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미국인 시인의 눈물: '우리'는 과연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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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래니 최의 2022년 시집 '세상은 계속 끝나고, 세상은 지속된다' 표지. /사진제공=Ecco Press

2023.11.24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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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방문하거나 체류하는 동안 독립기념일(Independence Day)을 맞이했던 경험이 있다면 누구나 그 넘쳐나는 불꽃들을 기억할 것이다. 국토의 전역에서 터지는 폭죽의 밝은 빛은 미국 시민이 아닌 이들조차도 축제의 분위기로 빠져들게 하며, 곳곳에서 울리는 '성조기여 영원하라'의 힘찬 노랫소리는 주변 여기저기로 벅찬 감정을 전염시킨다. 한국에서 TV로 중계되던 광복절 기념식의 다소 딱딱하고 건조한 느낌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미국 독립기념일의 반짝이는 불빛은 전혀 새로운 경축의 방식으로 다가온다. 밀집한 군중들이 잔디밭에서 불꽃놀이를 지켜보는 장면은 모두가 하나 되는 흥겨운 정서를 전해 주며, 매년 이런 의례를 거치면서 미국이라는 국가는 새로이 거듭나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프래니 최(Franny Choi)가 '좋은 시절을 경축하라'(Celebrate Good Times)에서 그려내는 독립기념일의 풍경은 이런 즐겁고 낭만적인 분위기와는 딴판이다. 2022년에 발간된 시집 '세상은 계속 끝나고, 세상은 지속된다'(The World Keeps Ending, and The World Goes On)에 수록된 이 시에서, 젊은 한국계 미국인 시인은 "좋은 시절"이 결코 모두의 것이 아니며 그것을 "경축"하는 것도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선택지는 아니라고 말한다. 시인은 역사적으로 미국 내의 소수인종들이 항상 세상의 "끝"을 경험하며 살아왔다고 전제하면서, 끊임없이 "지속"되는 세상이 이들을 소외시킨 채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하고자 애쓴다


프래니 최 - 좋은 시절을 경축하라 (번역: 조희정)

정권이 생일 파티를 하는 중이다, 그래서 우리는 불을 끄고

아픈 척한다. 밤새도록, 행복한 미국인들은


경적을 울려 댄다. "우리가 해냈어!"1 그들이 우리의 창문 안으로 소리친다.

아침이면, "우리"가 바닥에 온통 널려 있다. 우리는 "우리"를 종이봉투에


쓸어 담고 거기에 "응급"이라 표시한다. 좋은 소식은

모든 게 원래 그랬던 대로 돌아가리라는 것이고,


이건 또 나쁜 소식이기도 하다. 와중에, 나는 양파를

썬다, 내내 끝까지 양파를, 그리고 그건 싱크대 앞에서 울기에


훌륭한 이유다, 제국이 또다시 지속된 것을 자축한 후

맞이하는 월요일에. 아니, 사양하겠어.


배가 터질 것 같아. 난 어떻게도 희망을 더 가질 수 없어. 나는 아직

그 마지막 폭군을 애도하는 걸 끝내지 않았다. 나는 충분히


작별을 고하지 않았다―아, 그녀의 이름이 뭐였지? 그리고 또 다른 그녀의 이름은?

얼마나 많은 "우리"를 그들은 나로부터 도려냈을까? 그리고 우리가 살아남았던


마지막 때에, 나는 누구의 나라에 서 있었을까?



시인 프래니 최. /사진=Francesca B. Marie

시인 프래니 최. /사진=Francesca B. Marie


이 시의 처음부터, 시인이 자신의 공동체를 지칭하는 대명사 "우리"(We)는 "행복한 미국인"들이 국가 전체를 통합하는 이념적 바탕으로 제시하는 또 하나의 "우리"(We)라는 관념과 끊임없이 어긋난다. 독립기념일을 경축하는 행사의 물결이 바깥에서 이어지는 동안, 불꽃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어둠 속에서 아픈 척하는 "우리"가 있다. 그 "우리"는 1년 동안의 성취를 자축하며 행복감에 취한 또 하나의 "우리"로부터 배제되어 있으며, 경적과 고함소리로 표현되는 기쁨은 이들의 창문 속으로 스며들어오는 순간 견디기 어려운 고통으로 변화할 뿐이다. 다음 날 아침이 오면 제국이 흥청망청 즐긴 생일잔치의 흔적들은 "우리"라는 이름으로 바닥에 널려 있다. 소외된 공동체는 그 흔적들마저도 "응급"이라는 딱지를 붙여 얼른 폐기해 버리고 싶은 저항감을 느끼고, "우리는 "우리"를 종이봉투에 쓸어 담는다"는 구절은 이런 감정의 격동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사실, 미국이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던 오래전 그 순간부터 "우리"라는 대명사는 항상 문제를 안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등의 인물들이 작성한 독립선언문에서 주어로 사용되었던 "우리"는 백인 중산계급에 속하는 남성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개념이었다. 그 후 미국의 긴 역사에서 남북전쟁과 흑인 인권 운동, 그리고 여성의 참정권 쟁취를 위한 노력과 페미니스트 운동 등 "우리"의 범위를 확장하려는 시도가 이어져 왔지만, 아직도 "우리"라는 개념은 충분히 포괄적이고 통합적인 의미를 얻지 못한 채 배제와 소외를 경험하는 이들로부터 동떨어진 곳에 놓여 있다. 프래니 최는 이 시에서 "우리"에 속하지 못하는 "우리"가 독립기념일에 느끼는 복잡한 심경을 보여 주면서, 미국 전역을 수놓는 화려한 불꽃의 축제가 이들에게는 그저 상처와 아픔을 줄 뿐이라고 호소한다.


시인은 독립기념일이 지난 후 양파를 썰면서 눈물을 흘린다. 아이가 아닌 성인이 울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 중 양파를 손질하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고도 볼 수 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흐느끼거나 샤워를 하면서 온몸으로 우는 것도 슬픔을 견뎌내는 그 나름의 방식이 되겠지만, 양파를 썰면서 흘리는 눈물은 치밀어오르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일상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시인의 의지를 표현한다. 그래서 싱크대 앞에서 양파를 다듬으며 우는 모습은 조용한 저항의 몸짓이 된다. 바깥의 "우리"가 주입하고자 하는 억지 희망도, 이제는 적당히 타협하라는 손짓도 사양한 채, 시인은 양파처럼 켜켜이 쌓여 있는 과거의 기억을 재구성해 가기를 택하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시인의 기억 속에서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인물로 상기되는 "폭군"은 여성들이다. 아직도 미국의 정치인들 대부분이 남성이고 프래니 최의 시에서 여성주의적 관심이 자주 나타난다는 점을 생각할 때, 이 대목은 언뜻 이해하기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그 의미를 한참 곱씹다 보면, 이런 설정이야말로 이 시의 의미를 풍부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양파 껍질을 까듯 겹겹이 떠오르는 과거의 장면들에서 시인이 고통스럽게 다시 직면하는 현실은 반드시 제도적이고 법적인 의미에서의 차별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중학교 시절 학교 식당에서의 은근한 따돌림이나 고등학교 시절 동아리 활동 중에 주요한 직책에서 억울하게 제외됐던 경험 등 지극히 미시적인 소외와 배제야말로 시인이 미국의 이념적 바탕을 형성하는 "우리"라는 거시적 개념에 저항하도록 만들었던 것은 아닐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고 나면, 이 시는 한국계 미국인 시인이 바라본 미국 사회의 단면을 전해 주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한국 사회에서 "우리"라는 관념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중요한 단서를 던져 준다. 출산율이 끝도 없이 추락하는 가운데 앞으로 이민자들의 유입이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은 기정사실이 되어 가고 있다. 이제까지 경험해 보지 못했던 다인종, 다민족 국가로 빠르게 변모하게 될 한국에서도, "우리"라는 통합적인 관념은 법적, 제도적 장치들뿐 아니라 일상에서의 공감과 환대가 바탕이 될 때 비로소 조금씩 구성되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미국 어느 도시의 공항에서 입국 심사를 받다가 의심스러운 눈빛에 노출된 적이 있기만 해도, 한국계 미국인들이 겪는 차별에 공감하기는 어렵지 않다. 나와 유사한 누군가가 겪는 어려움에 나 자신을 대입시키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 한국 사회에서 다양한 인종과 민족이 함께 구성하게 될 "우리"의 모습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놓고 본격적으로 시작되어야 할 고민은 그보다 훨씬 어렵고 지난한 것일지도 모른다. 젊은 한국계 미국인 시인이 독립기념일을 보낸 후 눈물을 훔치는 모습은 이제 역으로 우리에게 한국 사회에서의 환대와 소통이 어떻게 가능할지를 좀 더 깊이, 좀 더 진지하게, 그리고 좀 더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논의해 볼 것을 촉구하는 듯하다.


원문: Celebrate Good Times

The regime is having a birthday party, so we turn off the lights

and pretend we're sick. All night, happy americans


honk their horns. We did it! they scream into our window.

In the morning, We is all over the floor. We sweep We


into a paper bag and label it EMERGENCY. The good news

is that things will go back to the way they were,


which is also the bad news. Meanwhile, I cut

an onion, and it's onions all the way down, and that's a fine


reason to cry at the sink on a Monday after the empire

congratulates itself on persisting again. No, thank you,


I'm stuffed, I couldn't possibly have more hope. I haven't finished

mourning the last tyrant yet. I haven't said enough


goodbyes to—oh, what was her name? And hers?

How many We's did they cut out of me? And whose country


was I standing on, the last time we survived?




프래니 최는 미국의 시인·에세이스트로 베닝턴컬리지에서 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시집으로 'The World Keeps Ending, and the World Goes On'(2022), 'Soft Science'(2019), 'Floating, Brilliant, Gone'(2014) 등이 있다.


조희정은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하버마스의 근대성 이론과 낭만주의 이후 현대까지의 대화시 전통을 연결한 논문으로 미시건주립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인간과 자연의 소통, 공동체 내에서의 소통, 독자와의 소통, 텍스트 사이의 소통 등 영미시에서 다양한 형태의 대화적 소통이 이루어지는 양상에 관심을 가지고 다수의 연구논문을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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