심각한 인구감소, 형편없는 테크놀로지 기반, 산업적 쇠퇴가 문제였다. 러시아는 석유와 가스의 수출에만 의존하면서 최첨단 제품(반도체) 및 소비제(자동차)의 생산에서는 미국뿐만 아니라 신생 아시아 경제강국들에도 한참 뒤지게 되었다. 지난 몇십 년 동안 러시아의 정치가 민주화되고 안정화되었고 경제발전도 이뤄졌다고 해도, 러시아보다 빨리 성장하는 인도, 한국, 인도네시아, 중국보다는 덜 무서워보였을 것이다.


중국의 눈으로 보자면,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를 약화시키고 있고, 러시아를 서방에서 멀어지게 만들며, 미국이 동아시아에 전념하는 것을 방해하고, 중국으로 하여금 아주 싸게 할인된 가격에 러시아산 석유와 가스를 구매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미국 국무부 한 구석에 우크라이나의 늪에 러시아가 오랫동안 빠져 있는 것이 미국에게 좋을 수 있으니 전쟁이 지속되도록 내버려둬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의심스러운 주장이다.


21세기 세계질서에는 6개의 강대국(일부는 준강대국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지만)이 있는데, 유럽연합(EU), 일본, 러시아, 인도, 중국 그리고 미국이 그 6개다. (전세계 GDP의 2.3%만을 차지하고 있는 영국은 더 이상 강대국이 아니다.) 이 6개 중에 유럽연합과 일본은 1815년 이후의 스페인이나 스웨덴처럼 영토적 현상변경을 가져올 전쟁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물론 방어적 전쟁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푸틴의 러시아는 여전히 유럽지도를 다시 그릴 의사가 있어 보이지만, 그것을 시도하다가는 러시아가 망가지게 될 뿐이다. 결국 가장 센 강대국인 인도, 중국, 미국만 남는다. 세계은행의 예상대로 이들 국가들이 계속 성장한다면, 27년 후인 2050년 무렵 세계 총 GDP의 점유율은 다음 그래프처럼 될 것이다.


향후 열강의 세계 총 GDP 점유율 추정치.

향후 열강의 세계 총 GDP 점유율 추정치.


이 숫자들에서 우리는 서양이 쇠퇴하고 아시아가 중심이 되어가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이 예상이 적중한다면, 21세기 중엽에 전 세계 5대 경제강국 중 4개가 아시아에 위치하게 된다. 서양에서는 미국만이 현재의 경제적 활력을 유지한다면 이 톱 클래스에 머무르게 될 것이다. 유럽의 개별 국가들은―예컨대 독일, 러시아,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중요성을 잃게 될 것이다. 세계 GDP의 3~4%만을 차지하는 나라들이 어떻게 강대국 반열에 오르겠는가? 한 유럽 국가가 강대국들 사이에서 5~6위 수준의 해군을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세계무대를 주도하는 플레이어라고 할 수 있는가? 소설가 키플링이 예언적인 1897년작 시 "퇴보"(Recessional)에서 이렇게 말했다. "먼 곳까지 불려 간 우리 해군은 녹아 없어졌다/보라, 우리의 옛 화려함은/니네베와 티레 같은 것이 되어버렸네!"


하지만 유럽연합을 화석화되고 현재 수준만 근근이 유지하는 존재처럼 취급하는 것은 잘못이다. 원래의 유럽공동체(EC)―벨기에, 프랑스, 이탈리아,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서독―시절 이후 유럽의 이 국가연합은 평화적으로 회원국 수를 늘리고 이에 따라 그 범위를 계속 확대해나가는 등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유럽연합이 우크라이나의 대러시아 투쟁에 대해 공감을 보이고 있는 것을 보면, 우크라이나가 유럽연합에 가입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지 않으며 당장 가입할 수는 없다고 해도 조심스럽게 단계를 밟아 가입할 수 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 가입은 나토(Nato) 가입보다는 러시아를 덜 자극하게 될 것이다. 만약 2030년까지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 가입이 이뤄진다면 이것은 역사적인 현상변경을 의미한다. 이렇게 확장된 유럽연합은 1960년대 샤를 드골이 꿈꿨던 유럽과 비슷한, 네덜란드-벨기에에서 코카서스까지 하나가 되면서 영국(브렉시트 덕분에)과 러시아(푸틴 덕분에)가 그 변경 밖에 머무는 형태가 될 것이다. 미국은 이러한 유럽의 세계 무대 복귀를 환영할지도 모른다. 비록 무역에서는 미국의 경쟁상대이지만, 더욱 커진 유럽이 늘 골칫거리였던 유럽대륙을 마침내 안정화하고 러시아를 더욱 고립시켜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의 확장 범위는 러시아 영향권에 속하는 독립국가연합(CIS)과 겹치게 될 가능성이 있다.

유럽연합의 확장 범위는 러시아 영향권에 속하는 독립국가연합(CIS)과 겹치게 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2030년대 이후 유럽연합의 경제규모가 어떻게 되든 모든 경제전망은 유럽연합의 경제성장률이 아시아 대부분보다 낮을 것이며 심지어 아프리카보다 낮을 것이어서 유럽연합의 세계 GDP 점유율은 꾸준히 낮아질 것이라고 예측한다. 유럽연합은 더욱 부유해지고 더욱 늙은 곳이 될지는 몰라도 세계질서에 현상변경을 위협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일본 역시 현재의 영토상황에 변경을 가할 힘은 없다. 역사를 볼 때 이러한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80년 전만 해도 승승장구하던 일본은 미얀마까지 서태평양지역 대부분을 정복했고, 만주지역 대부분과 중국의 항구도시 대부분을 점령하고 있었다. 1944년 말에도 일본 육군은 100만명이 넘는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 그랬던 적이 있었느냐는 듯 이제는 기억조차 하기 어렵다. 일본은 북태평양 도서들을 놓고 러시아와 껄끄러운 관계에 있고, 한국과는 서로 경계하고 있으며, 상승하는 중국의 힘에 초조해하며 미국과의 양자 안보조약에 매달릴 뿐이다. 결과적으로, 일본은 많은 수상함을 보유한 해군을 갖고 있으며―일본은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해군이 보유한 구축함들을 합쳐놓은 것보다 많은 수의 구축함을 보유하고 있다―큰 규모의 공군도 가지고는 있지만, 이러한 해공군은 오직 방어적 목적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경제적으로 부유하지만 인구는 늙어가고 있고 GDP 점유율은 줄어들고 있는 일본은 전쟁을 시작해봤자 아무런 이득이 없다.


그렇다고 향후 25년간 미국, 중국, 인도의 3극체제가 존재할 것이라고 말할 순 없다. 인도는 비록 그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고는 있지만 인도의 세계정치적 야심은 아직 낮은 1인당 GDP, 농촌지역의 빈곤, 국내적 갈등에 의해 제한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민족주의적 목소리를 내는 인도(모디 총리 시대에 들어와서 이미 존재하는 듯 하다)는 국제무대에서 주요한 플레이어가 될 것이며, 더욱 존재가 부각될 것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 자리를 못 받았지만, 인도는 그런 점에 전혀 개의치 않고 독자적인 길로 나아갈 것이다. 잠시는 친서방으로 기우는 모습을 보일지는 몰라도 그 기간은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다.


중국의 부상(浮上)을 경계하고, 미국의 군사력은 존중하고, 가끔 "러시아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유럽에는 관심이 없고 일본에는 더더욱 관심이 없는 모습을 보이는 콧대 높고 다루기 까다로운 인도는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의 강해지는 힘을 믿기 시작할 것이다. 2050년경엔 6개 이상의 항공모함을 갖고 인도 아대륙을 둘러싸고 수준 높은 해군기지를 건설해두면서 인도는 "인도"의 바다 인도양에서 다른 강대국들이 설치는 모습을 두고만 보고 있지 않을 것이다. 이곳에서 중국이 공격적으로만 나오지 않는다면, 호주, 일본, 미국, 인도 해군함정들이 연합훈련하는 모습은 사라질 것이다. 인도는 스스로 방어하려 할 것이며, 미국 등이 자국과 인도 사이에 "특별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바보취급 당할 것이다.


중국은 과거 소련의 붉은군대가 서유럽에 위협이 되었던 것같은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미국보다 더 큰 GDP를 이미 가지게 된 것 같다. 미국이 세계 최대 경제대국 자리를 빼앗기는 것은 지난 150년간, 즉 영국이 세계 최대 경제대국이었다가 미국에 그 자리를 빼앗긴 1880년대 초 이래 150년 동안 처음 있는 일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지정학적으로도 엄청난 사건이다. 과거의 현실주의 정치 이론가 및 평론가들, 예컨대 마한, 맥킨더, 케넌, 모겐소, 헌팅턴처럼 이구동성으로 미국의 우위를 이야기했던 사람들이 만약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을 것이다. 하지만 아마도 이는 사실일 것이다.


중국이 다른 나라와 생산규모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여주는 지표로 자동차나 철강 생산, 그리고 중국이 가장 큰 무역상대국인 나라들의 수 같은 것을 찾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데이터만으로는 환경문제, 청년실업, 황폐한 농촌상황, 부동산 버블, 과도한 식량 수입의존 같은 중국의 고질적인 취약점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리고 미국의 군사적 우위(핵무기는 말할 것도 없고, 항공모함, 공격형 잠수함, 해외군사기지, 세력투사 능력 등)는 여전히 상당하다.


상대적 자동차 생산량 같은 수치만으로는 만약 지구온난화와 그 결과로 나타날 환경적 재앙에 대한 암울한 전망이 향후 30~40년 뒤 현실이 된다면 세계는 어떻게 될 것이며, 강대국들의 상황에는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이해하는 것이 어렵다. 역설적이게도 온대지역에 있으며 연중 일정한 강수량을 보이는 왕년의 강대국 프랑스, 영국이 지금보다 섭씨 2~4도 높아진 세상에 큰 타격을 받을 중국, 인도보다 더 잘 대처할 것이다. 온실가스 배출량 1위인 중국은 지구가 뜨거워짐에 따라 물과 식량 부족을 가장 크게 겪는 강대국이 될 것이다.


세계 질서에서 중국의 힘이 어떤 지위에 있는지를 꼭집어 말하기 어렵다면, 미국이 2050년경엔 어떻게 될지 제대로 전망하는 것은 물론 미국의 현재 상황도 제대로 가늠하기 어렵다. 만약 과학기술 능력, 세계 1위의 대학부문, 재정능력, 전 세계를 커버하는 일반 군사력 및 해군력 같은 지표를 놓고 본다면, 앞으로 꽤 오랫동안 미국은 다른 모든 강대국들에 앞서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현재의 강점에도 불구하고 상대적 생산력의 우위가 아시아로 이동하고 국제정치적 힘이 전반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이 시대에 계속 모든 곳에서 우위에 유지할 수 있을까? 만약 그런 우위를 지키기가 어렵다면, 미국은 어느 지역에서 먼저 철수해야 할까? 상대적 쇠퇴를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이것이 '강대국의 흥망' 마지막 장(章)에서 내가 제기한 질문이었고, 지난 30년 동안 세계질서가 비교적 안정적이었다고 해서 이 질문이 결코 무의미한 질문이었던 것은 아니다. 만약 앞으로의 상황변화가 미국에게 불리하게 진행되어 상대적으로 쇠퇴를 가져온다면, 미국은 어디에서부터 몸을 뺄 것인가라는 어려운 선택을 해낼 수 있을까? 스페인제국이나 에드워드시대 영국처럼 과거 전 세계에 힘을 펼쳐놓고 있었던 제1위 강대국은 자국의 능력과 의무에 우선순위를 매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았다.


유럽연합과 일본은 편안한 은퇴상태를 즐기고 있고, 미국, 중국, 인도라는 '빅 3'는 여전히 안정을 선호하고 있기 때문에(중국이 대만을 위협하고는 있지만), 극적인 상황변화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경제변화의 전망은 2050년 경의 세계질서가 레이건과 부시 시대와는 매우 다른 모습을 갖게 될 것임을 보여준다.


강대국간 평화가 오래 지속될 것이라는 마음 편한 가정은 틀릴 수 있는가? 1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인 1914년 5월 당시 영국의 지성적인 외무차관 아서 니콜슨은 유럽이 이렇게 평화로운 적이 없었다고 말했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세계가 완전히 다른 시대를 부른 제2의 '7월 위기'(1차세계대전으로 이어짐)나 '만주 위기'(중일전쟁으로 이어짐)를 겪게 되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 할 수 있겠는가?


지금은 고인이 된 케임브리지대 역사학자인 자라 스타이너는 자신의 전간기(戰間期: 1, 2차세계대전 사이 기간) 외교사 2부작인 '꺼진 불빛'(The Lights That Failed)(2005)과 '어둠의 승리'(The Triumph of the Dark)(2011)를 쓰고 있을 때 늘 이런 질문들을 했다. "두 개의 다른 시대를 가르는 분수령을 당신은 언제 지났나?" "외교관들은 자신이 더이상 1차 세계대전 이후 시대가 아니라 2차 세계대전 이전 시대에 접어들었음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가?" "당시 세상이 완전히 달라졌음을 감지한 사람들이 있었을까?" 그는 계속 질문했다. "사람들이 과연 1931년 일본의 만주 침공 뉴스를 접한 후 또는 1932년 군축회담의 실패 뉴스를 접한 후 또는 1933년 히틀러가 독일 총리로 선출되었다는 뉴스를 접한 후 시대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생각했을까?" 마지막으로 그는 물었다. "당시 사람들이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음을 몰랐다면, 우리 역시 과연 완전히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었는지, 접어들었다면 언제 접어들었는지를 알 수 있을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마도 우리는 전혀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잠정적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즉, 과거 강대국 서열에 영향을 미쳤던 경제적 변화가 지금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잘 보이지 않는 수면 아래 GDP의 상대적 변동을 가져오고 있지만, 그렇다고 세계 최강대국들의 서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오랜 세월 동안 이렇게 작동되어왔던 강대국의 흥망 메커니즘이 더이상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흥망'에서 나는 이렇게 썼다. "인류가 또 한차례 그렇게 파괴적이고 값비싼 강대국간 전쟁을 치르게 될 정도로 바보는 아닐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19세기 내내 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음을 상기시킬 필요가 있다." 향후 큰 변화가 어디서 나타날지, 패권전쟁의 시작 계기가 무엇일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그런 변화와 패권전쟁은 반드시 벌어진다.



폴 케네디는 옥스포드대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오랫동안 예일대에서 교수로 역사, 전략 등을 가르치고 있다. 그의 '강대국의 흥망'(1987년 12월 간행)은 당시 세계적 논의를 이끌었던 책으로서 강대국들의 군사적 '과잉확장'(overstretch) 문제와 함께 경제적 기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1913년 창간돼 케인스, 버트런드 러셀, 조지 오웰, 버지니아 울프 등이 기고했던 전통 있는 영국 진보 주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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