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보이지 않는 세계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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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25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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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지성의 역사는 '시각' 중심의 역사였습니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지성의 각성을 'en?light?ment'(계몽)이라고 했고, 동양에서는 '광화'(光化,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의 그 '광화'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두 단어 모두 지성을 '빛'에 비유했습니다. 시각적 비유입니다. 플라톤은 동굴의 우화에서 빛과 어둠으로 지성과 무지를 구분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에서 시각이 외부세계의 다채로움을 가장 잘 전달한다고 했습니다. 안그래도 이렇게 시각 중심이었는데, 근대 초기 광학의 발달은 더욱 시각 중심의 지성사를 가져왔습니다. 현미경과 망원경의 발달로 인간의 감각은 마이크로 세계와 우주로 확대되었습니다. 그것이 세계관 자체를 바꿔냈습니다. 망원경으로 우주를 보니 우주에서 우리 자신을 보게 되었고, 이것이 지동설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세포같은 마이크로 세계를 보니 거기에서도 삶이 보이고 움직임이 보이면서 인간의 주체가 안팎으로 열려있고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되면서 스피노자처럼 우주의 총체성을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미디어의 이해'를 쓴 마셜 매클루언은 기술의 발전과 이에 따른 인간 신체, 특히 인간 감각의 확대를 이야기합니다. 더는 새롭게 밝혀질 게 없지 않을까 했는데 최근에는 음향공학의 발전이 지금까지 숨겨져 있던 세계를 들춰내고 있습니다. 우주의 소리, 세포의 소리를 듣게 되는 인류는 또 어떤 세계관적('관'도 시각적 용어입니다만) 변화를 겪게 될까요? 2023년 6월 20일자 노에마 기사는 음향공학이 가져오는 인간 감각의 확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시각만 발달해온 인류가 이제 다시 청각을 키울 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400년도 더 전에 네덜란드의 작은 마을 미델뷔르흐에서 한 부자(父子)가 훗날 역사를 바꿀 발명품을 우연히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그저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했다. 한스 얀센과 자카리아스 얀센이 유리 렌즈를 만지작거리다가 현미경을 발명한 것이다. 하지만 의도했던 발명은 아니었다.


(This article was produced by and originally published in Noema Magazine.)


얀센 부자는 수익성 높은 신흥 사업이던 독서용 안경 제작의 선두주자였다. 그들은 아주 인기 있는 사치품이었던 완벽한 안경을 만들려고 고심하다가 원통형 관에 두 개의 렌즈를 정렬하면 물체를 확대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두 개의 렌즈를 결합하면 한 개의 렌즈만을 통해 보는 것보다 훨씬 더 확대된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하지만 시야가 너무 흐릿했고, 그들의 고객에겐 너무 거추장스러운 장비였기 때문에 자신들의 기발한 발견을 제쳐두었다.


얀센 부자의 확대경 기계는 다른 누군가 그것을 사용하기 전까지 근 백 년 동안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다 초등학교 교육을 받은 네덜란드의 직물 상인 안토니 판 레이우엔훅이 몇 개의 현미경을 수제작했는데, 원래는 해외에서 구매한 값비싼 직물의 품질을 점검하겠다는 세속적인 목적으로 만든 것이었다. 그러나 판 레이우엔훅은 이내 주변 세계로 주의를 돌려, 현미경으로 우물물, 곰팡이, 꿀벌, 이(蝨), 효모, 혈구, 모유(아내의 것)와 정자(자신의 것)를 들여다봤다. 그의 현미경들은 그가 보려 한 모든 곳에서, 우리 세계의 구석과 틈에 살고 있지만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이상하고 새로운 세계의 존재들을 드러내 보여주었다.



판 레이우엔훅은 처음에는 (현명하게도) 조롱당할까 두려워 자신의 발견을 비밀로 했다. 그러다 그가 마침내 자신이 본 것을 드러냈을 때, 점잖은 네덜란드 사회는 육체적 물질을 확대하는 그의 이상한 성향에 경멸을 드러냈다. 또 많은 사람이 '극미 동물'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지 않고 그저 거부해버렸다. 그럼에도 판 레이우엔훅은 런던 왕립학회에 수백 통의 편지를 썼고, 그의 발견은 최초의 의혹이 지나가고 회의적인 과학위원단의 방문이 있고 나서야 결국 받아들여졌다. 이 소박한 상인의 연구 논문은 왕립학회의 학술지에 아이작 뉴턴 경의 논문과 나란히 게재되었다.


현미경을 통해 관찰한 신세계는 곧 과학자와 철학자 모두를 매료시켰다. 현미경은 인류가 새로운 방식으로 새로운 것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인공 눈, 시각적 보철물의 한 형태로 확산되었다. 미시적 세계에 대한 연구는 원자론―세계가 작은 기본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고대 이론―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켰고, 나중에는 전염병과 질병을 이해하는 새로운 방법 또한 제공하게 될 터였다.


과학사가 캐서린 윌슨은 저서 '보이지 않는 세계'(The Invisible World)에서 현미경이 과학 혁명을 촉진했다고 주장했다. 이 단순한 장치는 복잡한 관념을 내포하고 있었다. 과학이 맨몸의 인간이 지닌 지각으로는 볼 수 없는 자연계의 양상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다. 안경은 쓰인 단어에 집중하게 도와줬을 뿐이지만 현미경은 인간이 완전히 새로운 영역을 지각할 수 있게 해주었고, 시력과 상상력 모두를 확장했다.


비슷한 시기에, 다른 네덜란드 안경 제작자도 유리를 만지작거리고 있었고, 볼록 렌즈와 오목 렌즈를 배열함으로써 멀리 있는 물체를 확대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소식은 유럽 전역으로 빠르게 퍼졌다. 곧 이탈리아에서, 당시 대학교 수학 강사였던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망원경의 디자인을 개선한 후 별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1.


그의 동시대 사람 대부분은 육지와 바다의 적을 염탐하는 군사적 목적으로 망원경을 사용했다. 갈릴레오는 일 년이 채 지나기 전에 태양, 달, 별, 행성에 대한 설명을 자신의 책 '별의 전령'(Sidereus Nuncius)에 실었는데 이 책은 당대에 가장 널리 유통된 과학 책자로 손꼽힌다. 가톨릭교회의 박해에도 불구하고 갈릴레오의 발견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있다는 생각을 버리게 만들었고 과학, 철학, 정치의 기반에 가해질 심대한 도전을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


유럽에서 광학은 깊은 문화적 뿌리를 지니고 있다.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시각은 가장 고귀한 감각이었다. 플라톤부터 성 아우구스티누스에 이르는 철학자들은 시각적 이미지에 열광했다. 오늘날 널리 사용되는 기초적인 과학 용어조차 시각과 가시성에 대한 선호를 반영한다. 이를테면 '이론'(theory)이라는 단어는 '보다'를 뜻하는 그리스어 'theoro'에서 유래했다. 또 이성과 과학이 승리한 시기에 훗날 붙여진 이름인 '계몽주의'(Enlightenment)는 빛(light)이 그림자를 이겨낸다는 시각적 은유를 담고 있다.


과학 혁명을 위해 광학은 수단과 통찰을, 기계와 은유를 함께 제공했다. 클레어 웹2주장했듯 망원경은 16세기부터 현재까지 과학과 철학의 평행적 혁명을 중재했고, 우주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세계에 거주하는 존재인 우리의 감각을 계속해서 개혁하고 있다.


(로이터=뉴스1) =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으로 촬영한 풀컬러 우주사진을 12일(현지시간) 공개하고 있다. 사진은 성운을 형성하는 구름 풍경.  ? 로이터=뉴스1

(로이터=뉴스1) =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으로 촬영한 풀컬러 우주사진을 12일(현지시간) 공개하고 있다. 사진은 성운을 형성하는 구름 풍경. ? 로이터=뉴스1


예전에 마셜 매클루언3은 서구에서 문화적, 정치적, 과학적 혁명을 촉발한 요인이 광학(현미경과 망원경) 뿐만 아니라 마찬가지로 중요한 기술인 인쇄기의 발명이기도 하다고 주장했다. 15세기 중반에 발명된 가동형 인쇄기는 인쇄 매체의 빠른 확산과 더불어 지식의 표준화되고 자동화된 문화적 생산을 가능하게 했다. 매클루언이 지적했듯이 인쇄기는 인간의 행동과 문화적 습관, 그리고 우리의 지각 패턴을 변화시켰다. 구전(口傳) 전통은 희미해지고 시각 문화가 우세해졌다. 문어(文語)가 우리 삶과 세계에 스며들면서 구어의 중요성, 그리고 세계를 탐험하고 이해하는 방법으로서의 청각의 효용은 감소했다.

세계를 듣기

함양되지 않는 감각은 감퇴한다. 민속지학자들은 시각과 문자에 사로잡힌 문화에서 자라난 서양인이 청각 소실을 앓는 듯 보인다는 점을 오랫동안 언급해왔다. 서양인은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보다 청각이 덜 발달했다.


브라질의 인류학자 라파엘 조제 지 메네즈 바스투스(Rafael Jos? de Menezes Bastos)는 몇 년 전 아마존 열대 우림의 원주민 카마유라족(Kamayur?)과 함께한 여행에 관해 썼다. 어느 날 저녁, 카누를 타고 브라질 북동부의 이파뷔(Ipavu) 호수를 건너던 그의 친구 에크와(Ekwa)는 노 젓는 것을 멈추고 침묵했다. 바스투스가 왜 멈췄냐고 묻자 에크와는 "물고기가 노래하는 게 들리지 않나요?"라고 반문했다. 바스투스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그는 나중에 이렇게 썼다. "마을로 돌아와서, 나는 에크와가 일종의 환각이나 발작적인 시적 영감, 아니면 신성한 황홀경을 경험했다고, 모든 사건이 상상의 비약일 뿐이라고 결론 내렸다."


몇 년 뒤, 바스투스는 산타카타리나 대학의 과학자들이 조직한 생물음향학(bioacoustics) 워크숍에 참여했다. 그곳에서 그는 물고기의 노래를 들었다. 갑자기 바스투스는 에크와가 "영감을 받은 시인이나 성스러운 황홀경 혹은 환각의 희생양보다는 성실한 어류학자 같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스투스의 귀는 닫혀있었지만 에크와의 귀는 열려있었다. 바스투스의 기록에 따르면 카마유라족은 아이들도 비행기나 배가 도착하기 한참 전부터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카마유라족의 언어로 '듣다'(anup)는 '깨닫다' 또한 암시하는데, 이것은 단지 좁은 분석적 의미의 '이해하다'만 암시하는 '보다'(tsak)에 비해 더 우수한 방식이다. 시각에만 과도하게 의지하는 것은 반사회적인 행동과 관련되지만, 잘 듣는 것은 전체론적이고 통합적인 인식과 지식의 형태에 관련된다.


카마유라족 중에서도 훌륭한 청자(聽者)들은 대개 음악과 구음 예술에 능하다. 특히 에크와처럼 다른 존재들의 소리를 감각하고 기억하며, 재현하고 연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들에게는 '음악의 대가'(maraka´?p)라는 특별한 칭호가 주어진다. 이러한 능력은 선천적인 재능뿐 아니라 평생에 걸친 강도 높은 훈련을 통해 발현된다.


카마유라족의 해석 능력은 서구 과학의 이해능력과 동등하거나 어떤 측면에서는 더 뛰어나다. 그들은 어떤 생물 종 혹은 사물이 어떤 소리를 내는지, 그것들이 어디에서 왜 그런 소리를 내는지 정확하게 묘사하고 정밀하게 추측할 수 있다. 이것은 실천적이고 관계적인 지식이다. 카마유라족은 지속적으로 그들 주변의 비인간 생명체들과 대화를 나누기 때문이다. 그들은 숲을 통과해 이동하면서 동물과 식물, 정령들의 소리를 듣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며, 그들에게 해를 가할 의도가 없다는 것을 전달하고 무사히 머물러 달라고 요청한다. 바스투스는 이 음향-음악적인 '세계 듣기'가 서양 과학의 정밀성에 영적 조율의 실천들을 결합한, 신성한 생태학의 한 형태라고 주장한다.


현대 서양인의 선조들은 한때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오래전부터 그 능력을 함양하기를 중단했다. 듣기보다 보기를 특권화하면서 우리는 듣는 법을 배우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지난 십 년 동안, 새로운 세대의 과학자들이 우주부터 개별 세포까지, 그간 경시됐던 소리의 세계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몇 가지 특기할만한 발견이 이뤄지고 있다. 이런 발견들은 수세기 전의 현미경 사용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숨겨져 있고 예측할 수 없는 세계를 드러낸다.

우주의 소리

수천 년 동안, 빛나는 행성부터 희미한 별에 이르기까지 하늘 너머에 있는 천체들의 운행은 항해자에게는 실용적인 지침을, 예언가에게는 영적인 가르침을 제공해왔다. 그러나 별들이 보내는 어떤 신호는 사람의 맨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천체물리학자들은 음의 높낮이와 지속시간 및 소리의 다른 특성을 활용하여, 빛의 신호를 디지털 음성 데이터로 변환하는 기술을 발전시켜왔다. 맹인 천문학자인 완다 디아즈-머시드는 지구 대기권 상층부의 플라즈마 패턴을 소리로 변환하여 분석하고 시각적 노이즈 속에서 미세한 신호를 포착하는 새로운 방법을 발명했다.


물론 데이터를 음향 신호로 변환하는 '음향화'는 시각장애가 없는 과학자들에게도 사용되고 있다. 별들을 '듣는' 일은 시각적인 재현으로는 놓치기 쉬운 패턴을 찾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음향화는 토성에 번개가 친다는 것과 우주선에 부딪히는 미세운석이 얼마나 편재하는지 등 몇몇 놀라운 발견을 이끌어냈다.


심지어 우주의 탄생조차도 음향화가 가능하다. 빅뱅에 이어 곧바로 거대한 파동이 초기 우주를 이루고 있던 빽빽하고 뜨거운 물질을 통해 퍼져나갔다. 이 파동은 특정 영역을 압축했고(따라서 가열시켰고) 반대로 특정 영역을 늘려주었다(따라서 냉각시켰다). 그로 인한 온도의 변화는 오늘날에도 우주의 마이크로파 배경복사의 온도 변화로 여전히 관측할 수 있다. 그것은 빅뱅의 초기 충격파가 남긴 반향 같은 것이다.


우주의 마이크로파 배경복사('유물 복사'라고도 한다)는 우리가 눈으로 관측할 수 없는 주파수에서 발생한다. (인간은 통상적으로 약 380에서 750 나노미터 파장의 빛을 인지할 수 있으나 전자기 스펙트럼은 이 범주를 훨씬 초과한다. 우주 배경복사는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지만, 맨눈으로는 볼 수 없다.) 워싱턴대학교의 천체물리학자인 존 크레이머가 그 신호들을 소리로 변환했을 때, 신호들은 그가 "마치 거대한 제트기가 집 30m 위를 날아가는 듯한" 소리 같다고 묘사한 시끄러운 웅성거림으로 울려 퍼졌다.


과학자들은 그래프와 차트를 면밀하게 살펴볼 뿐만 아니라 다시 한번 별들의 음악을 듣고 있다. 고대인들이 기뻐할 만한 소식이다.

생명의 나무를 듣기

과학 분야로서 생물음향학은 위와 비슷한 방식으로 인간의 귀로 들을 수 없는 세계를 향한 새로운 창을 연다. 지구상에서 소리는 복잡한 생태 정보를 전달하는 원시적 형식이다. 광범위한 종들, 심지어 귀가 없는 종들까지도 놀랍도록 소리에 민감하다.


지난 이십여 년간, 과학자들과 아마추어들은 디지털 녹음기를 이용해 북극에서 아마존까지 곳곳에서 생명의 소리를 녹음해왔다. 그들이 녹음하는 소리 대부분은 우리의 가청 범위 위나 아래에 있어서 인간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이런 측면에서 디지털 생물음향학은 광학의 초창기 시절과 비교될 수 있다. 즉 디지털 녹음기는 현미경이나 망원경이 시각에 대해 그랬던 것처럼 인간의 청각을 우리 신체의 인지적 한계 너머로 확장한다.


생물음향학자들의 고된 작업은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것보다 더 많은 생물 종이 실제로 소리를 낸다는 것을 밝혀냈다. 또 우리는 음성을 활발히 사용하는 많은 종이 음향 소통을 통해 복잡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아가고 있다.


코끼리의 초저주파는 좋은 예다. 코끼리는 강력하고 (인간의 가청 범위보다 한참 아래인) 몹시 낮은 음파를 방출한다. 이 음파는 숲과 사바나를 통과해 멀리까지 나아가며, 방대한 영역을 가로질러 무리와 가족의 협동에 기여한다. 코끼리가 어떤 상황에서 전달하는 특정한 신호와 소리는 더 놀랍다. 과학자들은 이 수천 개의 소리를 모아 사전으로 편찬했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코끼리는 꿀벌을 위한 특정한 신호를 가지고 있다. 아프리카코끼리는 영리한 청자이기도 해서 단지 사람들의 목소리와 방언을 듣는 것만으로 그들을 사냥하는 부족과 그렇지 않은 부족을 구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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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일부 음성이 없는 생명체들조차도 소리에 절묘하게 적응한 것으로 밝혀졌다. 엑서터대학교의 생물학자 스티브 심슨은 산호 유생이 건강한 산호초와 품질이 떨어지는 산호초의 소리(그들은 전자를 선호한다)를, 또한 평범한 환초와 그들이 거주하는 산호초의 소리(그들은 후자를 선호한다)를 구별하는 능력이 있음을 입증했다. 텔아비브대학교의 신경생태학자 요시 요벨은 꽃들이 윙윙거리는 벌들의 소리에 응답하여 몇 분 안에 더 많고 더 달콤한 꿀을 흘러넘치게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심지어 땅 속의 동물들도 소리를 낸다. 일종의 지하 트위터인 셈이다.


세계는 살아 있는 자연의 소리로 가득 차 있는데 그 대부분은 사람의 맨 귀로는 감지할 수 없다. 그러나 디지털 생물음향학과 인공지능의 결합을 통해, 과학자들은 생명의 나무를 가로지르는 이종간(異種間) 의사소통의 범위를 밝혀내기 시작했다. 요벨의 팀은 식물들이 방출하는 높은 초음파의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기 위해 AI 알고리즘을 훈련했다. 담배 식물을 이용한 실험에서 알고리즘은 단지 듣는 것만으로 식물이 탈수 상태인지, 건강한지, 상처를 입었는지 알아낼 수 있었다. 이처럼 높은 초음파 주파수는 사람의 가청 범위를 훨씬 넘어서지만 곤충에게는 들린다.


자연이 이종간의 소통으로 가득차 있다는 깨달음은 컴퓨터 과학자, 생물학자, 언어학자 등으로 구성된 다학제 연구팀이 AI와 디지털 생물음향학을 활용한 번역 도구를 개발하도록 이끌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심오한 윤리적 문제를 제기한다. 언제 우리가 비인간들의 음향 데이터를 수집할 권리를 갖게 되는가? 누가 그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는가? 사냥꾼? 어부? 또 AI 알고리즘에 불가피하게 내재하는 편향이 야기할 위험이나 잠재적인 피해는 무엇인가?


이것은 철학적으로도 마찬가지로 심오한 질문을 제기한다. 다른 종들도 복잡한 의사소통을 한다는 것은 오로지 인간만의 능력으로 여겨졌던 언어의 고유성에 대한 도전인가? 그리고 이런 발견들이 환경 거버넌스, 혹은 더 넓게는 인간 행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비인간의 정치적 목소리를 위한4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세포의 음향화

만약 소리가 우주에서 보편적이고 시원적인 것이라면, 생명은 어떤 식으로든 음향적 의사소통에 적응했어야 할 것이다. 또한 질병부터 뇌 활동, 공생 관계에 이르는 생명 현상들은 음향적으로 번역되고 이해되었으리라.


과학자들은 혁신적인 방식으로 데이터를 음향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생물물리학자들은 단백질 접힘(protein folding)에 대한 교육 도구로 음향화를 활용해왔다. 의학에서는 신경과학자들이 소리를 통해 알츠하이머의 진단을 정밀화해왔으며, 의사들은 음향화의 도움을 받아 심박수와 심전도 신호의 거의 보이지 않지만 중요한 세부 사항을 탐지해왔다. 또한 뇌파의 불규칙성을 찾아내 미처 발견하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인지 장애의 신호를 탐지하고 아이들에게서 간질 발작의 초기 징후를 발견하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음향화의 혜택은 간과하기 쉬운 작은 신호들을 탐지할 수 있다는 것뿐만은 아니다. 우리의 가시 범위는 최대 180도 정도로 제한되어 있으며, 항상 눈을 뜨고 있을 수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360도의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귀는 언제나 듣고 있다. 시각적 데이터는 의료 서비스 제공자의 주의 깊고 지속적인 응시를 요구한다. 그러나 청각 데이터는 즉각 주의를 끄는 방식으로 울릴 수 있다. 음향화는 섬세하면서도 강렬하게 즉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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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상의 유용성과 더불어, 소리는 또 다른 중요한 방식으로 우리 건강에 주요 역할을 한다. 바로 재활에 관련해서 말이다. 음악이 치매를 앓는 노인들에게 좋다는 것은 이미 여러 차례 입증되었다. 이 현상은 우리가 기억과 인지 능력을 잃어버린 후에도 신경세포들이 노래와 리듬에 오랫동안 반응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소리에 대한 포유류의 반응성은 단순한 기분 전환의 범위를 훌쩍 넘어선다. 최근 세인트루이스를 거점으로 하는 한 의학 연구팀은 쥐의 뇌 특정 부위에 저주파 소리를 조준하여 동면과 유사한 상태로 유도하는 연구를 해냈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동면하지 않는 다른 종의 쥐에게서도 같은 결과를 이끌어냈다.


포유류 대부분이 자연적으로 동면한다는 사실과 인간을 포함한 동물 대부분이 유사한 뇌 구조를 공유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 연구 결과는 인간에게도 잠재적인 동면 능력이 있음을 의미하는 건 아닐까? 어쩌면 언젠가 소리가, 우주의 여행자들이 행성들 사이를 이동하는 동안 가사(假死) 상태를 유지하는데 유용한 도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음향 혁명

수세기 전, 현미경의 발명 이전에는 아무도 이상한 생명체로 가득한 미생물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또 망원경의 개발 이전의 인류는 천체에서 최소한의 희미한 빛만을 볼 수 있었다. 그 누구도 DNA의 발견과 생명의 암호를 조작하는 능력을, 우주여행의 발전과 어두운 우주의 머나먼 영역을 시각화하는 능력을 예상하지 못했다. 광학은 인류를 태양계와 우주 속에서 탈중심화했다.


음향 공학은 21세기의 광학이다. 현미경이 그랬듯이 음향 기술은 과학적 보철물처럼 기능하며 우리의 청각과 더불어 지각적, 개념적 지평을 확장한다. 우리는 음향적 의미 형성의 보편성과 소리에 대한 유기 생물의 시원적 감수성을 배움으로써 생명의 나무를 가로지르고 우주를 통과하는 새로운 소리 풍경(soundscape)을 마주한다. 음향 공학은 생명의 나무 속에서 인류를 탈중심화하며 동시에 우리를 우주와 더 긴밀하게 연결한다.


광학의 초창기였던 16세기와 17세기에 '혁명'이라는 용어는 천체들의 공전을 가리켰다. 즉 그 용어는 선형적인 진보가 아닌 순환하는 운동을, 과거와의 단절이 아닌 연대의 회복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이전의 과학적, 정치적, 경제적 질서에 대한 폭력적 파괴와 거부로서의 혁명은 18세기에 이르러서야 두드러지게 된 개념이다.


음향 공학은 새로운 의미에서의 혁명이지만 동시에 오래된 의미에서의 혁명일 수도 있다. 우리가 한때 알고 있었지만 그 이후로 대체로 무시되었거나 잊힌 것들, 즉 생명, 우주, 우리 몸의 소리가 가진 근원적 중요성으로 돌아간다는 점에서 그렇다. 세상은 우리 주위 모든 곳에서 소리를 내고 있다. 듣기를 택하고, 첨단 기술로 가능해진 새로운 데이터 음향화 기술을 발전시키면 우주와 지구 그리고 우리 자신을 새롭게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캐런 배커는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 교수다. 구겐하임 펠로우이며 하버드 래드클리프고등연구소 2022~2023 펠로우였다.



(To read the original essay and other similar essays in English, visit noemamag.com.)


‘집 없는 억만장자’로 유명했던 투자가 겸 자선가 니콜라스 베르그루엔(이젠 집을 마련해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이 설립한 베르그루엔연구소에서 발행하는 매거진. 2014년 허핑턴포스트와 파트너십으로 발행했던 월드포스트가 그 시초로, 현재는 자체 웹사이트 위주로 발행되고 있습니다. 정치적 성향은 두드러지지 않으나 대체로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국제정세, 철학, 테크놀러지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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