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생체 리듬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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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0 10:38

Noe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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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바이오리듬'이라고 기억하십니까? 1990년대에 마치 지금의 MBTI처럼 유행하던 개념인데 인체의 상태에 일정한 주기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비록 바이오리듬은 사이비과학이었지만 인체에 약 24시간 주기의 패턴이 있다는 관념(이는 동양의학의 기초이기도 합니다)은 꾸준한 연구를 통해 2017년 노벨상을 받게 됩니다.


생체 리듬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가 줄 수 있는 가능성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큽니다. 본문에서 소개하는 연구에 따르면 코로나19 백신을 오후에 맞으면 항체가 증가하는 반면 오전에 맞으면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더 높았다고 합니다. 우울증이나 치매의 완화 및 치료에도 생체 리듬을 활용하면 보다 효과적이라는 연구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는 밤샘 문화가 만연한 한국 사회의 건강 문제를 다루는 데 작은 실마리가 될 수 있습니다. 한때 '저녁이 있는 삶'이란 캐치프레이즈가 화제가 된 적 있는데 이제는 '밤과 아침해가 있는 삶'도 추구해야 되지 않을까요?


4월 14일, 한 50세 스페인 여성이 안달루시아 언덕 70미터 지하에 있던 임시 거주지에서 나왔다. 베아트리스 플라미니Beatriz Flamini는 이날까지 500일 동안 자연광도 들어오지 않고 뉴스도 들을 수 없으며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도 볼 수 없는 동굴에서 살아보는 실험을 하면서 외부와 단절되어 있었다.


(This article was produced by and originally published in Noema Magazine.)


플라미니는 암벽 등반과 등산 분야에서 유명한 익스트림 스포츠 선수로 오랫동안 "경험한 사람이 거의 없는 일"을 찾아다녔다. 그라나다대학, 알메리아대학, 무르시아대학의 시간생물학자들이 보기에 플라미니의 탐험은 하루를 구성하는 일상적인 신호의 자극을 받지 않는 인체를 관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일상 생활의 알람시계, 업무 일정, 예약은 자유롭게 흘러갈 수 있는 자연의 세계에 경직된 틀을 씌우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하지만 생태계에도 이와 비슷한 시계들이 넘쳐난다.



기원전 4세기에 알렉산더 대왕 휘하에 있던 한 배의 선장은 타마린드 잎이 밤에는 닫혔다가 해가 뜨면 열리기 시작해서 한낮이 가까워질수록 활짝 펼쳐지는 모습을 지켜봤다고 보고했다. 13세기 중국의 의서 '자오유주침경1子午流注鍼經'은 인체의 생명에너지를 뜻하는 기가 다양한 장기로 흐르면서 두 시간씩 열두 번 늘어나는 주기가 24시간마다 되풀이되는 중국 전통 의학의 원리를 설명한다.


1729년 프랑스의 과학자 장 자크 도르투 드 메랑Jean-Jacques d'Ortuous de Mairan은 미모사 푸디카Mimosa pudica 잎이 하루 동안 움직이는 양상을 연구하던 중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도 잎이 계속 움직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200년 후 독일의 동물행동학자 잉게보르크 벨링Ingeborg Beling은 동물계에서도 비슷한 주기를 찾을 수 있다고 보고했다. '벌의 시간 기억에 관하여On the Time Memory of Bees'라는 벨링의 논문은 하루의 다른 시간대에 맞게 훈련할 수 있는 집단 행동을 기술한다.


오늘날 우리는 태양의 청색 가시광선에 반응하는 망막 세포에서 입력 신호를 수신하는 시상하부의 뉴런 다발인 시교차상핵suprachiasmatic nucleus (SCN)이 인체의 중추 시계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 청색광은 수면 호르몬인 멜라토닌을 억제하고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도와주는 활성 작용이 이루어지는 시기를 조절한다.


그러나 시계가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심혈관, 신진대사, 면역, 생식 계통을 포함한 인체의 여러 계통은 저마다 활성기와 휴지기가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말초 시계2peripheral clock'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우리를 지금의 모습으로 만드는 무수한 세포와 우리 몸 속으로 히치하이킹하는 미생물도 자신만의 시계가 있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지구의 자전에 영향을 받으며 진화해 왔다. 우리가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거나, 새벽까지 파티를 즐기거나, 아침에 블라인드를 내리고 뒹굴며 시간을 보낼 때마다 각종 장기와 호르몬, 신경생리학적 과정이 대비하던 주기와 어긋나버리고 만다.

일주기 혁명

지난 몇 년 간 대중에게 일주기3circadian rhythm 과학 활용의 가능성을 알리는 팟캐스트, 건강 앱, 자기계발 SNS 영상이 급격히 늘어났다. 나로 하여금 젊고 새로운 시청자들이 이에 주목하고 있다고 여기게 만들었던 것은, 파티에 참석한 사람이 불안해하며 "내 일주기 리듬을 지키기 위해" 집에 돌아갈 계획을 세운다는 다소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밈이었다.


옥스포드대학교의 일주기 신경과학자 러셀 포스터Russell Foster 교수는 1980년대에는 비주류 과학이었던 분야가 "일주기 리듬이 생성되는 방식을 기계론적으로 정교하게 제대로 이해하는 단계"로 발전했다고 말한다. 포스터의 책 '라이프 타임: 생체시계의 비밀'은 뜻밖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책의 폭발적인 인기를 보면서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는 말한다.


한 예로 화제가 된 '최적의 아침 루틴' 유튜브 영상은 스탠포드대학의 인기 교수인 앤드류 후버만Andrew Huberman의 조언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것으로, 흐린 날에도 기상 후 한 시간 내에 야외에서 햇빛을 보기를 권장한다. 인공적인 시계 집합체를 체내에 '동조화4entrain'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 빛 노출이기 때문이다.


생화학자 울스 알브레히트Urs Albrecht와 그의 동료들이 고안한 '오케스트라' 모형의 비유를 차용해서 말하자면, 시교차상핵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비슷하다. 교향악단이 하나 되어 연주하면 조화로운 행복감이 뚜렷해지고, 기억력과 신체 기능, 면역력이 향상되며 편안하고 깊은 잠을 잘 수 있다.


"의대생 대부분은 교육을 받는 5년 동안 일주기 리듬이나 수면에 대해 들어보지도 못할 겁니다." 포스터는 말한다. 한편, "만약 내가 5년 만에 뇌졸중, [동기화된 일주기 체계의 잠재적 이점이기도 한] 암 발병 확률을 절반으로 줄이는 약을 개발한다면, 스톡홀름으로 가서 노벨상을 받게 되겠죠."


일주기 — '통틀어 또는 주기circa'와 '하루diem'의 합성어 — 라는 용어는 루마니아 출신의 과학자 프란츠 홀버그Franz Halberg고안한 것으로, 미네소타대학교에 있는 그의 연구소에서 각 주기에 따른 인체 작동을 증명한 바 있다. 하루 주기뿐 아니라 24시간보다 짧은 '아일주기ultradian'와 24시간보다 긴 '하주일infradian' 주기도 있다.


홀버그는 인간의 일주기 리듬이 내인성 — 체내에서 생성된다는 의미 — 이지만 독일의 생물학자 위르겐 아쇼프Jürgen Aschoff가 지칭한 자이트게버5zeitgeber, 즉 시간 제공자time-giver를 뜻하는 환경 신호를 따르기도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지구의 자전에 영향을 받으며 진화해 왔다. 6억 년 전 복합 생명체가 등장했을 때 약 21시간이었던 자전 주기는 달과의 중력 마찰 때문에 조금씩 늘어나 지금의 23시간 56분이 되었다. 우리가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거나, 새벽까지 파티를 즐기거나, 아침에 블라인드를 내리고 뒹굴며 시간을 보낼 때마다 각종 장기와 호르몬, 신경생리학적 과정이 대비하던 주기와 어긋나버리고 만다.


비동기화와 관련된 위험으로는 수면 부족, 소화불량, 우울증, 불안, 생식력 저하, 부상, 심장마비, 뇌졸중 위험 증가, 세균 및 바이러스에 대한 취약성 증가 등이 있다. 일주기 리듬이 교란되면 뇌의 집행기능executive function(선택적 주의력, 작업 기억, 자제력)이 저하된다. 이는 포도당불내성을 키우고 대사 증후군과 비만, 2형 당뇨병 가능성을 높이며, 이 질병들은 제각기 건강 경과를 악화시키는 것들이다. 만성 교란도 교대근무와 마찬가지로 세대 간에 유전되는 후생적 변화를 유발할 수 있다.


이 분야에서 가장 잘 연구된 직업군인 간호사의 경우 유방암, 자궁내막암, 결장암 위험이 더 높다. 다수의 암 관련 유전자가 일주기 리듬의 통제 하에 진동하고, 켜지고 꺼진다. 포스터가 '라이프 타임'에 쓴 대로, 다수의 연구에서 일주기 시스템 교란과 "유방암, 난소암, 폐암, 췌장암, 전립선암, 결장암, 자궁내막암, 비호지킨림프종non-Hodgkin's lymphoma, 골육종, 급성골수성백혈병acute myeloid leukemia, 두경부편평상피세포암종, 간세포암종 등 인체의 모든 주요 장기 계통의 암 발병 감수성 증가"의 연관성을 제시한 바 있다.


일주기 교란이 종양 성장을 가속화하는 것으로 밝혀진 암세포의 시계를 '움직일' 수 있는 약이 개발되고 있다. 포스터는 파킨슨병, 알츠하이머병, 치매와 일주기 수면 장애 사이의 강한 연관성을 통해 수면-각성 일주기 리듬 복원이 비록 처음부터 질병의 발생을 막지는 못할지라도 그 진행 속도를 낮출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다.


"수면 및 일주기 리듬 교란sleep and circadian rhythm disruption (SCRD)이 치매와 파킨슨병 증상을 악화시키기 때문에 SCRD 안정화를 치료 목표로 삼는 것이 중요하다." 포스터는 자신의 책에 이렇게 썼다.


애초에 시간생물학자 프란츠 홀버그가 관심을 가진 것은 하루 중 다른 시간대에 심장수술과 암 치료를 받았을 때 경과에 미치는 영향이었다. 즉, 그는 시간 — 더 정확히는 타이밍 —이 혹자들의 말처럼 치료 측면에서 의학과 건강, 최적능력수행의 근본 요소인 "네 번째 차원"이라고 간주되는 양상을 고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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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를 모두 멈추고

"요즘 우리 모두가 잠에 관심이 많지만 수면은 생체시계의 결과물이며, 별개의 것입니다." 시차증과 교대근무의 영향을 줄이기 위한 맞춤 행동 계획을 제안하는 기술 플랫폼 타임시프터Timeshifter의 공동창립자 겸 CEO 미키 바이어-클라우센Mickey Beyer-Clausen은 말한다.


"시차증에 시달리는 사람은 '2~3일만 아프면 되지'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장기 하나하나가 교란됩니다. 그러면 면역 기능이 약해지기 때문에 더 쉽게 병에 걸리고, 생체시계상으로는 새벽 2시일 때 스테이크를 먹어서 배탈도 날 겁니다."


타임시프터의 목표는 앱 형태와 더불어 유나이티드 에어라인, 액시엄 스페이스 같은 업체와의 제휴를 통해 과거 기록형 운동선수와 우주비행사가 전유하던 조언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바이어-클라우센은 우주여행을 "출장의 극치"라 생각해도 된다고 말한다. 우주비행사는 "출발부터 순조로워야 합니다. 시차증 극복에 나흘, 닷새씩 걸리면 안 돼요."


최대 8시간 동안 우주 유영을 하다 보면 45분마다 일출과 일몰을 보게 되면서 생체시계가 완전히 방향을 잃는다. 그래서 국제우주정거장ISS에는 새벽과 낮, 황혼을 모방한 LED 조명 시스템이 있다.


타임시프터가 제공하는 앱은 사용자가 수면을 취하고, 빛을 보고, 빛을 줄이고, 카페인이나 멜라토닌을 섭취할 시기를 창에 띄워 제안하고, 확고부동한 약속을 위해 '실용주의 필터'를 지원한다. 장거리로 비행할 때는 출발 며칠 전에 생체시계에 조금씩 '변화'를 줘야 한다. 최정상 운동 선수들은 이 방식으로 대회 출전 준비를 한다.


포뮬러 원Formula 1 지원 팀은 경기 며칠 전부터 드라이버와 함께 경기장 시간대에 맞게 생체 리듬을 바꾼다고 알려져 있다. 화성 탐사선 승무원들은 우주 비행을 하는 동안 지구보다 하루가 40분 정도 긴 화성의 시간에 맞춰 살면서 주변 환경의 주기를 점진적으로 벗어난다. 베아트리스 플라미니는 동굴에서 나온 후 기자 인터뷰에서 무한성은 멋진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6월 BBC 방송에서 심경을 밝혔다. "아직도 동굴 생각에 슬퍼요."


생체시계의 메커니즘 개입은 신기한 결과를 낳았다. 각성 시간이 길어지면 일시적으로 우울증이 완화되는 것이 발견되었고, 글래머Glamour 매거진에 따르면 '암실 수련6darkness retreat'이 유행이라고 한다. 우리 대부분이 최고의 등산가가 아니고, 주변 세상과 동기화되지 않은 신체가 잘 살아가기는 힘들지만, 외부 신호가 없어도 내부 동기화는 가능하다.


2019년, 작가 겸 사진작가인 맷 콜쿤Matt Colquhoun은 약물저항양극성장애 환자를 대상으로 한 실험 치료인 '삼중 크로노테라피triple chronotherapy'에 참여했다. 이 요법을 처방한 의사에 따르면 크로노테라피는 19세기 독일의 한 교사가 밤새 자전거를 타서 우울증을 일시적으로 치료할 수 있었다는 보고 사례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1976년, 튀빙겐대학의 부크하르트 플루크Burkhard Pflug 박사는 우울증 완화를 위해 수면 박탈7sleep deprivation 환자를 대상으로 한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치료 결과 단기적으로는 '눈에 띄게 개선'되었지만 — 재발률도 높았다.


수십 년 후 밀라노 소재 산 라파엘레 병원의 의료진이 '삼중 크로노테라피'라는 프로토콜을 개발했고, 리튬8, 수면 박탈, 일정한 시간의 빛 노출이 프로토콜에 포함되었다. 2019년 런던에서 이 요법을 시험했을 때는 리튬이 제외되었다. 대신 환자들은 다음날 오후 5시에 잠들기까지 — 감독 하에 — 밤새 깨어 있어야 했다.


코로나19 백신의 접종 시간대와 부작용 보고를 연구한 논문에 따르면 오후에 백신을 접종하면 항체 형성이 증가했지만 오전 6~11시에 접종하면 비알레르기성 부작용이 증가했다.


일정표를 보면 2일차부터 5일차까지 4일간 저녁마다 취침 시간을 두 시간씩 늦춰 오후 11시-오전 7시 주기를 고정한다. 매일 아침 일곱 시에 환자들은 밝은 빛을 봐야 했고, 취침 두 시간 전에는 호박색 안경을 써야 했다. 이후 6개월 동안 오전 7~9시까지 아침 밝은 빛 요법morning bright-light therapy을 실시했다.


콜쿤이 참여했던 실험을 주도했던 데이빗 빌David Veale은 웹사이트에 "마치 Ctrl-Alt-Delete 키를 눌러서 내부시계를 재시작하는 것 같았다"고 기술했다.


콜쿤은 치료 직후 블로그에 글을 썼다. "2년 동안 이렇게 기분 좋은 적은 없었고, 내 모든 일상이 한순간에 바뀌었다." 내가 최근 참여자들에게 확인했을 때, 이들은 내게 프로토콜을 반복하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이유를 설명했다. "내게 기적이 일어났고 통제된 실험 환경에서는 매우 유용했지만 지도를 받지 않고 내 수면 패턴을 조정하는 것은 꺼려지더군요. 모든 게 잘못될 수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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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치유책

2016년 발표된 한 무작위 이중맹검 시험에서는 매일 아침 30분씩 햇빛을 보는 게 같은 기간 동안 프로작9Prozac만 복용하는 것보다 우울증의 주요 증상 치료에 더 효과적이었다는 결과가 나왔다. 두 가지를 결합했을 때 치료 효과가 가장 높았다. 야외 태양광의 조도 범위는 매우 넓어서 흐린 겨울날에는 1000럭스부터 여름철에는 10만럭스에 달한다.


반면 실내 조명의 조도는 보통 최대 수백 럭스 수준이다. 터무니없을 정도로 조명이 과한 수퍼마켓도 1000럭스를 넘기지 않는 편이다. 이 모든 사실을 종합해보면 우리는 가을에 낮이 짧아질수록 야외에서 보내는 시간을 줄이지 않고 오히려 늘려야 한다.


가능한 범위 내에서 우리 몸이 가장 준비되어 있는 매일의 리듬에 맞춰 하루 계획을 짜면 우리의 심리 상태만 도움을 받는 것은 아니다. 하루 중 약을 먹는 시간대가 약의 효과에 뚜렷한 영향을 준다는 증거가 늘고 있다.


수학적 분석을 통해 시간대와 수면-각성 주기, 생체시계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엘리자베스 클러먼Elizabeth Klerman 하버드대 의과대학 신경과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이미 시간을 맞춰 먹어야 하는 약을 최소 두 개는 알고 있습니다. 스타틴은 밤에, 스테로이드는 아침에 복용해야 하잖아요."


콜레스테롤은 보통 자정-오전 6시 사이에 증가하기 때문에 단기간(4~6시간 동안) 작용하는 스타틴은 콜레스테롤이 생성되는 밤시간에 맞춰 취침 전에 복용하는 것이 좋다. 한편 코르티솔은 기상 후 한 시간 내에 38~75% 증가한다. 취침 전 아스피린을 복용하면 혈소판 응집으로 원치 않는 혈전이 생길 가능성이 줄어들고,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에 체온과 혈압이 상승하면서 보다 흔하게 발생하는 심장마비뇌졸중을 방지할 수 있다.


보스턴 브리검 여성병원에서 27년을 근무한 클러먼은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에서 수면 및 일주기 과학을 신경학, 정신의학, 약물 남용, 소아과, 마취 분야 전반에 적용하는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이 병원은 2021년 처음으로 직원에게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면서 시간대를 기록하고 보고된 부작용에 대한 피드백을 수집했다. 클러먼이 공저자로 참여한 논문 두 편에 따르면 오후에 백신을 접종하면 항체 형성이 증가했지만 오전 6~11시에 접종하면 비알레르기성 부작용이 증가했다.


"시간대별 효과를 걱정하는 것보다는 사람들이 접종하게 하는 게 훨씬 중요하지만, 부작용을 우려하거나 같은 날 사랑하는 이들을 돌봐야 할 분들에게는 고무적인 결과일 겁니다." 클러먼의 말이다.


이러한 유형의 연구는 신약개발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설치류를 실험 대상으로 이용하는 사례를 생각해 보자. 임상 전 검사에서는 인간과 해부학적, 생리적, 유전적(99%)으로 유사한 생쥐를 사용한다. 그러나 생쥐는 야행성 동물이다.


2020년에 발표된 한 연구는 뇌졸중 발생 시 신경 사멸nerve death을 줄이는 약의 사용을 설명했는데 생쥐가 수면위상일 때 치료 효과가 가장 높았다 — 이때는 실험실이 문을 연 시간이다. 밤에 약을 투여한 후에야 사람에게도 같은 결과가 나타났다.


"잘못된 일주기 시간에 실험했기 때문에 효과가 없는 약이나 개입이 있을 겁니다." 클러먼은 설명한다. "당신이 제약회사이고 시간대별 효과가 있다고 증명할 수 있다면, 부작용이 가장 크거나 적은 시점에만 실험해야 해요."


2017년, 제프리 C 홀Jeffrey C Hall과 마이클 로스배시Michael Rosbash, 마이클 W 영Michael W Young은 생체시계를 작동하는 분자 기전을 발견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이 기전은 단백질이 생성되어 세포 주위를 돌아다닐 때 유전자의 전원을 켜고 끄는 멋진 피드백 고리이다.


생체시계 유전자 변이는 식욕과 수면, 호르몬 조절에 엄청난 문제를 일으킨다고 알려져 있다. 편두통은 하루 중 같은 시간, 심지어 연중 같은 시기에도 생긴다고 보고된다. 증상이나 위험이 가장 높을 것으로 보일 때 작용하는 약이나 치료법을 고안해야 한다.


피부는 우리 몸에서 제일 큰 장기—면역 방어에 반드시 필요한 무기—이고 자외선, 박테리아, 바이러스, 오염물질을 버텨내는 낮시간에 행동이 달라진다. 밤에는 피부가 탈피와 재생을 반복하여 모공이 커지기 때문에 외부 침입자에게 더 취약해진다.


시간에 따른 화학 요법은 활용 잠재력이 엄청난 또 하나의 영역이다. 인체의 거의 모든 세포가 24시간 주기 분자 시계로 작동하고 해독과 DNA 복구 등을 통제하기 때문에 양성 숙주 조직 세포의 회복 확률이 가장 높은 시간대에 치료제를 투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수의 연구 결과 화학 요법 치료 시기가 필요한 복용량, 부작용의 중증도 및 재발 가능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이미 의료 시스템이 부담을 안고 있는 상황에서 의사와 간호사의 요구 사항—예를 들어 정교한 작업에 필요한 밝은 조명—이 이들에게 의지하는 환자들의 일주기 리듬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을 것이다. 타임시프터가 제공하는 방식처럼 계획을 활용해서 환자의 내부시계를 고치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 화학치료제를 자동으로 전달하는 타이밍 펌프도 또 다른 대안이다.

크로노디자인

수업 시작 시간을 늦추면 수면 시간이 늘어나고, 낮시간 졸음이 줄어들고, 우울증이 완화되고, 시험 성적이 향상된다는 증거가 있는데도 미국과 싱가포르, 독일의 고등학교 대부분이 오전 8시 30분 전에 등교한다. 병원과 요양원에서는 특히 치매 환자의 경우처럼 주기적인 빛 노출과 운동이 수면을 돕고 상태가 호전될 수 있는 여러 수단을 고려하지 않고 환자가 실내에 머물기를 요구할 때가 많다.


그러나 일주기 리듬이 인간의 건강에 가지는 중요성을 시사하는 과학적 문헌에 자료가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새로운 지식에 따라 급진적으로 변하는 우리의 능력을 회의적으로 보게 되는 것은 바로 일광 절약 시간제 때문이다.


"시간생물학자들은 일광 절약 시간제10daylight saving time (DST)를 적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에 이견이 없습니다." 러셀 포스터의 말이다. 일광 절약 시간제는 낮시간의 피로, 정신 건강 문제, 수면 부족과 연관성이 있다. 봄에 시간을 앞당긴 주에는 심장마비, 뇌졸중, 직장 내 부상, 치명적인 교통사고 보고 사례가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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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상가상으로 같은 해 나머지 6개월은 태양의 위치와 어긋난 상태로 보내게 된다. 이 방식이 에너지를 절약한다는 주장은 오래 전에 틀렸음이 입증되어 과학계에서 만장일치 의견을 보였음에도, 많은 국가들이 이 실수를 고칠 대책 없이 해당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아이슬란드, 아르헨티나, 브라질, 카자흐스탄, 러시아 등의 국가가 일광 절약 시간제를 폐지했다. 2018년 유럽연합의 조사 결과 460만 명에 달하는 대다수의 참가자가 일광 시간 절약제 폐지에 압도적 찬성 표를 던졌지만 아직 실행되지는 않고 있다.


놀랍게도 미국에서는 표준 시간대 대신 일광 절약 시간제를 영구적으로 유지해서 1년 내내 시민들이 태양과 어긋난 생활을 하게 하려는 '2023년 일광보호법Sunshine Protection Act'이 발의되기도 했다.


한편 중국은 다섯 가지 시간대가 적용되는 영토가 동서로 5천 킬로미터 가까이 걸쳐 있음에도 여전히 단일 시간대를 고수한다. 그래서 중국의 (일상 생활 조율에 사용되는) 사회적 시계 대부분이 태양이 정오에 가장 높이 떠 있는 베이징의 자연 시계와 일치한다. 그 결과 중국 서쪽 끝에 있는 도시인 카슈가르는 일출 시간이 베이징보다 2시간 반 늦다.


뮌헨에 있는 루트비히-막시밀리안 대학의 시간생물학자 틸 뢰네버그Till Roenneberg는 '사회적 시차증11social jet lag' 개념과 연관지어 폴란드 동부에서 스페인 서부에 이르는 유럽의 단일 시간대를 연구했다. 2차세계대전 중 독일이 룩셈부르크, 벨기에, 프랑스를 점령할 때까지, 이 국가들은 그리니치 표준시를 사용하면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영토 대부분이 영국 서부 쪽을 향해 있던 나치 동맹 스페인도 마찬가지다. 뢰네버그는 중부 유럽 표준시를 채택한 국가에서 새벽빛을 보는 시간대에 따라 사람의 크로노타입—쉽게 말해 아침형 인간과 야행성 인간 사이의 차이를 뜻한다—이 바뀐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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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 뷰트너Dan Beuttner는 지구에서 장수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을 탐색하는 블루존 프로젝트Blue Zones project에서 주로 식단, 공동체 생활, 운동이 장수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에 집중했다. 그런데 이탈리아 사르데냐, 일본 오키나와 사람들은 해가 뜰 때 일어나고 해가 진 후 너무 늦지 않게 잠들기도 했다. 타임시프터의 바이어-클라우센은 말한다. "이들은 매일 일과가 상당히 비슷합니다. 제 생각에는 분명히 식단, 운동, 일주기 안정성이 장수와 건강의 세 가지 중요 비결일 겁니다."


행동과 소화, 수면, 맑은 정신 상태, 장수를 좌우하는 것은 아침의 청색 가시광선이 가진 특수한 파장이다(흥미롭게도 한낮의 중간 시간은 시계를 움직일 만큼 동일한 능력이 없는 일주기 '데드존'으로 간주된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삶을 개선할 수 있는 일주기 과학의 힘을 이해한다면, 하루의 시간대마다 빛이 들어오게 하거나 빛을 차단할 수 있는 건물의 설계 방식이나 각종 교대근무자를 위한 건강 복지와 적절한 보상을 의무화하는 노동법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바이어-클라우센의 말을 들어보자. "오늘 밤 11시에 싱가포르에 전화를 걸어 두 시간 동안 통화를 할 예정인데요, 저는 대처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같은 시간에 일어나 햇빛을 보고 나중에 낮잠을 자면 됩니다. 세상은 바뀌었고, 우리에게는 교대근무자가 필요합니다. 자신의 생체시계를 인지하고 최선의 방식으로 상황에 대응해야 합니다."


아침 햇빛을 보는 것이 일주기 시스템과 동조화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기 때문에, 바이어-클라우센은 잠시 수면을 박탈당해도 내부시계는 계속 일치하는 상태라고 장담한다. 짧게 낮잠을 자면 도움이 될 수 있으며 다른 곳에 가지 않아도 더 편하게 새로운 시간대에 진입할 수 있다.


270여 년 전 스웨덴의 식물학자 칼 린네Carl Linnaeus는 꽃잎이 열리고, 닫히고, 고유의 향을 내는 시간대에 맞춰 식물 종을 배열한 '꽃 시계flower clock'를 제안했다. 이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지만 많은 원예학자들이 생태적 동기화의 꿈에 끌려 수년 간 이 시계를 되살리려고 애썼다.


올 가을 애플워치 사용자는 건강 앱에 햇빛을 쬔 시간이 포함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한편 전 연령대의 사람들이 이른 아침에 사회 활동을 하는 방향으로 바뀌는 추세다. 린네가 구상한 정원처럼, 크로노디자인, 크로노테라피, 시간윤리학이 병원과 학교, 가정과 직장에서 활용된다면 우리의 생명 활동과 더 조화를 이루면서 적응력을 높이는 보편적인 기준선을 제안할 수 있다.


생명은 예정된 시간을 늦출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 그리고 밤에 잠을 못잘 만한 이유는 차고 넘친다고 — 생각하면 마음은 편하겠지만, 문명 세계와 자연계가 모두 시간을 안다면 정상 궤도로 복귀하기가 훨씬 쉬워질 것이다.



필립 모건은 런던과 베를린을 오가며 활동하는 작가이자 연구자로 과학, 테크놀로지, 기후변화, 패션, 식문화에 대해 BBC, 가디언 등에 기고했다.



(To read the original essay and other similar essays in English, visit noemamag.com.)


‘집 없는 억만장자’로 유명했던 투자가 겸 자선가 니콜라스 베르그루엔(이젠 집을 마련해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이 설립한 베르그루엔연구소에서 발행하는 매거진. 2014년 허핑턴포스트와 파트너십으로 발행했던 월드포스트가 그 시초로, 현재는 자체 웹사이트 위주로 발행되고 있습니다. 정치적 성향은 두드러지지 않으나 대체로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국제정세, 철학, 테크놀러지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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