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05 15:20
스마트폰과 SNS가 청소년의 정신건강을 악화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일상의 관찰 뿐만 아니라 많은 실험 연구에 따르면 스마트폰, SNS, 전면부 카메라가 전 세계를 휩쓰는 듯 한 부정적 감정의 물결에 기여하면서 청소년 불안감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스마트폰이 그 원인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가설에 의문을 제기할 작은 이유가 있다. 140개국 이상에서 수천 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해 나온 올해의 세계행복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 5페이지를 보라. "2006년부터 2023년 사이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에서 30세 미만 인구의 행복도가 크게 감소했으며 서유럽에서도 감소했다." 보고서는 말한다. 하지만 여기 함정이 있다. 세계 다른 곳에서는 이 기간 동안 30세 미만의 행복도가 대체로 증가했다. "중부 및 동부 유럽에서는 모든 연령대에서 행복도가 크게 상승했다." 보고서는 말한다. "구소련 지역과 동아시아에서도 모든 연령대에서 행복도가 크게 증가했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스마트폰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청소년의 불안감 증가는 전세계적이지 않은 것 같다. 규모가 크고 신뢰할 만한 조사들 몇몇을 보면 이러한 현상은 주로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청소년 불행이 증가하고 있는 국가들의 특별한 점을 찾아보자면 대부분 서구 선진국이란 공통점이 있죠."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의 경제학 교수이자 세계행복보고서의 공동 저자인 존 헬리웰John Helliwell이 말했다. "그리고 대부분 영어를 사용하는 국가들이고요."
청소년 고통의 가장 객관적인 지표인 자살과 자해를 살펴보면 더욱 충격적인 실태가 드러난다. 미국과 영국에서 자살은 분명히 증가했다. 지난 10년간 영어권 국가 전반에 걸쳐 Z세대 여성의 자살 시도와 자해로 인한 응급실 방문이 급증했다. 여기에는 호주와 뉴질랜드도 포함된다. 하지만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같이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고소득 국가에서는 자살이나 자해 시도의 증가가 없다. 복스Vox의 에릭 레비츠Eric Levitz가 쓴 바와 같이, 15세에서 19세 사이의 자살률은 실제로 2012년부터 2019년 사이에 유럽 대륙 전역에서 크게 감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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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란 정말 측정하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헬리웰 교수에게 더 많은 자료를 요청했다. 그는 프랑스어와 영어 두 가지 공식 언어를 가진 자신의 모국인 캐나다를 더 자세히 살펴보자고 제안했다. 퀘벡에서는 인구의 80% 이상이 프랑스어를 사용하고 이웃한 온타리오에서는 인구의 4% 미만이 프랑스어를 사용한다. 퀘벡은 '정신건강의 악화가 젊은 비영어 사용자들 사이에서는 덜한가?'라는 질문을 테스트하기에 완벽한 장소로 보인다.
그리고 그 답은 '예'인 것 같다. 세계행복보고서에 사용된 갤럽의 데이터에 따르면 퀘벡의 30세 미만 사람들의 삶의 만족도는 캐나다의 다른 지역 사람들에 비해 절반 정도만 하락했다고 헬리웰 교수는 말했다. 응답자의 선호 언어를 묻는 캐나다 종합사회조사의 별도 분석에서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과 앨버타대학의 연구자들은 집에서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젊은이들이 영어를 사용하는 이들보다 행복도 감소가 더 적었음을 발견했다.
다시 말해 영어권 캐나다에서 청년 행복도가 프랑스어권 캐나다보다 더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청소년 자살 경향성 측정치는 영어권에서 상승하고 있지만 다른 환경은 유사하나 영어를 국어로 쓰지 않는 국가에서는 그렇지 않다.
영어권의 절망은 무엇 때문일까? 어쩌면 더 많은 연구가 진행되면 사라질 통계학적 환상일 수 있다. 어쩌면 영어 사용이 경제 발전 수준을 대략적으로나마 반영하는 지표일 수 있으며 이런 현상이 주로 청소년 스마트폰 사용이 많은 부유한 국가들에서 발생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언어가 청소년의 정신건강과 상관관계가 있을지에 대한 어떤 논문도 찾지 못했다. 국제 행복 연구의 저명한 전문가인 헬리웰 교수도 이러한 문제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행복 전문가들과 심리학자들 여럿과 대화를 나는 후, 나는 잠정적인 가설 하나를 만들어냈다. 우리는 새로운 서구적 정신건강 이론의 국제적 전파를 목격하고 있다. 이는 서구식—어쩌면 그냥 '미국식'—절망의 세계화다.
지난 몇 년 동안 적어도 세 가지 뚜렷한 현상이 영어권의 우울함에 잠재적으로 기여했다. 이들을 각기 진단 인플레이션, 유병률prevalence 인플레이션, 부정성negativity 인플레이션이라고 생각해보자.
[PADO 트럼프 특집: '미리보는 트럼프 2.0 시대']
먼저 진단 인플레이션이다. 2013년, 정신과 의사 앨런 프란시스는 정신의학계에 경고의 메시지를 던졌다. 프란시스는 정신의학의 바이블이라 불리는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 제4판'(일반적으로 DSM-IV로 불린다)이 개정되는 동안 미국정신의학협회의 회장을 역임했다. 1952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돌아온 군인들의 요구에 맞춰 출판된 DSM 제1판은 약 100개의 정신 장애를 나열했다. 2013년까지 DSM에 나열된 장애의 수는 거의 300개로 늘어났다. 2013년 그의 저서 '정신병을 만드는 사람들Saving Normal'에서 프란시스는 "질병의 보다 느슨한 정의"가 사람들을 더 나쁜 상태로 만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DSM-V는 현재 정상으로 여겨지는 수백만 명들에게 정신장애가 있는 것으로 진단될 여지를 만듭니다." 같은해 그가 캐나다의학협회 저널에 한 말이다. 임상 용어의 확장은 그가 '걱정많은 건강한 사람들'—인간으로서 정상적인 경험을 겪었음에도 자신에게 장애가 있다고 오랫동안 걱정하는 사람들 —이라고 부른 새로운 환자군을 만들 위험이 있었다. 그와 다른 이들은 이 현상을 '진단 인플레이션'이라고 불렀다. 일상적인 슬픔과 스트레스를 질병으로 만들기 위해 더 많은 임상 용어를 갖다 붙이는 것이다.
프란시스의 주된 우려는 진단 인플레이션이 과도한 의료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가 옳았을지도 모른다. 2016년 기준으로 미국에서 항우울제를 복용하는 사람들의 비율은 스페인, 프랑스, 독일의 두 배 이상이었고, 한국의 9배였다.
우리의 정신건강 관련 어휘가 늘어남에 따라, 미국의 콘텐츠 크리에이터들도 불안이 스마트폰을 스크롤하는 젊은이들에게 매우 인기 있는—또는 적어도 매우 주목을 끄는—주제임을 인식했다. 내가 2023년 12월에 보도한 바와 같이, 틱톡의 #트라우마 해시태그는 60억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팟캐스트 검색 엔진인 리슨노트Listen Notes에 따르면 5500개 이상의 팟캐스트가 제목에 '트라우마'라는 단어를 포함한다. 연예 매체에서 정신건강 관련 고백은 너무 흔해져서 아예 연예인들의 정신건강 고백을 요약한 하위 장르를 낳았다. '정신건강에 대해 솔직히 말한 39명의 연예인들', '22명의 연예인들이 우울증에 대해 한 말', '유명인 남성들이 정신건강에 대해 솔직하게 고백한 12개의 사례' 등.
이는 우리를 진단 인플레이션에서 '유병률 인플레이션'으로 이끈다. 이는 심리학자 루시 폴크스Lucy Foulkes와 잭 앤드류스Jack L Andrews가 주변에 만연한 불안장애에 대한 우려로 인해 명백한 불안장애가 생겨나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다. 이는 다음과 같이 작용할 수 있다. 친구, 가족, SNS 인플루언서로부터 새로운 정신건강 용어에 대해 계속 듣게 되면, 정상적인 수준의 불안을 자신에게 병이 있다는 징후로 여기기 시작한다. "정신건강 문제가 흔하고 자신들도 경험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들으면... 사람들은 모든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을 이런 렌즈를 통해 해석하기 시작할 수 있다." 폴크스와 앤드류스는 썼다. 이는 자기실현적 예언 같은 것이다. 더 많은 불안 진단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자신의 불안에 대한 보다 과도한 경계로 이어지고, 이는 젊은이들을 일상 활동에서 보다 멀어지게 만들지며, 이는 실제 불안과 우울을 만들고, 결국 더 많은 진단으로 이어진다.
물론 불안과 우울을 그림자에서 끌어내는 것은 많은 이들에게 사회적 선행이었다. '디어 헌터The Dear Hunter'와 '레볼루셔너리 로드Revolutionary Road'와 같은 20세기 문화의 걸작들은 성인들이 오랫동안 수치심과 침묵 속에서 PTSD와 우울증으로 고통받아 왔음을 상기시킨다. 누구도 그 시절의 정신건강 관념으로 돌아가고 싶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정신건강 문제의 낙인을 제거하는 것과 수백만 명의 젊은이들이 정상적인 감정에서 장애의 징후를 찾을 정도로 대중화하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마지막으로 진단 인플레이션과 유병률 인플레이션이 결합해 신경증을 우리 주변에 더욱 두드러지게 만드는 동안, 무대 뒤에서는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미국의 정치, 경제 뉴스 담론의 전반적인 기조가 매우 짧은 시간 내에 훨씬 더 부정적으로 변한 것이다. 진단 인플레이션과 유병률 인플레이션에 맞춰, 이를 '부정성 인플레이션'이라고 부르자.
2023년 펜실베이니아대학, 인디애나대학, 런던비즈니스스쿨의 연구자들은 머신러닝을 사용해 185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미국 50개주 전역의 신문 수천 개에서 수억 페이지의 텍스트를 스캔했다. 연구진은 수십 번의 경기 침체, 여러 번의 공황, 그리고 몇 번의 대전쟁을 거치면서 긍정적인 단어(성공, 낙관적, 명랑한)와 부정적인 단어(실패, 부도, 손실)의 빈도를 추적했다. "미국 뉴스 기사의 부정성 지수는 매우 오랜 기간 동안 안정적인 평균 수준에서 변동했습니다." 이 논문의 공동저자인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경제학자 JH 반빈스베르겐van Binsbergen이 내게 말했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로 부정성이 통제를 벗어났다. "지난 50년 동안 매 10년마다 뉴스 보도는 점점 더 부정적으로 변해왔습니다. 특히 경기 침체를 고려해서 조정해 보면 더욱 그래요." 그가 말했다. 2015년 즈음, 부정적인 뉴스 보도의 빈도가 가속화되었다. 2019년과 2020년에 이르러 미국 뉴스의 평균 감정은 그 어느 때보다 부정적이었다.
뉴스가 어떻게 이렇게 우울해졌을까? 한 가능성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미디어 산업이 더 경쟁적이 되었다는 것이다. 신문사가 독자를 두고 케이블 뉴스와 경쟁하고, 그 다음에는 광고를 두고 웹사이트와 디지털 플랫폼과 경쟁해야 했기 때문이다. 보다 산만해진 독자들을 붙잡기 위해 필사적이 되면서, 더 많은 신문사들이 오래된 진리, '나쁜 소식이 잘 팔린다'에 집중했다. 2001년 논문 "나쁜 것이 좋은 것보다 강하다"에서 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학Case Western Reserve University과 암스테르담자유대학의 심리학자들은 나쁜 감정이 자연스럽게 우리의 주의를 끌고 기억에 오래 남는 이유가 지적인 동물들이 자신의 안전을 위협하는 자극에 더 집중하는 것이 "진화적으로 적응적"이기 때문이라고 썼다. 인터넷이 이러한 인류의 본능을 과도하게 자극했다는 게 뉴욕대학교 심리학자 제이 밴 바벨Jay Van Bavel이 내 팟캐스트 '플레인 잉글리시'에서 한 설명이다. 그가 공저한 2023년 논문의 제목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부정성이 온라인 뉴스 소비를 주도한다.'
정신의학에서의 진단 인플레이션, 미디어에서의 유병률 인플레이션, 뉴스에서의 부정성 인플레이션을 종합해 보면, 미국인들이 비관주의, 불안, 우울로 스스로를 병들게 하고 있다는 뚜렷한 느낌을 받게 된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미국이 오랫동안 코카콜라에서 미키마우스에 이르기까지 세계 경제에서 주요 문화 수출국이었던 것처럼, 우리가 영어권 세계 전체에 매우 신경증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정신건강 접근법을 퍼뜨리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이는 매일 수 시간 동안 영어권 미디어에 빠져 있는 젊은이들에게 불안과 우울의 현저성을 높이고 있다.
이선 와터스Ethan Watters는 저서 '우리처럼 미치다: 미국적 정신의 세계화Crazy Like Us: The Globalization of the American Psyche'에서 흥미로우면서도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미국이 자국 문화를 전 세계로 수출하면서 정신질환, 불안, 우울에 대한 미국적 관념도 함께 수출하고 있는 것일까?
와터스는 정신질환이 역사적으로 지역화되고 다양했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논의를 시작한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서는 수세기 동안 남성들이 모욕을 받은 후 우울한 기간을 거쳐 분노를 일으키며 살인을 저지르는 걸 두고 '아목amok'을 경험한다고 여겼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일부 지역에서는 '코로 불안koro anxiety'이라는 게 있었는데 자신의 생식기가 수축되거나 몸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심각한 걱정을 가리켰다. 빅토리아 시대 유럽에서는 수천 명의 부유한 여성들이 "히스테리성 다리 마비"로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다고 주장했고, 많은 젊은 남성들은 특별한 이유 없이 트랜스 상태로 수백 킬로미터를 걸어다니는 "히스테리성 방랑"으로 고통받았다.
하지만 와터스는 세계화와 인터넷이 한때 울퉁불퉁했던 세계의 정신장애의 지형을 평탄하게 만들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가 제시하는 가장 충격적인 사례는 홍콩의 것이다. 홍콩의 정신과 의사들은 수세기 동안 홍콩에서 거식증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기록이 사실상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1994년 상황이 달라졌다. 뉴스 카메라가 지켜보는 가운데 한 소녀가 번화가 한복판에서 굶주림으로 사망한 것이었다. 이는 전국을 공황 상태로 몰아넣었다. 서구의 정신건강 전문가들이 설명을 제공하기 위해 도착했다. 이는 신경성 식욕부진증anorexia nervosa, 다시 말해 스스로를 굶주리게 만드는 정신질환이었다. TV와 학교에서 전문가들은 극심한 스트레스나 우울증을 겪는 소녀들이 이 새로운 질병에 취약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10년 사이 홍콩의 거식증 비율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홍콩의 거식증 급증—코로와 히스테리성 방랑도 마찬가지로—에 대한 단순한 설명은 정신질환이 언제 어디서나 사회적 전염의 사례라는 것일 테다. 틀렸다. 우리가 걱정과 슬픔이라고 부르는 것은 보편적인 인간의 특성이며, 조현병과 같은 많은 정신장애는 전 세계적으로 나타난다. 와터스의 가장 흥미로운 아이디어는 그보다는 더 미묘한데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은 무의식에서 우리에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우리의 가장 어두운 생각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당시 현장의 문화에서 유행하는 개념을 택해 우리의 나쁜 감정을 표현하고 행동으로 옮긴다.
"환자들은 무의식적으로 그 시대의 의학적 진단에 부합하는 증상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합니다." 한 정신건강 전문가가 와터스에게 말한다. 따라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돌던 19세기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을 수 있고 의사들은 그를 히스테리성 다리 마비로 진단할 수 있다. 그리고 스마트폰이 부정성 콘텐츠를 끊임없이 주입하는 21세기 문화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인터넷에서 갓 경험한 걱정어린 우울함을 그 시대의 은어로 표현할 것이다. '나는 아파요.' '나는 트라우마가 있어요.' '이게 나의 장애입니다.' 와터스가 옳다면, 개인주의적이고 미국적인 정신건강에 대한 접근법—우리의 트라우마와 불안에 대한 일종의 강박적 집착을 조장하는—이 다른 문화현상과 마찬가지로 영어권 세계 전체로 퍼지고 있다고 생각해도 터무니없는 일이 아니다.
이는 새로운 가설이다. 때문에 경험적 이론으로 간주될 만큼의 충분한 데이터로 뒷받침되지 않는다. 다시 말하자면 '불안 인플레이션' 가설은 네 가지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 진단 인플레이션: 미국 정신의학계는 질병에 대한 정의를 확장했고, 이는 정상적인 감정을 병리화하는 '걱정많은 건강한 사람들'을 대거 양산해낼 위험을 안고 있었다.
- 유병률 인플레이션: 십대들이 인터넷에서 불안 관련 콘텐츠에 둘러싸이면서, 많은 취약한 젊은이들이 미디어에서 반복해서 보는 병리 현상들을 내면화했다.
- 부정성 인플레이션: 한편, 미국 뉴스 미디어 전반에 걸친 부정성의 급증은 세상에 대한 피로감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 미국적 정신의 세계화: 세계 최고의 문화수출국인 미국이 이러한 정신건강 이데올로기, 불안한 자기인식 스타일을 영어권 세계에 전파하고 있다. 이는 전에도 일어난 적이 있다. 하지만 (1990년대 홍콩에서 거식증이 퍼졌을 때처럼) 전문가들의 정신건강 캠페인을 통해 퍼지는 대신 이 '불안 인플레이션' 장애는 SNS에서 또래 사이에서, 그리고 인플루언서들 사이에서도 퍼지고 있다. 이것이 스마트폰 사용과 불안이 영어권 국가에서는 매우 높은 상관관계를 보이지만 미국 미디어에 그만큼 노출되지 않은 곳에서는 그렇지 않은 이유다.
나는 여기서 스마트폰과 SNS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내 불안 인플레이션 이론이 조너선 하이트의 '불안한 세대'의 논지에 대한 강력한 반박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하이트 자신도 젊은이들이 SNS에서 소비하는 콘텐츠에 대해 쓴 바 있는데, 정상적인 생각과 감정을 과도하게 부정적으로 해석하도록 만드는 '역 인지행동치료reverse-CBT' 이데올로기의 부상도 여기 포함된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고 있는 미스터리를 정면으로 다룰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스마트폰 사용이 전 세계적이라면, 왜 십대들의 불안증이 급증하고 있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가 대부분 영어권 국가에서 보이고 영어 사용이 적은 이웃 국가에서는 별로 보이지 않을까?'
나의 대답은, 정신질환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정신질환의 '경험'은 문화와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영어권에서 십대들 사이에 우울함이 급증하고 있다면 우리는 젊은이들이 IT기술과 함께 소비하고 있는 문화를 연구해야 한다. 지난 세대에 영어권 세계는 미국의 주도 아래 '걱정많은 건강한 사람들'의 대열을 확장시킨 새로운 정신건강 접근법을 실험했고, SNS는 젊은이들을 그들의 불안과 트라우마에 집착하라는 알림 메시지로 포위했다. 한편 미국 뉴스 미디어는 순간적인 관심을 끌기 위해 시청자들에게 부정성을 쏟아부었다.
데릭 톰슨은 애틀랜틱의 기자이며 '플레인 잉글리시'라는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 'Hit Makers: How to Succeed in an Age of Distraction'(2017)이 있다.
근래 들어 청소년에게서 우울증 등의 정신건강 문제가 증가하는 원인을 스마트폰 사용에서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PADO에서도 소개한 조너선 하이트의 신간 '불안한 세대'에서도 비슷한 지적(하이트는 이보다 훨씬 광범위한 문제를 다룹니다)을 볼 수 있지요. 그런데 애틀랜틱의 데릭 톰슨은 다른 언어권에 비해 유독 영어권에서만 청소년 정신건강 문제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파고들면서 또다른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미국의 정신의학계가 정신질환의 정의를 확장하면서 정상에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질환의 진단을 많이 내리게 됐고 이것이 SNS의 유행과 언론매체 내 부정적 뉴스의 폭증과 결합해 영어권 전반으로 불안증을 '수출'하고 있다는 가설입니다. 상당히 대담한 가설인지라 앞으로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톰슨이 거론하는 네 가지 주요 요인들은 분명 그 징후가 뚜렷해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타일러 코웬은 이 기사를 두고 '올해 가장 훌륭하고 중요한 기사 중 하나'라 평했습니다. 하이트의 주장에 대한 반론이라기 보다는 '보론'으로 볼 수 있는 이 기사는 미국은 물론이고 나아가 영어권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초가 될 것입니다.