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트만두=AP/뉴시스] 9일(현지 시간) 네팔 카트만두에 있는 람 찬드라 파우텔 대통령 관저가 반정부 시위대의 방화로 불길이 치솟고 있다. 2025.09.10.
2025.09.12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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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에서 이른바 'Z세대'에 의한 시민봉기가 발발해, 샤르마 올리 총리가 사임후 국외로 탈출했고, 국회의사당, 정부 청사 등이 불탔습다. 장관들은 거리로 내쫓겨 시민들에 구타당하고 방화로 어느 전 총리의 아내가 사망했습니다. 공안 당국과 시민의 충돌로 총 30명 이상이 사망하고 1000여명이 부상당했습니다.
네팔은 왕실의 내부문제, 마오주의 반란군과의 내전 등을 겪은 후 239년간 유지되어 왔던 왕정을 폐지하고 2008년에 의원내각제 형태의 공화국으로 정치체제를 변경했습니다. 문제는 왕정이 폐지되고 민주공화정을 채택한 이후, 국민의 삶에 관심이 없는 정치가들이 일종의 '과두정'(oligarchy, 올리가르히)을 형성해 여러 정당들이 난립하는 가운데 12번이나 정부 교체를 했지만 사실상 '회전문'으로 계속 같은 인물들이 정권을 차지하고 부정부패를 일삼아왔다는 점입니다. 그 결과 남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낮은 경제성장률을 보였고, 인구의 80%는 일자리가 있다고는 하지만 비공식 부문에서 일하고 있고, 20%는 아예 실업상태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해외로 나가 고국으로 송금하는 돈으로 경제가 겨우 굴러갑니다. 국민총소득의 25~30%가 이 송금에서 나옵니다. 인구가 3000만명 정도 되는 네팔의 1인당 국민소득은 겨우 1381달러로 남아시아 최빈국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가난한 나라인데도 네팔의 정치가, 고위 공직자들의 자식들은 해외로 나가 부유하게 살고 그 부유한 생활을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에서 과시한다는 것입니다. 이번 시민 봉기가 발발하기 몇 주 전부터 이른바 "#네포키즈"(#nepokids)가 네팔 젊은이들의 소셜미디어를 가득 채웠습니다. 고위 정치인, 관료의 자식들이 파리와 런던에서 고급 자동차와 명품을 자랑하며 파티를 벌이는 사진과 네팔 국내에서 고생하며 일하는 젊은이들을 대비하는 사진들을 보면서 네팔 Z세대들은 분노하고 있었습니다. 네팔 Z세대들은 쇼셜미디어 댓글에 "나는 돈을 내고, 너희는 돈자랑한다"(I Pay, You Flex)라고 썼습니다. '네포 키즈'는 원래 미국 헐리우드에서 네포티즘(우리 말로는 '부모 찬스'가 가장 가깝습니다)과 키즈를 합쳐 만든 신조어인데, 인도 발리우드를 통해 남아시아 전체에서 유행어가 되었습니다.
이번에 실각하고 국외로 탈출한 올리 총리는 사회주의 계열 정당인 네팔공산당(마르크스레닌파) 소속입니다. 네팔에서는 오랫동안 마오주의자들이 왕정에 맞서 내전을 벌여왔는데, 이들이 2006년에 왕정을 무너뜨리고 좀 더 온건한 민주주의자들과 함께 2008년에 공화정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이 마오주의 정당은 수많은 네팔공산당 파벌로 분당되어 올리가 소속되어 있는 네팔공산당(마르크스레닌파), 다음으로 큰 네팔공산당(마오주의 중앙파) 등 여러 갈래의 네팔공산당 분파 정당들이 네팔국민회의(NP)와 함께 정계의 주류를 형성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름만 다른 정당일뿐 합종연횡을 거듭하며 '회전문'처럼 이름뿐인 정권 교체 속에서 국회와 정계를 독점해왔습니다. 바로 이들 네팔 '과두정'의 자녀들이 해외로 나가 '네포 키즈'가 되었다는 것이 이번에 거리로 뛰쳐나온 네팔 Z세대들의 주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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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과연 네팔은 어떤 나라를 만들 수 있을까요? 239년간 왕정 치하에 살았던 네팔 '신민'(subject)들이 20년만에 책임감 있는 '시민'(citizen)이 갑자기 될 수 있을까요? 마오주의자들이 체제 변혁 이후 '올리가르히'가 되어버린 것에 저항을 못하던 시민들이 갑자기 순도 높은 민주주의를 운영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반정부 세력이 왕정을 오랫동안 민주주의 논리와 정치의 실력을 갈고 닦으며 무너뜨렸다면 정권을 넘겨받아 어느 정도 국가운영을 할 수 있을테지만, 왕정이 내부의 엉뚱한 사건에 의해 스스로 붕괴된 측면이 있었기 때문에 반정부 세력이 충분히 훈련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거기에 반정부 세력의 주력은 민주주의자라기보다는 사회주의 성격이 강한 마오주의자들이었습니다. 왕정은 2001년에 발생한 왕실 내부의 총격 유혈사태로 심하게 흔들렸고, 이에 따라 너무 쉽게 붕괴되었습니다. 2001년 어느날 왕가가 파티를 열었는데, 세자가 마약에 취해 총기를 난사해 왕, 왕비, 형제 등 여러 명을 살해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세자가 인도 부자의 딸을 영국에서 만나 사랑하게 되었는데, 모친인 왕비 등이 그녀와의 결혼을 반대해 화가 나 총기난사를 했다고 합니다. 이 유혈사태 이후 네팔 왕정은 스스로 붕괴하는 길로 접어 든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이번 시민봉기를 질서지우고 새로운 정권을 만들 주체로는 수도 카트만두의 시장 발렌드라 샤(애칭 '발렌')와 육군입니다. 이 '발렌' 시장은 래퍼 출신으로 주류 정당 소속이 아니어서 Z세대들에게 인기가 높습니다. 그리고, 이번 시민봉기에 대한 성명에서 "사랑하는 Z세대 여러분" "이제 자제해주세요"라고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인 것도 중요할 듯합니다. 또 일부에서는 왕정 복귀를 주장하는 세력도 있습니다. 239년 역사의 왕정이 쉽게 사라지진 않습니다. 현재로서는 '발렌' 시장과 육군 참모총장이 사태를 주도할 것으로 보입니다만, 막후에 또 어떤 세력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또, 우리가 지켜봐야 할 점은 네팔을 사이에 두고 있는 강대국인 중국과 인도의 움직임입니다. 네팔은 양 강대국 사이의 요충지에 있습니다. 분명히 양국 모두 관망하면서도 보이지 않게 개입하려 할 것입니다. 모디 총리는 일단 국경을 차단했고, 최근 일대일로 프로젝트로 네팔에 접근해오면서 올리 정부를 지원해왔던 중국 역시 차기 정권의 향배에 큰 관심을 갖고 개입할 것입니다. 왕정을 무너뜨리고 이름 뿐인 '공화국'을 만들었다고 실제의 공화국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공화국에는 충분한 덕성을 갖춘 공화국 시민이 필요하며 공화국의 습속(ethos)이 시민들 몸속에 자리 잡아야 합니다. 공화국 시민과 공화국 습속이 아직 약한 네팔이 과연 어디로 갈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태국 대법원이 9일 탁신 친나왓 전 총리에 대해 금고형 1년 실형을 선고했고, 그 자리에서 수감했습니다. 그의 딸인 패통탄 친나왓 전 총리가 최근 탄핵되어 해임되었는데, 사실상 막후 실력자인 아버지 탁신까지 감옥에 가둔 것입니다. 태국은 사실상의 지배자인 왕실과 군부, 그리고 이에 맞선 재벌 탁신 가문 사이에 오랜 대립과 경쟁이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국민은 탁신을 지지하지만 왕실과 군부, 그리고 사법부가 탁신 세력을 끌어내리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카타르 수도 도하에 있는 한 별장을 폭격해 그 자리에 있던 6명이 사망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 관리들이 모여 있었다고 합니다. 카타르는 미군 기지가 있는 미국의 우방이고 현재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정전' 협상을 중재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사망한 사람들은 이 정전 협상 참여자들일 가능성이 있는데 이스라엘은 하마스 '테러리스트'라면서 폭격해버린 것입니다. 그것도 주권을 가진 타국이며 미국의 우방인 카타르의 수도 도하를 폭격해버린 것입니다. 매우 도발적인 행동이고 중동 평화를 교란할 위험성이 있는 행동입니다. 트럼프는 이 공격에 대해 "매우 불쾌하다"면서 이러한 공격이 이스라엘이나 미국의 목표를 돕지 못한다고 비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