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그가 55세에 창업한 회사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기업이 됐다

모리스 창은 글로벌 경제에 필수적인 기업 TSMC를 설립하기 전 수십 년의 경험을 쌓았다. 중년의 기업가들은 그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기사이미지

/그래픽=PADO /사진제공=TSMC

2024.04.19 14:02

Wall Street Journal
icon 11min
kakao facebook twitter

세계적으로 유명한 테크 기업들의 경우 청년들이 창업한 사례가 두드러지다 보니, 중년의 창업은 농담처럼 그저 '치킨집' 뿐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TSMC의 모리스 창은 좋은 반례가 됩니다. 여기 소개하는 월스트리트저널의 3월 29일자 기사를 읽어보시면 모리스 창이 30년 간 반도체 업계에서 쌓은 경륜이 바로 TSMC의 성공 비결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미국 내 창업자들의 연령과 성과를 분석한 연구에서도 성공한 창업자는 청년보다 중년이 많다고 합니다. 업계의 생태를 속속들이 이해하고, 통념을 깨부수는 비즈니스 모델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분명 경험이 풍부한 중년이 아니면 어려워 보입니다. TSMC와 모리스 창의 이야기를 읽어보시면 모리스 창 뿐만 아니라 비전을 가지고 대만의 경제 기틀을 세운 대만의 뛰어난 관료들 이야기도 만나게 됩니다.


오늘날 세계에서 높은 가치를 지닌 테크 기업들은 놀라울 정도로 젊은 기업가들이 설립했다. 빌 게이츠는 19세, 스티브 잡스는 21세, 제프 베이조스와 젠슨 황은 30세에 기숙사, 차고, 식당에서 창업했다.

하지만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귀중한 회사는 모리스 창이란 인물이 55세에 설립한 대만적체전로제조台湾積体電路製造, 보통 TSMC라고 불리는 회사일 것이다.


컴퓨터, 휴대폰, 자동차, 인공지능 시스템 및 우리 일상생활의 일부가 된 많은 장치에 필수적인 부품을 생산하는 TSMC의 창업자만큼 나이 들어서 그렇게 가치 있는 사업을 만든 사람은 이전까지 없었다.


창은 반도체 업계에서 이미 오랜 경력을 쌓은 인물이었다. 1985년에 은퇴해 여생을 카드놀이나 하며 보냈어도 업계의 전설로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재창조했고 반도체 업계를 혁명적으로 뒤바꾸었다.



그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게 아니다. 나이 '덕분에' 성공했다. 알고 보면 나이 든 기업가들이 젊은 창업자들보다 더 흔할 뿐만 아니라 더 생산적기도 하다. 중년 기업가 정신의 놀라운 장점을 모리스 창만큼 잘 구현한 사람은 없다. 30년 동안 미국에서 일한 후 대만으로 돌아온 창은 오직 한 가지만 생각했다.


"전 위대한 반도체 회사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가 내게 말했다.


세계에서 시가총액이 가장 큰 테크 기업들의 규모와 창업자의 평균 연령을 비교했다. /그래픽=WSJ

세계에서 시가총액이 가장 큰 테크 기업들의 규모와 창업자의 평균 연령을 비교했다. /그래픽=WSJ


그가 설립한 회사는 기존의 어떤 반도체 회사와도 달랐다. 여러분은 아마 매일 TSMC에서 만든 칩이 들어간 기기를 사용할 것이다. 하지만 TSMC는 실제로 그 칩을 설계하거나 판매하지 않는다. TSMC가 존재하기 전에는 말도 안되는 소리로 들렸으리라. 당시 기업들은 직접 칩을 설계하고 제조했다. 위대한 반도체 회사가 되기 위한 창의 급진적인 아이디어는 고객이 설계한 칩만 제조하는 것이었다. 자체적으로 칩을 설계하거나 판매하지 않음으로써 TSMC는 자신의 고객과 절대로 경쟁하지 않았다.그 대신 고객들은 회로를 실리콘 웨이퍼에 새기는 값비싸고 현기증 날 정도로 정교한 시설인 팹fab을 직접 운영하는 번거로움을 겪지 않아도 됐다.


모리스 창의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은 업계를 변화시키고 TSMC를 글로벌 경제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만들었다. 이제 TSMC는 미국인들이 가장 의존하면서도 가장 잘 모르는 회사다. 모리스 창도 유명한 이름은 아니다. 하지만 이젠 모두가 모리스 창을 알아야 한다. TSMC의 창업자 모리스 창은 지난 70년 동안 반도체 사업을 이끌었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올해 92세로 장수한 덕분에 그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을 육성하는 데 가장 책임이 큰 사람으로 꼽히곤 한다.


"그보다 영향력이 큰 사람은 거의 없었죠." '칩워'의 저자 크리스 밀러가 말한다.


나는 최근 창과 화상 채팅을 통해 다른 이들이 중년의 기업가로서 그의 모험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그리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에 늦은 시기란 없는 이유를 알아보고자 했다.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고 미중 관계가 악화되면서 세계는 점점 더 TSMC에 의존하고 있다. 창이 지정학적으로 취약한 섬에 설립한 이 회사의 미래에 대해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 대화의 주제는 TSMC의 과거였다.


2018년 TSMC 회장직에서 공식 은퇴했지만, 90분간의 인터뷰 동안 백발의 창은 양복 차림으로 책상에 앉아 다이어트 콜라를 홀짝였다.


나는 그가 일을 완전히 그만둘 수도 있었을 때 새로운 회사를 시작하기로 한 결정한 과정에 대해 더 알고 싶었다. 내가 발견한 것은 나이가 그의 자산 중 하나였다는 점이었다. 그의 경험과 전문성을 가진 사람만이 TSMC에 대한 그의 계획을 실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TSMC 창업을 더 일찍 할 수는 없었어요." 그가 말한다. "누구도 더 일찍 할 수 없었을 거예요. 제가 최초였으니까요."

텍사스, 그리고 대만

모리스 창이 중년이 되어 대만으로 이주하기 훨씬 전, 그는 10대 때 미국으로 이주했다.


창은 중국 본토에서 태어났고 전쟁으로 찢겨진 조국을 가족과 함께 떠돌며 유년기를 보냈다. 1949년 미국으로 탈출했을 때 미국은 그에게 천국처럼 느껴졌다. 그는 이후 미국 시민이 되었다.


주요 반도체 기업 TSMC, 삼성전자, 인텔의 시가총액 추이를 비교했다. /그래픽=WSJ

주요 반도체 기업 TSMC, 삼성전자, 인텔의 시가총액 추이를 비교했다. /그래픽=WSJ


창은 작가가 될 꿈을 꾸며 자랐다. 소설가나 어쩌면 기자가 될 지도 몰랐다. 하버드에서 영문학을 전공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1학년을 마친 후 그는 자신이 실제로는 좋은 직업을 갖고싶어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으로 편입해 기계공학을 공부하고 석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자격시험에 떨어지지 않았다면 박사 과정까지 밟았을 것이다. 대신 그는 반도체 분야에서 첫 일자리를 구했고 1958년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로 이직했다.


당시에는 '칩'이라고 하면 감자칩이 전부였다. 그러나 그는 집적회로가 발명되던 시기에 등장했고, 그가 업계에 진입한 타이밍은 그야말로 최적이었다. 창은 반도체 '덕후geek'의 1세대에 속했다. 그는 생산 라인에서 가능한 모든 개선을 쥐어짜낼 수 있는 지독한 관리자로 명성을 얻었고, 이는 그의 경력을 빠른 궤도에 올려놓았다. 그가 댈러스로 이사한 지 3년 후 회사는 그를 스탠퍼드대학교로 보내 전기공학 박사학위를 받게 했다.이번에는 자격시험을 통과하고 '닥터 창'으로 돌아왔다. 1960년대 후반에 그는 TI의 집적회로 부문을 관할하고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반도체 그룹 전체를 이끌게 됐다.


창은 신혼여행에서도 영업 전화를 할 정도로 일중독자였고 그의 열정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인내심이 없었다. 요즘 TSMC는 애리조나에 공장을 짓는 데 400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지만 이 프로젝트는 지연, 차질, 인력 부족으로 난항을 겪고 있다. 창은 내게 TSMC의 젊은 미국 직원 일부가 일에 대해 자신이 이해하기 힘든 태도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삶과 일의 균형(워라밸)에 대해 이야기하더군요." 그가 말한다. "제가 그들 나이 때는 몰랐던 용어예요. 일과 삶의 균형이라. 제가 그 나이였을 때는 일이 없으면 삶도 없었어요."


/사진제공=TSMC

/사진제공=TSMC


창은 TI에서 임원 대열에 올랐지만 최고 직책에서 탈락했다.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되는 기분이었다. 그는 TI가 반도체에 집중하기를 원했지만 회사는 소비자 제품을 계속 판매하고 싶어 했다. "가정용 컴퓨터 같은 것 말이죠."그가 말한다. "회사의 집중력을 크게 흐트러뜨리는 일이자 기업 자원의 심각하게 분산시키는 일이었죠." 1983년, 자신이 승진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과 그가 미래라고 믿은 시장에 회사가 베팅하지 않을 것임을 깨달은 그는 텍사스인스트루먼트를 그만뒀다.


거의 즉시, 그는 전자 제조업체 제너럴인스트루먼트의 사장 겸 최고운영책임자로 고용되었다. 거의 즉시, 그는 자신이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음을 깨달았다. "전 부적합했어요. 완전히 어울리지 않았죠." 창이 말한다. 1년 후 그는 제너럴인스트루먼트도 그만뒀다.


이제 그는 54세가 되어가고 있었고, 다음에 무엇을 할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는 다시 일하고 싶었다. 벤처캐피털의 제안도 받았다. 대만이 그를 부르지 않았다면 그 제안을 수락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더 나은 기회를 기다릴 여유가 있었다.


창은 재정적으로 안정되어 있지 않았다면 대만으로 이주하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사실 그는 처음 대만으로 갈 기회가 있었을 때는 그런 위험을 감수하지 않았다.


1982년 창은 대만의 강력한 고위 관리 리궈딩李國鼎으로부터 매력적인 직업 제안을 받았다. 리궈딩은 전후 대만의 경제발전을 조율하고 국가기술산업에 활기를 불어넣은 것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그는 창이 대만 최고의 기술연구소 소장이 되어 연구를 수익으로 전환하기를 원했다.


당시 창은 자신이 텍사스인스트루먼트에 오래 있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스톡옵션이 확정되지 않아 그는 대만행 초대를 거절했다. "당시엔 아직 재정적으로 안정되지 않은 상태였어요." 그가 말한다. "전 엄청난 부를 추구한 적이 없어요. 그저 재정적 안정만을 추구했죠." 1980년대 중반 기업 임원 모리스 창에게 재정적 안정이란 연간 20만 달러(2억8000만원) 정도를 뜻했다. "물론 세후 금액이죠." 그가 말한다.


리궈딩이 3년 후 다시 전화했을 때 창의 상황은 달라져 있었다. 그는 수백만 달러의 스톡옵션을 행사하고 그의 생활수준에서 재정적 안정을 얻기에 충분한 금액을 지급하는 비과세 지방채를 매입했다. 그 목표를 달성하자마자 그는 다른 목표를 추구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는 대만 이주를 자신의 "운명과의 랑데부"라고 부르지만 사실 TSMC와 관련해 운명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대만이 제게 위대한 반도체 회사를 만들 기회를 줄 것이라는 확신은 전혀 없었지만 가능성은 있었어요. 그게 제게 유일한 가능성이었어요." 창이 말한다. "그래서 대만에 갔죠."


그는 경력의 대부분을 텍사스에서 보냈고 대만에서 15년을 보낸 후 미국에서 은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거의 40년 전 일이다.

나이 들수록 더 좋다

모리스 창은 특이한 사례일까?


얼마 전 일군의 경제학자들이 연배가 있는 기업가가 젊은 기업가보다 더 성공적인지를 조사했다. 인구조사국 기록과 새로 공개된 국세청 데이터를 면밀히 조사함으로써 그들은 2007년부터 2014년 사이에 미국에서 회사를 설립한 창업자 270만 명을 식별할 수 있었다. 그런 다음 연구진은 그들의 나이를 살펴보았다.


회사 설립 당시 이들 기업가의 평균 나이는 41.9세였다.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기업의 경우 창업자의 평균 연령은 45세였다. 경제학자들은 또한 50대 창업자가 30대 창업자보다 큰 성공을 거둘 확률이 거의 2배나 높다는 것을 확인했고, 성공 가능성이 가장 낮은 창업자는 20대 초반이라는 것도 확인했다. 모든 증거는 그들을 직관에 반하는 결론으로 이끌었다.


"성공한 기업가는 젊은이가 아닌 중년이다." 연구진은 2020년 논문에 썼다.


2007~2014년 설립된 미국 기업의 창업자의 연령별 분포도. 전체 창업자(푸른색) 대비 고성장 기업 창업자(하늘색) 중에서 중년 이상의 창업자 비중이 더 큰 편이다. /그래픽=WSJ

2007~2014년 설립된 미국 기업의 창업자의 연령별 분포도. 전체 창업자(푸른색) 대비 고성장 기업 창업자(하늘색) 중에서 중년 이상의 창업자 비중이 더 큰 편이다. /그래픽=WSJ


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음 속에 그리는 스타트업 창업자의 이미지와는 다르다. 그들은 차고에서 뚝닥거리는 스티브 잡스나 기숙사에서 코딩하는 마크 저커버그를 떠올릴 가능성이 더 높다.마이크로소프트, 애플, 엔비디아, 알파벳, 아마존, 메타 플랫폼은 창업자가 30세 이하였고,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은 재능 있는 젊은 기업가들이 차세대 1조 달러 기업을 창업하길 바라며 돈을 퍼붓는다. 젊은 창업가들은 넘치는 에너지, 만족할 줄 모르는 야망, 미래를 내다 보는 비전을 갖고 있다. 그들에게는 일반적으로 주택담보대출, 가족에 대한 의무, 그들을 산만하게 하거나 리스크를 감수할 의욕을 떨어뜨리는 다른 어른으로서의 책임이 없다. 창 자신도 과학이나 기술적인 사안에 있어서는 젊은이들이 더 혁신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비즈니스에서는 나이가 많을수록 더 낫다. 40대와 50대의 기업가에겐 세상을 뒤바꾸겠다는 의욕은 없을지 모르지만, 실제로 어떻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경험은 있다. 어떤 분야에서는 회사를 차리기 전에 몇 년 동안 전문 교육을 필요로 한다. 예를 들어 바이오테크 분야에서 창업자는 대학 중퇴자보다 대학 교수일 가능성이 더 높다. 다른 분야에선 경력을 쌓는 과정에서 축적한 교훈과 인맥이 필요하다.


"업계에서 실제 직장 생활을 해봤어야만 떠오르는 아이디어들이 있죠." 이 논문의 공저자 중 하나인 피에르 아주레이Pierre Azoulay MIT슬론경영대학원 교수는 말한다. "그런 것들은 일반적으로 20대가 해결하는 과제가 아닙니다. 기업 고객의 문제를 가까이서 직접 경험해야 해결책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죠."


미국 기업에 대한 연구진의 연구 결과 중 대만의 칩 제조사 성공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되는 한 가지 발견이 더 있었다.그것은 창업 분야(일반적인 부문과 특정 산업 모두)에서 과거에 일한 경험이 성공 가능성을 "엄청나게 높인다"는 것이었다.


"(창업 전 일했던 분야와 창업하는 분야의) 산업 일치도가 높을수록 성공률이 더 높아진다."

파운드리의 설립

모리스 창은 기존의 삶을 뿌리째 뽑아 다른 대륙으로 이주하기로 결정했을 때 자신의 업계에서 30년의 경험을 갖고 있었다. 그는 지구상 그 누구보다도, 그리고 대만의 그 누구보다도 반도체에 대해 분명 더 많이 알고 있었다. 대만 공업기술연구원에서 일을 시작하자마자 모리스 창은 리궈딩의 사무실로 소환되어 두 번째 일을 맡게 되었다.


"그는 제가 대만에서 반도체 회사를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창이 말한다. "그게 바로 TSMC의 시작이었죠."


TSMC의 비즈니스 모델을 궁리할 때, 창은 먼저 TSMC가 될 수 없는 게 무엇인지 인식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제가 텍사스인스트루먼트나 제너럴인스트루먼트에서 만들고 싶었던 그런 위대한 회사가 될 순 없으리라고 판단했죠." 그가 말한다. TI는 칩 생산의 모든 과정을 직접 다뤘지만 텍사스에서 통했던 것이 대만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위대한 회사를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회사, 즉 대만의 강점을 활용하고 많은 약점을 완화할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회사를 만드는 것이었다.


/사진제공=TSMC

/사진제공=TSMC


창은 대만이 칩 공급망에서 정확히 하나의 강점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가 운영하고 있던 연구소는 10년 동안 반도체 실험을 해왔다. 그 10년치 데이터를 살펴봤을 때 창은 대만의 수율, 즉 실리콘웨이퍼에서 제대로 작동하는 칩의 비율에 유쾌한 놀라움을 느꼈다. 당시 대만의 수율은 미국의 거의 두 배였다고 그는 말했다.


창은 자신의 회사가 칩 설계, 판매, 마케팅 면에서 실리콘밸리와 경쟁할 자원이 없을 것임을 알았다. 그러나 그는 훗날 TSMC가 될 회사에 잠재적인 경쟁 우위가 하나 있다고 생각했다. 바로 칩을 제조하는 것, 오직 칩만 제조하는 것이었다.


순수하게 칩만 제조하는 파운드리라는 발상은 고든 캠벨과의 대화에서 착안한 것이다. 창이 제너럴인스트루먼트에서 유감스러운 한 해를 보냈을 때 그를 찾았던 반도체 기업가 고든 캠벨Gordon Campbell은 팹을 짓고 운영하는 데 따르는 고통과 비효율성에 익숙했다. 그는 스타트업이 칩을 설계하고 제조는 아웃소싱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업계 사람들에게 이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진짜 사나이는 팹을 갖고 있다." 업계에서 유명한 말 중 하나다. 하지만 한 사람은 팹리스fabless가 미래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성공적인 반도체 회사의 비밀은 웨이퍼 팹에 있다는 생각에 깊이 빠져 있었죠." 캠벨이 내게 말했다. "팹리스 반도체 모델로의 전환은 사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게 업계 내 지배적인 생각에 너무나 상반되는 바람에 많은 사람이 그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캠벨은 1984년 말 창과 이야기할 때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곧 창도 그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는 모든 팹리스 회사에 파운드리가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대만 정부가 48%의 지분을 가졌고 나머지 자금은 네덜란드 전자 대기업 필립스와 대만의 민간 부문에서 나왔지만 회사의 추진력은 창에게서 나왔다. 그토록 파격적인 비즈니스 모델로 TSMC를 구축하려 했던 통찰력은 그의 경험, 인맥, 전문성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속했던 업계를 뒤흔들기에 충분할 정도로 업계를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TSMC는 비즈니스 모델의 혁신이었죠." 창이 말한다. "그런 종류의 혁신에 있어서는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어쩌면 젊은 사람들보다 더 유능할지도 몰라요."


창은 TSMC의 배경이 되는 아이디어가 그가 오랜 경력에서 발전시켜온 개인적 철학의 결과물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우리 고객의 파트너가 되는 것이죠." 그는 말한다. 1987년의 이 창업 원칙은 오늘날에도 TSMC 파운드리 사업의 기반이다. TSMC는 언제나 고객을 성공시키는 것이 자사의 성공 비법이었다고 말한다.


오늘날 수백 개가 넘는 TSMC의 고객사 중에는 TSMC 보다 가치가 높은 극소수의 회사인 애플과 엔비디아도 있다. TSMC는 애플의 아이폰, 아이패드, 맥 컴퓨터용 칩을 제조하는데 애플은 TSMC 총매출의 4분의1을 차지한다. 엔비디아는 종종 칩메이커로 불리지만 사실 칩을 직접 만들지 않는다. TSMC가 만든다.


오늘날 TSMC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의 규모로 운영되고 있다. 최초의 인텔 마이크로프로세서에는 트랜지스터가 약 2000개 있었지만 최신 엔비디아 칩에는 2000억 개 이상이 들어 있다. 아이폰에 들어가는 칩 하나의 동일한 사본을 찍어내려면 TSMC 팹 하나가 몇 달마다 100경 개 이상의 트랜지스터를 생산해야 한다. 전체 반도체 산업은 한 해에 "인류 역사상 다른 모든 산업의 다른 모든 기업이 생산한 모든 상품의 총량보다 더 많은 트랜지스터를 생산한다"고 밀러는 썼다.


칩에 대한 수요는 TSMC를 그 어느 때보다 가치 있게 만들었다. 지난 5년 동안 TSMC의 시가총액은 거의 4배로 늘었고, 창이 소유한 TSMC의 약 0.5% 지분은 현재 약 35억 달러의 가치가 있다.


"저는 돈을 쫓아서 대만에 온 게 아니었어요." 그가 말한다. "사실 제가 만든 회사에 대한 제 지분은 아주 작았죠. 하지만 주식의 작은 비율에 큰 숫자를 곱하면 부가 되기에 그럭저럭 부자가 됐죠."


나는 그가 대만으로 이주했을 때 성공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물었다.


"1985년의 저에게 성공의 최고 단계는 위대한 회사를 만드는 것이었어요. 보다 낮은 단계의 성공은 적어도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었고요." 그가 말한다. "어쩌다 보니 제가 염두에 둔 최고 수준의 성공을 이뤘네요."


TSMC 직원들 사이에서 '창업자'로 불리는 창은 위대한 회사를 만든 지금에는 성공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자, 더 이상 그에 대해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듯 했다. "제 일은 끝났어요!" 그가 말한다. 그런 다음 그는 창이 아직 대학에 있을 때인 1951년 의회에서 한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고별 연설을 인용했다. 당시 그는 미국에서 하나의 커리어를 일군 후 대만에서 또 다른 커리어를 쌓게 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전 노병이에요." 모리스 창이 말한다. "죽지 않아요. 하지만 사라지고 있죠."



1889년 창간된 미국의 대표적인 경제지. USA투데이에 이어 미국에서 두 번째로 많은 발행부수를 자랑합니다.
 
close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