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이슈

무엇이 여성을 '웰니스' 집착으로 몰아넣는가

웰니스 업계는 우리의 모든 스트레스와 증상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에게 '웰빙'이 요원한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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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Maria Medem/The Guardian

2023.12.22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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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한국에서도 열풍이었던 '웰빙' 산업은 근래에는 '웰니스'란 이름 아래 서구 시장에서 확장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그 성장세가 두드러지지 않지만 적어도 건강과 미용에 연관된 분야에서는 SNS를 통해 서구의 트렌드가 빠르게 번지는 걸 볼 수 있죠(인스타그램을 보고 '오일 풀링' 같은 걸 해본 독자들도 적지 않을 겁니다). 라이프스타일 트렌드 대부분이 으레 그렇듯 웰니스 트렌드도 주로 여성들을 통해 확산됩니다. 물론 여성들이 이런 분야에 보다 관심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여기서 소개하는 가디언 기사는 특히 여성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우는 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이를 구조적으로 푸는 대신 개인의 '자기계발'로 해결할 것을 채근하는 사회를 지적합니다. 여러 제반 조건이 서구와 크게 다르지 않은 한국에서도 곧 여기서 소개하는 각종 웰니스 상품들이 만연하게 될 것입니다. 이 기사를 읽으면서 미리 대처해 볼 시간을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5년 전 어느 날 오후, 내 얼굴이 풍선처럼 부풀었다. 입술은 타이어처럼 너무 두꺼워져서 말을 못할 지경이었다. 응급실에서 에피네프린, 스테로이드, 항히스타민제를 혼합 투여해서 얼굴 붓기를 가라앉힌 의사들은 왜 더 빨리 오지 않았냐며 나를 꾸짖었다. 질식사할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어떤 노출과도 뚜렷한 연관성이 없어 기이한 사건이었지만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 이후로 피부에 혹이 생기더니 팔다리에 솟아올랐다 가라앉았다. 손목에는 골프공만 한 혹이, 엉덩이에는 자몽만 한 혹이 생겼다. 손가락은 소세지만큼 두꺼워졌고 입술도 부풀었다. 나는 저녁 약속을 어기고 회의에 빠지고 여행을 미루는 데 점차 익숙해져 갔다. 아이들은 '엄마의 괴물 같은 얼굴'을 흉내내듯 볼을 부풀리며 무시하는 방식으로 애써 무서움을 감추었다.


이름 모를 증상이 있을 때 도움을 받기는 쉽지 않지만, 나는 알러지, 면역학, 류머티즘, 소화기 전문의들을 찾아다녔다. 유리병에는 혈액을, 용기에는 대변을 채웠다. 그러나 이 전문가들은 각자의 전문 지식에서 한계에 도달했고 진단을 내리지 못한 채 나를 다음 전문가에게 넘겼다.


이렇게 나는 조금씩 '웰니스1wellness'의 숲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주류 의학이 답을 내놓지 못하는 분야에 대해서도 웰니스 산업은 답이 넘쳐난다.


내 건강보험이 일부라도 적용되는 것으로 좁혀진 병원의 소속 의사 목록을 보던 중, 나는 기능의학2, 신체 요법,3 부티크 업체, 다이어트 코치의 형태로 갖춰진 솔루션의 세계를 발견했다. 이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전통적인 의료 서비스를 곤혹스럽게 만들었고, 내 증상을 완화하는 것은 물론이고 근본 원인을 치료하고 완전히 없애 준다고 약속했다.


이러한 정보를 통해 알게 된 것은 내가 독성 염증, 히스타민 불내증, 곰팡이 노출, 닭고기와 조개와 초콜릿에 대한 민감증, 휴면 상태인 라임병4, 중금속 중독, 모성, 잠복 중이었다가 새로 깨어난 트라우마, 과도한 스트레스, 수면 부족, 영양 결핍을 앓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알약과 가루약,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상담과 더불어 채소, 수프, 당연히 마음챙김5mindfulness까지 공들여 조합하면 나아질 것이란다.


'웰니스라는 이름의 복음The Gospel of Wellness'을 쓴 저널리스트 겸 작가 리나 라파엘Rina Raphael은 말한다. 웰니스 산업은 "확신을 주면서 대중을 제대로 끌어모은다. 이들은 말한다. '당신을 확실하게 도와줄 수 있어요. 이 보조제는 증상을 제대로 치료해줄 거예요. 이 식단을 실천하면, 통증이 싹 사라질 겁니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오늘날 웰니스는 다이어트와 피트니스부터 직장 내 회복탄력성 프로그램, 맞춤형 정맥주사6, CBD7를 함유한 스킨 크림에 이르기까지 형태가 분명하지 않은 거대 산업을 통칭한다. 웰니스 산업은 요가와 약초처럼 전통적인 것들을 차용하여 부유한 소비자들을 겨냥해서 매력적으로 바꿔 놓은 행위들로 가득 차 있다. '누구를 위한 웰니스인가?Who is Wellness For?'의 저자 파리하 로이신Fariha Róisín은 이런 행위들이 상품화되고 빈번히 리브랜딩되어 히스패닉, 흑인, 토착 문화로부터 얻은 원천을 모호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이 업계는 진정성, 진실, 의미 같은 말을 과시하듯 쓰지만, 이 용어들은 산업에서 의존하는 채집 활동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로이신은 주장한다. (예를 들어 아침 명상 의식의 배경이 된 문화에 대해서 들어보거나 라떼를 황금빛으로 만들어주는 강황에 들어가는 노동에 대해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업계에 포함시키는 것이 합당한 부문에 따라 업계 규모가 달라지겠지만, 이 분야를 들여다 보면 거의 모든 것을 포함한다고 해도 무방하다. 올해 11월 카타르에서 열린 글로벌 웰니스 서밋Global Wellness Summit의 주제에는 스파와 영성spirituality처럼 흔히 거론되는 분야뿐 아니라 관광, 기술, 부동산, 디자인도 포함되었다. 비영리단체인 글로벌웰니스협회Global Wellness Institute의 2019년 보고서에 따르면 웰니스 산업의 시장 규모는 4조4천억달러에 달한다. 2021년 닐슨 IQ 보고서는 건강 및 웰니스가 "가장 강력한 단일 소비력을 지닌 분야"라고 선언했다.

어떤 이들에게는 웰니스가 열망이 담긴 강박에 가깝고, 또 다른 이들에게는 종교적 교리와 같다. (리나 라파엘, 저널리스트 겸 작가)

이 업계에서 판매되는 것은 신뢰할 수 있는 상품(걷기)부터 좀 터무니없는 상품(크리스털 딜도), 약탈적이고 위험한 상품(암을 치료할 수 있다는 피마자유)까지 다양하다. 라파엘에 따르면, 예전의 '건강하다'는 의미는 착실하게 의사를 찾아간다는 뜻이었지만 지금은 병과 슬픔, 스트레스, 심지어 죽음마저도 극복해야 한다는 임무를 끝없이 부과한다. 그는 이렇게 썼다. "어떤 이들에게는 웰니스가 열망이 담긴 강박에 가깝고, 또 다른 이들에게는 종교적 교리와 같다."


그러면서도 라파엘은 이러한 믿음의 기저에 놓인 긴장 관계를 지적한다.


우리가 웰니스를 추구하는 동시에 스스로 웰니스에 금전적으로 얽매여 있음에도, 건강 지표는 형편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의료 서비스 지출 비중이 GDP의 18%를 넘어가는데도 다른 고소득 국가에 비해 미국인들은 출생 시 기대 수명이 낮고, 피할 수 있거나 치료 가능한 질병으로 인한 사망률은 더 높다. 미국 성인의 5명 중 1명 이상은 정신질환을 가진 채 살고 있으며, 연구 결과에 따르면 미국 노동자가 세계에서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는다고 한다.


라파엘은 이렇게 말한다. "미국은 자기돌봄self-care의 나라가 되었지만 여전히 웰빙의 기초가 부족한 것은 분명하다."


어쩌다 이런 곤경에 처했을까? 한 가지 답은 현대인의 삶에 요구되는 것들에서 찾을 수 있다. 라파엘이 평가하기에 이러한 요구는 특히 여성에게 떠넘겨지고, 인종과 계급, 성적지향에 따라 더 많은 부담이 전가된다.


어떻게 봐도 라파엘이 중점적으로 취재한 미국인 여성들에 대한 압박은 과도한 수준이다. 이들은 남성에 비해 스트레스, 불안, 우울증, 번아웃 수치가 높으면서도 돌봄 노동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여성들은 식료품비가 치솟는 와중에도 가족을 부양하는데 코코아 파우더에는 카드뮴이 들어있다.


이런 불균형과 함께 수반되는 것은 몸을 건강하게 하고, 평정심을 발휘하고, 충동(배고픔, 분노)을 정복하고, 이중잣대를 충족시키는 고충에 통달해야 한다는 익숙한 압박이다. 이렇게 기대치가 비대해진 영역에서 웰니스가 여성들에게 즉각적으로 팔릴 만한 시장을 발견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라파엘은 자신의 추론을 한 단계 진전시켜 웰니스가 새로운 형태의 신앙으로 변모했다고 주장한다. 조직화된 종교가 일상 생활에서 물러나고 웰니스의 물결이 그 공백을 채웠다는 것이다. "웰니스는 소속감, 정체성, 의미, 공동체를 제공한다. 이 모두는 예전에 동네 교회나 유대교 회당에서 사람들이 찾던 것이다. 웰니스가 눈앞에서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다." 웰니스는 자신을 통제할 수 있고 자율권empowerment이 생겼다는 환상을 가져다준다. "열심히 일하고 적절한 상품을 구입하면 질병과 노화, 그리고 당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나쁜 것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라파엘의 말이다.


당신이 운전대를 쥐고 있다는 믿음은 끊임없이 범람하는 기술, 소리 지르는 아이들, 불타는 지구에서 잠시 한숨을 돌리게 해 준다. 그러나 이 또한 환상이다. 가장 잘 짜놓은 다이어트 계획, 운동, 금주는 건강상의 결과에 작은 비중만 차지할 뿐이다. 깨어 있는 시간 내내 밀려드는 일, 하늘을 삼켜버리는 주황색 안개, 당신의 수입이나 피부색에 따라 편향된 위험과 기회 같은 시스템적 요인에 비하면 이 요인들은 무색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자주 인용되는 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건강의 사회적 결정 요인–대기질, 국내 안전, 지역사회의 지원과 교육 접근성–이 건강상의 결과에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80%에 달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웰니스 마케팅에서 이런 현실은 깔끔하게 지워진다.


콜린 더카치Colleen Derkatch는 자신의 책 '웰니스는 왜 돈이 되는가Why Wellness Sells'에서 말한다. "웰니스는 점차 위기 속에서 살게 될 삶에 언제나 존재한다." 더카치는 웰니스가 집단적, 사회적 병폐를 개인이 소비자 행동의 신비로운 힘을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로 제시한다고 주장한다. 분명 노조 가입이 다른 명상 앱을 다운로드하는 것보다 더 이로운데도 웰니스 시장은 후자가 일 관련 스트레스와 갈수록 나빠지는 정신 건강에 합당한 해결책이라고 내세운다.


라파엘의 말을 들어보자. "우리는 여성들에게 소비주의적인 자기돌봄이라는 진정제를 놓고 있다. 요가를 맘껏 하지 않았거나 거품목욕을 못했다고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는다. 스트레스를 받는 데는 더 큰 이유가 있다. 출산 수당을 받지 못해서일 수도 있고, 오후 6시가 지났는데 상사가 이메일을 보내서일 수도 있고, 파트너가 집안일을 도와주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웰니스는 이런 문제를 외면하면서 오히려 당신 스스로, 혼자서 문제를 처리해야 한다고 말한다."




웰니스가 오늘날 거대 산업으로 급성장한 또 하나의 이유는 우리가 수동적인 소비자가 아니라 자기 최적화에 능동적인 참여자이기 때문이다. 토론토 메트로폴리탄대학교에서 수사학rhetoric을 가르치는 더카치 교수는 웰니스의 언어와 발상이 우리의 삶에 스며들게 된 양상을 분석한 바 있다.


소셜 미디어와 계산대 앞의 잡지부터 HR 부서가 태평하게 보낸 이메일까지, 우리는 '몸 건강'하고, 우리의 웰빙을 지키고, 시들해지는 생산성과 기분을 끌어올릴 '묘책'도 사용하라는 메시지 공세를 받는다. (한 예로 내가 소화기 의사에게서 방금 받은 대변 샘플 용기가 담긴 비닐봉지에는 '매일을 기념'하고 '즐거움을 키우'라고 촉구하는 문구가 쓰여 있다.) 더카치는 사람들이 끝없이 자가점검self-monitoring하고 감시하는 쳇바퀴 같은 삶을 반복하면서, 젊고 활기 넘치던 과거의 모습을 추구하고 미래에 도사리는 취약함을 이겨내도록 강요받는다고 주장한다.


지금은 건강하다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신체의 쇠약은 서서히 진행되는 노화, 마이크로바이옴8 불균형, 호르몬 저하의 형태로 우리 앞에 엄습한다. 언젠가 우리의 운동 능력, 모발의 윤기, 근긴장도, 성욕이 줄어드는 날이 온다. 그리고 이 모두를 되찾을 수 있다는 신기루 같은 희망도 우리를 찾아온다.


더카치는 말한다. "웰니스의 모든 언어는 목표 지점을 더 멀리,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밀어내는 방식으로 고안된다. '나 이제 건강해'라고 말할 수 있는 지점에는 절대 도달할 수 없다. 우리가 할 일이 항상 남아 있다." 그 결과, 잃어버린 것들을 완전히 되찾기는 절대로 불가능한데, 도달해야 할 개선점은 늘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에 쉴 틈이 있을 수 없다.




내가 웰니스의 세계를 돌아보니 가장 많이 언급되는 건강의 적은 스트레스였다. 내가 내면의 동요만 통제할 수 있다면 예상치 못했던 피부의 가혹한 증상으로 스트레스가 분출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더 많은 마음챙김 연습을 내 일상 루틴에 포함하라는 말을 듣고 또 들었다. 요가는 명상과 마찬가지로 자랑스러운 내 웰빙의 동맹군이었다. 피상적으로 보면 매트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내면 성찰 습관을 기르는 것이 아주 좋아 보인다. 그러나 그 자체로 유익하다고 여겨지는 웰니스 행위는 거의 없다. 예를 들어 다이어트는 균형잡힌 영양이 중요하지 않고 대개 보다 날씬해지기 위한 규범이며, 따라서 사회적으로 더 인정받는다는 의미를 가진다. 환각제는 초월감을 얻기 위한 것이며 미래기술 벤처사업을 구상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오르가즘 역시 단순히 쾌락의 끝이 아니라, 안색을 좋게 하고, 자신감을 높이며, 활력 있게 재정적 여유를 드러내는 수단이다.


칼 세데르스트룀Carl Cederström과 앙드레 스파이서André Spicer의 책 '웰니스 신드롬The Wellness Syndrome'에 따르면 웰니스는 일종의 도덕적 의무가 되었다. "우리는 소비자로서 웰빙을 극대화하기 위한 라이프스타일을 스스로 기획해야 한다. 집에서 설거지를 하는 지루한 일을 할 때도 마음챙김을 강화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심지어 빵 굽는 일도 웰빙을 키우는 수단으로 새롭게 제시된다."

우리는 소비자로서 웰빙을 극대화하기 위한 라이프스타일을 스스로 기획해야 한다. (칼 세데르스트룀, 앙드레 스파이서)

이러한 생각의 기저에는 기분 좋은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우리는 늘 더 많은 것을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사회비평가 바버라 에런하이크Barbara Ehrenreich는 '건강의 배신Natural Causes'이라는 자신의 책에서 '웰니스 유행병'으로 진단한 현상을 조롱했다. 에런하이크가 보기에 자아에 대한 우리의 의무는 끝없는 의무의 채찍질로 변질되고 말았다. 더 나은 내가 되고 더 잘 살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심신을 개선시키기보다 오히려 우리를 위협하여 장악한다. 에런하이크는 이렇게 썼다. "비통한 심정으로든 체념하는 심정으로든 죽음을 ... 늦추기 위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아니면 좀 더 현실적으로, 삶이란 영원한 비존재 상태의 일시적 중단일 뿐이며, 우리를 둘러싼 경이롭고 살아 있는 세상을 관찰하고 그것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짧은 기회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가 웰니스에 대한 의무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그 삶이라는 기회에 초점을 맞춰야 하지 않을까?




웰니스 업계엔 자신만의 진심으로 반짝이는 사기꾼, 가짜 약 판매자, 인플루언서가 넘치지만 웰니스가 제공하는 많은 것들이 실질적이고 긴급한 요구에 부합한다. 병들고, 스트레스에 찌들고, 고립된 미국인들은 개인의 삶과 세계 질서가 언제든 매몰될 수 있다는 불안을 해결하려고 한다.


더카치는 진정한 웰니스에는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 메뉴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즉, 조제약을 천연 제품으로 대체하거나, 수돗물에 독이 숨겨져 있는지 검사하거나, 회복탄력성 워크샵을 신청하는 게 웰니스는 아니다. "진짜 웰니스는 우리가 잘 지낼 수 있는 조건을 갖추는 것이다." 더카치의 말이다. 사회적 지지, 접근성 좋고 환자에게 공감하는 의료 서비스, 준수한 업무 환경, 알맞은 가격에 영양가 높은 식품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공급처가 우리에게 필요한 조건이다.

진짜 웰니스는 우리가 잘 지낼 수 있는 조건을 갖추는 것이다. (콜린 더카치, 토론토 메트로폴리탄대학교)

진정한 웰니스를 추구한다면 잘 산다는 의미에 대해 뿌리박힌 가설에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오늘 우리가 불행하다면 어딘가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이는 비교적 최근에 생겨난 생각이고, 이런 생각이 꼭 기분을 나아지게 해주지도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보통 수준의 만족감 상실에도 고통스러워 한다. 칼 세데르스트룀은 말한다. "우리는 문화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좌절에 대처하는 능력이 뛰어났지만 지금은 모든 좌절을 원래 상태로 빠르게 돌아가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도록 강요받는다."


우리가 웰니스의 잠재력을 온전히 활용하려면, 항상 건강해야 하고 기운 넘쳐야 하며, 그렇게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환상을 버려야 할 것이다. 겉만 번지르르한 또 다른 약속에 희망을 걸기보다 우리를 아프고 좌절하게 하는 상황에 맞서는 것이 훨씬 건강한 일일지도 모른다.


최근 몇 달 동안 나는 이름 모를 병에 새롭게 접근해 보았다. 비싼 알약과 가루약은 서랍 아래칸에서 썩어가게 두고, 시간을 들여 데이터를 기반으로 상담하고 합리적인 기대를 할 수 있게 도와줄 전문의를 찾았으며, 소수의 사람들과 교류를 통해 각자의 몸이 부어오르는 기이한 병치레 경험을 공유하면서 고립된 무력감을 완화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특혜를 받은 동시에 공허한 치유법에 수천 달러를 쏟을 만큼 좌절을 겪은 사람으로서, 웰니스 산업이 제안할 것들에 대한 믿음을 버리고 해결책은 우리 자신 밖에 있다는 확신을 되찾은 것이 도움이 되었다.


1821년 창간된 영국의 대표적인 진보 성향 일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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