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들려주는 '어느 노년의 사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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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론 올즈의 2022년 시집 '발라드들' 표지. /사진제공=Knopf

2023.12.22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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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긴 역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그리고 빈번하게 다루어지는 주제 중 하나는 아마도 사랑일 것이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최고조로 강렬한 감정답게, 사랑은 서정시에서도 자주 등장하여 다양한 모습으로 독자를 사로잡아 왔다. 이런 맥락에서 생각해 보자면, 최근의 미국시를 살피면서 사랑을 노래하는 시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은 조금 의외인 듯하다. 어쩌면, 인종적 갈등, 환경 문제, 경제적 불평등을 비롯하여 복잡하게 얽힌 사회적 현안들이 쏟아지는 중에 개인의 내면적 감정에만 오롯이 집중하는 것은 다소 사치스러운 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랑에 대해 사유하고 나아가서 그 뜨거운 마력을 찬미하거나 잃어버린 열정을 회고하는 글을 독자들에게 건네기에는 모두가 너무 분주하고 지쳐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샤론 올즈Sharon Olds가 2022년에 발표한 시집 '발라드들Balladz'의 끝머리에 수록된 애가elegy들은 우리 시대에 다소 퇴색해 가는 사랑에 대한 감성을 감동적으로 되살려 준다. 오랜 세월 함께한 파트너 칼 월먼Carl Wallman의 투병과 죽음을 호스피스 병실에서 경험하는 80세의 시인은 인생의 황혼에서 다시 발견한 사랑의 힘을 이야기한다. 올즈는 현존하는 미국 시인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의 하나이고, 20세기 미국시의 다소 난해했던 경향에서 벗어나 독자들이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글쓰기를 수행함으로써 시 읽기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못내 아쉬운 이별을 묘사하면서도, 올즈는 과잉된 감정에 몰입하거나 섣부른 일반화를 시도하는 대신 타자와의 가장 내밀한 교감을 솔직하고 담백하게 전달하여 독자의 공감을 얻어낸다.

샤론 올즈 - 당신에게 아마도 세 달이 남았다고 그들이 말할 때 (번역: 조희정)

잠결에, 나는 당신의 무덤에 가는 꿈을 꾸었네—

그리고 무엇이 우리 사이에 놓여 있었던가? 잔디의

다듬어지지 않은 아름다운 머리카락, 그리고 위쪽의 토양은

내가 당신을 떠난 후에 당신이 우리의 침대 시트—우리의 DNA—를

묻었던 풍요로운 흙 같았지, 당신이 나중에

당신의 황금빛 개를 묻었던 곳 가까이에.

우리 사이에는 또 민자 소나무로 만들어진

새로운 천장이 있었고, 깨끗하게 씻겨진 당신의 숨 쉬지 않는 몸에

입혀 두었던 삼베옷이 있었네.

그리고 땅 밑에 사는 나선형의 야생 동물들이 연주하는

대지의 실내악이 있었고,

내가 사랑했던 당신의 조직, 그리고 그 속엔 당신의 뼈대로 이루어진

오래전 태고의 남성이 있었지.

일각고래의 엄니, 코끼리의 상아,

좁은 골반을 지닌 그대 남성적 힘의 상징물에

나는 올라타서, 에덴에서 노를 저었네. 그러나

그건 꿈이 아니었고, 나는 완전히 깨서 누워 있었지,

그리고 당신은 아직 죽지 않았네. 일주일 안에 나는 이걸

당신에게 읽어 줄 수 있어, 장작 난로 앞에서,

여기저기로 불꽃들이 곡선을 그리며 올라왔다 사라질 때,

아니면, 연못 옆에서, 물결이 치고,

타원형의 독미나리와 너도밤나무가 그 안에서 자리를 바꿀 때.

가끔 내가 당신에게 얘기하는 중에 당신은 잠이 들지.

그리고 당신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어. "난 당신이 내가 죽을 때 시를 읽어 주면 좋겠어.

그리고, 내가 죽어도 서로에게 글쓰기를 멈추지 말자."1

나는 말했지, "내가 죽어도 그러자." 우리가 만났을 때,

비록 우리가 즉시 그리고 영원히 사랑에 빠졌지만,

우리는 두 영혼의 연합을 이룰 수는 없었고,

내가 떠났을 때도 그랬었지—우리 각자는 거기에 이르기 위해

여러 해 동안, 우리 자신을 바꾸어 가야 했어.

그리고 이제 거기 도달했네! 아마도 이건 내내

죽음이었는지도 몰라! 아마도 삶은

일종의 죽어감일 거야. 아마도 이것이 천국이었나 봐.



이 시의 첫 부분부터 시인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있다. 꿈속에서 연인의 사후에 "무덤"을 방문하여 잔디와 흙이 덮인 광경을 바라보는 시인은 둘 사이에 가로놓인 것들, 다시 말해 삶과 죽음의 양편에 있는 두 사람이 이미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서부터 언급하기 시작한다. 땅속에 묻혀 있는 "침대 시트"와 "DNA"는 사랑하는 이의 투병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두 사람 사이에서 어쩔 수 없이 사라지게 되었을 육체적 교감을 나타내는 듯하다. 또한, 시인은 꿈결에서 연인이 키우던 "금빛 개"가 묻히게 된 기억을 되살리면서, 과거의 일상과 추억을 담은 많은 것들이 두 사람 곁으로부터 이미 떠나간 듯한 느낌을 전달해 준다.


그 후에 "무덤"은 본격적으로 연인의 죽음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변화하게 된다. "민자 소나무로 만들어진 새로운 천장"은 사랑하는 사람의 육체를 품은 관을 지시하며, "당신의 숨 쉬지 않는 몸에 입혀 두었던 삼베옷"은 그 속에 있는 사체를 감싼 수의를 의미한다. "땅 밑에 사는 나선형의 야생 동물들"이 이리저리 오가는 무덤 속에서도, 시인은 사랑했던 연인의 "조직"들과 "뼈대"를 보면서 강인한 "남성적 힘"을 떠올리며 두 사람 사이의 육체적 결합을 다시 한번 상상해 본다. "에덴에서 노를 젓는다"는 표현은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의 시에 나온 비슷한 구절을 연상시키면서, 현실에서는 죽어가고 있는 연인과 꿈속에서 황홀한 쾌락의 순간을 다시 체험하는 노시인의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낸다.


꿈에서 현실로 돌아와 아직은 죽음을 맞이하지 않은 연인을 보면서 시인은 이제 글쓰기를 통해 자신과 사랑하는 이를 묶어 주는 힘을 발견하게 된다. 이야기를 나누는 중 살포시 잠으로 빠져들던 예전의 기억처럼 죽음의 순간에도 시를 읽어 주는 가운데 사랑하는 이가 평안히 눈감을 수 있기를, 심지어 죽음을 뛰어넘어 두 사람이 언제까지나 글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되기를, 그래서 이 나이 든 연인들을 이어주는 교감은 무덤조차도 가로막을 수 없는 것으로 남아 주기를. 시인은 코로나가 창궐하는 시기에 시한부 선고를 받고 호스피스 병실에 누워 있는 사랑하는 이를 바라보며 소망해 보는 것이다.


이런 시인의 소망이 그저 비현실적인 바람으로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이 시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려지는 두 사람의 관계에서 아주 분명한 견고함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만나자마자 "즉시 그리고 영원히" 사랑에 빠졌지만 "두 영혼의 연합"을 곧바로 이룰 수는 없었던 연인들은 오랜 세월 동안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노력을 통해 비로소 서로 융합되는 차원으로 나아가게 된다. 사실, 많은 경우 첫눈에 반하여 누군가에게 가슴 벅찬 열정을 느끼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비롯된다기보다는 자신의 욕망을 상대에게 투사함에 불과하다. 그래서 관계가 진척되고 서로를 알아 갈수록 결국 바꾸어 나가야 할 것은 상대방이 아닌 자기 자신이며, 이런 깨달음이 깊어질 때에서야 연인들은 호르몬의 장난이 아닌 진정한 사랑의 경지로 들어가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해 온 삶이 이미 "죽음"이었다는 노시인의 자각은 자아의 "죽어감"을 통해서 마침내 온전해진 타자와의 관계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주제로 한 가장 대표적인 문학 작품으로 여겨지는 것은 '로미오와 줄리엣Romeo and Juliet'이다. 두 주인공은 젊고 풋풋한 모습으로 서로에 대한 열렬한 사랑을 간직한 채 죽음을 맞이하고 그 결과 이들의 사랑은 결코 빛이 바래지 않는 모습으로 영원성을 얻는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서로에게 적응하고 관계를 통해 변화하는 연인들이 사랑을 오래오래 이어가는 과정이야말로 사실 그보다 훨씬 더 어렵고 감동적인 것은 아닐까? 사랑하는 사람과 살아오던 시공간이 아마도 "천국"이었을 것이라는 이 시의 마지막 문장은 그동안 두 사람이 공유했던 행복감에 대한 고백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타인에게 자신을 온전하게 열고자 스스로의 "죽음"까지도 기꺼이 받아들였던 경험,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이 떠난 후에도 그의 흔적은 사라지지 않고 남은 이에게 아로새겨진 채 남아 있으리라는 확신. 이런 것들이 있기에 죽음은 둘을 갈라놓는 것이 아니라 이제까지 함께 해 온 "천국"에서 또 다른 "천국"으로의 자연스러운 이행으로 받아들여질 것이기 때문이다. 연인의 죽음을 앞에 둔 노시인의 담담한 사랑 고백은 관계와 소통이 삶에서 가지는 놀라운 힘의 의미에 대해서 오래 곱씹어 볼 만한 깨달음을 준다.

원문: When They Say You Have Maybe Three Months Left

In my sleep, I dreamed that I came to your grave—

and what lay between us? The beautiful uncut

hair of the grass, and topsoil like the rich

dirt in which you buried our sheets

after I left you—our DNA—near where

you later buried your golden dog.

Also between us the new ceiling

of plain pine, and the linen garment

your fresh-washed unbreathing body had been clothed in,

and the earthen chamber music of wild,

underworld, spiral creatures,

and your tissue I have loved, and within it the ancient

primordial man of your skeleton.

Narwhal tusk, elephant ivory,

icon of your narrow-hipped male power

I rode, rowing in eden. But

it was no dream, I lay broad waking,

and you have not died yet. I can read this to you

in a week, in front of the woodstove,

the flames curving up to points and disappearing,

or beside the pond, the water rippling,

ovals of hemlock and beech changing places in it.

Sometimes you fall asleep as I'm talking to you.

And you've said: I want you to be reading me a poem when I die.

And, Let's not stop writing to each other when I'm dead.

And when I'm dead too! I said. When we met,

though we fell in love immediate and permanent,

we could not make a two-soul union,

nor when I left—each of us had to

work, on ourselves, for years, to get there.

And now we are there! Maybe this has been

death all along! Maybe life is a

kind of dying. Maybe this has been heaven.




조희정은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하버마스의 근대성 이론과 낭만주의 이후 현대까지의 대화시 전통을 연결한 논문으로 미시건주립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인간과 자연의 소통, 공동체 내에서의 소통, 독자와의 소통, 텍스트 사이의 소통 등 영미시에서 다양한 형태의 대화적 소통이 이루어지는 양상에 관심을 가지고 다수의 연구논문을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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