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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행의 극대화'를 추구하던 도덕철학이 코인거래소 FTX와 함께 '파산'한 사정

샘 뱅크먼-프리드와 '효율적 이타주의'의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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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PADO, Bing Image Creator /사진=Sam Deere (CC BY-SA 4.0 DEED), 로이터=뉴스1

2023.11.03 13:38

New States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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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세계적인 암호화폐 거래소 FTX의 파산은 투자자들의 재산은 물론이고 암호화폐 업계 전반에 큰 타격을 입혔습니다. 창업자 샘 뱅크먼-프리드는 11월 3일 사기와 돈세탁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고 최대 110년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별로 거론되지 않았지만 글로벌 주요 매체들은 파산 당시 FTX와 밀접한 관계에 있던 '효율적 이타주의' 학파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샘 뱅크먼-프리드가 열렬한 효율적 이타주의 신봉자였고 이 학파에 엄청난 물질적 지원을 해왔는데 관련 기구의 이사진에 대거 포진해 있던 학파의 주요 인사들이 과연 FTX의 사기행각에 대해 모르고 있었느냐는 겁니다.


그러나 효율적 이타주의의 문제는 단지 샘 뱅크먼-프리드와 FTX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보통 'EA'라는 약자로 통용되는 이 사상은 실리콘밸리와 미국 명문대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앞으로도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례로 챗GPT의 오픈AI를 비롯한 주요 AI 기술 기업들이 모두 EA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고 자신들의 기술 발전 방향에 EA를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EA 사상은 특히 장래가 촉망되고 포부가 큰 청년들에게 상당한 매력을 발휘합니다.


PADO는 특히 미국에서 영향력을 확대해가고 있는 효율적 이타주의 사상을 독자들께 소개할 기회를 찾고 있었는데 많은 관련 기사들이 너무 철학사상적인 측면에만 집중하거나 FTX 등의 연관 단체들의 주변적인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어 독자들께 소개하기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영국의 진보적 평론지인 뉴스테이츠먼에 실린 이 특집기사는 효율적 이타주의의 사상적 측면과 연관 단체들의 이야기 모두를 균형있게 소개하고 있어 독자 여러분들께 자신있게 소개해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영미 공리주의 등에서 기원하는 이 사상은 우리로서는 좀 낯설수 있지만 영미 사회의 세계관을 만나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한 도덕철학자가 어떻게 하면 세상에서 가장 선한 일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해하는 미국의 수학 수재를 만났다. 은행가가 되는 건 어때요, 철학자는 말했다.


농담이 아니었다.


이렇게 생각해보라. 이 학생처럼 높은 성적을 갖고 있다면 어떤 직업이든 가질 수 있다. 의사가 되어 가난한 나라에 가서, 일주일에 10번씩 생명을 구하는 수술을 하면 1년에 500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은행가가 된다면 의사 10명의 월급을 주기에 충분한 돈을 기부해 그 10배의 생명을 구할 수도 있다. 게다가 그가 의사가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의사가 될 가능성은 높다. 하지만 그가 은행가가 되지 않을 경우, 의사들에게 자금을 댈 다른 은행가가 등장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


도덕철학자 윌리엄 매캐스킬William MacAskill은 대표적인 '효율적 이타주의자effective altruist'였다. 도덕성에 대해 과학적인 방법으로 접근해, 수치 계산을 통해 다른 사람을 돕는 '최선'의 방법을 결정한다. 그는 명문대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한 진로선택 조언 단체 설립에 도움을 주었는데, 이 단체는 구호활동가가 되려고 생각하는 학생들에게 그 대신 보다 수익성 있는 일을 해서 그 돈으로 기부를 하기를 장려했다.



그래서 수학 수재 샘 뱅크먼-프리드Sam Bankman-Fried는 금융업에 종사하면서 암호화폐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자신의 회사를 설립하고 암호화폐 차익거래로 수십억 달러를 벌었다. 그는 수억 달러의 기부를 약속했다. 주로 자신의 친구인 그 도덕 철학자와 관련된 단체에 기부했다. 이제 유명한 암호화폐(코인) 왕이 된 수학 수재는 인터뷰에서 기부하기 위해 돈을 벌 때는 투자의 동기가 다르다고 설명했다. 선행을 하고 있을 때는 한계효용이 줄어들지 않으므로 더 큰 도박을 하고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것이 합리적이란 것이다.


하지만 '코인왕'은 다른 종류의 리스크도 감수하고 있었다. 2022년 12월, 그는 고객 돈 약 80억달러를 사취한 혐의로 체포되어 기소됐다. 2023년 2월, 그는 자신의 기부를 받은 단체들에게 기부금을 돌려줄 것을 요청했다. 그렇지 않으면 파산 절차 와중에 압류당할 수 있다고 했다.


도덕철학자는 트위터에서 코인왕에 대한 "완전한 분노"와 그의 속임수에 넘어간 것에 대한 "슬픔과 자기혐오"를 표현했다. 그는 자신의 도덕 사상이 오용될 수 있다는 우려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음을 인정했다. 코인왕의 행동은 "성실성, 정직성, 상식적인 도덕률에 대한 존중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효율적 이타주의에 위배된다고 그는 트위터에 썼다.


도덕철학자와 코인왕의 이야기가 그저 어떤 아이디어를 테스트하기 위한 사고실험thought experiment이었다면 적절한 반응이었으리라. 하지만 현실은 더 너저분하고 복잡하다. 코인왕은 10월 3일 뉴욕에서 재판을 치르게 되며, 사기 및 자금 세탁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 최대 징역 115년을 받을 수 있다. 그는 이미 증인 조작 혐의로 구속된 상태다. 철학자에게도 의문은 남는다. 그는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그의 거창한 사상에 근본적인 결함이 있는 건 아닐까?


옥스퍼드대학교의 철학자 매캐스킬과 효율적 이타주의(EA) 운동이 추락한 코인왕 뱅크먼-프리드와 얽히게 된 것은 부분적으로는 도덕원칙과도 관련이 있다. 뱅크먼-프리드와 같은 사람이 EA의 이념에 매료—아니면 적어도 유용하다고 여긴 이유는 무엇일까? 하지만 큰 틀에서 이 이야기는 정치에 관한 것이자 사람을 타락시키는 권력과 돈의 영향력에 관한 것이다.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부자가 되는 것이라고 설파하는 것의 예상치 못했던(하지만 예측 가능했던) 결과에 관한 것이다.




이제 사고실험 하나를 해보자. 얕은 연못에 빠진 유아를 발견했다고 상상해 보라. 옷이 진흙투성이가 되더라도 들어가서 구해야 할까? 당연하다! 그렇다면 자기 자신에게 최소한의 비용으로 매우 나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힘이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는가?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홍수에 익사할 위험에 처한 어린이가 작은 기부로 생명을 구할 수 있다면 어떨까? 호주 출신 철학자 피터 싱어Peter Singer는 1972년 논문 '기근, 풍요, 그리고 도덕성'에서 재난 구호에 기부하지 않는 것은 도덕적으로 물에 빠진 아이를 그냥 지나치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의 도덕적 의무는 대부분이 인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다고 썼다. 생명을 구하는 일에 기부할 수 있는데 새 옷처럼 불필요한 물건을 사는 건 도덕적으로 잘못된 일이다.


싱어의 논문을 처음 접하는 사람 중에는 그 논리의 헛점을 찾으려고 애쓰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예 그의 주장에 신경 쓰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점점 더워지는 지구에서 무의미한 물건을 구입하는 것을 즐기려면 이 주장을 다른 불편한 정보들과 함께 무시하는 게 훨씬 쉽다. 그러나 효율적 이타주의자는 다르다. 자기 또래보다 도덕성을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들은 여섯 살에 채식주의자가 되어 용돈을 모두 자선단체에 기부하거나 지역 노숙자 쉼터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낯선 사람에게 신장을 기증한 사람도 있고, 코로나19 백신 임상시험에 자원한 사람도 있다.


뱅크먼-프리드 사태가 터졌을 때, 효율적이타주의센터Centre for Effective Altruism의 미국 주재 공동체 연락 담당자인 줄리아 와이즈Julia Wise는 "공포와 실망을 느꼈다"고 했다. "공동체의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돕는 방법에 대해 정말 사려 깊은 선택을 해왔는데, 여기 한 사람의 무모한 행동이 다른 사람들의 선행을 망쳤어요." 그는 말했다. 사태 발생 1년이 지난 지금, 그는 대부분의 EA들이 분노를 추스르고 있다고 말했다. "세상의 모든 중요한 문제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니까요."


EA에는 극단적인 선행을 베푸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오랫동안 보다 어두운 급진주의적 경향을 품고 있었다. 뱅크먼-프리드의 몰락 이후 EA의 평판은 더 많은 위기에 직면했다. 올해 1월, EA 운동에서 영향력 있는 미래학 철학자 닉 보스트롬Nick Bostrom이 1997년에 쓴 이메일이 다시 조명을 받았다. 그는 메일에서 흑인이 백인보다 더 멍청하다면서 인종차별적 언어N-word를 썼다. (그는 "26년 전의 이 역겨운 이메일은... 당시나 지금의 제 견해를 정확하게 대변하진 않습니다"라고 사과하면서 불평등은 기술과 인지 능력의 차이로 이어진다고 덧붙였다).


2월에는 EA 커뮤니티 내에서 성희롱이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주장이 타임Time에 소개되면서 효율적 이타주의의 평판이 또 다른 타격을 입었다.


극단적인 이타주의에 기반한 사상이 어떻게 이념적으로 인종주의와 성차별을 용인하고 뱅크먼-프리드를 선전하게 됐을까? 이 질문에 가장 잘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매캐스킬일 것이다. 그는 EA의 철학적 체계를 마련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여러 주요 EA 기관의 이사회에 참여했으며, 과거 뱅크먼-프리드를 '협력자'로 묘사한 적 있지만 그는 눈에 띄게 조용히 지내고 있다. 그는 업무를 이유로 이 기사에 대한 인터뷰를 거부했으며, 6월에 "돌이켜보더라도" 뱅크먼-프리드가 사기를 치고 있다고 의심할 이유가 없었다고 말한 이후로는 뱅크먼-프리드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는 또한 "윌 매캐스킬은 EA의 얼굴이 되어서는 안 된다"라는 제목으로 3인칭으로 쓴 기괴한 글을 올리기도 했다.




옥스퍼드의 도덕철학자 윌리엄 매캐스킬. /사진=Sam Deere (CC BY-SA 4.0 DEED)

옥스퍼드의 도덕철학자 윌리엄 매캐스킬. /사진=Sam Deere (CC BY-SA 4.0 DEED)


싱어의 저작을 접하기 전부터 매캐스킬은 남다른 도덕적 열정을 보였다. 아직 글래스고에 있는 사립 허치슨문법학교에 다니고 있던 시절, 그는 노인 요양원에서 일하고 글래스고 장애인 스카우트에서 자원 봉사 활동을 했다. 케임브리지에서 철학을 전공하고는 옥스퍼드에서 대학원 과정을 거치면서 싱어의 사상에 비슷한 영향을 받은 철학자 토비 오드Toby Ord를 만났다. 오드는 2만파운드(3300만원) 이상의 수입을 모두 기부하기로 약속했었다. 매캐스킬도 그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모두 공리주의자로서 도덕적으로 중요한 것은 기부 행위 자체가 아니라 기부가 미칠 영향이라는 데 동의했다. 동물 보호소에 6파운드를 기부하면 그 영향력은 미미할 것이다. 하지만 같은 금액을 말라리아 자선단체에 기부하면 연간 60만 명 이상이 사망하는 질병으로부터 개발도상국의 어린이를 보호할 수 있다. EA의 핵심적인 통찰 하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선 기부가 미치는 영향에 대해 놀랄만큼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신의 할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셔서 암 관련 자선단체에 기부하거나 당나귀가 귀여워서 당나귀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등, 기부는 이성보다는 감정에 의해 결정되는 경향이 있다. 자선 기금을 보다 전략적으로 운용하여 더 효과적으로 쓸 수 있게 하면 어떨까?


2009년, 오드와 매캐스킬은 사람들이 수입의 10%를 자선단체에 기부하도록 장려하는 단체인 '기빙왓위캔Giving What We Can'을 설립했다. 초기 회원 23명 중에는 피터 싱어도 있었고 이 중 상당수가 이후 EA 관련 조직들 내에서 영향력 있는 직책을 맡게 된다. 벤 토드Ben Todd가 그 중 하나다. 2011년 매캐스킬과 함께 '8만시간80,000 Hours'이라는 진로 단체를 설립하여 대학 졸업생들이 기부할 수 있는 일자리를 홍보했다. 2012년 매캐스킬과 오드는 효율적이타주의센터를 설립했다. 대학에 EA 동아리를 설립하고, 컨퍼런스 및 온라인 EA 게시판을 통해 아이디어 교환을 장려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비영리단체였다. 옥스퍼드대학이 EA 운동의 영국 허브가 됐고, 미국에서도 기브웰GiveWell, 굿벤처스Good Ventures, 오픈필란트로피Open Philanthropy 재단과 같은 조직을 통해 탄탄한 입지를 구축했다. 또한 실리콘밸리와 LessWrong.com 같은 웹사이트를 중심으로 발전한 합리주의 운동도 EA를 받아들였다. 합리주의 운동은 삶의 모든 측면에 확률적 추론을 적용하여 인지적 편견을 없애는 것을 목표로 한다.




어떤 사람들은 도덕적 선택이 수학적으로 해결 가능한 문제라는 발상에 매력을 느낀다. 하지만 선을 어떻게 정량화할 수 있을까? 매캐스킬은 2015년 저서 '냉정한 이타주의자Doing Good Better'에서 복지 경제학자들이 장애와 질병의 해로운 영향을 정량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척도인 '질보정수명quality-adjusted life years (QALY)'을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


매캐스킬이 인용한 가중치에 따르면, 완벽한 건강 상태로 지낸 1년은 1QALY, 치료되지 않은 에이즈에 걸린 상태로 지낸 1년은 0.5, 시각 장애가 있는 사람의 1년은 0.4, 중간 정도의 우울증이 있는 사람의 1년은 0.3으로 정의된다. 매캐스킬은 어떤 구호 목표를 우선할지를 결정하는 데 QALY를 쓸 수 있다고 썼다. 20세의 실명을 막기 위해 1만달러를 지출하는 것과 에이즈에 걸린 30세의 수명을 10년 연장할 수 있는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에 같은 금액을 지출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매캐스킬은 20세 청년의 실명 수술을 하는 게 더 낫다고 주장한다. 청년은 앞으로 50년을 더 살 수 있으리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QALY가 "불완전하고 논쟁의 여지가 있는" 수치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대체로 충분하다고 본다.


하지만 QALY를 사용하는 것은 시각장애인의 생명보다 시력을 가진 사람의 생명이 더 가치있다는 이야기를 과학적으로 들리게끔 만드는 방법이기도 하다. 보육원에 불이 났을 때 쌍둥이 중 시력이 좋은 아이를 먼저 구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되기 때문이다. QALY는 각기 다른 종에 따라 어떻게 해석될까? 1975년 저서 '동물 해방'에서 싱어는 침팬지나 개가 "중증 지체장애아"보다 의미 있는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이 더 클 수 있으며, 이러한 상황에서는 동물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어느 시점에서 내 생명의 가치가 동물보다 덜 중요하게 되는 걸까?


2013년, 한 저명한 효율적 이타주의자는 럿거스대학교 대학원 논문에서 부유한 국가의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더 생산적이고 혁신적이기 때문에 가난한 국가에 사는 사람들보다 그들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이런 입장이 거슬린다면 이는 계산이나 측정의 실수 때문일까, 아니면 효율적 이타주의 저변에 깔려있는 가치관의 문제일까? EA는 어려운 주제에 대한 활발한 토론을 장려하지만 공리주의적 계산이 극도로 이상하고 잠재적으로 해로운 입장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될 수도 있다.


초기의 비판론자들은 EA의 편리한 정치적 무비판주의quietism도 지적했다. 전 세계 빈곤층을 위한 침대 방충망과 구충제 치료 비용(EA가 매우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두 가지 목표다)을 지불하는 대신, EA 지지자들은 영국인 평균 수준의 연봉을 받는 사람이 전 세계 소득 상위 2%가 되는 정치 체제의 변화를 꾀해야 하지 않을까? 정치적 행동의 영향은 스프레드시트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를 피해야 할까?


"효율적 이타주의는 권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려 하지 않고 권력에 더 잘 부합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효율적 이타주의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둔다." 옥스퍼드의 철학자 아미아 스리니바산Amia Srinivasan은 2015년 런던리뷰오브북스에 이렇게 썼다. 그는 EA가 대부분 중산층 백인 남성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것이 현상 유지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리라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으며, 부분적으로는 이 운동이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할 수도 있다."


EA는 은행가와 억만장자가 동조할 수 있는 급진적인 운동이었다.




샘 뱅크먼-프리드 사태가 발생하기 전 몇 년 동안 EA 운동은 급속도로 부유해졌다. 2021년 '8만시간'의 벤 토드는 전 세계적으로 약 460억달러가 EA에 투입되었다고 추산했다. 이 중 상당 부분이 페이스북 공동 창업자인 더스틴 모스코비츠Dustin Moskovitz와 그의 아내 캐리 튜나Cari Tuna 같은 기부자들로부터 나왔는데, 이들은 약 250억달러로 추정되는 재산의 대부분을 EA 계열 단체인 오픈 필란트로피와 굿벤처스를 통해 기부하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뱅크먼-프리드가 있었다.


2022년 2월, 뱅크먼-프리드는 또 다른 자선 단체인 'FTX미래기금'을 출범시켰다. 매캐스킬은 자문위원회에 참여했다. 이 펀드는 첫해에 "최대 10억달러"를 지출하겠다고 약속했으며 2022년 6월까지 1억3200만달러를 지출했다고 주장했다. 이 지원금 중 3650만달러는 이펙티브벤처스UKEffective Ventures UK 산하의 비영리단체와 기관으로 들어갔는데 이 중 적어도 4개 단체는 매캐스킬이 공동 설립한 단체다. 기빙왓위캔, 효율적이타주의센터, 8만시간, 글로벌프라이어리티연구소Global Priorities Institute가 바로 그 단체들이다. (매캐스킬은 이 기사가 발행된 다음날인 9월 21일까지 이펙티브벤처스UK 이사장을 역임했다.) 소수의 고액 기부자들이 EA 운동에서 책임지지 않는 막대한 권력을 휘두르게 됐다.


하지만 대부분이 강단 철학자인 EA 운동 리더 중 큰 기업이나 비영리단체의 실무 운영 경험이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환멸을 느끼고 EA를 떠난 회원들은 인터뷰에서 지도부의 오만함을 비판했다. "리더들은 지적 엘리트주의자들이었고, 자신의 지성만으로 실질적이고 입증 가능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보다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만난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보복을 우려해 익명을 요구한 한 사람이 말했다. "솔직히 겁이 났어요... 회의실 안에 어른스러운 사람이 하나도 없었거든요."


지도부가 폐쇄적으로 변했고 업무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EA의 기부자, 경영진, 이사회, 그리고 많은 지원금 수혜자들이 오랜 친구들이었다. EA를 떠난 회원들은 회원들이 같은 곳에서 일하고, 함께 어울려 놀고, 같이 자고, 같은 EA 상담사와 상담하는 등, EA 운동이 배타적인 조직이 됐다고 한다.


효율적이타주의센터의 전직 CEO 래리사 헤스케스-로우Larissa Hesketh-Rowe는 사람들이 바보같이 보일까봐 EA의 결정을 비판하는 걸 두려워하기도 했다고 한다. "EA처럼 지성과 영향력에 매우 집중하는 공동체에서 우려를 제기하고 결정을 비판하는 건 어려울 수 있죠. 자신에게는 우려가 드는데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다면 자신이 충분히 똑똑하지 않거나 헌신적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실제로 EA 공동체에는 다른 공동체와 마찬가지로 사각지대가 있어요." 2019년에 사임한 헤스케스-로우는 "사람들이 자신의 대의가 더욱 중요하고 자신이 더욱 똑똑하다고 믿을 때, 정상적인 인간의 결함에서 비롯된 행동을 정당화하는 데 너무 쉽게 빠져들 수 있다"고 느꼈다. 누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걸 그 사람이 EA 운동에 방해가 되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정당화하고, 더 높은 연봉을 원하는 걸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 정당화할 수 있는 거죠."


EA 관련 기관에 더 많은 자금이 들어오면서 한때 금욕적이던 운동의 돈에 대한 태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헤스케스-로우는 말했다. "공동체에 더 많은 돈이 생기면서 '돈을 써서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가 더 늘었습니다. 버스나 기차 대신 택시를 타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죠.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면 더 좋은 책상을 구하고, 더 많은 비용을 들여서 더 가까운 곳으로 이사하는 게 좋을 거고요." 독특한 비즈니스 철학은 아니지만 이것이 어떻게 EA의 원칙에 부합하는 걸까? "이 논리가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렇기 때문에 위험합니다." 헤스케스-로우는 말했다. "이런 방향으로 잘 나아가려면 훌륭한 인성, 좋은 조직문화와 지도부가 있어야 해요. 안그러면 작은 실수에도 부패의 길로 떠내려가기 십상입니다."


그리하여 한때 아프리카 어린이들에게 1달러짜리 구충제를 배포하는 것의 효용을 두고 고뇌하던 운동이 대저택 두 개를 보유하게 됐다. 2022년 EA 계열 사업에서 뱅크먼-프리드의 FTX재단의 기부금으로 구입한 체코의 350만달러(48억원) 짜리 저택 샤토 호스타초프Chateau Hostačov와 EA 수련회와 컨퍼런스용으로 1500만파운드(250억원)에 구입한 옥스퍼드 인근의 15세기 저택 와이텀애비Wytham Abbey가 바로 그것. 현재 복원 작업 중인 와이텀애비는 EA의 영국 본부에 해당하느 이펙티브벤처스재단Effective Ventures Foundation이 오픈 필란트로피(모스코비츠와 튜나가 설립한 미국 EA 재단)로부터 받은 보조금 1700만파운드로 매입했다.


EA 게시판에서 몇몇이 이 부동산 매입이 세인의 눈에 어떻게 보일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이게 EA 브랜드에 미칠 피해를 과소평가한 것 같군요." 2022년 말에 한 사람이 썼다. "후무스와 바게트는 진지함을 상징하지만 대저택은 사기를 상징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매입 결정을 옹호했다. "제가 학계 생활을 하면서 컨퍼런스를 70번 정도 참석했는데, 장소의 미학, 고풍스러움, 독특함이 사람들이 아이디어와 대화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창의적인 사고를 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한 게시판 사용자는 이렇게 썼다. "1480년에 지어진 건물에서 회의를 갖는 게 장기적인 안목과 여러 세기를 내다보는 사고를 촉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군요."




지난해 윌리엄 매캐스킬은 두 번째 대중 철학책 '우리는 미래를 가져다 쓰고 있다What We Owe the Future'에서 자신이 장기주의longtermism (長期主義)를 신봉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장기주의란 미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우리 시대의 핵심 도덕적 우선순위라는 사상이다. 이 책은 큰 호평을 받았고 매캐스킬은 뉴요커와 타임에 소개됐다. 그는 책의 출간 기념회를 맨해튼의 비건 레스토랑인 일레븐매디슨파크Eleven Madison Park에서—시식 메뉴가 1인당 438달러(60만원)다—만찬과 함께 가졌다. 비용은 뱅크먼-프리드가 댔다.


책의 서두에서 매캐스킬은 독자들에게 "지금까지 살았던 모든 인간의 삶을 출생 순서대로 살아보는 상상"을 해보라고 요청한다. 당신은 식민지 원주민이자 식민지 지배자이고 노예 소유자이자 노예다. 당신은 3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렀고, 인류가 언젠가 별을 식민지화한다면 천 년, 백만 년, 심지어 1조 년 후에 태어날 이들의 삶 속에서 계속 나아갈 것이다. 그런 다음 그는 묻는다. 만약 당신이 이 모든 삶을 살게 될 것을 안다면, 인류가 현재 무엇을 하기를 원하는가? FTX가 무너진 후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매캐스킬이 독자들에게 인간을 초월해 마치 신이 된 것처럼 도덕적인 결정을 내릴 것을 촉구하고 있다고 느꼈다.


장기주의 주장 중 하나는 종말론적 사건으로 인한 고통이 너무 크기 때문에 그러한 사건이 발생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적더라도 도덕적으로 이를 막기 위해 노력해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다. 2021년 논문에서 매캐스킬은 미래 인류의 수를 10의24제곱 명 정도로 추정할 수 있다고 썼다. 우리에게 어느 정도 책임이 있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인구가 1,000,000,000,000,000,000,000,000명 있다는 것이다. (이는 보수적인 추정치이며, 매캐스킬은 미래 세대가 디지털 지성체를 창조하고 은하계를 식민지화하는 데 성공한다면 그 수가 10의45제곱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어떠한 조치로 인류의 멸종 위험을 1% 줄이는 게 10의16제곱의 생명을 구하는 것과 같다면, 방충망에 돈을 쓰는 게 갑자기 도덕적으로 선한 투자로 보이지 않게 된다. 매캐스킬은 더 나아가, 팬데믹 대비에 100달러를 지출하면 미래의 인류 숫자를 2억 명까지 늘릴 수 있는 반면, 같은 금액을 말라리아 퇴치 자선단체에 기부하면 0.025명의 생명만 구할 수 있다고 계산한다.


비판론자들은 이러한 류의 장기주의가 아무리 좋게 평가해도 비현실적이라고 주장한다. 지금부터 백만 년 후에 태어날 사람들의 삶을 최대로 개선할 수 있는 행동이 무엇인지, 화성에 사는 디지털 존재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최악의 경우, 이는 추상적이고 먼 훗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금 당장 고통받는 사람들을 돕기 위한 자금을 빼돌린다는 점에서 해로운 사상이다. "장기주의는 효율적 이타주의 운동을 완전히 파괴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면 이런 식의 추론은 어떠한 자선단체든 숫자놀음으로 그 재정 지원을 축소하는 데 사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컴퓨터 과학자인 바덴 마스라니Vaden Masrani는 매캐스킬에 대한 블로그 글에서 이렇게 썼다. 그는 인류의 규모에 대한 이러한 추정치는 본질적으로 "만들어진 숫자"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코노미스트의 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2022년까지 효율적 이타주의 기금의 40%가 장기주의적 사업에 사용됐다.


이 자금의 대부분은 AI의 안전성 이슈에 사용됐다. 많은 효율적 이타주의자들이 기후 변화보다 더 시급한 문제라고 주장하는 사안이다. EA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이 운동의 IT 업계 기부자들이 AI 개발 및 규제 방식에 대한 논의에 영향력을 행사해 이득을 얻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더스틴 모스코비츠의 오픈필란트로피는 "모든 인류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안전한 AI를 구축하기 위해 창업한 오픈AI의 초기 후원자였다. 샘 뱅크먼-프리드는 AI를 더욱 안전하게 만들겠다고 약속하는 또 다른 선도적인 AI 회사인 앤트로픽Anthropic의 최대 출자자 중 하나다. 또한 스카이프Skype의 창업자이자 저명한 EA 기부자인 얀 탈린Jaan Tallinn도 모스코비츠와 함께 앤트로픽을 후원했다. 오픈AI와 딥마인드DeepMind의 초기 투자자인 피터 틸Peter Thiel과 일론 머스크는 EA 인사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두 사람 모두 EA 컨퍼런스에서 기조 연설을 한 바 있다. (머스크는 효율적 이타주의가 자신의 철학과 "거의 일치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EA 게시판에서 이 운동의 성과를 묻는 질문에 한 회원은 이렇게 답했다. "최고의 AI 역량을 갖춘 기업 세 곳의 설립 모두에 상당한 역할을 했죠 (눈물 이모티콘)."


올해 초 저명한 AI 과학자 팀닛 게브루Timnit Gebru는 자신의 링크드인에 올린 글에서 EA를 "위험한 컬트"로 묘사하며, 회원들이 EA 회원이 아닌 친구 및 가족과 어울리지 못하도록 막는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이 컬트가 AI 업계에서 얼마나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지 전혀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는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EA 워크샵에 참석한 사람들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는데 참석자들은 워크샵에서 AI 연구를 억제하기 위해 "살인과 우편 폭발물 같은" 폭력을 사용하는 방안을 모색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알고리즘 편향을 연구하는 게브루는 거대 AI 기업들이 미래의 문제를 거론함으로써 사람들의 주의를 그들의 기술이 이미 야기하고 있는 실제 피해로부터 돌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뱅크먼-프리드 사태 이전에도, 과거에는 비판과 토론에 개방적이라는 자부심을 가졌던 운동이 점차 폐쇄적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2021년 두 연구자가 실존적 위험에 대한 EA의 비민주적인 접근법을 비판하는—게브루처럼 소수의 기술 유토피아주의자들에 의해 인류의 미래가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논문을 발표했을 때, 일부 EA로부터 대의를 위한 기금에 피해를 줄 수 있다며 논문을 발표하지 말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한다.




2022년 11월 10일, 샘 뱅크먼-프리드는 트위터에 "X됐다"라고 썼다. 이는 과소평가였다. 다음날, 그는 FTX가 파산 신청을 했다고 발표했다. 고객들은 거래소에서 돈을 인출할 수가 없었다. (매캐스킬을 포함한) 5인의 FTX미래기금 이사회는 "충격과 엄청난 슬픔을 느낀다"며 기금의 수혜자들이 "현재 처한 어렵고 고통스럽고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사임했다. 뱅크먼-프리드는 그 다음 달 구속됐다. 일주일 후 영국의 규제 기관 자선사업감독위원회Charity Commission는 영국 이펙티브벤처스재단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재단 자산의 위험(FTX 자금을 반환해야 할 수도 있다)을 평가하고 이해충돌 가능성과 단체의 운영 방식을 조사했다.


(뉴욕 로이터=뉴스1) 임윤지 기자 = 지난 7월 26일 투자 사기 등 여러 혐의로 재판 중인 암호화폐 거래소 FTX 창업자 샘 뱅크먼 프리드가 미국 뉴욕 법원 청사를 나서고 있다. 2023.07.26/  ⓒ 로이터=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뉴욕 로이터=뉴스1) 임윤지 기자 = 지난 7월 26일 투자 사기 등 여러 혐의로 재판 중인 암호화폐 거래소 FTX 창업자 샘 뱅크먼 프리드가 미국 뉴욕 법원 청사를 나서고 있다. 2023.07.26/ ⓒ 로이터=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근 소송으로 EA의 이상한 행보에 대해 더 많은 게 밝혀졌다. 머스크의 트위터 인수가 진행되는 동안, 매캐스킬이 머스크에게 접근해 자신의 "협력자" 뱅크먼-프리드와 함께 만나 트위터를 인수하고 "세상을 위해 더 나은 트위터를 만들자"고 제안하는 메시지가 공개되기도 했다. "그를 신뢰합니까?" 머스크가 물었다. "매우 신뢰합니다! 인류의 장기적 미래를 위해 매우 헌신하고 있죠." 매캐스킬은 이렇게 답하면서 FTX미래기금의 설립을 알리는 트윗을 링크하며 "샘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으면 (이걸 보세요.)"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2023년 7월, 연방파산법원에 제기된 소송은 뱅크먼-프리드의 FTX재단(FTX미래기금의 모태가 된)의 "여러 차례 부적절하게 운영됐고 때로는 디스토피아적인" 프로젝트를 강조했다. 법원에 제출된 소장에 따르면 이 재단은 "피고의 대중적 위상을 높이는 것 외에는 별다른 목적이 없던 비영리단체"였다. 소장은 2022년 5월에 "인간의 효용 기능을 파악하는 방법"에 관한 책을 집필하는 개인에게 30만달러(4억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EA에 관한 유튜브 동영상을 게시한 단체에 40만달러(5억4000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한 일을 적시했다. 법원 문서에 언급된 메모에는 샘 뱅크먼-프리드의 동생 게이브가 태평양의 섬 나우루Nauru를 매입하려는 계획을 논의하는 것으로 보이는 내용이 있다. 전 세계 인구의 50~99.99%가 전멸하는 사태에서 "대부분의 EA가 살아남을 수 있도록" "벙커/대피소"를 건설하기 위해서란다.


나는 지난 7월에 윌리엄 매캐스킬의 발언을 듣기 위해 런던 사우스뱅크센터를 찾았다. 큰 키에 소년 같은 외모, 그리고 스코틀랜드인 특유의 R 발음을 가진 매캐스킬은 옥스퍼드 데이터 과학자 한나 리치Hannah Ritchie, 사회를 맡은 유튜버 알리 압달Ali Abdaal과 함께 무대에 섰다. 압달은 매캐스킬의 아량에 대해 아첨하는 질문을 던졌고, 이윽고 무대에 오른 모든 사람이 효율적 이타주의에 공감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FTX와 샘 뱅크먼-프리드는 청중의 질문에서 언급되거나 제기되지 않았다. 나는 매캐스킬의 농담에 크게 웃던 젊은 여성 근처에 앉았는데 그는 행사가 끝나고 열렬한 신도에게서 볼 수 있는 관심을 드러내며 내게 다가와 왜 메모를 하느냐고 물었다. 그도 EA 조직에서 일했는데 내가 기자라고 말하자 그의 미소가 어색하게 일그러졌다.


EA 고위급 인사가 뱅크먼-프리드의 사기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 주장한 사람은 없다. 그러나 내가 전현직 관계자들에게 들은 이야기는 타임뉴요커의 보도 내용을 뒷받침한다. 바로 매캐스킬과 다른 사람들이 뱅크먼-프리드의 사업 방식에 대해 여러 차례 경고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고 중 일부는 2018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 뱅크먼-프리드가 공동 설립하고 거의 전 직원이 EA로 구성된 암호화폐 트레이딩 회사인 알라메다리서치Alameda Research의 직원 절반이 뱅크먼-프리드가 "태만"하고, "비윤리적"이며, "잘못된 수치를 보고"한다며 퇴사했다.


한 전직 EA 고위급 인사는 관심이 현저히 부족했다고 말했다. "공동체에서 신뢰 받던 사람들이 떠나면서 '뱅크먼-프리드를 신뢰할 수 없다'고 말하는데 이를 철저히 조사하지 않았다면 극도로 어리석은 거죠. 만약 그때 조사를 했다면, 적어도 그를 EA 운동의 스타로 키웠을 때 발생할 수 있는 후폭풍을 크게 우려해야 할 이유가 있음을 알았을 겁니다."


이 전직 인사는 2022년 초 이 운동과 관련된 또 다른 암호화폐 억만장자인 영국 기업가 벤 델로Ben Delo가 충분한 자금세탁 방지 점검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미국 법원에서 유죄를 인정한 일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사건을 겪었으면 EA의 지도부가 향후 '슈퍼 리치'와의 관계에 따르는 위험을 검토했어야 했다. 그는 EA 지도부의 판단이 탐욕으로 흐려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상한 종류의 탐욕이었습니다. 자신의 이념을 뒷받침하는 더 많은 권력과 돈을 가지려는 탐욕이었죠. 철학자의 탐욕이랄까요."


FTX가 무너진 후, EA의 몇몇은 공동체 내에서 사람들이 왜 그렇게 뱅크먼-프리드의 검소함을 찬양하는 이야기를 공유했는지 의아해했다. 언론에서 그는 빈백에서 자고, 셰어하우스에 살며, 코롤라를 몰고 다니는 억만장자라고 소개되곤 했지만 그가 바하마에 4000만달러(530억원)짜리 펜트하우스를 갖고 있다는 사실은 공동체 내에 잘 알려진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일부 전직 회원들은 뱅크먼-프리드가 '하드코어 공리주의자'로서 EA 공동체와 잘 어울리는 언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에 대한 전설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못 본 체한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 6월, 매캐스킬은 자신이 순진했음을 인정하는 듯했다. 그는 EA 게시판에 쓴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는 비건 채식을 하거나 재산의 대부분을 기부하겠다는 믿을 만한 계획을 밝히는 등 도덕적 동기가 높아 보이는 진정성 있는 신호를 보인다고 해서 다른 면에서도 도덕성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하는 일이 줄어들 것입니다." 뱅크먼-프리드가 얼마나 진정성이 있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렇게 무모한 행동을 벌인 걸까? 아니면 EA를 자신의 명성을 쌓는 데 이용한 걸까? FTX의 파산 직후 트위터 DM을 통해 진행된 복스Vox 인터뷰에서 그는 후자를 암시했다. "윤리 문제"란 "'깨어 있는' 서구인들이 하는 바보 같은 놀이로, 적당한 말만 하면 모두가 우릴 좋아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내가 만난 전직 EA 회원들은 FTX 사태의 여파에 침묵하는 지도부에 분노를 표했다. "모두가 공동체를 떠나고 있어 화가 나요." 그중 한 사람이 말했다. "이 사람들은 상황이 좋았을 때는 (EA를 바탕으로) 지위도 얻고 매력적인 사람들과 사귀더니, 상황이 안 좋아져서 그들이 직접 나서서 사태를 진화해야 할 때 가장 먼저 도망가는 거예요." 그들은 매캐스킬이 자신이 "EA의 얼굴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 것과 오픈필란트로피의 공동 CEO 홀든 카노프스키Holden Karnofsky가 게시판에서 EA가 "대중적인 홍보에 적절한 훌륭한 브랜드가 아니다"라고 쓴 것을 예로 들었다.


또 다른 전직 회원은 EA 운동이 회원들을 돌보는 데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젊고 순진한 사람들이 스스로를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하고 개인적, 재정적으로 많은 희생을 치르도록 부추기고는 아무런 지원이나 안전망을 제공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갑자기 관계가 틀어져서 똑똑하지 않은 사람, 판단력이 부족한 사람, 성실하지 않은 사람으로 낙인찍힐 수 있기 때문이죠." 그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EA는 그들의 정체성이자 사회적, 직업적 네트워크라고 말했다. "잘못되면 인생 전체가 무너지는 거죠." 많은 사람들이 EA를 떠난 후 감정적으로 힘들었다고 말했다. EA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기가 힘들었고, 더 이상 '선의 극대화'를 하지 않는 상황에서 여전히 의미와 자존감을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뱅크먼-프리드의 재판이 끝나거나 자선사업감독위원회의 조사가 끝나고 나면, 마침내 윌리엄 매캐스킬이 더 많은 이야기를 할지도 모른다. 효율적 이타주의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샘 뱅크먼-프리드 문제를 계속 '개인의 문제'로 묘사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EA 운동이 FTX 사태에서 수행한 역할과 소수의 억만장자가 '최대의 선행'을 하는 방법을 결정하도록 허용함으로써 발생하는 위험을 인정하는 게 더 솔직하리라. EA 공동체가 인정받을 수 있는 형태로 살아남을 수 있게 하려면 EA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내부의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고 빈곤 퇴치의 이상주의와 실리콘밸리에 대한 맹목적인 찬양 성향을 조화시킬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 어떤 그래프나 계산식도 이를 도와주진 못할 것이다.


현재로서는 효율적 이타주의자들의 활동이 꾸준하고 끈덕지게 이어지고 있지만 좌절감이 없는 건 아니다. "매우 똑똑하거나 자기 홍보에 능하다는 이유로 소수의 사람들을 무대에 올리는 것에 지쳤습니다." 올해 한 회원이 EA 게시판에 이렇게 썼다. "이 운동 내의 성차별주의, 인종차별주의 및 기타 해로운 이념들에 대해 사과해야 하는 입장에 처하는 데 지쳤습니다... 억만장자들에게 지쳤습니다. 그리고 저는 사람들이 나쁜 행동을 좋은 인식이라고 공개적으로 옹호하는 것을 보는 데 정말 정말 지쳤습니다." 비건 사회복지사인 그는 수입의 10% 이상을 기부하기로 약속했었다. 그는 세상이 "더 좋고, 더 친절하고, 더 부드러운 곳"이 되기를 바란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EA를) 그만두지는 않을 거예요. 하지만 저는 지쳤어요."



소피 맥베인은 뉴스테이츠먼의 에디터로 영국잡지편집자협회British Society of Magazine Editors 상을 두 차례 수상했고 2016년 국제앰네스티 베스트 피처 기사 상을 수상했다.



1913년 창간돼 케인스, 버트런드 러셀, 조지 오웰, 버지니아 울프 등이 기고했던 전통 있는 영국 진보 주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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