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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할 권리: 빅테크의 '이권 카르텔' 깨부수기

'수리권'을 비롯, 독점 기업으로부터 기술을 해방시키려는 노력은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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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Dan Cristian Pădureț

2024.02.02 12:57

Noe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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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들어 국내에서도 '수리할 권리right to repair'가 화제입니다. 자기가 구입한 제품을 수리하는 게 왜 보호받아야 할 '권리'까지 된 건지 의아한 분들도 있을 겁니다. 전자기기(특히 휴대폰)와 자동차가 점점 더 수리하기 어려워지면서 큰 이슈가 됐습니다. 기기의 첨단화, 전자화가 진행되면서 옛날 기기와는 달리 뜯어보는 것만으로는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기가 거의 불가능해진 측면도 있지만 기업들이 새로운 수익 창출을 위해 독립적으로 수리하기를 어렵게 만드는 측면도 작지 않습니다.


일례로 아이폰 배터리 수명이 다해서 교체를 할 경우, 사설 수리업체를 통하면 공식 서비스 이용시 드는 비용의 절반으로 교체가 가능합니다. 애플은 '서비스' 부문에서의 수익 극대화를 위해 사설 수리업체들을 겁박하고 자신들이 지정한 부품을 쓰지 않으면 경고 메시지가 뜨게 만드는 식으로 '공식' 서비스 이용을 유도해 많은 질타를 받은 바 있습니다. 자동차 제조사들이 '공식' 서비스센터에만 진단 장비나 부품을 공급하고 차주들에게 많은 비용을 청구하는 행위도 오랫동안 비난을 받아왔죠. '공식' 서비스 시장은 사실상 독과점이라 그 서비스의 질도 형편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국내에도 여러 작품이 소개된 SF작가이자 보다 자유로운 저작권 운동에 오랫동안 헌신한 활동가인 코리 닥터로우는 여기 소개하는 노에마 매거진 2023년 12월 기고문에서 사실상 독점을 누리고 있는 '빅테크'의 횡포에서 해방되기 위한 전략을 논의합니다. 당초 발명자·원작자의 이익과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고자 만들어졌던 법적 장치(저작권법, 특허법 등)가 이제는 독점기업의 현상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어 이를 개혁해야 한다는 게 논의의 핵심입니다. 닥터로우의 제안이 다소 급진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창작·발명에 대한 보상의 보장과 공정한 경쟁 촉진 사이의 균형점에 대해 숙고해 볼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2020년, 매사추세츠주 유권자의 75%가 자동차 수리권 주민투표 발의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제조사가 자동차 진단 정보에 대한 접근권을 차주 및 독립 정비업체와 공유하도록 하여 공식 정비업체 뿐만 아니라 어떤 정비업체든 해당 자동차를 수리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다. 반드시 제조사가 지정하는 업체에 가져가야 한다는 제약이 없어진다.


(This article was produced by and originally published in Noema Magazine.)


매사추세츠 주민들은 꽤나 단호하게 자신들이 직접 정비업체를 선택하기를 원한다고 의사 표시를 한 것이다. 매사추세츠 주민들은 2012년에도 비슷한 수리권 발의안에 훨씬 더 많은 찬성표를 던진 바 있다.


문제는 그 수리권 법안이 2023년 8월에야 발효되었다는 사실이다. 자동차 제조사들은 보유한 현금이 너무 많아서(대부분 차주들로부터 수리비를 후려쳐서 모은 돈이다) 법정에서 법안에 이의를 제기할 변호사를 고용할 수 있었다. 매사추세츠 유권자들이 자동차 수리권에 대한 압도적인 지지를 확인한 이후 10년 동안 매사추세츠 자동차 수리권의 상황은 계속 악화됐다. 독립 정비업체가 진단 정보에 접근할 수 없는 차량의 비율이 점점 더 늘었다. 자동차 수리권 법안은 아직 완전히 시행되지 않아 불안정한 상태이며, 제조사는 수리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공유하지 않기 위해 자동차의 일부 기능을 비활성화하고 있다.



이 공격의 첫 번째 희생자는 정비사였다. 수리를 위해 차량을 가져온 차주들은 동네의 독립 정비업체가 차량의 문제가 무엇인지 진단할 방법이 없어 발길을 돌려야 했다. 독립 정비사들은 가게 문을 닫고 업계를 떠나거나, 노동력에 대한 구매자 시장이 형성되어 있고 가격과 조건을 정할 수 있는 딜러사에서 일하게 되었다.


두 번째 희생자는 차주였다. 독립 정비사가 공식적으로 수리할 수 있는 차량의 목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동네 단골 정비소를 찾아가면 수리를 해줄 가능성은 있지만, 리프트에 차를 올려놓고는 수리를 시도조차 할 수 없다는 얘기를 듣고 딜러사 서비스센터로 가야 할 확률이 점점 커지고 있다.


세 번째 피해자는 채권자와 투자자였다. 정비사들은 은행 대출을 갚거나 사업에 투자한 투자자들에게 돈을 갚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정비사들은 체제를 거스르려고 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차주들은 딜러사의 독점 구역을 회피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은행과 투자자들은 절대로 대형 자동차 제조사를 거스르는 투자를 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꼭 그래야 하는 건 아니다.


잠시 나와 함께 다른 현실을 상상해 보자. MIT의 똑똑한 학생들이 자동차 진단 코드를 역설계하여 7달러의 재료비로 기기를 설계하고 광저우나 선전의 공장에 의뢰하여 컨테이너 두 대 분량의 기기를 생산해 미국으로 배송했다고 상상해 보자. 이 작은 기기를 전국의 모든 정비업체에 개당 100달러에 판매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정도 마진이라면 관심 있는 투자자가 있을 수 밖에 없으리라. 이에 따르는 부가 사업—비순정품 부품 유통, 보증 및 기타 고수익 서비스—은 자동차 제조사의 사업을 뒤흔들 수 있다. 아마도 이러한 위협만으로도 자동차 제조사가 정신을 차리고 예측 가능한 진단 도구를 제공하도록 설득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이윤이 줄어들 수는 있지만 적어도 제조사 자신의 선택으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다.


만일 제조사가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진단 기기를 가질 수 있다. 어떤 정비업체든 자동차를 진단할 수 있으므로 운전자는 자신이 선택한 정비업체를 후원할 수 있으리라. 모두가 윈윈하는 길이다(자동차 제조사는 예외지만 솔직히 말해 제조사는 엿이나 먹으라 그래라).


이것이 바로 내가 '컴컴comcom'이라고 부르는 '경쟁적 호환성competitive compatibility'이다. 이런 종류의—역설계, 봇, 스크래핑 및 기타 무허가 전술을 통해 달성한—게릴라식 상호운용성은 현대사 전반에서 일상적이었다. 하지만 '지적재산권' 관련 법률이 점점 더 복잡해지면서 이러한 오랜 전통이 심각한 법적 위험에 처했다. 이러한 지재권 관련 조항 중 하나인 1998년 디지털 밀레니엄 저작권법 1201조의 '우회 금지anti-circumvention' 조항은 "효과적인 접근 통제 수단"을 우회하는 사람에게 5년의 징역형과 50만달러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초범일 경우의 이야기다!


매사추세츠주 수리권 법안 같은 명령과 '경쟁적 호환성'을 결합하면 둘 중 하나만 사용하는 것보다 더 강력한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 명령과 경쟁적 호환성은 이액형二液型 에폭시와 같다. 명령은 강력하지만 부서지기 쉽고, 경쟁적 호환성은 유연하지만 모양이 휘어지지 않도록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둘을 합치면 강하고 탄력적이다.


한때는 경쟁적 호환성이 대세였다. 처음에 소프트웨어에는 저작권이 전혀 없었다. 나중에 협소하게만 적용될 수 있는 '얇은' 저작권을 획득했다. 하지만 그 후 소프트웨어는 문학, 음악 작품, 음원, 사진, 동영상에 적용되는 걸 훨씬 뛰어넘는 저작권을 획득했다.


디지털 저작권 관리에 대한 우회 금지로 인해 소프트웨어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보호를 받는 저작물 유형이 되었다. 소프트웨어 저작자(또는 그들을 고용하는 기업)는 가장 재능 있는 작곡가, 가장 뛰어난 조각가, 가장 위대한 작가보다 더 많은 저작권상의 규제를 휘두를 수 있다.


하지만 우회 금지는 시작에 불과하다. 경쟁적 호환성을 가로막는 덤불은 소프트웨어 특허, 이색적인 계약 이론('불법적 간섭'), 상표, 영업비밀, 경업 금지noncompete, 비공개 및 사이버 보안법, 기타 법률, 정책 및 규정으로 짜여져 있다. 이 덤불이 자라는 데 수십 년이 걸렸다. 해체하는 데도 수십 년이 걸릴 것이다. 이러한 모든 법률을 수정하는 단일 옴니버스 법안이 의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너무 많은 이권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설령 통과하더라도 소송으로 수년 또는 수십 년 동안 절차가 지연될 수 있다.


시도해선 안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물론 시도해야 한다! 우리의 헌신과 관심이 필요한 장기 프로젝트(기후변화 대응 같은)는 많다. 하지만 장기적인 개혁을 다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금 당장 행동이 필요하다.


수십 년에 걸친 입법 개혁이 진행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어떻게 하면 경쟁적 호환성을 되찾을 수 있을까? 다음은 가능성이 높은 순서대로 세 가지 시나리오다.

구속력 있는 약속

기업들은 때때로 상호운용성을 차단하지 않기로 합의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W3C(월드와이드웹 컨소시엄)에서 웹 표준을 만드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하는 기업은 자신이 만든 표준을 구현하는 상호운용자에 대해 특허를 집행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기업들이 가입을 희망하는 단체가 많이 있으며, 경쟁적 호환성에 대한 불가침조약을 그 가입 조건으로 내걸 수 있다. 표준화 기구는 가입을 희망하는 기업들에게 개인정보 보호, 보안, 사용성, 접근성 또는 경쟁을 위한 것이라면 표준 준수 제품을 역설계하고 확장하는 경쟁사에 대해 특허, 저작권, 우회 방지, 영업 비밀 등에 따른 권리를 행사하지 않겠다는 법적 구속력이 있는 약속을 해야 한다는 규칙을 채택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하지만 모든 대기업이 가입을 원하는 훨씬 더 크고 중요한 모임이 있다. 바로 정부 기관에 납품하는 기업들의 모임이다.


대부분의 정부에는 상품과 서비스를 판매하는 공급업체에게 최소한의 행동 기준을 정의하는 '조달 규칙'이 있다. 조달 규칙은 정부 기관에 납품하는 기업이 어떤 종류의 보험에 가입해야 하는지, 개인정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직원을 어떻게 대우해야 하는지, 제품을 어디에서 생산하고 어디에서 부품을 조달해야 하는지 등을 명시한다.


정부는 조달 규칙에 상호운용성에 관한 규칙을 정할 수 있으며, 정해야 한다. 공공 자금을 지원받으려는 기업은 공공기관에 판매 및 제공하는 제품을 유지보수하고 개선하는 데 필요한 회로도, 오류 코드, 키 및 기타 기술적 사항을 제공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이는 급진적인 제안이 아니다. 건전한 거버넌스일 뿐이다. 정부는 비용 대비 가치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공적자금을 지출해야 하한다. 특정 공급업체에 종속되는 것은 비용 대비 가치를 제공하지 못한다.


공급업체 종속의 핵심은 고객에게 극단적인 양자택일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소프트웨어, 부품, 소모품, 서비스 비용을 제조사가 청구하는 대로 지불하거나 그게 싫으면 제품을 폐기하고 새로 사라는 것이다. HP가 프린터 잉크로 사기를 치는 걸 포기하게 만들 순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연방정부 기관이 타사 잉크 사용을 지원하지 않는 프린터는 구매할 수 없다고 발표하면 HP는 굴복하거나 다른 경쟁사가 나서게 될 것이다.


이는 오래되고 명예로운 전통을 가지고 있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연방군을 위해 소총을 조달할 때 상호운용이 가능한 도구와 탄약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무래도 그렇지 않았겠는가?1 "장군님, 죄송하지만 오늘은 요새를 점령 못하겠습니다. 우리가 받은 총알이 소총과 호환되지 않아서요."


놀랍게도 이는 미국에서 가장 큰 고용주으로 손꼽히며 조달 부문의 고질라 같은 존재인 국방부는 잊어버린 교훈이었다. 미군은 오랫동안 단일 공급업체가 제조한 부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허용해 왔다.


영리한 사모펀드 투자자들은 이를 눈치채고 모든 단일 공급업체들을 조용히 먹어치웠다. 그런 다음 이 대기업들은 단일 공급부품의 가격을 낮췄다. 이러한 부품은 이제 원가 이하로 공급된다. 이는 주요 방산업체(합병의 난무로 소수의 회사만 존재한다)가 단일 공급업체에서만 구입할 수 있는 부품으로 항공기, 드론 및 기타 시스템을 우선적으로 제작하게 됨을 의미한다.


이제 다음 단계에서 어떤 사기를 칠 것인지 예상할 수 있으리라. 이러한 부품은 군용기를 제작하는 회사에는 원가 이하로 판매되지만, 군에서 군용기를 수리하기 위해 해당 부품을 주문해야 할 경우 수천 퍼센트의 할증이 붙는다. 제트기 수리 비용이 교체 비용보다 저렴하다면 군은 결국 비용을 지불할 것이다.


나는 군대 폐지론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군대 조달이 독점 제품을 군의 공급망에 끼워 넣는 방법을 알아낸 사모펀드 폭리꾼들의 주머니를 채우는 데 이용돼야 하는지 모르겠다.


평시의 모든 공공지출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자동차를 구매하는 정부 기관, 구글 클래스룸을 운영하는 학군, 마이크로소프트 365, 슬랙 및 줌 라이선스를 취득하는 행정 기관 등은 정부 고객을 위해 제품을 역설계, 수정 및 개선하는 상호운용자를 공격하지 않겠다는 구속력 있는 약속을 모든 공급업체로부터 받아내야 한다.


지방, 주 또는 연방 정부 기관에 판매하는 모든 공급업체가 경쟁관계에 있는 상호운영자에 대해 구속력 있는 불가침 조약을 맺는다면, 많은 제품과 서비스에 대해 역설계 및 개선이 가능해진다.


자동차 제조사들은 진단 도구가 민간 정비업체에 유출되지 않으면서도 모든 지방, 주 및 연방 정부 기관에서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불평할 것이다. 민간 정비업체가 공공 부문 차량을 수리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정부 고객을 위해 이러한 도구를 구입하여 사용하는 건 가능하겠지만 다른 고객이 정비를 위해 가져오는 개인 소유 차량에 동일한 진단 도구를 사용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고 지적할 것이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자동차 제조사의 터무니없는 수리 담합을 보호하는 게 정부의 일은 아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공공재정과 공공조달을 신중하게 관리하는 것이다. 고객이 공인 서비스센터가 아닌 다른 곳에 자동차 수리를 맡길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감정적 (또는 재정적) 부담을 견딜 수 없다면, 감정적인 부담이 덜한 다른 업종을 찾으면 된다. 아니면 모든 공공 고객을 포기하고 막대한 손실을 감수해도 된다. 좋은 공공조달 정책에 부합하는 조건으로 거래하기를 택하는 다른 자동차 제조사가 나올 것이다.


하지만 제조사의 우려는 정확하다. 정부가 기업들에게 공공부문을 위해 경쟁적 호환성을 수행하는 상호운용자를 고소하거나 괴롭히지 않겠다고 약속할 것을 요구한다면, 방대한 경쟁적 호환성 도구 풀이 만들어지고, 필연적으로 우리 모두가 이용 가능해질 것이다.

계약 방식에 대한 규제

일방적인 괴롭힘 계약은 경쟁적 호환성의 주된 장애물이다. 기업은 비공개, 경업 금지, 영업비밀, 서비스 약관 및 '불법적 간섭' 주장을 사용하여 경쟁업체가 상호운용 가능한 제품 및 서비스를 제공하는 걸 막는다. 이들 기업은 경쟁업체들이 클릭스루2clickthrough 또는 슈링크랩3shrinkwrap 라이선스 형태의 계약에 먼저 '동의'하지 않으면 제품을 역설계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런 다음 그들은 누군가가 어떻게든 이러한 '계약'에 걸리지 않고 제품을 역설계하는 데 성공하더라도 이들이 대중에게 제공하는 모든 경쟁적 호환성 도구는 '불법적인 간섭'이라고 주장한다. 이를 사람의 언어로 번역하자면, 경쟁적 호환성 도구를 사용하는 모든 고객은, 끝없이 스크롤되는 법률 용어의 쓰레기 소설 하단에 있는 '동의'를 클릭했을 때 이미 그렇게 하지 않기로 '동의'한 거란 소리다. '불법적 간섭' 이론에 따르면, 상호운용자는 고객이 원래 회사와의 '계약'을 어기도록 방조하는 것이므로 잘못한 것이다.


미국에서 계약법은 대부분 주 차원에서 규제되며, 각 주마다 집행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되는 계약 조건이 있다. 일부 주에서는 특정 조건을 계약서에 명시하는 것을 금지하기도 한다. 경업 금지 계약이 대부분 강제력이 없고 2023년 10월 현재 불법으로 규정되어 있는 캘리포니아를 예로 들어 보자. 이는 캘리포니아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캘리포니아 최초의 반도체 회사는 컴퓨팅 기술 개발의 핵심 단계인 트랜지스터 제조법을 발견한 공로로 노벨상을 공동 수상한 윌리엄 쇼클리William Shockley가 설립했다. 쇼클리반도체연구소Shockley Semiconductor Laboratory는 1955년에 개업해 반도체 장치를 연구할 뛰어난 기술자들을 영입했지만 1968년에 문을 닫았다. 마이크로칩 제조에 성공한 적은 없었다.

윌리엄 쇼클리가 나치 같은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열렬한 우생학자였던 쇼클리는 미국을 순회하며 흑인 여성들이 불임수술을 받아 유전자 풀에서 제거될 것을 약속하면 노벨상 상금의 일부를 나눠주겠다고 제안하는 데 열정을 쏟았다. 그는 우울하고 편집증적이며 증오심에 가득 찬 사람으로 직원은 물론 가족까지 도청하는 일이 잦았고, 그의 회사는 첨단 제품의 시장 출시는 커녕 개발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윌리엄 쇼클리 밑에서 일하는 것은 재미가 없었다. 하지만 캘리포니아에서 경업 금지 계약을 금했기 때문에 쇼클리의 최고 엔지니어 8명(테크 업계에서는 '8인의 배신자'라 불린다)은 끔찍한 직장을 그만두고 투자 자본을 모아 실리콘밸리에서 최초로 마이크로칩 회사에 성공한 페어차일드반도체Fairchild Semiconductor를 창업할 수 있었다.


처음에 페어차일드는 괴짜nerd들의 놀이터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회사는 경직된 경영진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회사의 최고 엔지니어 두 명이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을 하게 됐다. 그들은 전직 동료들 중 최고의 인재들을 자기네 스타트업으로 데려가 페어차일드를 흔들었는데 그 스타트업의 이름은 인텔이었다.


계약법은 경쟁을 장려하거나 위축시킬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다. 경업 금지를 차단하는 캘리포니아의 정책 덕분에 실리콘밸리가 탄생할 수 있었다. 매사추세츠주는 경업 금지 계약이 허용됐는데 이로 인해 한때 유망했던 매사추세츠주의 테크 산업은 캘리포니아의 먼지로 전락했다.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나쁜 사람들이 설립한 회사는 매사추세츠주나 캘리포니아주 모두에 있었다. 하지만 불운하게도 당신이 매사추세츠주에서 그런 회사에 입사했다면 계속 그 회사에서 일할 수밖에 없었다. 2018년까지는 퇴사할 경우 경업 금지 기간이 만료되는 3년 동안 해당 분야를 떠나 있어야 했다. 매사추세츠의 스타트업은 좋은 아이디어가 사장되고 숙련된 기술자들의 발목을 잡는 곳이 됐다.


오늘날 기업이 경쟁적 호환성을 차단하려할 때, 계약법은 강력한 무기다. 서비스 약관을 통해 사용자가 타사 잉크부터 타사 부품, SNS용 광고차단기까지 상호운용 가능한 도구의 사용을 금지할 수 있으며, 이는 경쟁적 호환성 도구를 만드는 회사에 대해 '불법적 간섭'을 주장할 수 있게 만든다.


대부분의 주에서 경업 금지 조항을 발동하여 전직 직원이 상호운용이 가능한 상품으로 독립해 이전 고용주의 고객이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방지하는 게 가능하다. 영업비밀 및 비공개 조항은 경업 금지 조항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도 전직 직원이 상호운용 가능한 제품 및 서비스로 직접 경쟁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주정부 차원의 계약법 규정으로 조정할 수 있다. 특정 조건을 금지하거나 집행 불가능하다고 선언함으로써 주정부는 빅테크의 가장 큰 사일로를 열어젖힐 수 있다. 또한 미국의 일부 지역에 테크 기업이 밀집돼 있음(그리고 다른 지역으로 이전할 때 발생하는 문제들)을 고려할 때, 몇 개의 주만 변해도 미국 전역과 전 세계 사람들에게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캘리포니아, 뉴욕, 워싱턴에서 관련 법안이 통과되면 상당 부분 해결될 것이며 텍사스와 매사추세츠까지 포함하면 거의 모든 테크 산업기지를 커버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산업에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거대하고 정체된 독점 기업에게는 좋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수많은 경쟁적 호환성 상품으로 독점 기업을 갉아먹어 그 기업가치를 거대 기관투자자로부터 소비자와 노동자에게 돌려줄 중소기업들에게는 좋은 일이 될 것이다.

성인 감독

미국에는 현재 계류 중인 '경쟁 및 호환 촉진을 위한 서비스 전환 지원 법률'(ACCESS)안이 있는데 이는 유럽연합 디지털시장법Digital Markets Act과 유사하게 빅테크 기업에게 API(사용자와 정보를 교환하는 게이트웨이) 제공을 의무화함으로써 사일로를 개방하도록 하는 강력한 법안이다. 이는 경쟁적 호환성의 지저분함과 불안정성 없이 상호운용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API가 플랫폼을 탈퇴한 사용자가 플랫폼에 남은 사람들과 계속 소통할 수 있게 해주는 안정적인 방법처럼 보이긴 하지만 한 가지 큰 약점이 있다. API는 해당 대기업이 운영해야 하는데 API는 경쟁업체가 가장 가치 있는 사용자를 유인해 해당 대기업의 독점적 이익을 약화시키도록 설계돼 있다.


이는 테크 기업에게 부정행위에 대한 강력한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부정행위를 탐지하기 어렵게 만드는 방법도 매우 많다. 속도를 엄청 느리게 만들어 놓고 트래픽이 너무 많다는 핑계를 댈 수도 있다. 가짜 오류 메시지를 뭉텅이로 던지며 당황한 척 고개를 저을 수도 있다. 무작위로 메시지 전송을 실패시킬 수도 있다. 전체 트래픽의 3%만 실패하도록 만들면 모든 걸 엉망으로 만들기에 충분하지만 이를 확실하게 식별하기란 어렵다.


거대 테크기업들은 항상 속임수를 쓴다. 병적일 정도로 속임수에 중독돼 있다. 개인정보보호법, 경쟁법, 노동법, 환경법 등 어떤 법이든 속임수를 써 위반한다. 한편으로 그들은 속임수에 능숙하지도 않아 계속 붙잡힌다. 예를 들어, 불만을 품은 직원이 내부고발을 하거나 공모자들이 허술하게 대처하기도 한다.


테크 대기업이 ACCESS법이나 디지털시장법을 위반하여 적발되면 매우 큰 벌금을 내야 한다. 이들 법령은 고통을 주기 위해 만들어졌다. 당연히 사기꾼들은 이 문제에 대해 변호사로 대응할 것이다. 벌금이 수십억달러에 달할 경우, 이를 줄이기 위해 외부 변호사에 수억달러를 지불하는 게 합리적이다. 결국 이들 변호사가 하는 일 중 하나는 합의를 제안하는 것이다. "합리적인 사람답게 이 문제를 해결하자고요. 모두가 법률 시행 지연과 소송 비용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면 어떻겠습니까?"


우리가 그들에게 제공해야 할 합의는 바로 특별관리인special master이다. 특별관리인은 법원 절차 또는 합의의 일환으로 회사 또는 개인의 행위를 감독하는, 법원이 지정한 후견인이다.


부정행위를 하는 테크 기업에 대한 성인 감독adult supervision 역할을 한다. 테크 대기업이 다른 회사를 고소하거나 협박하기 전에, 소송이 단순히 경쟁업체의 개인정보보호, 사용성, 접근성 또는 형평성을 높이기 위한 경쟁적 호환성을 막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진정한 권리 침해에 대한 것임을 특별관리인이게 설명하고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는 마치 기업의 가석방 담당관처럼, 일상적인 업무에서 벗어나는 모든 행위를 승인해야 하는 사람이 있는 것과 같다. 이는 엄청난 조치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엄청나게 큰 대기업에겐 엄청난 조치가 필요하다.


기업이 성인의 감독을 받게 되면 상호운용자가 되려는 기업들은 훨씬 더 안정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다. 그들은 역설계, 스크래핑 등의 경쟁적 호환성 조치를 취할 수 있으며, 이것이 사용자를 위한 것임을 특별관리인에게 주장할 수 있다면 그들이 덤비고 있는 테크 대기업이 자신들에게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리라는 걸 알게 된다. 이는 기술자가 투자자나 크라우드펀딩 참여자 또는 보조금 지원 기관에 제공할 수 있는 보증이 된다. 스타트업, 사회적 기업, 비영리단체, 협동조합이 상호운용 가능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준다.

상호운용자의 변론

이 방법은 다소 극단적이지만 잠재적으로 유효한 지름길이다. 저작권, 상표, 계약, 특허, 영업비밀, 사이버 보안 및 기타 법률을 경쟁적 호환성을 방해하는 데 사용할 수 없도록 개정하는 대신, 이러한 법률(및 기타 법률)에 따른 청구에 대한 법적 변론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변론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법률 중 하나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기업이 고소를 할 수 있지만 재판 초기 단계에서 사용자의 개인정보보호, 보안, 접근성 또는 기타 합법적인 이익의 증진을 위해 상호운용성에 관여한 것이라고 변론하는 것이다. 판사가 이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소송은 끝난다.


기업은 여전히 법정에서 자신의 입장을 주장할 수 있다. 위에 열거한 법들을 사용해 서비스를 해킹하여 사용자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들을 차단할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상호운용자 또한 법정에서 자신의 입장을 주장할 수 있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빠른 법적 절차를 통해 법정 예산이 사실상 무제한인 독과점 사업자와의 법정 싸움을 피할 수 있다. 독과점 사업자들은 법원이 상호운용자를 폐업시키도록 하는 데 비합리적인 비용을 기꺼이 지출할 용의가 있다. 미래의 경쟁적 호환성 스타트업들을 겁주기 위해서다.


상호운용성 법제화와 경쟁적 호환성은 기업 해체와 같은 전통적인 반독점 구제 수단을 대체하는 게 아니다. 막대한 자금을 보유한 거대 기업이 앱스토어를 운영하면서 해당 스토어에서 앱을 판매하는 기업과 경쟁하거나, 전자책을 판매하면서 해당 전자책 스토어에 책을 펴내는 작가 및 출판사와 경쟁하거나, 검색 결과를 제공하면서 해당 결과에 등재된 기업과 경쟁하거나, 한 SNS를 운영하면서 또 다른 SNS들을 운영하는 것은 전혀 공정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기업 해체에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AT&T의 해체를 예로 들어보자. 얼핏 보면 법무부가 반독점 소송을 제기한 1974년부터 해체가 확정된 1982년까지 8년 정도 걸린 것처럼 보인다. 이는 사실과 매우 다르다! 사실 미국 규제당국이 AT&T를 처음으로 조사한 것은 1913년으로 AT&T가 마침내 해체되기 69년 전이었다. 그 후 수십 년 동안 AT&T는 자신을 길들이려는 시도를 막아냈다.


독점은 테크를 포함한 모든 산업부문에 존재한다. 독점 문제에선 1그램 짜리 예방주사가 1톤 짜리 치료제만큼의 값어치를 갖는다. 하지만 아일랜드의 오래된 농담4이 말하듯, "저라면 여기서부터 시작하지 않을 겁니다."


테크 기업 비판론자들은 테크 업계가 다른 업계와는 다르므로 다른 규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테크 예외주의'를 비난하는데, 적어도 두 가지 측면에서 옳은 주장이다.


첫째, 기술(테크)은 기초다. 기술 독점의 문제는 기후 비상사태나 성차별, 인종차별보다 본질적으로 더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유롭고 공정하며 개방적인 기술은 이러한 다른 분야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더 나은 기술을 위한 싸움에서 승리한다고 해서 다른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더 나은 기술을 위한 싸움에서 패배하면 더 중요한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희망이 사라진다.


둘째, 기술은 상호운용적이다. 다시 말해, 메타(페이스북)나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을 해체하지 않더라도 빅테크의 '벽으로 둘러싸인 정원'에 갇혀 이동의 자유를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즉각적이고 심도 있는 구제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타사 앱을 설치하거나, 엄격한(또는 지나치게 관대한) 검열을 우회하거나, 알고리즘에 의해 콘텐츠가 묻히는 것을 극복하기 위해 기업 해체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상호운용성을 도입하면 이를 지금 당장 실현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독점기업 해체가 더 빨라진다! 결국 벽으로 둘러싸인 정원이 야기하는 괴로움은 가학성 때문이 아니라 이익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기업이 나쁜 결정을 내릴 때 사용자들이 빠져나갈 수 있게 하면 해당 기업은 나쁜 결정으로 벌어들일 수 있는 수익을 잃게 된다. 그리고 기업이 사용자의 이탈을 막기 위해 더 나은 행동을 한다면 더 나쁜 행동을 통해 실현할 수 있었던 수익을 포기할 것이다.


독과점은 규제당국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나쁜 행동을 통한 이익이 필요하다. 법정에서 법무부를 능가하기 위해 변호사를 고용하는 데는 돈이 적지 않게 든다. IBM이 수십 년간 독점적 지위를 남용하여 자금을 쌓아두지 않았다면 이러한 법률 비용을 치를 수 없었을 것이다. 상호운용성은 야수를 굶기고, 독점 기업이 규제당국을 막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초과이윤을 박탈한다. 상호운용성이 도입되면 감옥에 넣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기업이 거대화되기가 어려워진다.


또한 상호운용성은 기업이 대마불사大馬不死가 될 정도로 커지는 것도 어렵게 만든다. 미 국방부가 마벨5Ma Bell에 그렇게 의존하지 않았다면 AT&T를 그렇게 열렬히 옹호하지는 않았으리라. 미군이 벨 연구소가 공급하던 제품과 서비스를 대체할 상호운용 가능한 제품과 서비스를 구매하여 AT&T와 쉽게 떨어질 수 있었다면 국방부가 벨 시스템을 방어하기 위해 전쟁에 나설 필요성을 덜 느꼈을 것이다.


링컨도 잘 알고 있었듯, 군대는 최소한 상호운용성에 대한 약속을 확보하지 않은 채 단일 회사에 핵심 역량을 의존해서는 안 된다.


독점 기업들이 규제당국을 견제하는 데 사용하는 자금줄을 끊고 그들을 대신해 당국과 싸우는 동맹들과의 관계를 끊어버리면 마이크로포스트를 해체하는 데는 69년 씩이나 걸리지 않을 수도 있으리라. 애플, 구글, 메타, 세일즈포스, 오라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코리 닥터로우는 공상과학 작가이자 활동가, 저널리스트다. 그의 최근 소설은 기후 비상사태에 대한 희망의 솔라펑크 공상과학 소설인 'The Lost Cause'이며, 최근 논픽션은 빅테크 해체 매뉴얼 'The Internet Con: How To Seize The Means Of Computation'으로 위 에세이는 이 책의 내용을 각색한 것이다.



(To read the original essay and other similar essays in English, visit noemamag.com.)


‘집 없는 억만장자’로 유명했던 투자가 겸 자선가 니콜라스 베르그루엔(이젠 집을 마련해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이 설립한 베르그루엔연구소에서 발행하는 매거진. 2014년 허핑턴포스트와 파트너십으로 발행했던 월드포스트가 그 시초로, 현재는 자체 웹사이트 위주로 발행되고 있습니다. 정치적 성향은 두드러지지 않으나 대체로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국제정세, 철학, 테크놀러지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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