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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가 다시 미국 좌파의 주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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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07 13:15

New States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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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거의 잊혀졌다고 생각했던 정신분석학이 다시 미국 좌파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미국 좌파의 사상적 지형이 어떤 변화를 겪고 있나도 흥미로운 관찰거리이지만 뉴스테이츠먼의 2023년 5월 27일자 기사는 그 이면에 깔려 있는 원인도 함께 살펴보고 있어 값어치를 더합니다. 2020년 버니 샌더스의 민주당 경선이 실패하고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으로 촉발된 'Black Lives Matter'(BLM) 운동도 정치적 역풍을 맞게 되는 등, 상당히 유리해 보였던 상황에서 총체적 실패를 경험한 좌파가 다시 내면의 세계를 반추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진단입니다. 읽어보시면 (필자의 진단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 매우 흥미로운 관찰이 될 것입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그에 대한 미국 내 반대파가 의견의 일치를 보이는 지점이라면, 정신분석이 미국인의 삶을 괴롭히리라는 점이다.


"그들은 우리가 역병을 들여온다는 걸 모르고 있네." 1909년 증기선을 타고 뉴욕항에 도착해 처음 미국땅을 밟았을 때, 프로이트가 칼 융에게 했다고 알려진 유명한 말이다. 농담조로 한 말이었겠지만 여기엔 일말의 진심도 담겨 있다. 억압된 미국인들은 분열된 인간 자아 안에서 경쟁하며 비등하고 있는 힘과 마주할 준비가 거의 안 되어 있다는 것이다.


프로이트가 뉴욕에 도착했을 무렵, 그는 정신분석의 대표자로 명성을 얻기 시작한 터였다. 당시 신경증 환자를 위한 새로운 대화 기반 치료법으로 등장한 정신분석은, 꿈을 해석하는 방법이자 사회적·철학적 분석의 역할도 했다. 임상 치료로서 정신분석은 "무의식적인 것을 의식적인 것으로 변용함으로써" 신경증을 치료할 수 있다고 공언했다. 이를 위해서는 리클라이너 소파에 누워 정기적 상담의 형태로 나누는 말 만으로도 충분했다. 프로이트는 "말이란 본래 마법이었으며... 여전히 태곳적 마법의 힘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고 여겼다.


1856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유대인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프로이트는 자유주의가 승전보를 울리던 시기에 성장했지만 두 차례의 세계대전 속에서 그는 유럽이 무질서와 유혈 사태에 휩싸이는 것을 목도했다. 인류에 대한 프로이트의 관점에 인간의 완전성과 합리성 개념은 거의 없다. 그는 인간의 정신 활동 대부분이 의식과 전혀 관계없이 일어난다고 여겼다. 성적 본능은 인간의 정신 질환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인류 문명에도 "극도로 큰" 영향을 미친다. 인류 문명의 성패가 이 강력한 본능을 더 높은 목적으로 전환하는 데 달려 있기 때문이다. 금지된 성적 및 폭력적 행동을 저지르고 싶다는 억압된 충동은 사회에 널리 퍼져 있다. 그는 빅토리아 시대1 대중에게 동성애와 같은 "(성적) 도착"도 마찬가지로 널리 퍼져 있다고 설파했다.



역사학자 네이선 G 헤일에 따르면, 초기에 미국에서 프로이트를 폄하하던 이들은 그를 "성적 자유와 비관적 결정론, 자유방임, 퇴폐"를 옹호하는 사람으로 여겼다. 하지만 프로이트의 '역병'은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전후(戰後) 몇 년이 지났을 무렵, 미국에서 정신분석은 임상 치료법 및 지식인들의 토론 주제로서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미국은 이 프로이트 '역병'에 맞서는 항체를 만들어 낸 듯했다. 프로이트가 처방했던 것과는 상당히 다른 방식으로 그가 풀어놓은 힘을 길들였다. 미국에서 프로이트의 언어는 일상 어휘에 흡수됐고, 정신분석은 비주류 임상 치료법으로 작은 부분을 차지했을 뿐이다. 한편 긍정과 신앙고백주의(confessionism), 과도하게 약에 의존하는 새로운 치료 문화가 미국인의 삶 속에서 대두됐다. 그리고 지난 70여년간 사회담론 및 법률 영역에서 혁명적 변화가 거듭되며, 미국 사회의 오랜 성적 금기가 상당 부분 사라졌다. 1979년 미국의 역사학자 크리스토퍼 래쉬는 "심리치료가 극렬개인주의와 종교의 지위를 이어받았다"고 썼다. 래쉬는 미국에서 "정신건강이란 억제를 타파하고 모든 충동을 즉각적으로 만족시키는 것"이란 생각이 팽배하고 있음을 감지했다.


이후 자유시장 경제 원리가 부활해 수십 년간 지속되면서 개인을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분열된 자아가 아닌 합리적이고 자기 이익에 충실한 행위자로 보는 관점이 되살아난 듯했다. 인지행동치료 같은 비정신분석 치료가 주류로 떠올랐고 새로운 우울증 치료제가 시장에서 넓게 자리잡았다. 한편 프로이트의 유산은 '비판이론2'에 대해 미국이 반발하고 뇌 과학이 정신분석학 접근법의 숙적이었던 행동주의3의 영향을 받게 되자, 학문적 논쟁에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프로이트의 미국 도착 100주년을 기념하는 기사에서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렇게 결론짓는다. "프로이트의 사상은 미국 문화에서 점차 밀려났다."




요즘 미국 좌파에서 이를 뒤집으려는 목소리가 점차 힘을 얻고 있다. 프로이트와 그가 창시한 전통에서 미국인의 삶에서 지배적인 흐름과 대비되는 입장을 발견하고 이를 옹호하는 이들이 뉴욕을 비롯한 지식의 중심지에서 새로이 등장하고 있다. 과거의 논쟁이 잡지와 팟캐스트, 좌파 지식인 모임에서 새롭게 펼쳐지고 있다. 이들은 정신분석의 이점이 임상 치료를 받는 개인에게만 국한되는지, 아니면 사회 전체에 적용될 수 있는지를 논한다. 프로이트의 유산이 미국에 역병 대신 치유를 줄 수 있을까?


"사람들이 다시 정신분석으로 몰려들고 있다." 한 문예지의 표현이다. 지난 12월 뉴욕 이스트빌리지의 동굴 같은 교회에서 열린 좌파 정신분석 매거진 '파라프락시스'(Parapraxis) 창간 파티엔 진지한 모습의 군중이 모여들었다. 당시 행사를 다룬 기사에서 파라프락시스의 에디터 해나 지빈은 "21세기를 위한 정신분석"을 모색하려 한다고 말했다.


파라프락시스와 연관된 새 팟캐스트 '오디너리 언해피니스'(Ordinary Unhappiness)에서 공동진행자 패트릭 블랜치필드는 정신분석의 개념들이 오늘날의 사회에서도 여전히 '현금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팟캐스트의 이름은 프로이트가 정신분석 치료의 목적을 수수하게 표현한4 데서 따왔다.)


뉴욕타임스도 긴 기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정신분석 치료를 받고 있다는 자료를 인용해 정신분석의 유행을 긍정적으로 다뤘다. "사회정의(social justice) 지향적인 정신분석가 집단에 따르면, 프로이트의 사상은 의식에 포착되진 않지만 사회를 창조하고는 그 안에서 인간의 위치를 정립하는 힘들을 이해하는 방법을 제공한다."


정신분석과 미국 좌파의 연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급진 좌파 정신분석의 초기 선구자이자 성 해방 운동가이며 '오르곤 에너지 축적기'를 발명한 빌헬름 라이히5는 1939년 미국에 도착한 후, 솔 벨로우와 노먼 메일러 같은 작가들의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다양한 사회 운동으로 좌파가 마르크스와 역사유물론에 대한 기존의 배타적 애착에서 벗어나고 있던 1960년대, 프로이트가 미국 신좌파의 길잡이로 등극시키는 데 공헌한 이는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망명 지식인 헤르베르트 마르쿠제 같은 이론가였다.


70년대 이후 정신분석의 힘이 쇠약해지면서 미국 좌파에 대한 프로이트의 영향력도 함께 약화된 듯 보이지만 영향력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데미지'(Damage) 같은 기성 매체 외에도 뉴욕에서 정신분석학적 글을 소개하는 곳들이 새로 생겼다. 데미지는 정신분석탐구협회(Society for Psychoanalytic Inquiry)에서 내는 온라인 매거진으로 최근 인쇄물로도 확장하고 있다.


"정신분석학은 사회 및 정치적 문제와 사건에 새롭게 접근하는 방법으로서 가능성이 꽤 무궁무진해 보이는 틀입니다." 파라프락시스 매거진의 설립자이자 임상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알렉스 콜스턴이다. 하지만 한계도 있다. "개인 또는 집단에 대한 (정신) 분석은 정치적, 사회적, 역사적 비평을 대체할 수 없죠… 정신과 사회는 완전히 일치하지도 않고 완전히 조화를 이루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사회의 해방과 정신(심리)의 해방을 조화시키려는 노력의 역사도 실패와 논란으로 점철돼 있다. 또한 좌파 프로이트주의 기획은 프로이트 자신이 취한 입장과도 싸워야 한다. 프로이트는 '문명 속의 불만'(1929)에서 공산주의의 제도화나 가족 폐지(둘 다 일부 미국 좌파들의 목표다)가 인간의 타고난 공격성을 제거하거나 성적 유토피아를 가져올 수 없다고 했다.


우파 학자들도 프로이트의 연구를 받아들였다. 미국 우파를 다루는 인기 팟캐스트 'Know Your Enemy'는 최근 20세기 중반의 사회학자이자 대중 지식인 필립 리프의 저작을 다뤘다. 리프는 프로이트를 해로운 전복자가 아니라, 문명을 지키기 위해 '본능의 포기'가 필요하며 문화 엘리트들이 이러한 절제를 강요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한 사람이라고 봤다. 리프는 또한 문화 엘리트가 이런 책임을 회피함으로써 "정교한 자살 행위"를 저지르고 있다며 낙담했다.


리프의 저작은 미국 우파에 상당한 유산을 남겼다. '심리 치료의 승리'(triumph of the therapeutic)라는 그의 개념은 미국 진보 집단이 전통적인 도덕적 구속을 자기 긍정의 수사로 대체하는 것을 비판할 때 자주 사용된다. "리프는 불안을 완화하고 고통을 없애는 전략이 사회의 번영에 필요한 권위적인 규칙과 금기를 파괴하고 있다고 보았다." 저명한 보수주의 작가 로드 드레허의 말이다. 드레허는 심리치료 문화를 "대학이 학생들에게 '정서지원동물6'을 캠퍼스에 데려오게 하고 퀴어 커플이 성별로 역할이 주어진 보육을 해체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라 비난했다.


우파가 프로이트주의에 부분적으로 관심을 갖는 게 순전한 우연은 아닐 수도 있다. "정신분석학은 인간이 타락하고 망가진 상태라고 보는 보수적 관점과 어느 정도 겹치는 부분이 있죠." 프로이트를 자주 활용하는 정치 작가이자 'Know Your Enemy'의 공동진행자 샘 애들러-벨의 말이다.


그러나 새로 등장한 정신분석 좌파는 전통 종교를 옹호하거나 억압적 사회 체제 건설을 정당화하는 데 프로이트를 동원하는 걸 거부한다. 파라프락시스의 에디터 콜스턴은 프로이트가 환자들의 신경증 원인이 되곤 하는 사회적 조건에 대해 정신분석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은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최근 미국 좌파가 정신분석학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정치, 문화, 개인의 세 가지 차원에서 발생하는 변화에 대응하고자 정신분석학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정치적 측면에서 미국 좌파의 입장은 양면적이다.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막대한 국가 지출이 공언됐고 조 바이든 행정부가 '신자유주의의 죽음'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켰지만, 미국 좌파는 여러 분야에서 패배감에 젖어 있다. 지역 수준에선 진보의 성과가 예상을 깨고 견고하게 유지돼 왔다. 친환경 에너지와 인프라에 대한 미국 정부의 투자 물결은 '그린 뉴딜'에 대한 희망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모두가 이를 진정한 진보의 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지고 있는 경제 게임 속에서 한시적인 정무적 재분배로 보는 이들도 있다.


전국 수준에서 미국 좌파는 2020년 버니 샌더스 선거 운동의 패배로 야망이 무너지고 이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봉쇄(락다운)로 지난 10년간 모아온 세력이 흩어진 데 따른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힘을 회복하는 것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2020년의 '뜨거운 여름7' 당시 좌파가 품었던 희망은 '경찰 예산을 끊어라8'라는 슬로건에 대한 반작용으로 상황이 뒤집히면서 물거품이 됐다.


"경험적으로 좌파가 훨씬 더 강력하죠." 애들러-벨의 말이다. "하지만 버니 샌더스의 경선 패배와 얼마 지나지 않아 내려진 코로나 봉쇄라는 잇따른 타격이 좌파를 크게 낙담하게 만들었어요."


(로스앤젤레스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미국 민주당 대권주자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2020년 3월1일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선거집회서 연설을 하고 있다. 샌더스는 8일(현지시간) 경선을 중도하차한다고 밝혀,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사실상 민주당의 최종 후보로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맞대결을 하게 됐다.   © AFP=뉴스1

(로스앤젤레스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미국 민주당 대권주자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2020년 3월1일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선거집회서 연설을 하고 있다. 샌더스는 8일(현지시간) 경선을 중도하차한다고 밝혀,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사실상 민주당의 최종 후보로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맞대결을 하게 됐다. © AFP=뉴스1


이런 낙담 속에서 물질적인 것 너머에서 설명을 구하려는 노력이 일어났다. 어쩌면 정신분석학은 1920~30년대와 똑같은 이유로 다시 인기를 얻고 있는지 모른다. 절호의 순간(당시에는 1차 세계대전이었다)이 혁명으로 이어지지 않은 까닭을 설명하려는 욕구다.


미국 좌파에서 '프로이트로의 회귀'를 이끄는 이들 상당수는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로 시작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끝맺은 2010년대에 성년기를 보낸 밀레니얼 세대다. 프로이트의 비극적 감성은 젊은 시절의 의지주의9에서 벗어나 중년을 향해 가는 세대와 잘 어울린다. 이 세대는 때때로 생활 방식의 문제와 정치적 문제를 구분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좌파라는 것은 우리 세대 중 많은 이들의 정체성이었는데, 정치를 한다는 것은 정말 기분좋은 일이었죠. 그리고 기분 좋은 일이란 그게 무엇이든 유용하고 올바른 일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애들러-벨은 말했다. "저는 이런 생각이 대부분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실제로도 틀렸다는 게 입증됐다고 생각하고요. 정신분석학을 갖고 생각하는 게 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정신분석은 밀레니얼 좌파의 관점을 재편하고 있다. 그리고 밀레니얼 좌파는 임상 정신분석학도 재편하고 있다. 심리치료사이자 데미지의 에디터인 크리스티 오펜바허는 "이른바 전문관리 계급10이 임상 분야 직업에 대거 유입된 것"을 이유로 들었다.


미국 학계의 취업 시장이 불황이라는 점, 그리고 특히 뉴욕 같은 곳에서 정신분석 개업 자격 요건이 완화된 점도 이러한 추세에 기여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의 고학력자들이 정신분석학에서 자신의 지적 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안정된 일자리의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이들의 유입으로 한때 부유층이 지배했던 분야가 재편되고 있다. "좌파는 정신분석학의 계급적 다변화에 관심을 가져야 해요." 오펜바허의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추세가 직업으로서의 정신분석에는 부적합할 수 있는 습관과 경향을 가져오기도 했다. "종종 이런 맥락에서 금기어나 금기시하는 주제가 생기기도 하는데 이는 정신분석의 기본 원칙인 자유연상을 방해하는 겁니다." 오펜바허의 말이다.


중도 좌파이면서 전문직 계급에 종사하는 미국인 세대가 정신분석학에 새롭게 관심을 가지며 문화도 광범위한 변화의 힘을 받고 있다. 2010년대를 지배했던 일련의 정치적, 도덕적 태도인 '워우키즘'(wokeism)의 쇠퇴가 그 중 하나다. 워우키즘은 소외된 집단의 대우에 대해 고발을 하고 도덕적으로 '심판'하는 문화로, 당시 전문직 업계와 언론매체에 새로운 수사학적 스타일을 가져왔다. '깨어있기'를 추구하는 워우키즘 문화를 두고 비판론자는 도덕적인 체하고 청교도적이라고 평했고 지지자는 품위 있고 올바른 것이라 생각했다. 현재 이러한 경향은 사그라들고 있는 듯하지만, 어느 정도까지 후퇴할지는 알 수 없다.


미국 좌파의 프로이트 회귀는 2010년대의 정치적 도덕주의가 고갈됐다는 징후일까? 정신분석에 새로 입문한 사람들 중 일부는 (종종 은연중에) 정신분석학의 사상이나 실천에서 지난 10년간의 이데올로기로부터의 출구를 보는 듯하다. 미국 문화계 일각에서 점차 일반화되고 있는 반동적 태도를 강요하지 않는 사상으로 정신분석학을 보는 것이다.


임상적 초연성11을 갖춘 정신분석은 2010년대의 이데올로기가 불러일으켰던 '비난 폭풍'이 보여주는 것보다 더 미묘한 방식으로 인간 행동을 판단하는 도구를 제공하는 듯 보일 수 있다. 이것이 해방의 대의에 기여하면서도, 보다 친절하고 힐난에 목매지 않는 정치를 만들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신진 정신분석학 좌파 일부는 여전히 트위터에서 정적을 응징하고 싶은 유혹(일종의 반복강박일까?)에 사로잡혀 있다. 과거 많은 정치평론가들은 정적(政敵)을 병적인 존재로 치부하기 위해 정신분석학 개념을 활용하기도 했다. 1964년 출간된 여전히 인기 있는 저작 '미국 정치의 편집증적 스타일'(The Paranoid Style in American Politics)에서 미국의 보수주의를 진단하려 했던 미국의 역사학자 리처드 호프스태터가 한 예다. 애들러-벨은 이러한 방법은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적 동맹이나 반대자의 행동 동기를 그들이 말한 동기와 상반된 것에서 찾으려는 건 위험한 시도입니다."




프로이트의 사상은 오늘날 미국 사회가 겪는 고통에 어떤 해독제가 될 수 있을까? 프로이트는 '일상적인 불행(오디너리 언해피니스)'이라는 정신분석의 소박한 포부를 밝히며 정신분석 치료의 어려움과 오랜 기간, 치료를 위해 필요한 희생, 치료 성공에 필요한 많은 조건 등에 대해 여러 차례 경고했다. 또한 언어 자체의 힘("말하는 치료")에 대한 믿음도 필요하다.


이는 정신적, 육체적 질병 치료에 대한 미국 문화의 해로운 경향인 즉각적이고 기적적인 (기왕이면 약물의 형태로) 치료의 욕망에 대한 기꺼운 반명제(反命題)를 제시한다. 미국 문화에선 약물이 지나친 관심을 받는다. 신종 체중 감량제의 등장에 대한 희열에 가까운 반응(최근에는 모든 중독을 치료할 수 있다는 너스레도 나온다), 주의력 장애를 치료하는 데 사용되는 암페타민의 부족에 대한 탄식 등은 이러한 경향을 보여주는 최근의 사례일 따름이다.


그러나 프로이트가 살았던 세계와 오늘날 미국 사이의 간극도 고려해야 한다. 프로이트의 글에는 격식을 차리는 빈의 부르주아 사회를 비추는 이방인의 호의적이지 않은 거울, 즉 자신이 사는 세계에서 감춰져 있던 것을 조심스레 명시적으로 드러내는 예술이 담겨 있었다. 그는 오스트리아 빈의 일부 집단이 가진 어두운 충동(반유대주의도 그 중 하나였다)이 너무나 노골화되자 이를 세상에 드러냈다.


가려진 걸 드러내기를 좋아하는 프로이트의 성벽은 그가 동성애, 유아의 성,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대한 솔직한 토론 등 격식을 따지는 사회에선 금기였던 주제를 탐구할 때 나타났다. 하지만 '말 실수를 한 연사'나 '초대한 손님을 잊어버린 집주인' 같은 보다 평범한 주제를 다룰 때도 드러났다.


프로이트가 그의 저술에 활용하면서 일침을 놓은 부르주아적 예의범절은 에티켓을 유지해야 하는 사회적 구조가 점점 줄어드는 오늘날 미국인들에겐 거의 의미가 없다. "지난 50년간의 무절제한 신자유주의 통치로 노조와 지역 스포츠 클럽, 교회, 커뮤니티 조직 등 모든 것이 철저하게 파괴됐습니다." 데미지의 에디터 오펜바허의 말이다. "인류 역사상 전례 없는 수준의 원자화와 성적 행동에 대한 제약의 약화 속에서 뭘 해야 할까요? 바로 이게 정신분석가와 좌파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입니다."


분명 세기말 빈과 달리 오늘날 미국은 성생활에 대해 매우 개방적인 듯하다. 오늘날 뉴욕 지하철역에는 '대디 이슈12'를 다룬 텔레비전 프로그램 광고와 데이트 앱 광고가 가득하다. 이는 성적 충동이 의식의 표면에 놓여 있는 사회, 마치 성을 거래로 바꾸라는 강요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듯한 사회의 산물이다.


프로이트는 현대 미국의 건방지고 원자화된 포스트모던 사회 상황에 무엇을 줄 수 있을까? 마르쿠제는 '일차원적 인간'에서 "성이 일과 공적 관계에 통합되고 이에 따라 보다 (통제된) 만족이 가능해지는" 억압적 탈승화(脫昇華, desublimation) 개념이라는 한 가지 답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조차도 미국에서 일과 즐거움(프로이트의 용어로 '현실 원리'와 '쾌락 원리')의 경계가 고통스러울 정도로 모호하다는 사실의 단편만 포착하는 듯하다. 젊은 '하이퍼 디지털' 세대에게 즐거워 보이는 활동에 참여하면 그 활동을 기록하고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온라인에 게시해야 하는 의무를 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다보니 그 자체로는 즐거워 보이지 않는 일종의 노동 같다. 음식 사진을 찍는 습관을 두고 "휴대전화가 먼저 먹는다"는 말이 생긴 것처럼 말이다.


따뜻한 물이 채워진 욕조에서 회의를 하는 CEO, 휴가 내내 업무용 슬랙 채널에 응답하는 고스펙 변호사들 — 이들의 욕망은 항상 일을 망치기 일보직전이고, 일에 대한 강박은 정신적 웰빙을 파괴하기 일보직전인 것 같다. 정신분석은 미국의 욕망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형태와 그것의 폭력적인 반대 급부를 이해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위해서는 프로이트의 이론에 대대적인 수정이 필요할 것이다.



닉 번스는 양 아메리카 대륙의 정치·문화를 다루는 계간지 '아메리카스 쿼터리'(Americas Quarterly)의 에디터로, 뉴욕타임스, 뉴스테이츠먼, 뉴레프트리뷰 등에 기고했다.



1913년 창간돼 케인스, 버트런드 러셀, 조지 오웰, 버지니아 울프 등이 기고했던 전통 있는 영국 진보 주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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